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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K Jun 03. 2019

취업의 기준 정하기 #1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갔던 과정

어떻게 취업시장을 뚫었더라.

요즘은 물어보는 후배도 없는지라 기억을 더듬기가 쉽지가 않다.

다만 취업준비를 했던 1년 이상의 시간 동안, 내가 어떤 고민을 하며 삶을 이끌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고등학교때 그림을 포기하고 공부에 손을 놓았던 나는 서울 안의 4년제 문과생이라는 타이틀 하나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자유'라는 것이 손에 들어오니 그제서야 눈이 뜨이고 삶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2학년, 마냥 재미와 적성만 찾아 들어왔던 불어불문과에서 취업에 실용적인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다. 수익과 비용을 배우기 시작하며 매일 책상에서 낙서만 하던 내가 어떻게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3학년,  가진 것은 큰 키밖에 없었던지라 (통통한 체질이라 독하게 다이어트도 해야 했다) 승무원학원에 등록을 해본다. 여행을 자주 다니고 돈도 많이 벌 것 같았다. 학원을 다니니 매일 거울 앞에서 예쁜 포즈도 취해보고, 메이크업과 헤어하는 법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트에도 매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면접 연습을 하고 두 번 정도 떨어지고 나니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안들었다. 예쁜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열명씩 들어가서 한마디씩만 물어보는 면접에서 외모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거기에 된다 한들 맨날 그 틈바구니에서 예뻐보이려 힘주고 다닐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평소 외모 가꾸는 취미가 별로 없었던지라 몸이 힘든건 더욱 못버틸 것 같았다. 대신 면접연습을 빨리한 덕분에 자기소개서와 면접태도에 대한 스킬을 남들보다 먼저 배우긴 했다. 그리고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4학년, 서빙아르바이트에 재미도 느꼈고 베이킹도 좋아했던 내게 외식산업이 맞지 않을까 싶어 뒤늦게 인턴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C*푸*빌에서 인턴모집이 있었는데 마감 직전이었다. 부리나케 자소서를 넣었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놀* 에서 인턴모집이 있었는데, 사업기획실이었다. 경영학부의 꿈이자 브레인들의 집합소 사업기획실. 면접을 보러가서 승무원준비시절 만들어놓았던 대본을 꺼내서 자기소개를 읽어보는데 인사담당자가 들어왔다. 꽤 고우신 언니였는데, 내가 준비한 대본을 달달 읽고있는게 기특해보였는지 연신 날 보며 엄마미소를 지었다. 면접은 사업기획실 임원이 봤는데, 사회경험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무식이 용기라고. 패기 넘치게 자기소개하는 모습을 꽤 맘에 들어한 것 같았다. 그렇게 첫 인턴에 합격했고, 여름방학부터 6개월간 인턴을 잘 마치면 취업의 기회도 주어진다고 했다.







인턴생활은 기회가 되면 나중에 자세히 쓰고, 인턴생활이 계기가 되어 나는 6개월의 인턴을 마치고 1년간 필리핀/미국/일본을 다니며 어학능력을 끌어올린다. 한국에 돌아오니 1년 6개월을 휴학한 학생이었고, 2학기과목을 듣지 못해 부전공으로 가지고 있었던 불어불문을 포기해야했다. 어차피 불어는 포기한지라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복학해서 마지막 학기인 1학기에 쓴 자소서가 약 100개, 졸업을 연기해서 2학기까지 취준생으로 있으면서 쓴 자소서가 또 약 100개 정도 된다. 당연히 겹치는 내용이 많고, 심지어 겹치는 회사도 여러 군데 있다. 미리 말하지만 자소서에서 다음 단계로 간 확률은 10%, 거기서 최종 면접까지 간 확률은 2% 될까말까 했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몰려있던 나는 지칠 수가 없었고,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도전했다. (심지어 지금 다니는 회사는 2학기 말에 취업했던 회사를 다니면서 지원했다.)


그리고 1학기 때와 달리 2학기 들어서는 취업 포인트를 바꾸었다.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서비스업과 기획, 마케팅쪽에 많이 지원을 했었다. 이유는 내가 서비스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대표적으로 백화점(특히 식품매장기획!)을 희망했었고 면접도 봤었지만 당연히 벽에 부딪혔다. 벽 이야기는 또 나중에 해보도록 하자. 어디에 어떻게 지원을 하고 뭘 준비하고 혼란이 많았던 1학기가 끝나자 한 곳에서 추가 합격 연락이 왔다. **제약이었는데, 인사담당자 눈빛이 게슴츠레 하니 인상이 좋지 않았고, 영업기획이었는데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고사하고 심기 일전하는 마음으로 졸업을 한 학기 미루었다.





2학기가 되자 마음은 조금 더 급했지만 현실을 좀 더 직시할 수 있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과 보람을 (지금 생각하면 개소리지만)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접점을 찾았다. 그 때 생각했던 우선순위는 아래와 같았다.


[희망조건]

1. 대기업이거나, 2. 연봉 3500이상


[희망분야]

제조업. 특히 신재생에너지(태양광,2차전지 등, 또는 관련 산업)


나는 그동안 좋아해왔던 서비스업/외식산업이 아니더라도 연봉이 기준에 맞지 않거나 대기업이라 이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가지 않기로 했다. 어느 산업에 종사하던 고충이 없지 않다는 것을 체험해왔고, 내가 좋아하는 산업들은 당연히 누구나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치열했거니와, 업무환경이 좋지 않아 왠만해서 여자를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업과 제조업의 경우 일정 비율 이상의 여자가 필요했고, 직원 수가 많은 만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상대적으로 컸다. 제조업 특성상 가깝게는 용인부터 대전, 멀게는 울산과 광양까지도 배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가 당시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고, 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여러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하고 있어 미래에 발전 가능성도 높은데다 환경에 이바지한다는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이 분야로 마음을 굳혔다.


12월 중순이 지나고 거의 모든 회사의 리쿠르팅이 끝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취업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단 하나의 회사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다음 편에 계속..)


# 다음편 계획

   . 취업준비에 도움이 되었던 것과 아닌 것

   . 실제 진행했던 이력

   . 취준 당시와 현재의 비교

   . 취준하며 터득한 꿀팁 (서류, 적성검사,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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