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변화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왜 이토록 마음이 무거워질까?
사소한 불편, 작은 불안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면
그 생각은 점점 부풀어
행동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국 실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큰 문제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건 단지 내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지하철 2호선을 따라 걷던 날이 생각난다.
미세먼지가 심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일교차 때문인지 금세 안쪽이 습기로 가득 찼다.
‘이거 성능 떨어지는 거 아닐까?’
‘다음 약국 못 보면 어쩌지?’
사실, 마스크는 충분히 쓸 만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혹시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가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방향이었다.
사람은 종종 현실보다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 속에서
스스로 이유를 만들고 걱정하고,
결국 스스로를 포기한다.
요즘 들어 그런 심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그래도 잘될 거야’ 같은 근거 없는 낙관도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었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조심스럽게 꺼내야 하는 분위기다.
희망을 말하는 일이
어쩐지 가볍고 무책임하게 들리는 시대.
그래서 점점 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실패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99개의 칭찬보다
1개의 비난에 더 크게 반응한다.
불안은 빠르게 전염되고 쉽게 굳는다.
그렇게 우리는
부정적인 사고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작고 긍정적인 말들을 떠올리려 한다.
“수고했어.”
“도와줘서 고마워.”
“그 일 쉽지 않았을 텐데, 잘 해냈네.”
이런 짧은 말들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나 역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작지만 진심 어린 말을 건네보려 한다.
크게 외치지 않아도 되는 말들로.
진심은 자주 작고, 그래서 더 진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누군가에게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
작은 말이 생각보다 멀리 퍼져나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