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 소설>
윤회 이야기
친정 가는 길에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딸도 호주가 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1990년 1월 13일 제3차 가족법 개정의 결과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가족법에는 남녀차별적인 호주제도의 여 호주 규정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졌다. 개정 전의 법에서는 집안의 남자가 없을 경우에 한해 임시로 여 호주를 인정한 것에 불과했으며, 가(家)를 이을 남자가 입적하면 여 호주는 호주의 지위에서 밀려났다. 예를 들어 개정 전의 법에 의할 경우 여 호주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호주상속을 했다. 그러나 개정법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도 어머니인 여 호주가 계속 호주의 지위에 있을 수 있는 대습 승계를 인정했다.>
내가 친정 집 호주승계를 하면 내 아들이 자연스럽게 내 성을 따를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또한 차후 호주승계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머니는 아직 양자를 들이지 않으셨다.
“잠깐 댕겨 가거라. 어째 니를 좀 봤으면 싶다.”
며칠 전, 좀체 오라는 말이 없던 친정어머니가 나를 불렀던 것이다.
친정 집 오르는 골목은 어둠침침하다. 왼손 편은 빈 집이 있고, 빈 집 위에는 감나무 밭이다. 빈 집과 감나무 밭의 경계는 빙 둘러 돌담이다. 빈 집에도 늙은 감나무가 돌담 안에 서너 그루 서 있다. 주인은 없어도 감나무는 사철 제 본분대로 살고 있었다. 오른손 편은 비탈 밭이다. 몇 년 전에 빈 집을 뜯어내고 밭으로 일구었다. 호박밭이 되어 있다. 밭과 골목의 경계는 탱자 울타리다. 우리 집과 탱자 울타리 사이에는 두 채의 빈 집이 있다. 그 빈 집을 지나면 역시 탱자 울타리로 감싼 우리 집이 있다. 탱자 울타리와 감나무 밭 사이의 골목은 대낮에도 어둑어둑하다. 빈집에서 넘겨다보는 감나무 그늘이 너무 짙어서 그런지 축축하고 습한 느낌이다.
“엄마, 저 울타리 좀 베어버리자. 탱자 가시가 막 찌를 것 같잖아.”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 성질을 부렸다. 일꾼을 사서 탱자 울타리를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싫다 하셨다.
“저기 우때서. 저 꽃 함 봐라. 올매나 예뿐지.”
하시며 아버지 보듯 탱자 꽃 본다는 것이다. 탱자가 노랗게 익어 상큼한 향기를 뿜어낼 때쯤이면 아버지가 찾아온다고 하니 기가 찰 따름이다. 탱자가 익을 때쯤 아버지 기일이다.
“엄마, 난 저 아래 골목에서 우리 집까지 올 생각하면 집에 올 맘이 없어. 두 번 올 것도 한 번 밖에 안 오게 돼. 탱자나무 울타리가 자꾸 싫어지니 어쩌겠어. 제발 좀 베어버리자.”
