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아버님, 일어나 봐요. 애비가 이상해요. 애비가, 애비가 숨을 안 쉬어요.”
이 일을 어째, 이 일을 하면서 며느리가 발을 동동 굴렸다.
“악아, 와, 와 이라노. 정신 좀 차리거라. 애비가 우찌 됐다꼬? 퍼뜩 119에 전화 먼저 해라.”
그가 아들 방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아들의 온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정신없이 아들을 부르고 아들의 맥박을 짚어보고, 흔들어도 보고, 가슴을 쳐 봤지만 아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은 그렇게 유언 한 마디 없이 갔다. 젊은 아내와 초등학생인 아들 하나를 이승에 떨어뜨려놓고 제 아비보다 먼저 이승을 떠났던 것이다.
그해 설날 아침에는 아무도 조상님을 위한 차례 상을 차리지 않았다.
그는 명부전을 나와 마당에 섰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르고 맑은 가을 하늘이 높디높게 펼쳐졌다. 마당가를 봤다. 장골 한 아름은 됨직한 느티나무가 아담하게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잎사귀가 떨어지기 시작한 느티나무 아래는 알록달록한 나뭇잎이 다소곳이 쌓여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아깝다 할 때 죽어야 하는데. 업장소멸이 돼야 데려가려는지.’
그는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느티나무 가지에 집을 짓기 시작한 까치 가족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깍 깍 깍 깍 울어댔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어린 가지가 흔들렸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아들 셋에 딸 둘 다복하다 했거늘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구나.’
쓸쓸한 감회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해 음력 정월, 막내를 장사 지내고 사십 구제를 붙이고 아예 제사까지 절에 올린 후 가족 간에 치열한 공방전에 있었다. 물론 맏며느리는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고, 맏아들과 둘째는 주먹다짐을 하며 형제간에 언성을 높였다. 둘째는 형이면 형답게 행동하라고 뼈아픈 소리를 했고, 첫째는 네가 뭘 안다고 큰 소리냐고 동생을 쥐어박았다.
그는 막내를 땅에 묻고 와 비통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앞에서 두 아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꼴을 봤다. 막내며느리는 다 귀찮다며 손자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는 살맛이 안 났다. 그는 먼저 간 아내가 참으로 부러웠고 종갓집 장손으로서 손색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았다. 자식 교육은 제대로 못 시켰던 것이다.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자신이 효자 노릇 했으니 자식들도 당연히 효자가 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바람이었는지 알았다. 윗대 어른들이 그랬듯이 그도 노후는 당연히 맏아들에게 의탁할 것이라 믿었고, 장남에게 조상님 모시는 것을 대물림해 주는 것이 그의 의무고 자랑이라 생각했었다.
“오냐, 너거 자식들에게 본 잘 보이는 일이다.”
그는 돌아섰다. 딸을 따라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당분간이 될지 그곳에 뼈를 묻을지 모르지만 일단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의 처지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점도 있었다. 젊은 과부가 된 막내며느리 집에 의탁하기도 힘들고,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사는 둘째 아들네에 얹혀살기도 어려웠던 탓이었다.
