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아 있는

<끝>

by 박래여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려 산 하나를 넘어서면 막힘없이 뚫린 4차선 도로에 닿지요. 차의 홍수에 빠진 도심을 달리다가 화살표 표시 하나 놓치면 엉뚱한 길이지요.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차와 차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달아나야 하지요. 겨우 도심 빠져나와 쌈지골 푯말 보면 그제야 긴장이 풀리지요. 산길, 외길은 익숙한 길이니까요. 산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고, 돌고 돌아 쌈지골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쌈을 싸듯이 첩첩산중이지요. 마주 오는 차 헤드라이트만 없으면 밤길 운전도 무섭지 않고, 느슨해서 좋으련만

“얘, 다 와 가는데 웃음이랑 왕 언니 왔는지 전화해 봐.”

석란이가 전화를 해요. 다 와 있다 하네요. 상다리 부러져라 먹을거리도 충분히 장만해 놨다 하네요. 너럭바위는 벌써 얼큰하게 취기 어린 목소리로 ‘퍼떡 안 오고 뭐하냐.’고 전화기에 대고 호통을 치네요. 이렇게 마음 맞으면 날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요. 바람난 여자들 바람 자게 만들어 줄 너럭바위 하나 꿈쩍도 않고 앉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요.

너럭바위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로 얼싸안고, 뽀뽀하고,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두 시간을 운전대에 앉아 왔다는 안도감이 더 취하게 만드는 거지요. 어김없이 전화가 울립니다. 손 폰이 울려도 잘 모르지요.

“누구 전화야, 내 전화 아닌데.”

서로 자신의 손 폰을 내놓고 확인을 합니다.

“얘, 산지기 너거 서방이다. 그 새 몬 참아서 또 전화질이야?”

그제야 호주머니에 든 내 남자 손 폰을 꺼냅니다. ‘도대체 전화 안 받고 뭐 하노?’ 역정 난 목소리가 귀에 꽂이지요.

“아, 미안, 잘 안 들려서. 나 잘 왔어요. 걱정 마세요. 나중에 출발할 때 전화할게.”

전화를 끊지만 내 남자 목소리 쿵쿵 울립니다.

‘집에 있으모 만신이 다 아프고, 나가모 하나도 안 아푸제?’

어째 그리도 잘 아는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 나일 때도 있지요.

일단은 집 나가면 집은 싹 잊어버려야 살맛이 나지요. 찝찝하게 남편과 아이들 생각했다 하면 뒷골이 욱신욱신하고,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노는 재미가 안 나지요. 그러니 의식적으로라도 싹 잊어야 해요. 이러다 건망증 너무 심해져서 <노트북> 영화 주인공처럼 남편도 아이들도 다 누구냐고 묻는 건 아닌지 몰라도 잊어버리는 게 상수지요.

나도 싸 가지고 간 보따리 풉니다. 벌써 식탁에는 먹을거리가 푸짐하게 차려지고 여행용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도끼 나물이 지글지글 온몸을 뒤틀고 있지요. 잡채와, 돼지고기, 떡과 술, 도토리묵, 김치, 전 벌리고 보니 제사상보다 더 걸어요. 각자가 한두 가지씩 해 온 음식으로 차려진 상은 아무리 입맛 떨어진 사람이라도 먹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요.

“오늘은 다이어트 포기다.”

만남을 축하하기 위해 술잔을 높이 들고 ‘위하여’를 외칩니다.

오랜만에 목 축이는 날이지요. 근데 아쉬운 것은 운전대 잡을 생각조차 놓아 버릴 수 없다는 겁니다.

“괜찮다. 한 숨 자고 술 깨고 가면 된다.”

너럭바위와 왕 언니가 자꾸 꾀지요. 막둥이 웃음이는 무조건 행복해 죽겠다 네요.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서 좋아 죽겠다 네요.

그러다 보니 딱 한 잔만 하다가 두 잔 석 잔 되더군요.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니 대충 서너 잔 후엔 수다 떠는 걸로 보상을 받지요. 근데요. 문제는 내 남자에 대한 불만 토로로 시작했다가 불만으로 끝나는데. 청중은 그걸 자랑으로 듣는다는 것이죠. 난 열심히 내 남자 험담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 그래, 행복해 죽겠지. 너무 자랑하지 마라.’ 하니 정말 속 터지지요. 그래도 어쩝니까. 행복한 건 행복한 것이고, 불행한 것은 불행한 것이니. 친구가 행복 녀로 봐주는데 할 말 없지 않습니까. 내 얼굴에 행복하다고 확실하게 쓰여 있다는데. 사람은 사십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지요. 남이 내 얼굴 보고 행복해 보인다면 나는 행복한 겁니다. ‘그래, 나 행복해.’ 하고 믿어야지요. 웃음이는 늘 ‘난 행복해’라고 말하기 때문에 진짜 행복한 여자지만 나는 늘 ‘불행 해’ 하는데도 행복한 여자라니 참 희한하지요.