나는 늘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골목을 들어설 때면 오싹한 한기를 느낀다. 음습한 느낌이다. 왜 그럴까. 어릴 적 본 주검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 어떻게 해서 그 주검을 보게 됐는지 기억도 없지만 눈에 선명한 것은 빈 집의 활짝 열린 삽짝 가운데 놓였던 축축한 거적, 누군가 거적에 둘둘 말려 있는 것이 시체라 했다. 거적을 부여잡고 산발을 한 채 통곡하던 젊은 여자, 빙 둘러 섰던 이웃 사람들, 누군가 죽었다고 했다. 물레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다가 기계에 말려 들어갔다고 했다. 자라면서 나는 그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골목에만 들어서면 영화 필름처럼 선명하게 돌아갔다. 언젠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본 끔찍한 시체처럼 거적에 말린 주검도 끔찍했다. 내가 본 것도 아닌데. 내가 직접 본 것처럼 선명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상상력이 더 무섭다. 학교 다닐 때도 나는 혼자 그 골목을 지나다니지 못했다. 혼자서는 그 골목이 무서워 들녘으로 빙 둘러 우리 집에 가곤 했다. 어쩌다 급한 일이 있어 그 골목을 지나야 할 때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달렸다. 누군가 뒷덜미를 확 잡아당길 것 같았다. 나이 들어도 그 골목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더 무성해져 있었다. 그 길은 흔한 시멘트 포장도 안 된 상태다. 울퉁불퉁하고 좁아서 승용차를 조심스럽게 전진시켜야 한다. 잘못하다간 차체에 상처 내기 십상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탱자 울타리에는 탱자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탱자 꽃은 예쁜데. 탱자 가시는 무섭다. 종기가 났을 때도 탱자 가시를 찾았고, 다슬기 속을 뽑아 먹을 때도 탱자 가시였고, 몸 어딘가에 가시가 들었을 때도 탱자 가시로 뽑았다. 탱자 가시는 우리 집에서 생활필수품 같은 것이었다. 우리 집 울타리도 탱자 울타리다. 뒤는 무성한 대나무 숲이고, 집 양쪽 담장은 탱자나무 울타리였으니 집이 온통 가시에 짓눌러 있는 느낌이었다. 탱자 울을 볼 때마다 잠자는 공주가 갇힌 성 생각이 나는데 우리 집은 잠자는 공주 대신 어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 어둡고 습한 골목을 빠져나가자 눈앞에 훤히 우리 집이 보였다.
“어라? 울타리는 어디 갔지?”
깜짝 놀랐다. 우리 집을 감싸고 있던 탱자 울타리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탱자 울타리가 있던 자리에 코스모스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은빛 곱슬머리가 산발이다.
“뭔 일 이래? 탱자나무 누가 벴어?”
승용차를 마당 귀퉁이에 대고 오른쪽 차창을 내린 후 어머니께 소리쳤다. 어머니는 힐긋 차 쪽을 보더니 다시 앞만 본다. 은빛 곱슬머리가 갈기처럼 일어섰다. 차에서 내린 나는 어머니의 눈길을 따라 앞쪽을 봤다. 하늘과 산과 들과 집과 나무가 있을 뿐이다. 한가해 보이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어머니는 어디를 보고 계신 것일까.
“엄마!”
내가 부르는데도 미동도 않는다. 내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왔다니까. 빨리 안 왔다고 삐졌소?”
엄마 앞에 턱 버티고 서며 고함을 쳤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 만에 나를 의식한 듯 이렇게 말한다.
“야야, 니가 왔나. 저기 가가 왔더라. 날 보고 웃더라. 신수가 훤했어. 들어오라 캐도 웃기만 하더니 오데 갔노. 그새 가삔기가. 니 봤제? 가를 봤제? 너거 오래비 말이다. 죽은 너거 오래비 말이다. 생시 맹키로 왔던데. 갸가 안 죽고 살았시모 내년이 환갑이니 그리 젊은 헌헌장부는 아니것제. 참말로 이상타. 갸 것던데. 얼굴 모색이 갸가 맞는 것 같았는데. 저어기서 물끄러미 쳐다 보더마. 열다섯에 너거 오래비가 갔니라. 니도 아나? 친구들캉 멕 감으로 간다고 나간 기 끝인 기라. 그런데 말이다. 그 아가 우짠일로 왔시꼬. 생시 맹키로. 참마로 이상타. 니 올 때 누가 살박에 섰더나?”
“엄마, 백일몽 꾸었소? 딸 기다리다 정신까지 놓으셨네. 나 여기 있수. 살박에 있긴 누가 있어. 아무도 없더마.”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야 아푸다.”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신다. 머리에 꽂힌 핀을 뽑았다. 방안에 들어가 경대 앞에 놓인 함지에서 빗을 찾아와 머리를 곱게 빗겨 드렸다.
“엄마, 방에 들어가자. 날씨가 좀 찬데.”
“괘한타. 그라지 말고 우리 나가자.”
“어딜?”
“아무 때나. 갑갑하다.”
