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소설>
아직도 남아 있는
시월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지요.
내 남자와 아이의 밥상을 차려놓고 나르기로 작정했지요. 나른다는 표현이 가끔은 신선해요.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나른다는 표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암튼 오십 대 아줌마들은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나르고 싶어 해요. 어디든 훨훨 날아 자유롭고 싶은데. 날아 봤자 집과 남편, 아이들을 송두리째 벗어버릴 수는 없지요.
어쨌든 우리는 날기로 작정했어요.
쌈지골 너럭바위 만나려 가는 거지요. 산지기인 나랑, 늘 웃는 웃음이랑, 사랑을 주고 싶은 석란이랑 왕 언니랑 만나 수다 좀 걸쩍지근하게 떨고 싶은 거지요. 왕 언니는 너럭바위 친구지만 우리 셋과 죽이 잘 맞아요. 왕 언니답지요. 너럭바위는 한 마디로 집채만 한 단단한 바위고요. 늘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는 멋쟁이 노신사지요.
그런데요. 은근히 걱정돼요. 그 골짝은 추운데 싶어 새벽에 차 운전이 불가피하면 어쩌나 싶거든요. 에이, 새벽에 못 오면 날 밝으면 오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사람이 가끔은 요령도 부릴 줄 알고, 천하태평으로 자신을 방치해 보는 것도 삶의 활력이 되잖아요.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냥 가는 거다. 내 남자 눈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도, 딸이 기숙사 안 데려다준다고 성질부려도, 친정어머니 아파 죽겠다는데 안 온다 해도, 다 접어 버리고 쌈지골 가겠다는 여자를 누가 말리겠어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떠남이지요.
챙겨 두었던 복분자 술과 아랫집에서 가져다준 단감 한 봉지를 담고, 무와 배추김치 한통을 담아 나오는데 진돗개 두 마리가 낑낑거려요. 그렇지. 너희들 밥을 잊었구나. 동글동글한 배합 사료 한 바가지를 퍼다 주고는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어요. 밤에 길 나선다고 눈이 갈고리처럼 찢어진 내 남자도 손 폰을 챙겨주네요. 밤길 위험시에 전화할 사람은 내 남자뿐이니 전화기라도 챙겨 주어야 안심이 된다는 뜻이겠지요.
현관을 나서는데 내 남자와 아이들 배웅 인사가 아주 의미 깊게 닿더이다.
“댕겨 오~쇼.”
내 남자 말의 뉘앙스와 표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주 못 마땅해하면서도 감히 말릴 수 없다는 체념이 섞인 그런 묘한 울림 말입니다. ‘도대체 된장인지 똥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이야 당신은. 아프다 소리만 해 봐라. 낼 아침에 밥만 늦어 봐라.’ 그런 의미가 내포된 표정이니 혼자 보기 아깝지요.
“엄마, 다녀오세요. 재밌게 놀다 오세요.”
이건 통통 튀는 아들의 말입니다. 한 마디로 사심 없이 어미의 밤나들이를 반기는 목소리지요. 아마도 제 편할 욕심이겠지요. 어미 나가고, 아비 잠들고 나면 신나게 컴퓨터 게임에 몰입해도 누구 말릴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완전 물 만난 물고기가 되는 셈이지요. 중학교 기말고사가 겨우 일주 일 밖에 안 남았죠. 그런데도 아들의 책가방엔 만화책이 한 가방이든지, 영화 CD가 들어 있기 일쑤죠.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요.
“아들아, 너희 친구들 정말 공부 안 하나 보다. 시험 기간에 만화책 봐도 그 정도면 너희 학교 학생들 실력이 어느 정돈지 알만하다.”
그러면서 나도 같이 만화책을 봅니다. 아들 침대에서 ‘야, 좁다 좀 저쪽으로 가라.’ ‘엄마가 저쪽으로 좀 가면 되잖아.’ 이러면서 만화책 서로 먼저 보려고 다투다가 사이좋게 영화 CD 컴퓨터에 넣고 영화 감상에 푹 빠지지요.
무슨 영화냐고요? 친구도 봤고, 두사부일체도 봤고, 스타워즈 시리즈도 봤지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바로 이연걸입니다. 허니 아들은 이연걸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빌려오지요. 19세 관람가라도 명화면 좋다지요. 혹 벌거벗는 장면 나오면 아들이 눈 감아요. 그러면 궁둥이 툭툭 때리며
“아들아, 돈 안 들고 하는 성교육이다. 괜찮다.”