때맞추어 또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직도 거기 있어? 술 마셨지? 올 생각 말고 자고 온 나.’

세상에,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웠어요. 가야 할 시간이 된 겁니다.

그런데 술 마신 여자에게 성질부리면 자기만 손해란 것 알지요. 그러니 차라리 자고 날 밝으면 오라고 은근히 선심 쓰는 척 여유 작작 부립니다.

“응, 알았어 여보, 나 술 안 먹었어. 좀 있다 출발할게 걱정 말고 주무세요.”

사근사근한 배처럼 코맹맹이 소리도 좀 섞어가며 애교를 부리니 옆에 있던 석란이가 전화기를 확 빼앗아

“그 새 보고 싶어 전화하셨어요?”

하면서 내가 술 취해서 못 간다고 하니까 내 남자가 자고 오라 했다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 석란이는 샘난다는 표정으로 내게 전화기를 쓱 내미네요. 샘 낼만도 하지요. 석란이는 혼자거든요. 죽고 못 살던 남자 저승 간 지 몇 년 됐거든요. 세월이 갈수록 남자가 못 해 준 것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알콩달콩 사랑해 준 기억만 남아서 딴 남자가 눈에 안 들어온대요. 그 마음 알아요.

우리 동네에 스물둘에 혼자된 할머니 있거든요. 스물 하나에 시집가서 이듬해 혼자됐대요. 할머니 남편이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문상 다녀와야겠다고 나갔다가 돌아온 후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하더래요. 그러더니 사흘 만에 ‘아이고 배야’ 하면서 피를 토하고 갔대요. 사람들 말로는 급살을 당한 거라고 하더래요. 상여 나가는 집에 잘못 가면 살을 맞는대요. 그 살을 맞으면 사흘을 못 넘긴다더군요. 그게 급살이래요.

시아버지 되는 분이 그래도 학식이 깊었던가 봐요. 뱃속에 들었던 씨앗 세상 구경하자마자 젖꼭지도 못 물리게 하고 친정으로 쫓았대요. 처녀 시집가도 된다고 지참금까지 줘서. 근데요. 겨우 일 년 정도 살 붙이고 산 그 남자가 뭐가 그리도 좋았는지. 할머니는 죽어도 시집 문턱 못 넘어가겠다고 버티고, 친정 오라비는 새파란 여동생 평생 눈물 짜며 사는 꼴 못 본다고 끌어당기고. 결국 할머니는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대요. 시어른이 단식을 하며 돌아앉는 바람에. 그렇지만 할머니는 끝내 친정에서 수절했대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시댁 근처에 와서 아이 자라는 것 보면서 눈물로 지새웠다더군요. 중학생 손자가 엇나갈 조짐이 보이자 시어른도 할 수 없어 할머니를 받아들였대요. 어머니가 있으면 나을 것 같아서 그랬다더군요.

그런데요. 할머니가 못 생겼으면 말도 안 해요. 참 고와요.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귀티 나게 고운 걸 보면 젊어서 동네 남자들 속깨나 끓였겠다 싶었지요. 슬쩍 물어봤어요. 야반도주하자고 꾀는 남자도 없었느냐고, 죽고 못 산다고 목매다는 남자도 없었느냐고. 아니래요. 친정 이웃 남자는 상사병 걸려 죽을 고비도 넘겼대요. 그 집 어른들이 제발 우리 아들 소원 좀 들어달라고 와서 빌기도 하고, 내 아들 살려내라고 엄포도 놓고 그랬대요. 하는 수 없어 그 사람 찾아가서 말했다더군요. 시댁에서 아이 빼앗기고 쫓겨난 것은 내가 문둥병 환자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옮긴다고 했다. 남편이 죽은 것도 내 병이 옮아서 속병 들어 일찍 죽었다. 당신도 나랑 살다가 일 년 만에 죽어도 좋으면 시집오겠다고 했다더군요. 남자가 펑펑 울더래요. 그리곤 병 털고 일어나 딴 처녀랑 결혼해서 깨가 쏟아지게 살더래요. 대신 할머니는 문둥병을 앓는다는 소문 덕에 수절할 수 있었대요. 옛날에 문둥이만큼 무서운 사람 없었잖아요. 밥 얻으러 오면 도망가기 바빴지요. ‘말 안 들으모 울 집에 동냥 오는 문디한테 보내 삐끼다.’ 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착한 아이가 되었거든요. 그만큼 문둥이의 일그러진 얼굴이나 손은 무서웠어요. 문둥병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형체에 무서워했던 거죠.

