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인생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낳은 사회적 공포
그렇게 살아서 뭐가 되겠냐?
아마 이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무수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허용되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 하고, 졸업 후엔 취업을 해야 하며, 가능하면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으로 간주된다. 그 외의 길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쉽게 의심받는다.
"얘, 정신 못 차렸네."
대한민국은 눈에 보이는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이다. 이는 입시, 취업, 심지어 연애와 결혼까지 관통한다. 정답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답은 곧 낙오로 간주되며, 그 낙오자는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실패는 곧 사회적 사망선고니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패에 과도하게 민감한 존재가 되어간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주변의 시선은 그 불안에 불을 붙인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다른 길을 걷는 사람에겐 조언이 아닌 조롱이 돌아오곤 한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자격증 공부하지.”
다양한 삶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는 타인에 대한 불신도 만들어낸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살아왔는데, 쟤는 왜 저렇게 편하게 가?' 라는 식의 비교는 결국 분열을 낳는다. 누군가의 시도가 잘 되면 배 아파하고, 망하면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확인받으려 한다.
이런 사회에서 '다르다'는 말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름은 곧 이상함이고, 위험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그 말은 교과서엔 있지만, 현실에선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왜 다양한 삶을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왜 '정상적인 삶'이라는 틀에 그렇게도 집착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이 사회가 실패를 견디는 방식에 서툴기 때문이다. 실패를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보다, 인생의 낙오로 취급해버리는 구조가 문제다. 그리고 거기엔 우리가 서로에게 가하는 '정답 강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우리는 타인을 향해 '왜 그런 길을 택했느냐'고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정말 내 삶을 선택한 걸까? 아니면 정답지에 있는 답을 적어낸 것뿐일까?
'다르다'는 말은 종종 '편의적 정당화'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야말로, 수많은 동일함의 가면 뒤에 가려진 거대한 불편이다. 개개인이 각자의 페이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게 결국 풍요로운 사회다.
그리고 그 시작은, 누군가의 실패를 웃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우린 이제라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실패를 조롱하지 않고, 다른 길을 시도하는 사람을 응원하며,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삶을 인정하는 사회. 그게 우리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회 아닐까?
정답은 많다. 아니, 애초에 정답은 없다. 그저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삶을 응원하는 것, 그것이 진짜 성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