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신규별전 #1

by 투미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무거운 이야기들 속을 헤매다 보니, 이번만큼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써 내려가고 싶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가볍게 썰을 풀듯이.


오늘은 첫 ‘인투’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누구나 처음은 낯설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또 어떤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나에게도 그랬다.


완벽한 위로대신 간호의 정확도를 택했다.

입 대신 손을 움직이기로 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정확히 투약하고, 기록하고, 수액 조절 속도를 체크받고, 환자를 보내고

입을 닫는 대신 손의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병원을 오가던 어느 날,

나는 간호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관 삽관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면서도 흐릿하다.

삽관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도, 나와 가까운 일이 될 거라고도 생각 못 하던 시절이었다.

그저 신규 교육 때, 딱딱한 마네킹을 앞에 두고 연습해 본 것이 전부였던 나.

그런데 교수님이 회진을 마치고 내뱉은 한 마디는 너무나 간결하고, 무심하게 들렸다.


“삽관 준비하세요.”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네?? 제가요??”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얼굴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환자가 숨이 끊어지는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폐암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이제는 병동이 아닌 중환자실 집중 케어가 필요한 환자였다.

계획된 삽관, 말하자면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의 순간이었다.


완화병동이다.

DNR(연명의료 포기)을 결정한 말기 환자들이 주로 오는 곳.

그러다 보니 삽관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1년도 안 된 신규 간호사가 삽관을 준비한다?

빅 이벤트였다.


보통 한 타임에 신규 한 명, 시니어 한 명 이렇게 짜여서 신규가 덜 헤매도록 하는데,

그날따라 나와 나보다 겨우 8개월 먼저 들어온 동기가 함께 일하는 날이었다.

둘 다 삽관을 해본 적이 없는 조합

결국 병동에 있던 모든 선생님들이 출동했다.

심지어 수간호사님까지 액팅을 뛰었다.


그 환자가 기억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제 막 결혼 2년 차 된 신혼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옆에는 아내가 보호자로 서 있었다.


Vent(인공호흡기)를 달기 전 마지막 단계인 HFNC(고유량 산소치료)를 최대로 올려도

그는 숨을 헐떡이며 객혈을 했다.


교수님은 회진 중, 보호자와 환자에게 마지막 결정을 요구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더 버틸 수 없습니다.”

“연명의료를 중단할지, 아니면 삽관 후 중환자실로 이동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가도 호전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면회가 안 되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교수님의 말을 곱씹으며, 환자와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환자는 힘겹게 숨을 쉬면서도, 자신의 손을 아내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한 명의 환자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미 오전 10시를 넘겼고, 나는 이 환자 외에도 총 6명의 환자를 맡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 내 업무도 수월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기다렸다.

그들에게는 마지막 시간이 필요하니까.


30분 후, 다시 병실을 찾았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가겠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의 손을 꼭 붙든 채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조용히,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다른 환자들은 나를 찾고 있다.

빨리 결정해야 나도, 병동도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마지막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흐느낌만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 삽관하겠습니다.”


삽관.

그 말은 곧,

이제 모든 것을 의료진에게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이제부터는 환자가 아닌 기계가 그의 폐를 대신 움직여줄 것이다.

그가 깨어날지, 아니면 이대로 잠들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고, 삽관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는 아직 의사 파업 전이라 주치의가 레지던트 1년 차 선생님이었다.

문제는…

그 레지던트 선생님도 삽관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신속대응팀(RRT, Rapid Response Team)을 호출했고,

그들과 함께 삽관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속대응팀이 도착하기 전에,

C-line(중심정맥관)을 먼저 잡아야 했다.


그래서 레지던트 1년 차 선생님과 단둘이 병실에 남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이 손을 덜덜 떨며 계속 물어볼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저도 신규인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겨우 삼켰달까.


30분이 지나서야 C-line을 잡았고

우리 둘 다 병실을 나오면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신속대응팀이 도착하면서

오후 1시, 본격적인 삽관이 시작되었다.


삽관은 순조롭게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인계 시간(2시)까지 마무리를 못 했다는 것.


나는 엉망으로 인계를 넘기고 남은 처치와 기록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옆에 앉아.”


어디선가 등장한 나의 메인 프리셉터 선생님의 한마디.


평소엔 누구보다 엄격했던 그 선생님이,

그날만큼은 가장 든든한 내 편이었다.


우리는 3시가 넘어서야 모든 업무를 마쳤고,

기진맥진하며 퇴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첫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남길지. 지금은 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도, 그 안에서 점차 익숙함을 찾아가는 과정도, 모두 소중한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첫 경험이 주는 두려움과 어색함, 그리고 점차 익숙해지는 과정이 주는 묘한 설렘과 즐거움. 가끔은 그때의 나처럼 두려움이 아니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문을 열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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