이러니 내 남자가 알았다간 난리 나지요.
“자알한다. 얼라 데리고.” 언제 왔는지 등 뒤에 서서 팔짱 끼고 사천왕의 눈처럼 쏘아봐도 소용없어요. 배시시 웃으며
“여보 잠깐만, 억수로 재밌거든. 당신도 같이 봐. 아들아, 걸상 하나 더 가지고 온나. 아빠도 같이 보게.”
뉴스 외엔 좋아하지 않는 내 남자가 영화 감상에 빠질 리 없지요.
연애 시절에도 영화관에 가면 스크린에 휙휙 지나가는 화면엔 무신경이고,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하여 나를 앉히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남자였으니까요. 주말 오후 영화관은 늘 복잡하잖아요. 요즘처럼 영화관이 최신식이 되어 좌석 표 번호대로 앉는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나의 이십 대엔 작은 도시의 영화관에선 먼저 좌석을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였지요. 영화광인 나는 아무 구석이나 비집고 들어서면 그때부터 서 있건, 앉아 있건 무신경이지요. 온통 영화에만 신경이 쏙 빠져 버리지요. 내가 눈물 찔찔 짜고 있으면 손수건 건네주기, 긴 영화는 십 분 쉬는 시간이면 팝콘이나 비스킷, 음료수 사다 주기 등. 여왕 대접에 한 점 소홀함이 없었지요. 화면엔 관심도 없고, 오직 내 여자만 챙기니 속으로 이 남자에게 시집가면 엄청 호강하겠다 감 잡았지요. 그러나 조심해야지. 이런 남자가 변심을 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잖아. 혼자 머리 굴렀지요.
가끔 이런 농담도 해요.
“당신, 연애할 때 어떻게 참았어? 맨날 만났다 하면 책방이나 영화관 가자했는데 속으로 욕 많이 했겠다.”
“내가 팍 속았지. 무슨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더라. 별종이긴 했지.”
그렇게 별종 여자 안 놓치려고 죽자 살자 결혼 하자 덤비는 바람에 아줌마가 된 거지요. 결혼 후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거야 다들 알 거구요. 어느새 오십 견을 앓을 나이가 되었지요. 적당히 내 남자, 내 여자에게 관심이 엷어지는 것 또한 세월 탓이라 해 둬야지요. 한 이불속에 자도 남자는 여자의 속내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의 속내를 모른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백번 지당한 말 입디다. 살아보니 그래요. 그런데 요상한 것은 안 보이면 찾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 말에 의하면 오리무중 엄마 아빠래요. 어떤 때는 원수 같다가도 어떤 때는 닭살이라는 거죠. 콩깍지가 언제 벗겨질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기도 해요.
사실, 결혼 20년 차 부부라는 게 별 볼일 없지요. 아침에 설거지 끝내고 주방에서 나오면 벌써 내 남자는 밖에 나가고 없고요. 저녁에 설거지 끝내고 주방에서 나오면 잠자리에 들었거나 헬스클럽에 운동 가고 없거든요. 아내가 있거나 없거나 별 이상할 것도 없는데. 유독 아내가 나간다 하면 언제 그렇게 관심을 가졌나 싶게 노골적으로 싫은 표시를 합니다. 내 남자만 그럴까요?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 남성들 대부분이 내 남자와 한 축일 겁니다. 남자의 지배욕이겠지요. 아내는 내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거지요.
그중에 특히 경상도 남자가 젤 안 변했을 거고요. 경상도 남자 중에서 내 남자가 제일 옛 전통을 고수하는 편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 남은 19세기 선비라고 놀리기도 하니까요.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는 수직 관계가 전혀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그런 남자지요. 아마도 지역성이 아닌가, 이해할 때도 있지요.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인구수가 젤 작은 군이라더군요. 그러니 그곳에 몸담고 사는 사람들 사고방식이야 뻔할 뻔자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한 곳에서 돌고 돌다 보니 고지식한 남성 우월주의는 변화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싸잡아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것 아닌지 심히 걱정되지만 삼시랑(삼신할머니)이 말하라고 입을 뚫어 줬으니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요.