결국 조상님 모시는 일은 둘째에게 맡겼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역시 불만이었다. 못 배우고, 못 사는 동생이라고 늘 홀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많이 배우고 잘난 맏며느리가 맡는 게 당연한 것을 내가 왜 맡아야 하느냐고 했다. 종손이라고 선산이며 부모님 집까지 다 차지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종손이 종손 노릇 못하면 집안의 줏대가 서지 않는다면서 콩가루 집안이라는 소릴 듣고 싶으냐고, 집안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종손이 종손 노릇 못하는데 왜 그 짐을 둘째가 맡아야 하느냐고 했다. 이 모든 사단은 그가 큰아들을 잘못 키운 탓이라고 뼈아픈 말도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둘째는 세 아들 중 가장 힘들게 살았다. 첫째와 셋째는 번듯한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잡아 넉넉하게 사는데. 둘째는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가방 끈이 짧았다. 배운 기술이라곤 자동차 정비기술이니 일 년 열두 달 옷에 기름칠하고 살아도 늘 빠듯한 살림 살이었다. 아이도 셋이나 되었다. 며느리도 식당이다 슈퍼마켓이다 하루벌이 시간대 일을 하는 형편이니 조상님 모시는 것이 좋을 리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맡길 곳은 둘째뿐이지 않는가. 막내가 갑자기 먼 길 떠나고, 홀로 된 며느리는 ‘남궁 김 씨라면 치가 떨린다.’ 할 정도로 만정 떨어졌다고 한다. 막내가 살았을 때는 막내가 조상님 제사를 지냈다. 막내가 죽고 없는데 홀로 된 젊은 며느리에게 제사를 지내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공중에 붕 떠버린 제사를 누군가는 지내야 할 형편이고 남은 며느리는 둘째뿐이었다. 그는 둘째 며느리를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윗대 조상 제사는 시제로 문중에 올리고 그의 부모님과 아내 제사만 부탁한다고 했다. 그것도 당분간만 부탁한다고 했지만 둘째 며느리도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버님, 장손이 잘 돼야 집안이 잘 된다면서 예? 재산 상속까지 아주버님 다 드렸잖아요. 그 잘난 장손 며느리가 모셔야지 예. 이참에 아버님도 형님과 화해하시고 큰 집으로 들어가시는 게 옳은 결정입니더. 재산도 다 줬으니 맏형님이 아버님 모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꺼. 저는 못 합니더.”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못 볼 꼴 다 보는구나. 조상님 뵐 면목이 없구나. 그래도 악아, 생각해 봐라. 핵가족이다 뭐다 해서 형제자매들이 모일 일이 뭐가 있노. 명절이나 제사 때 아니모 조카들 얼굴이나 볼 수 있나. 다들 제 살기 바빠서 제 피붙이 얼굴 보기도 힘든 세상인데. 전통이다 뿌리 찾기다 하는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그러는 줄 아나. 너거들도 늙어봐라. 애비 한 말이 생각날 때 있을 끼다. 자슥들이 저거 편하게 살겠다고 조상님 홀대하고 부모 본척만척하는 것도 다 집안 내림이다. 우리 집안은 효를 근본으로 하고, 가족 간에 우애 있다고 탕탕 믿었건만 내 발등 내가 찍었구나. 한 집안에 남의 식구가 잘 들어와야 된다던 윗대 어르신 말씀이 명언이었다. 너거들도 자슥 키우지 않느냐. 머잖았다. 내 심정 알 날이.”
급기야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시원찮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치아라 고마 둘째는 자식 아니가. 내가 모신다쿠는데 니가 와 난리고. 제사는 내가 지낸다. 조상님 잘 모시모 복 받는다 안 하더나. 니가 내하고 살라모 딴 소리 마라. 뭔 말이 그리 많노? 아부지 제사 걱정 마시고 댕겨 오이소. 아부지 누야 집에 가 있는 동안 내가 돈 왕창 벌어서 큰 집 사서 아부지 모실 테니까 그때까지만 건강하실소.”
둘째 아들의 일갈에 며느리는 자라목처럼 움츠리긴 했지만 튀어나온 입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 둘째 아들에게 미안한 점이 많았다. 둘째가 공부에 취미가 없기도 했지만 큰아들 때문이었다. 맏자식이 잘 돼야 집안의 기둥이 선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살림에 큰아들의 대학 공부 뒷바라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는 은근히 둘째는 기술이나 배워 일찍 돈벌이에 나가길 바랐다. 둘째 아들은 그의 바람대로 공고를 졸업하고 카센터에 취직했다. 봉급을 받아 살림에 보탰다. 둘째 덕에 막내아들은 제 원하는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큰 딸은 은행에 근무하면서 미국 나성에서 연수 나온 총각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나성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가서 살아보니 피붙이가 그리웠던지 여동생 네 가족을 몽땅 불러들였던 것이다. 지금은 둘 다 자리 잡아 나성에서도 넉넉하게 살고 있었다.
“내가 너거들한테 못할 짓을 하는구나. 미안하다.”
