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기름을 넣어도 소용이 없다
일반적인 종양내과의 이미지는 항암일 텐데,
이곳은 항암과는 거리가 멀다.
항암을 하지 않겠다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을 하고 이곳으로 오는 환자들이 다수이기에.
실제로 나의 신규간호사로서의 1년 동안 항암을 건 적이 2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항암을 하지 않는 대신
증상을 완화시키는 보존적인 치료를 택한 사람들이 오는 특별한 이 병동에서는 재입원은 드물다.
상급 종합병원에서의 입원 기간은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일정 입원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2차 병원으로 전원 또는 퇴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말기 암은 시한폭탄과도 같아서
최선의 치료로
폭탄의 폭발 시기를 미루고 정도를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한 해체는 어렵다.
그래서 퇴원 후
소천하시는 경우가 다반사며
이곳으로의 재입원은 쉽지 않다.
대체로 2차 병원, 예컨대 요양병원 혹은 한방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산소포화도가 저하된다거나, 통증 조절이 안되거나 급성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재입원하는데, 흔치 않게 수차례 재입원을 온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름과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네모씨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살아온 동안 마주한 천사 같은 환자가 딱 2명 있는데, 그중 한 명이다.
"저 또 왔어요." 하며 머쓱해하던 그녀는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어에 능숙했다.
위암이었고 위 전체를 절제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은 그녀의 자궁, 뼛속까지 침투했다.
나이트에게 인계를 준비하다 갑자기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1시간 30분 뒤면 내 근무는 끝인데 지금 응급실 환자를 받아야 한다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찼었다. 환자를 받고 정리하다 보면 분명 퇴근이 늦어질 게 자명했다.
그런데 환자 정보를 보니 네모씨였다.
반가움도 잠시 환자 정보를 까보니, 그녀는 이전에 입원했을 때보다 훨씬 악화된 상태였다.
엑스레이만 보더라도 검었던 폐가 눈 내린 듯 하얗게 변해있었다.
원래 휠체어를 탔었던 네모씨는
이동 침대로 간신히 몸을 맡긴 채 우리 병동으로 이동 왔다.
한눈에 봐도 얼굴과 몸이 야윈 그녀는 골반 통증을 강하게 호소했다.
CT 결과 뼈전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되었는데, 특히 골반뼈에 전이가 많이 이루어진 상태.
응급실에 내원한 이유도 골반 통증이었다.
모르핀도 효과가 크지 않았고, 통증과 더불어 호흡도 어려웠다. 보통 호흡수는 1분 당 12-20까지 정상으로 보는데, 그녀는 30회가량 얕게 쉬며 산소포화도는 89%밖에 측정되지 않았다.
이때 당시에는 의정 사태 전이라 레지던트들이 주치의였다.
"네모 환자, RR(호흡수) 30회, Satu(산소포화도) 89%밖에 안됩니다. O2(산소) 2L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morphine(모르핀) 투여해도 pain control 안됩니다."노티 했고
레지던트의 답변은 "환자를 앉히세요."였다.
지금도 이때를 떠올리면 화가 나는데,
당시 그 레지던트는 일 못하는데 성격도 더러워서 악명높았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골반 전이로 몸부림치는 사람을 앉히라니… 이 무슨 무식한 말일까?
소문으로만 듣던 싸가지를 내 천사에게 부리다니, 참을수 없었다.
네모 환자를 받았을 적이 아직 내가 일한 지 1년이 되지않았었고, 병동에서는 아직 막내간호사여서 일하면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이때만큼은 얼굴이 벌게져서 다시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환자 지금 앉아있는데도 산소포화도 89%입니다. RR(호흡수)도 26회입니다. 진짜 보러도 안 오시고 산소도 안 올리실 건가요?!"
그의 대답은 "하,,,,,그냥 앉혀놓으시라고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는 팍 끊겼다.
산소장치를 한 단계만 올려도 환자가 숨쉬기 편할걸 뻔히 알지만,
간호사는 의사의 컨펌 없이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마음 같아서는 의사의 싸가지를 그대로 일러바치고 싶지만,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본인의 주치의가 본인의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환자는 없다.
네모씨에게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소를 올리기보다약으로 호흡수가 가라앉길 기다리자 하신다.
의사의 짜증을 최대한 합리적인 이유로 포장하여 네모씨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웃으며 괜찮다 자기가 잘 심호흡하면서 조금 더 참아보겠다 나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몇 분 뒤 자기도 불안했는지 결국 그 레지던트가 왔다. 와서 환자를 한번 보고 나를 째려보더니 하는 말
"보세요, 앉히니까 Satu 90% 나오잖아요. 그리고 이 정도면 환자 괜찮은 거예요."
네모씨의 착한 성정이 이 상황에서는 독이였다. 그녀가 최대한 웃으며 의사를 대하자, 그 레지던트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못 느낀 듯싶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는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던 상태.
레지던트가 휑하고 가버리고, 나는 좌절했다.
저 상태로 의사 말만 듣고 환자를 나눠도 되나?
이러면 방치 아닌가?
복잡한 머리를 감싸고 얼굴을 잔뜩 구기고 컴퓨터 앞에 멍하니 있던 내 앞에 순간 한 명이 쓱 지나갔다.
우리 병동에 계신 완화 의료 담당 교수님였다.
다행히 그분께 상황을 간곡히 설명드리고 간신히 산소를 올리도록 주치의였던 레지던트 대신 컨펌받았다.
원래 주치의가 아니면 이런 컨펌을 일반적으로 해주지 않지만, 다행히 네모씨는 더 이상 항암을 진행하지 않아 완화 종양내과 교수에서 완화 교수님으로 전과될 예정이었어서 대신 컨펌이 가능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치료를 받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어 호스피스로의 전원을 준비했다. 전원 가기 마지막 날 밤, 그녀는 나에게 말을 먼저 건넸다.
"선생님 항상 입원 올 때마다 마주쳤었는데, 그동안 감사했고 수고하셨어요."
"어 제가 입원 오실 때마다 받았었던 거 기억하고 계셨어요? 저희가 마스크 끼고 있으니까 모르실 줄 알았는데?"
"에이 아니죠, 기억나죠 다. 열심히 해주셨는데 여기까지가 저의 끝인가 봐요.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 제가 환자분께 해야 할 말을 저한테 해주시네요. 그동안 너무 잘 견디셨어요."
어색하지만 진심을 담아 네모씨에게 말을 건넸고, 그녀는 마지막까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속상했다.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부끄러워 눈을 마지막에 피해버렸다.
여기까지가 저의 끝인가 봐요라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을 세상에서 가장 밝은 얼굴로 하는 네모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에게 내 진심이 닿긴 했을까, 내가 한 말이 최선이었을까, 그동안 그녀를 간호하는 모든 순간에 내가 최선을 다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넘어간 순간들이 휘리릭 머릿속을 지나갔다. 나는 그 순간들을 계속 되뇌며 후회했다.
그리고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한 날로부터 일주일 뒤 전원 간 병원에서 네모씨는 편안한 곳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셨다.
이때 이후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호스피스 병동 영상들을 보며 호스피스 의료진들이 환자들에게 해주는 말, 행하는 행동들을 보고 따라 했다.
유튜브뿐 아니라 이곳 브런치도 이때 처음 접했다. 실제 항암 일기들을 기록하는 작가님들을 글을 읽으며 무슨 생각으로 항암을 하고, 어떤 기분인지 학습했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그들의 고통을 조금 덜어줄 수 있을지 나의 깊은 고민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