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가끔 기사에서 역대급 흑자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빠듯할까?
같은 사회에 사는 게 맞긴 할까?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해가 지나며 과거보다 높은 실적을 경신 중이다.
수출 호조, 기술 경쟁력, 글로벌 진출.
뉴스에서는 “국가 경쟁력 상승”, “한국 기업의 약진”이라는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는 점점 더 빠듯해진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물가는 오르고,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졌다는 느낌은 없다.
기업이 잘 된다면, 노동자도 같이 잘돼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체감은 반대일까?
이건 단순한 우연이나 기분 탓이 아니다.
기업과 개인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기업은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벌고 있는가?
예전에는 기업이 이익을 내면, 그 이익이 임금 인상, 복지 향상, 신규 고용으로 이어졌다.
“회사 잘되면 나도 잘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대의 기업들은 성과는 극대화하면서도, 인건비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설계한다.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확대, 외주화, 파견, 도급으로 고용의 불안정성 극대화, 벌어들인 돈은 기업 내부에 유보한다.
문제는 이 유보금조차 주주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 기업들은 유독 배당을 짜게 주는 구조이다.
주주 중심 경영을 표방하지만,
미국처럼 자사주 매입이나 적극적 배당으로 주주를 부자로 만드는 구조는 아니다.
즉, 노동자에게도, 주주에게도 돈이 돌지 않는다.
그러니 국내 소비 시장(내수)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성과’는 올라가는데, ‘소득’은 그대로이다.
기업은 생산성을 올리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그 생산성이 직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쓰이지는 않는다.
자동화로 사람을 줄이고 기계를 늘리고,
플랫폼화로 고용 대신 ‘연결 구조’로 수익을 낸다,
성과주의로 실적 중심 인사 시스템을 지향하지만 대부분은 기본급 그대로이다.
이제 노동은 기업의 핵심 자산이 아니라, 관리 비용이 되어버렸다.
같은 일을 더 효율적으로 시킬 수 있다면, 굳이 고용을 늘릴 이유가 없다.
‘고용’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고용은 소득, 안정, 미래였다.
하지만 지금은 고용의 개념이 바뀌었다.
직장에 있어도 불안정하다.
명예퇴직은 더욱 많아지고, 연봉은 깎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극단화된다.
그리고 개인은 점점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언제 잘릴지 몰라서 돈을 못 쓰겠어요.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만 올라요.
복지도 줄고, 야근은 늘었어요.
이건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기업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문제는 '성장 방향'이다.
기업이 돈을 버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고용과 성장이 함께 갔다.
생산을 늘리면 사람이 더 필요했고, 사람이 많아지면 임금도 늘었고,
임금이 늘면 소비가 돌고, 기업은 더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도 멈췄고 미래가 없어졌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고 유보금은 쌓이지만 사회로 환원되지 않고
소비자도, 주주도 ‘소외된 존재’가 되었다.
이 구조에서는 내수가 돌 수 없다.
그럼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구조는 우리가 멈추라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첫째,
고용을 ‘생존 수단’으로 보기보다,
자신의 자산, 스킬을 위한 도구처럼 생각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과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전문성이 없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도 일반인보다 경험이 조금 더 있을 뿐이지,
진짜 전문가는 극소수다.
뛰어난 소수만이 고위층이나 사업체 대표가 된다.
그렇기에 하나의 분야나 기업에만 얽매이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멀티 자원이 되어야 한다.
셋째,
기업 흐름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야 한다.
어떤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남기고 있는지,
그 이익이 실제 노동자나 주주에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아니면 그냥 모으기만 하는 구조인지 구분하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업은 이익을 낸다.
하지만 그 이익은 노동자에게도, 주주에게도 흘러가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속한 자본 흐름의 왜곡이 문제다.
우리는 같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돈이 도는 흐름에서 소외된 위치에 있다.
그리고 그 소외는 점점 더 ‘노력’이 아니라 ‘구조’를 문제 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