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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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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an 02. 2022

2. 견물생심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기쁘다. 그것이 싸고 소소한 것이든 비싸고 굵직한 것이든 뭐든지 행복이다. 주고받는 것이 정이다. 연말에 숄을 선물 받고 행복했었다. 외국에 거주하시는 선생님께서 한국 나오시면서 나를 생각해 가져온 선물이기에 더 소중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른과 처음 만나 받은 선물일 때는 더욱 그렇다. 글을 통한 만남은 끈끈하다. 특히 수필을 통해 만난 작가는 서로를 잘 알게 된다. 수필을 통해서 각자 삶의 이력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공감하는 부분, 서로 아끼는 부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 나눔이 생긴다. 


 그러다가 만났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흉허물 없었다. 그렇게 글밭에서 정들었던 재미 원로 수필가 선생님이 준 선물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나. 나는 촌부라 메이커 제품이나 백화점 상품과 거리가 멀다. 오일장에서 산 만 원짜리 옷이 편하고 좋은 여자다. 남이 입던 헌 옷도 내 마음에 들면 거리낌 없이 즐겨 입는다. 나를 위한 치장에는 워낙 무심한 성격이다. 편하면 제일이다. 나다니는 성격도 못 된다. 나들이 갈 일이 있어도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거리낌 없이 활보한다. 나이들 수록 깔끔하게 꾸밀 줄 알아야 한다지만 수더분하게 살아온 촌부에게 꾸미면 오히려 역효과 난다. 그런 내게 숄은 귀한 거다. 마음에 쏙 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가벼웠다.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선물을 간수도 못하고 잃어버렸을 때 아깝기만 할까. 이미 사라진 물건인데도 마음에서 쉽게 포기가 안 된다. 마음이 담긴 선물일 때는 더 그렇다.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선물, 소중한 것도 잃어버릴 때는 순간이다.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탐심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숄을 잃어버린 날의 일정을 셜록홈스처럼 추리해본다. 의심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 의심하지 말자. 이해하자. 만약 내 추리가 맞는다면 선물한 셈 치자. 만약 내 추리 속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면 ‘나, 너무 추워. 저 숄 나주면 안 될까? 참 따뜻하겠다.’ 나는 선뜩 주었을까. 잠깐 망설였을 수도 있지만 흔쾌히 줬을 것이다. 나보다 더 요긴하게 쓰임이 될 줄 아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성격인가. 대범하기보다 감수성 강하고 예민하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머리카락 홈을 판다고 할 정도로 몰입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결론을 내려야만 내가 나에게서 해방되는 성격이다. 그 숄을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가 안 된다. 머릿속은 벌써 사흘 째 밤낮으로 그 사건에 매달려 있다. 내가 차에서 내려 들렸던 곳은 네 곳이다. 그중 마지막 한 곳은 빼야 한다. 마지막 행선지에 도착해 승용차에서 내렸을 때 숄을 생각했다. 추웠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주차하러 간 농부에게 숄을 가져오라고 했다. 농부는 승용차 안에 숄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세 곳뿐이다. 마지막 행선지로 오르는 길거리에서 사과를 샀을 때, 점심을 먹은 음식점, 그리고 지인의 거실 의자가 전부다. 지인을 만나러 갈 때는 분명 목에 두르고 갔다. 마루에서 차를 마실 때도 의자 옆에 걸쳐 놓았다가 내 무릎에 놓고 있었다. 지인의 집을 나설 때도 목에 걸치고 나왔다. 지인이 준 선물을 승용차 뒷좌석에 놓을 때 숄도 벗어서 반으로 접어 농부와 나 사이에 놓았다. 부드러워서 몇 번이나 그 숄을 쓰다듬었던 기억도 난다. 


 음식점에 도착해서 내릴 때 ‘날씨도 따뜻한데 숄을 두르고 갈까 의자에 놔두고 내릴까.’ 잠시 갈등했었다. ‘그래 의자에 놓고 가자.’ 농부와 나 사이에 걸쳐놨던 숄을 내가 앉았던 앞좌석에 얌전히 놓고 내렸다. 승용차를 주차하고 나오는 농부에게 물었다. ‘승용차 문 잠갔어요?’ 농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상하게 안심이 안 됐다. 꼭 그 숄을 잃어버릴 것 같아 불안했던 것이다. 내 불안은 적중했고 거기서부터 숄의 흔적은 사라졌다. 


 음식점에 다시 가서 확인했지만 우리가 떠난 자리에 그런 숄은 없었다고 했다. 농부도 내가 계산하러 갔을 때 옆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단다. 농부가 기억하는 것은 승용차 옆 좌석에 놓인 것을 언뜻 봤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지인은 속이 불편하다며 좀 걷자고 했다. 농부는 승용차를 가지러 가고 나는 지인과 걸었다. 승용차가 옆에 와 섰다. 지인은 앞좌석 문을 열었다. ‘앞좌석은 내 자린데 왜?’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인은 나를 돌아보며 타라고 했다. ‘차문을 열어주려 했구나.’ 고마웠었다. 나는 앞좌석에 앉았지만 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지인은 끊임없이 수다를 쏟았다. 원래 저렇게 말이 많으셨나?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사과 좋아한다는 지인의 말에 끌려 길거리에서 사과를 샀고, 현금이 모자랐던 우리는 한 박스를 사서 나누었다. 이번에 느낀 거지만 지인은 심하게 앓은 후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수다스러워지고 계속 돈이 없다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말도 하고, 춥다는 말도 했다. 내가 지인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현재 보이는 모습만 알 뿐이다.


 마지막 행선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 곳을 들려 확인했지만 숄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길에서 흘렀다면 누가 주워 잘 썼으면 좋겠다. 그 숄이 내 물건이 안 되려고 그랬던 것일까.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도 숄을 들고 망설였었다. 이걸 목에 걸고 나가? 그냥 나가? 날씨가 별로 춥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목에 둘렀다. 인정 샷을 찍고 싶어서. 욕심이 화를 불렀다. 친구 말처럼 연말에 내게 닥칠 액운을 그 숄이 몽땅 싸안고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 지인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내 의심을 더 샀다. 지인은 거리에서 산 사과가 참 맛있다고 더 욕심을 냈다. 사과는 겨울 내내 두고 먹어도 된다면서. 나는 숄을 잃어버리고 정신이 그 숄에 팔렸지만 지인의 사과 타령은 계속됐다. 면사무소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마침 농협 365일 창구가 보였다. 농부는 그 앞에 승용차를 세웠다. 뒷좌석에 앉은 지인은 내릴 생각을 안 했다. 나보고 돈을 찾아 사과를 사 달라는 것인가. 망설이다 물었다. ‘카드 없어요?’ 물었다. ‘아차, 나 돈 있어. 며칠 후에 누가 오면 차비로 주려고 챙겨뒀는데 깜빡했어.’ 이러면서 현금 봉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승용차를 돌려 다시 사과를 사러 갔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숄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의심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 숄 없이도 잘 살았다. 선생님께 미안했지만 내 것이 되고 싶지 않아 떠난 걸 어쩌겠나. 괜한 사람 의심하는 나도 힘들고 농부도 힘들다. 견물생심이었다. 돌고 도는 것이 물건이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이 겨울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 주는 숄이라면 어찌 고맙지 않으랴. 툭툭 털어버리고 싶은데 마음에서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내가 좀생이가 된 것 같다. 물건이란 본래 주인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글을 쓰고 마음에서 내려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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