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누가 설계할까?

자극 없이 못 산다

by 드타

고요하고 평온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

하지만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은 결국 강렬한 자극을 좇으며 살아간다.


돈, 음식, 사랑, 인정...

이 모든 건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고,

결국 뇌를 움직이는 쾌락의 신호로 바뀐다.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우리는 어쩌면, 쾌감을 추적하며 반응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누군가는 고통의 끝자락에서,

또 누군가는 절박한 현실을 버티며

마침내 찾아오는 짧고도 짙은 보상을 위해 하루를 살아낸다.

그 순간의 환희를 위해 인생을 설계하고, 오늘을 견딘다.


이처럼 인간은 강도 높은 감각에 쉽게 이끌린다.

그리고 대부분 그 자극은 밖에서부터 온다.

의지로 다스리기 어렵고, 대신 손에 넣기는 쉬운 것들.

맛있는 음식, 설레는 관계, 쌓여가는 숫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든 깊이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감각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공자는 말했다.

“예순이 되면 귀가 순해진다.”

억지로 이해하지 않아도,

마음이 저절로 받아들이는 경지.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이순'이다.


결국 쾌락을 가늠하고 선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어른, 어쩌면 성인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반응의 회로를 지닌 채 살아간다.

기질, 감정의 민감도, 충동의 속도.

그걸 오롯이 의지로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면’을 쓴다.

진짜 욕망을 감추고, 스스로를 조율하며

역할에 맞춰 자기 자신을 편집한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관계를 지키기 위해, 혼자 남지 않기 위해.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나이 들어 진짜 친구 하나 있으면, 그건 꽤 잘 산 인생이다.”


왜일까?

진심을 꺼내 보이는 순간,

의도치 않게 상대의 경계를 건드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온도를 지키기 위해 조금씩 물러선다.


인간은 불과 같다.

누구나 각자의 열을 품고 있고,

너무 가까우면 타고, 너무 멀어지면 식는다.


그래서 인간은

보상이라는 감각 체계에 기대어 살아가고,

무대 위의 배역처럼 관계 속에서 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느 날,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나였던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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