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기 졸업생 종이선 선생님의 이야기
처음부터 필라테스 강사가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며 프리랜서로 살아왔습니다.
꽃에도 관심이 많아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따고, 꽃을 만지는 시간을 사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늘 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좀 더 알아봐 줘.’
운동을 할 때마다 찾아오는 오른쪽 승모근의 불편함이, 결국 저를 이 길로 이끌었습니다.
SNS에서 무심코 본 해부학 자료와 재활 필라테스 영상들은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전까지 필라테스는 체형 관리, 다이어트 정도의 운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허리 통증을, 누군가는 어깨 통증을, 또 어떤 이는 거동이 불편한 노년의 삶을 필라테스로 회복해가고 있었습니다.
“아, 이 운동은 단순한 ‘몸매 관리’가 아니라 삶의 질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 순간, 제 마음은 움직였습니다.
주변 무용 전공 친구들 중에는 이미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자격증을 딴 곳이 바로 국제재활필라테협회였습니다.
“요즘은 이력서 낼 때 협회 이름을 본다.”
친구들의 현실적인 조언은 저를 단번에 설득했습니다.
알아주는 협회, 퀄리티와 비용까지 만족스러운 협회.
그 길의 시작점에 제가 서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자격증 과정을 배우며 가장 크게 놀란 건 ‘자세의 변화’였습니다.
동작 중 불편했던 부위가, 자세를 조금만 바꾸자 바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제가 원하는 부위에 정확히 자극을 주고 있었습니다.
몸을 이해하는 만큼 운동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사실.
그건 제게 단순한 흥미를 넘어,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 6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며 친구의 센터에서 무급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 선택은 제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냈습니다. 총 10곳.
5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고, 그중 3곳은 합격.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꾸준히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전공을 살려 맡게 된 바레(barre) 수업입니다.
자격증이 없어도 무작정 도전했던 지원이었는데, 결국 합격했고, 지금까지도 즐겁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오늘 제대로 운동한 것 같다”라고 말해줄 때, 저는 강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느낍니다.
첫 수업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너무 긴장해서 일주일 내내 하루 2~3시간씩 연습하고, 심지어 혼자 상황극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업에서는 말이 더듬어지고, 우울해졌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한 회원님이 이렇게 말해주셨습니다.
“운동이 정말 잘 되었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 한마디가 제게는 등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길을 계속 가게 한 힘이었습니다.
저는 시니어 전문 재활 필라테스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걷기 어려운 분, 허리가 굽은 분, 관절에 통증이 있는 분들.
그분들의 삶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해부학을 공부하고, 필요한 자격증도 준비하며 제 길을 다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작하면 생각보다 빨리 확신이 생깁니다.”
과정 중 만난 김유정 선생님의 따뜻한 수업 방식, 그리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조언과 지원.
조현구 이사님이 인스타그램과 오픈 채팅방으로 꾸준히 보내주시는 자료들.
이런 든든한 지원 속에서, 저는 과정에 투자한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빨리 시작할 걸’ 하는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무용수로서 무대에 섰던 제가, 이제는 또 다른 무대에 섭니다.
리포머 위에서, 시니어 회원님 앞에서, 제 앞에 앉은 누군가를 향해.
몸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움직임을 통해 삶을 바꾸는 길.
그 길 위에 선 지금의 제가 참 감사하고, 앞으로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