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원하면서 을로 살아가는 모순

by 드타

사람들은 살아가며 자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월세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을 눈치 보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삶. 말만 들어도 근사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자유를 가장 많이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현실에서는 가장 불안하게, 가장 타인의 기준에 얽매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자유를 꿈꾸지만, 속마음엔 안정과 타인의 인정, 경제적 두려움, 사회적 기준이 혼재한다. 이 모든 요소는 자유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자유의 본질은 선택의 주도권이다.


진짜 자유는 단순한 ‘무제한의 행동’이 아니다.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권한,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선택을 실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결합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퇴직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실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월세가 밀리고, 이직에 실패할까 두렵고, 부모나 가족의 실망이 걱정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선택이 가능한 상태, 즉 자유를 원하면서도 스스로 그 자유를 쥘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이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을’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 구조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그 안에는 욕망이 있고, 불안이 있고, 자아의 흔들림이 있다.


족쇄는 스스로 만든다.


재밌는 건, 이 구조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월급, 더 인정받는 위치에 서고 싶다는 욕심은 처음엔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도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욕심은 점점 나를 시험대에 세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압박은 퇴근 후 시간을 휴식이 아니라 공부와 같은 자기개발 으로 채우게 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무리한 경쟁과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스스로를 던지게 만든다.


결국 욕망은 나를 움직이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묶어두는 족쇄가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론 늘 ‘을’의 입장에 머물게 된다.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며, 실현되지도 않은 미래의 공포를 상상하며, 현재의 선택을 포기한다.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의 비밀


어떤 사람들은 자유로워 보인다. 회사를 나오고 자신만의 일을 하거나,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고, 불확실성을 감내할 체력과 정신력을 길렀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자기 기준으로 결정을 내렸다.


자유란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자유는 무책임이나 불안으로 바뀌기 쉽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의 말에 끌려다니는 을일지라도, 자유를 꿈꾼다면 그 꿈은 준비로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유를 원한다면, 우선 ‘나’부터 회복하자.


진짜 자유로운 사람은, 겉모습보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 기준으로 삶을 평가하며, 잘못된 선택에 책임을 돌리기보다 다음 선택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에 매여 있지?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뭘까?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질문들을 피하지 말자. 삶의 주도권은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질문에 솔직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우리는 을이 아니라, 잠시 방향을 잃은 주체다. 삶은 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내가 나의 중심을 잡는 순간, 현실은 조금씩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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