그는 물 건너 딸에게 의탁했다. 나성에 사는 동안 꼬장꼬장하던 그의 생각도 많이 변했다. 사람은 세태 따라 변해야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가끔 제사 때문에 큰 아들네와 작은 아들네가 티격태격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큰아들 부부도 이혼장에 도장만 안 찍었지 남처럼 산다는 소문이고, 제사나 명절 때 차례 지내는 것 때문에 작은 아들네도 이혼을 하니 마니하며 부부 싸움이 잦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 결단을 내렸다. 그래, 윗대 조상은 시제로 올려버리고 부모님과 아내 제사만 막내가 있는 절에 맡기자. 절에서 일정기간 제사를 지내주다가 영가 천도를 시켜준다고 하지 않든가. 산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사람 때문에 산사람이 못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조상님께는 참으로 죄스러운 일이지만 제사니 차례니 하는 것 때문에 아들네 부부가 이혼하는 꼴은 더 못 볼 것 같았다. 그렇게 결심하고 더 늦기 전에 자기 대에서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딸네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뒷짐을 지고 하늘을 우러러봤다. 조상님을 하늘같이 모시던 아내가 새삼스럽게 그리웠다. 공자가 그랬든가. 효자 자식을 두려면 자식에게 공부를 가르치지 말고 데리고 살면서 꿍꿍 일을 시키라고 했든가. 많이 배운 자식에게서 효도받기 힘들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는 자신이 그 짝이 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내가 참 세상 헛산 거야. 정년퇴직하도록 학생들에게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 중에 너희들은 꼭 된 사람이 되도록 하라고 가르치며 살아온 내가, 정작 내 자식은 제대로 가르치질 못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모든 업장은 내 대에서 소멸하도록 해야지. 이것이 모두 내 업장이 깊은 탓인 게야.’
하면서 종무소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종무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승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가 책상 앞에 앉았다가 일어났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우리 아들이 이 절에 안치되어 있지요. 다름이 아니고 우리 부모님과 아내 제사도 이 절에 맡겼으면 좋겠는데. 돈은 얼마나 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차를 알고 싶어서.”
그는 가슴이 아팠다.
여자는 잘 오셨다면서 스님 한 분을 불러왔다. 절 살림을 맡아하는 스님이라 했다. 스님과 모든 절차를 다 밟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의 신주를 써주고, 혼백을 모셔오는 절차를 밟아놓고 기백만 원의 기금을 내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스님, 조상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요즘 세태가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절에 거사님처럼 신주 모셔 달라 오는 분들 많습니다. 죽은 조상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워서야 되겠습니까. 모든 절차는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거사님, 기제사 당일에 우리 절에 오시면 됩니다. 안 오셔도 절에서 알아서 혼백을 귀하게 모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영가 천도시킬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잘하신 겁니다.”
“그럼 다음 달 우리 아버님 기제사 때 뵙지요.”
종무소를 나섰다. ‘다 끝났구나.’ 허전했다. 조상님 받드는 일도 자식이 원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고, 윗대 제사 모시는 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 세습되어 오던 전통이나 관습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 현실 아닌가. 제사가 뭐 길래. 살아생전 효도했으면 그만이지. 죽어서까지 후손들에게 짐이 된다면 조상님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이면 그의 대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 아팠다. 딸네 집에 얹혀살면서 딸과 사위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그는 늘 가위에 짓눌렸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암, 잘했어. 마음에 없는 제사 모시느라 힘들었을 두 며느리도 이제 홀가분하겠지. 나도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지.’ 자신이 마무리 짓기로 한 일이지만 허전했다.
그러나 세 아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효심 깊었던 막내아들 앞세우고 살아가는 것도, 남은 아들 형제가 서로 반목하며 사는 것도, 끝내 큰아들과 큰며느리를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의 옹졸함도 가슴 아팠다. ‘다 용서하고 남은 생 편하게 살다 가고 싶은데. 사람 맘이 참 간사하고 옹졸한 기라.’ 혼자 군담하며 쓸쓸히 절을 나섰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다시 딸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이었다. 타국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둘째 아들네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과 아내와 막내아들이 묻혀 있는 선산을 돌아보고 절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원으로 갈 것이다. 복지원에 낼 돈은 두 딸이 해결해 주었다. 향수병에 걸려 다 죽어가는 노인네 소원이나 풀어주자고 두 딸이 결정한 것이다.
일주문을 나선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아이들이 재재거리며 놀던 나무 아래가 텅 비어 있다. 그의 앞으로 아이들이 남기고 간 마음처럼 알록달록하게 물든 나뭇잎이 팔랑팔랑 떨어져 내렸다. ‘우리 행운이가 행복 중학교에 다닌다고 했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구나.’ 그는 행복중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멀리 주차장이 보였다. 그가 도착했던 아침나절에 즐비하게 서 있던 승용차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서너 대만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서 빈 택시를 기다릴 참이었다. 중학생이 된 손자 행운이를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다. 그는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그때 주차장에 들어오는 승용차가 있었다. 이 시간에도 절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지. 그는 무심히 승용차를 바라봤다. 승용차 문이 열렸다. 승용차에서 내린 젊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뛰어왔다.
“아버지!”
“아버님!”
두 아들과 세 며느리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