사실 내 남자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 바깥양반들 고리 따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아마 좋은 의미에서 말하면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과 독립운동을 한 백산 안 희재 선생, 국문학자 이긍로 선생 등등 애국심이 투철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란 자부심도 한몫하지 않나 싶긴 합니다. 우리 시댁도 만만찮거든요. 3.1 만세 운동에 앞장섰던 독립 운동가가 계시고, 효자비를 받은 어른도 계시거든요. 조상님을 하늘처럼 받들지요. 제사 때도 삼베 두건과 상복을 입고 제사를 모시니까요. 남자는 수염만 문지르며 ‘에헴’ 하고 있으면 여자는 ‘예예’ 하녀처럼 부림을 받아야 하는 남존여비 사상이 골수에 박힌 집안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어쩝니까. 아무리 효자라도 효부가 나오지 않으면 그것 힘들지요. 장손 며느리가 반란을 일으키면 그 집안 골치 아프게 되지요. 남자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여자는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지요. 그게 다 생존 본능이 아닌가 싶어요. 밟으면 밟을수록 고개 빳빳하게 들고 일어선다는 풀뿌리 건성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어요. 아마 뿌리 깊게 각인된 불만의 씨앗이 사회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요즘 여자들 대단히 똑똑해요. 남자에게 지고 사는 여자 드물거든요. 그 드문 여자 중에 한 명이 저 아닌가 싶지만 가끔은 반기를 야무지게 든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고, 생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어요. 나갈 구멍 놔두고 후려쳐야 잡힌다 하잖아요. 말이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알바 아니고 어쨌든 남편의 반응에 기죽을 여자 아니지요.
씩씩하게 집을 나섰지요.
마당이 너무 캄캄한데 남편도 아무도 손전등조차 비춰 주지 않는 겁니다. 자식 교육 제대로 시켰나? 의혹이 일더군요.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은 출발부터 해야 했어요. 자식 잡는 일이야 뒤에 해도 되고, 남편 볶을 일은 아예 꿈도 꾸어서는 안 되니 살살 달래는 게 내게 이득이니 긁어 부스럼 만들 여자는 없지요.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막가파'랍니다. 내 남자가 지은 별명입니다. 한 마디로 성질만 났다 하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좀체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어요. ‘야, 출발해보자. 너만 믿는다.’ 운전대를 토닥거리며 심호흡을 했어요. 사실 난 운전하는 것 엄청 싫어하거든요. 가능하면 운전대에 안 앉으려는 편이죠. 그러니 운전 경력 십 년 차에 여전히 초보 운전 실력 못 면하는 거지요. 하여 내 남자가 밖에 내 보내 놓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도 모르지요.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요. 은근히 내 남자가 날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상상일지도 모릅니다.
막상 출발을 하려다 생각하니 괘씸한 겁니다. 곰곰 생각하면 곰 다리가 네 개라고 ‘사람이 간다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현관에서 잘 갔다 와’ 라니 ‘빠앙!’ 경적을 세고 길게 울렸지요. 이층 창문이 열리더니 아들이 ‘엄마, 잘 다녀오세요.’ 고함을 치면서 손을 흔듭디다.
딸은 심통 나서 내다보지도 않아요. 제 아비가 막차 타고 가라 했거든요.
어쨌든 꿩 대신 닭이라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마음 비우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쌈짓골은 지름길을 잘 아는 터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어요.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시골길은 한적하고 적당히 무섭기도 해요. 산토끼라도 툭 튀어나오면 기겁을 하니까요.
한 시간여를 달려서 석란이가 사는 마을에 닿았지요.
“많이 기다렸어?”
“아니.”
약속 장소에 먼저 와서 기다리는 이 친구를 태우고 쌈지골로 내뺐습니다.
여자들 만나면 그 순간부터 사방팔방 소식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해요.
“좋은 일 있나 봐. 그동안 예뻐졌네. 사랑을 하나보다. 내 말 맞지?”
이런 농담으로 시작해서 한 마디로 말이 막힘없지요. 말이 날아다녀요. 침이 마를 정도로 , 말 못 해 죽은 귀신 붙은 여자들 마냥 시댁 험담에서 시작해서 아이들 자랑까지. 이웃집에 강아지 낳은 것이며, 삼이웃에 바람난 여자, 남자 소식통까지 쫙 꿰어요. 수다 중에 가장 솔깃한 것은 역시 여자들 바람난 이야기지요.