할머니도 그 수법을 써서 친정에서 근 십수 년을 살다가 시댁으로 다시 들어온 거지요.

“대단하시다. 어떻게 혼자 시부모님 모시고 시댁에서 살 생각을 할 수 있어요? 할머니 후회 안 하세요? 그렇게 혼자 살아온 거요.”

“아들을 남편 맹키로 보고 사는데 아쉬울 거 없어. 첫 정이 무서븐 기라. 클수록 우리 아가 또옥 저거 애비야. 저거 애비 맹키로 에미한테 잘하지. 우리 아들이 효자야. 내가 지 내삐고 살로 간 줄 알았다가 외갓집에서 눈물로 지샌 줄 알고는 착실한 아가 됐제.”

그 할머니가 참 아름다워 보였어요.

아마 석란이도 그 정 때문에 재혼 못하나 봐요. 아들들이 지 아비를 쏙 빼닮았다고 자랑하는 걸 보면. 근데요. 그녀가 자꾸 술을 먹어요. 술 먹고 한 숨 자고 가자는데. 의리 없이 나만 빠져 달아날 수가 없잖아요. 내 차로 모시고 갔으니 내 차로 모셔다 드리고 와야 친구지. 속으로 오늘 밤 내 남자 잠은 다 잤다. 싶어도 어쩔 수 없지요. 그건 내 남자 사정이지 내 사정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마음 다지는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안절부절 해지는 겁니다. 내 남자가 잠 안 자고 기다린다는 것 아니까요. 성질머리 못 돼서 마누라 없이는 깊은 잠 못 드는 줄 아니까요. 속은 타지요. 밤길 달릴 일 생각하니 걱정도 되지요. 모두 술 취해 해롱해롱 해도 나는 정신이 말짱한 겁니다. 이게 가정 가진 중년 여자들의 병이지요. 일단 집 벗어나면 집이고, 자식이고 다 잊어버리고 즐겨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겁니다.

내 남자가 정말 보기 싫어서 집 나온 여자라면 내 맘 같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애들도 다 컸겠다. 하룻밤 집 비운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떨 필요 없잖아요. 각자 행복 찾아 즐기면서 사는 것도 좋잖아요. 그렇다고 20대 신혼 때처럼 부부 잠자리가 따끈따끈 한 것도 아니고, 가뭄에 콩 나듯 미적지근하고, 어쩌면 냉랭하기까지 한 50대 부부가 뭐가 좋다고 안달을 해요. 안달을.

그런데요. 그게 안 되더라는 겁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석란이도 웃음이도 핸드폰 불이 납디다. 석란이는 석란이 대로 아이들에게, 웃음이는 웃음이 대로 애들에게 ‘아빠 들어오셨니. 그래 곧 갈게. 엄마 갈 테니 문단속 잘하고 빨리 자거라. 숙제는 다 했니. 아빠 좀 바꿔봐라. 기타 등등.’ 왕 언니는 피곤하다며 자리에 눕고, 입담 좋고 기분파인 너럭바위는 중앙 방송을 꾸준하게 엮어내는데 석란이도 웃음이도 핸드폰 들고 설치니 중앙 방송만 혼자 신나네요.

“그만 일어서자. 한 숨을 자도 집에 가서 자야 편하지. 자고 가려면 더 힘들겠다.”

여자들은 그만 제 물건들 주섬주섬 챙겨 일어나지요.

날자, 날자, 아무리 외쳐 봐도 오십 대 아낙네는 내 남자 손바닥 안에 노는 손오공 신세밖에 안 되더라 이 말입니다. 나 역시 시월 마지막 날도 날아봤자 겨우 너럭바위 만나고 석란이만 더 외롭게 하고, 결국엔 내 남자 손바닥 안으로 기어들어야 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일단은 날아보십시오. 짧거나 길거나 날아보는 자유는 품고 살아야 살맛 나는 것 아니겠어요.

“선생님 갈게요. 다음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쌈지골 너럭바위 혼자 외롭게 버티고 서서 손 흔들지요. 글쎄 주책스럽게 눈물이 나요. 먼 훗날 우리도 너럭바위처럼 내 자리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 또한 우리가 날아보는 이유는 내 청춘의 빛 한 줄기 아직도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는 아닌지. 겨울 깊어지면 봄이 오듯이 사람도 회춘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직도 남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