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은 곧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by 드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다.

편의점에서, 책상 앞에서, 침대에 누워서도.

먹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먹는다는 건 원래 이렇게 쉬운 일이었을까?


과거 수렵채집 시절의 식사 구조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움직이며’ 살아왔다.

식사를 하기 위해선 동물을 쫓아야 했고, 열매를 찾기 위해 이동해야 했으며, 때로는 하루를 굶은 뒤에야 고기를 구할 수 있었다.


즉, 식사란 곧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한 끼의 식사는 단순한 영양 보충이 아니라, 삶의 생존과 연결된 성취였다.


이때의 인간은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허기와 포만 사이의 리듬이 분명했다.

배가 고파야 움직였고, 움직인 끝에야 먹을 수 있었고, 먹고 나면 다시 쉬었다.


그 리듬 속엔 절제도 있었고, 감사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움직임’이 음식의 전제조건이었다.


음식은 노동의 성과다.


‘노동’이란 단어는 현대에 와선 직장, 월급, 스트레스의 이미지로 치환됐지만,

본래 노동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활동이었다.

땅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음식은 단순한 끼니 그 이상이었다.

몸으로 벌어온 음식이기 때문에, 그 속엔 시간과 에너지, 기술이 담겼다.


누군가에겐 사냥의 기억이, 또 누군가에겐 논밭의 땀이 담긴 음식은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일종의 보상이고, 자부심이었다.


‘내가 움직였기에, 나는 먹는다.’

이 말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본능적인 서사였다.


현대인의 ‘노동 없는 식사’가 주는 공허함


하지만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먹는다.

움직이지 않아도 음식은 도착한다. 클릭 몇 번이면 새벽배송이 오고,

앱 하나로 고칼로리의 식사는 30분 안에 문 앞에 놓인다.


문제는 이 편리함이 가져오는 정서적 단절이다.

움직임 없이 얻은 음식은 때때로 우리에게 공허감을 남긴다.


“왜 먹고도 허전하지?”

“왜 배는 부른데 만족은 없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노동을 통한 보상’이라는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즉, 뭔가 움직인 끝에 얻은 음식은 ‘충분히 먹었다’는 감정적 포만감을 주지만,

움직이지 않은 채 들어온 음식은 어디까지나 ‘채워넣기’에 그치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는 요리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텃밭을 가꾸며, 누군가는 등산 후 김밥 한 줄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다.

그건 단순히 음식 때문이 아니다.

움직인 후의 음식이, 우리 몸에 더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듬을 잃었다.


우리는 지금 ‘배고프기 전에 먹고’, ‘움직이기 전에 눕는다’.

고대 인간이 한 끼를 위해 하루를 썼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배달앱을 켠다.


먹는 것의 본질이 바뀌어버렸다.

더 맛있는 걸 먹으려 하지만, 더 만족스럽게 먹는 일은 줄었다.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보상을 받고,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공허해진다.


그건 어쩌면 삶의 리듬이 깨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리적인 활동으로 허기지고 그 결과로 먹고 소화를 위해 쉬는 순환.

이 오래된 리듬 속에서 인간은 감정도, 신체도 균형을 찾았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즉시 주어지는 시대.

욕구는 채워졌지만, 충만함은 사라졌다.


먹는다는 건 곧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움직인 몸에게 주는 포상, 스스로에게 내리는 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지 않아도 너무 쉽게 보상을 받는 시대다.

그러니 보상이, 보상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가끔은,

먹기 전에 움직여보자.

계단을 오르고, 산책을 하고, 장을 직접 보고, 요리를 해보자.

그러면 비로소,

한 끼가 다시 ‘충만한 식사’가 될 수 있다.


그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리듬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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