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순간들
흔히 친구들이 연애로 힘들어하거나, 일상의 어떤 순간들이 어렵다 고민을 토로하면
“시간은 흐르니까 좀만 더 견뎌라, 참아라” 답했다.
그게 내 관점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니까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말기 암 환자에게 시간은 원수다.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은 곧 자신의 끝을 의미하므로.
그리고 흔한 매체 속 죽음의 순간은 짧다.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와 모션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족분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말하세요! “ 외치면
갑자기 튀어나온 가족들이 순차적으로 마지막 한 마디씩 마치면 그제야 환자는 눈을 감는다.
실제 죽음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이별이 전무하진 않지만,
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보통 임종까지의 시간이 짧으면 하루 혹은 2주 3주까지 걸리는 걸 보았다.
그리고 죽음으로까지 가는 여정을 무의식 속에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의식이 있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았다.
더 이상 나을 거란 희망이 없는 절망 속에서
커지는 죽음의 그림자는 그 누구에게도 공포스럽다.
임종기 환자들이 겪는 신체적 고통은 마약성 진통제로 줄일 수 있지만, 가만히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정신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약은 병원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만났던 세모 씨는 50대 평범한 가장이었다.
양쪽 폐 속 암이 커지고 전신에 정상 세포보다 암세포가많아지기 전까진 말이다.
폐렴은 암 환자들이 흔히 걸리는 합병증이다. 특히 폐암 환자에게 폐렴은 독약이다.
폐렴이 오면 암덩어리들은 날개 돋은 듯
온몸을 지배하다 결국 패혈증까지 이르게 한다.
암 환자가 아니라면 보통 항생제를 쓰고 잘 치료한다면 패혈증까지 가진 않지만,
세모 씨는 폐암 말기,
결국 패혈증이 왔고 승압제와 여러 수액들, 굵은 산소호흡기 없이는 혼자 호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만났다.
그는 더 이상의 약물이 듣지 않고, 산소호흡기를 때지 않는 이상 전원도 가지 못해 좁은 1인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마디로 갇힌 상태였다.
그의 재원기간이 2주가 넘어가던 어느 날,
나는 간호를 하며 순간
"많이 힘드시죠?"라고 물었고
그의 대답은 "네." 이 한마디였다.
나는 친절한 간호사이고 싶었고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질 거예요. 힘내셔야죠. 할 수 있어요."
듣기에는 좋을지도 모를 문장이었다. 하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어차피 죽을 건데 힘내서 뭐 하나요? 소용이 있나요.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라는 힘 빠진 목소리.
그의 옆에는 앳된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 한 명이 있었는데, 다행인 걸까 이 대화를 할 때는 간병생활에 지쳐 잠들어있었다.
입사 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해야 환자가 덜 아플지 몰랐다.
정답이 없다고 하면 그럴듯하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정답이 필요했다. 그때 내게 정답이 되어 준 건 유튜브 속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관련 서적 속 문장들이었다.
매체 속 그들은 환자의 모든 말에 차분하게 공감했고, 단 한 번도 당황하지 않았으며, 완벽한 위로를 건넸다.
그들이 하는 말은 공증된 답안 같았다. ‘당신이 힘든 걸 이해한다’라든가, ‘당신은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다’ 같은 말. 나는 그 문장들을 외우고 따라 했다.
그러나 세모 씨의 마지막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
내가 따라 하던 다큐멘터리 속 정답들은 한없이 무력 해졌다. 내가 방금 내뱉은 말이 그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까.
환자는 절망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듣기 좋은 말로 그 절망을 가볍게 덮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내가 믿었던 그 정답들은 환자의 현실을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질 거예요."
"아니에요, 힘을 내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그때 깨달았다. 어떤 위로는 오히려 건방진 동정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걸.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게, 어쩌면 환자의 현실을 가볍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세모 씨의 이후
한동안 나는 말을 아꼈다. 자신이 없었다.
고심하여 말을 고르기엔
주어진 일을 쳐내는 것조차 벅찼던 신규였고
난 결국 입을 닫는 걸 선택했다.
세모 씨의 단정했던 머리와 수염이 턱끝을 덮을 정도로 자랐던 어느 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나는 완벽한 위로를 포기하기로 했다.
가끔은 할 말이 없어도 곁에 있는 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정답 같은 말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는 말,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음을 배웠다.
나는 여전히 말이 서툰 간호사다.
하지만 이제는 매뉴얼 속 말을 덜 따라 하고, 정답 없는 순간들을 조금은 더 견뎌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