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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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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an 01. 2022

1. 브런치를 시작하며

 1. 브런치를 시작하며


 꼬끼오! 새 날이 밝았다.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 산 호랑이의 얼룩무늬가 사방에서 인사를 한다. 늠름한 기상과 느긋한 품새가 품위를 준다. 인간도 호랑이의 기백을 닮으면 영웅으로 존경받겠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해 보겠다는 사람조차 큰 그릇이라고 느끼기 어렵다.


 지난해는 누구나 불안하고 힘들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먼지처럼 날아다니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이변이 속출한 해이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개인의 자유까지 침해당한 채 불안에 뜬 한 해였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잡혀 있다. 가족끼리도 맘대로 만날 수 없는 현실이다. 백신 접종 자와 미 접종 자의 동고동락도 남의 눈치부터 살펴야 할 정도로 불신 시대다.


 그렇다고 삶의 궤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노동현장에서, 농부는 농촌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는다. 역사는 흐르는 것이 순리고 인간은 그 역사에 편승해 살다 가는 것이 숙명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브런치를 하게 됐다. 딸과 아들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글이 되는 공간에 한 자리 잡게 되었다. 브런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한다. 농사꾼 아낙으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되었다. 농부도 퇴직해야 할 때가 온다. 노인 대열에 들어서면 중노동이 힘겨워진다. 농사는 중노동이다. 즐기면서 해도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슬슬 퇴직 후의 삶을 생각하게 되자 글이 되는 공간이라는 브런치에 구미가 당겼다. 일상을 줍는 것도 일이지만. 


 전원생활 운운하지 않아도 시골 삶은 전원생활이다. 농사꾼으로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음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도시의 삶만큼 삭막하지 않다. 호주머니가 비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쌀이 떨어졌다 하면 이웃에서 공수해준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도 호미로 파서 씨앗을 뿌려두면 반찬거리 걱정 없다. 부지런만 하면 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허례허식이 필요 없는 삶을 사는 곳이기도 하다. 남의 눈치 볼 것도 없다. 내 형편에 맞게 살면 된다. 남이 내 인생 살아주는 것도 아니다.  


 농부는 단감박스를 붙이고 두 아이는 이웃 마을에 계시는 두 노인의 점심을 차려드리러 갔다. 백수를 바라보는 시부모님이다.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와 주고 목욕차가 와 준다. 요양보호사가 오기 전에는 두 노인의 삼시 세 끼며 시댁 살림까지 나와 농부가 담당해야 했으니 참 힘에 부쳤다.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이 자식 된 도리지만 그 자식도 노인이 되어 힘든 시절이 온 것이다. 장기요양 복지정책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덕을 톡톡히 본다. 


 나는 가끔 아들과 딸에게 말한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 너희들도 젊다고 시간 낭비하지 마라. 세월은 금세 간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잘 다스려야 후회하지 않는다.’ 노파심일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게 남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되면서 세상 보는 눈도 부드러워진다. 노인이 되면 옹고집이 된다지만 그 옹고집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하는 것도 남은 과제가 아닐까. 촌부의 삶이지만 글과 읽을 책과 사시사철 변하면서도 티 내지 않는 자연이 있어 남은 나날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임인 년, 호랑이해에는 더도 덜도 말고 웃을 일 많고 아프지 말고 너나들이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든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소소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련다. 브런치에 내 삶의 행로가 적혀 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기대하면서. 


 꼬끼오! 

 임인 년 새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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