‘어머, 어쩜 간도 크다. 남편 있는 여자가 대단하네. 그 남자가 알았어? 알면서도 그냥 사는 거야? 그 남자 쪼다네. 틀림없이 그 남자 어디가 모자란 거야. 물건이 신통찮다거나, 무능하거나, 정신 바로 박힌 남자가 지 여자 바람났다는데 가만있을 남정네가 어디 있겠어. 내 남자 말처럼 거시기를 빼다 내삐던지 해야지.’
하면서 같은 여자로서 부러움 반, 시새움 반, 하여 조잘거리다가 결국엔 이럽니다.
‘그래도 애들 봐서 살아야지 어쩌겠어. 그 남자도 아마 애들 생각해서 그럴 거야. 이혼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별 여자 없고, 별 남자 없잖아. 남자들 바람은 정말 바람에 불과한데. 여자가 바람피울 때는 분명 남자 쪽 잘못이 100%야. 같은 여자라고 역시 여자 편이네. 우리는.’
하면서 웃고 맙니다.
여자들이 대부분 수다로 스트레스 푼다는 것 아시죠? 속에 말 막힘없이 하고 나면 체증이 쑥 내려가요. 눈빛을 보면 반짝반짝 푸른 기가 도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지요. 남자들은 그런 여자 속을 좀체 몰라요.
아, 그런 여자 속을 정통한 남자도 있습디다. 내 친구랑 잘 아는 친군데요. 이름을 돌이라고 합시다. 근데 이 남자 완전히 사근사근한 배랍니다. 울 집에 오면요 술상 차리는 그 순간부터 부엌에 들어와 ‘내가 도울 일 없어요? 시켜만 주십시오. 뭐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그릇을 씻을까요? 마늘을 깔까요?’ 알짱거리면서 온갖 심부름 다 해주고요 마늘 까 주고, 상 차리는 것 도와주고, 설거지까지 해 주는데요. 한 마디로 보통 여자라면 뽕 갈 판입니다. 그런데요. 첫 느낌이 별로였던 나는 그 남자가 어찌나 속 보이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겁니다.
‘아이고, 꼴에 여자들 엔간히 낚아채서 등골 빼 묵고 사는 늠이구먼. 니 마누라한테 그래 봐라 평생 상전처럼 받들 끼다. 마누라 앞에서는 허풍만 탕탕 치고, 성질만 부리겠지. 뭐든지 트집 잡고, 칭찬 한 마디 할 줄 모르면서 못 하는 것은 줄줄이 꿰차고, 당신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하면서 큰소리만 다락같지. 지가 바람둥이란 거 마빡에 붙이고 살면서 남은 아무도 모르는 줄 알지. 등잔 밑이 어두운 줄 어찌 알겠어. 여자들 깨나 후렸겠다. 인간아, 제발 인간 좀 돼라. 안 반갑다.’
나도 처음엔 참 좋은 사람인 줄 알았지요. 경상도 남자라도 한양 가서 사니 한양 남자 닮아 여자 생각해 주는 것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말 좋은 남잔가 보다 생각하니 정말 좋은 남자 같았어요. 정말 가정적이고, 여자에게 잘하는 그런 보기 드문 남잔 같았지요. 은근히 내 남자에게 그 남자 본 좀 보면 어디에 털 나냐고 투덜거릴 정도였으니까요.
근데요. 한 번, 두 번 겪다 보니 ‘이 남자 정말 속 보이는 짓 하네.’ 싶더군요.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그 남자가 아무리 잘해 줘도 믿음이 안 갔어요. 내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상해서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했지만 아닌 건 아니더군요. 옛말에도 있잖아요.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새고, 집에서 단단한 바가지 밖에 나가도 단단하다고.
