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윤철규의 글을 읽고 필사한 것으로 작성자 편의상의 편집으로 인한 내용의 잘못된 전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된 아름다움이란 노자에 있어 도와 같은 것이다. 장자는 이를 깨달아야만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진정한 가치라고 했다. 또 본질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노장사상에 비추면 산은 무위자연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사회를 피해 은둔한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한 대화를 나눴다. 이것이 청담이다. 청담에서 사물에 대한 품평은 주요한 테마였다. 이들은 시를 놓고 우열을 논했다. 또 글씨에 대해서도 품평했다. 그 가운데 인물도 들어 있었다.
인물 품평은 이미 후한 말부터 시작됐다. 인물을 논하며 등급을 정하는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 그러다 오장사상이 유행하면서 품평이 달라졌다. 세속을 초월한 인물을 가리고자 한 것이다. 정치나 행정의 수완이 아니라 기품, 격조, 성정을 보게 됐다.
그리고 품평이 정교해지면서 부수 효과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나 태도만 고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즉, 보이는 것의 이면에 있는 내적인 성격이나 성품을 찾아내 판단하고자 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