그런데요. 내가 좀 잘해 준다 생각해서인지, 이만큼 정성을 들였으면 본전 뽑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본색을 드러냅디다. ‘김 여사님 진짜 존경합니다. 이 집 바깥 쥔은 마누라 복이 있다니까.’ 하면서 할 말도 없는 전화질에다 심심찮게 차 한 잔 달라며 옵디다. 서울이 어디 읍내 길입니까? 분명 서울 산다는 양반이 이웃집 마실 오듯 들락거리는데. 내 남자가 있거나 없거나 오면 죽치고 앉아 밥까지 받아먹고 가는 겁니다. 밥 잘 얻어먹었다고 인사 전화한다는 것이 꼭 끝에 가서는, 혹 밖에 나올 일 없느냐, 근사한 곳 알고 있는데 모시고 갈 의향 있다면서 말만 하라고. 은근히 작업을 걸어오는 겁니다. 속으론 ‘참 별꼴 다 보겠네. 지 마누라한테나 그렇게 하지.’ 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거 있죠. 참 여자나 남자나 바람기 없다면 인간이 아니지 싶긴 해요.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라는 등식이 어디 가겠어요. 나도 여잔데. 나랑 죽이 맞아 ‘하하 호호’ 하자 평소 무덤덤하기로 소문난 내 남자가 바짝 긴장을 하는 겁니다. ‘당신 혼자 있을 때도 저 친구 오냐’ 면서 온다니까 다음엔 ‘오지 말라 해라.’ 그러질 않나. 할 일 없으면 제 마누라나 챙기지 남정네도 없는 남의 집에 뭐한다고 자주 들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질 않나. 전혀 시샘 안 할 것 같은 내 남자가 시샘을 내고 불안해하니 그게 또 그렇게 깨소금처럼 고소하더군요. 적당한 질투는 삶의 활력이잖아요.
근데요. 뭐든지 적당해야지 도가 지나치면 탈이 생기는 법이죠. 이 남자가 갈수록 도가 좀 지나치다 싶어요. 내가 꿈쩍도 않는다 싶으니 이번엔 질투 작전으로 나가더군요.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여자 친구라고 소개를 하질 않나. 선물을 주질 않나. 안 되겠다. 기회 봐서 따끔한 한 마디 해야지 벼르는데 우연찮게 우리 집에 온 다른 사람을 통해 이 남자 소문을 들었어요. 아내와 별거 중이라는 것, 친구들에게도 사기를 칠 정도로 뻔뻔한 남자라는 것, 여자들 등 쳐 먹고 東家食西家宿 하는 남자라는 것, 역시 사람에겐 첫인상이란 게 중요한 거지요. 상대방의 인성 50% 정도가 나타난다고 봐야죠.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올 때 음료수 한 병들고 온 적 없고, 아이들에게 과잣값 한 번 준 적 없어요. 제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술 먹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놀다 가면서도 ‘잘 먹고 갑니다.’ 인사말만 반질반질하게 쏟아 놓거나 혹은 상 치우고, 설거지 도와준 것밖에 없더군요.
그 남자 체면 생각해서 ‘좋은 건 좋은 거다.’ 생각하기로 했지만 이런 남자 잘못 관리하다가는 죽 쑤겠다 싶어 인연 적당하게 늘어뜨리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뻔질나게 들락거리던 얼굴 그대로, 끈적끈적한 눈으로 ‘별일 없어요? 지나던 길에 들렸는데.’하면서 왔더군요. 지나던 길은요. 일부러 찾아온 줄 뻔히 알면서 나도 살짝 여우 짓 했지요.
“어머, 그랬어요. 우리 집 근처를 참 자주 오시네요. 한양이 그렇게 가까워요. 사흘들이 오르내릴 정도니. 근데 어떡해요. 내 남자도 없고, 나도 바쁘고, 안 바쁘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 하겠지만 제가 요즘 많이 바쁘거든요. 별거하신다면서요? 오늘은 여자 친구랑 같이 안 왔어요? 참 엊그제 내 친구가 전화했던데. 그 친구랑 돌이 씨 부인이랑 친구라고 하던데. 돌이 씨가 우리 집에 자주 온다고 다음에 함께 오라고 했어요. 근데 내 친구 말이 부인한테 쫓겨났다면서요? 그러지 마시고 집에 들어가세요. 다음엔 부인하고 꼭 같이 오시고요.”
얼굴이 벌겋게 달은 남자를 웃으면서 돌려세웠지요. 그 남자 얼굴에 철판 안 깔았으면 못 오지요. 아무도 모르는 줄 알던 사실을 나까지 안다 생각하면 아마 낯 뜨거워 죽고 싶을 겁니다. 그 정도라도 양심가라면 말이죠.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중에도 차는 끝임 없이 달립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