재차 어딜 가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지리산 유독 골에 있는 서원 암에 다녀오잔다. 옷 갈아입고 나서자고 했더니 느릿느릿 낡은 꽃무늬 통바지를 벗고 검은 바지를 찾아 입는다. 그 바지 역시 너무 낡았다. 지난번 사다 준 새 바지는 어쨌느냐고 물었더니 있단다. 얼마나 오래 사시려고 아끼느냐고 성질을 부리려다 그만 입을 다문다. 주섬주섬 외출복을 갈아입은 어머니가 엉덩이를 질질 끌면서 마루로 나온다. 뒤따라 나온 내가 마루 옆의 기둥에 세워진 지팡이를 앗아 주자 어머니는 ‘거 놔라’ 하신다. 자식이 지팡이를 짚어주는 게 아니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을 나섰다.
“고맙다.” 옆 좌석에 앉은 어머니가 밑도 끝도 없이 고맙다고 한다. ‘뭐가 엄마?’ 되물었지만 어머니는 벌써 창밖을 보고 계신다. 어머니 옆모습이 그림자 같다. 나잇살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지리산을 텃밭처럼 쏘다니던 어머니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다. 지팡이 없이는 한 발짝도 바깥나들이가 어려우시니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삽짝 바라기 하고 사신다. 달팽이처럼 커다란 집 지고 웅크려 있다가 내가 와서 모시고 나가면 동네 골목길 벗어나 본지도 꽤 됐다며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고맙다.’ 하신다. 밑도 끝도 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 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겨우 딸 하나 고이 길러 시집보내 놓고 오랜 세월 혼자 살아오신 어머니, 사위가 모시겠다는데도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내가 갈 때가 됐는 갑다.”
“아직 십 년은 더 살겠소. 왜 또 그러는데?”
“그 아가 아무래도 날 데리러 온기라. 니 눈에 참말로 안 보였단 말이제?”
“엄마가 잠시 꿈꾼 거야. 거기 앉아서 자불었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고마 그때 시님 말을 들었시모 괜찮았실랑가.”
뭐가 괜찮았을 것이라는 것인지. 어머니는 운전석 옆 좌석에 앉은 후에도 물끄러미 창밖만 바라봤다. 내가 무엇을 물어도 대답도 없고, 꼭 넋을 어딘가 빼놓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좀 꺼림칙하다. 정말 돌아가시기라도 할 것인가. 탱자 가시가 가슴을 쿡 찌르는 듯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소원했었다. 늘 잔병치레하는 어머니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고 자책하면서 슬쩍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서원암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서원암 가는 길은 경치가 빼어나다. 강을 끼고 오르는 국도 변도 아름답지만 국도에서 벗어나 절이 있는 지리산 속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아름드리 참나무와 전나무가 꽉 어우러져 있다. 숲에만 들어서면 한 여름에도 서늘하다. 차창을 열었더니 콸콸 흐르는 계곡 물소리며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며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참으로 은은하다.
“야야, 내가 수수께끼 하나 낼까?”
뜬금없이 어머니가 침묵을 깬다. 어머니는 입담이 좋으시다. 듣는 사람을 혹하게 한다. 잡담 금지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두 귀를 쫑긋해서 이야기 속에 깊이 빠지게 만든다. 어머니는 연세가 팔순이 넘자 반짝반짝하던 총기도 많이 사라지셨다. 나는 속으로, 했던 이야기 또 하시겠지 하면서도 들을 준비를 한다. 왜냐면 들을 때마다 조금씩 각색이 되어서 색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야기는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 같다.
“뭔데?”
“어려서는 네 발로 걷고, 젊어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세 발로 걷는 게 무엇이냐?” “에게 그것도 수수께끼라고 냈소? 요즘 아이들한테 물어도 모르는 아이가 없을 걸. 내 쬐깬할 때부터 들은 이야기잖소. 다른 거 해줘.”
“그려, 늙으모 총기가 사라지는 벱이제. 그라모 노시님 이약이나 해 줄까?”
“그러시든지.”
옛날 서원 암에 노스님이 살았다. 어느 날 탁발을 나갔다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예닐곱 살짜리 아이를 만났다. 가만히 상을 보니 중 될 상이라
“니 내 따라가서 중노릇할래?”
했더니 그 아이가
“밥은 줘요?”
하고 묻더란다.
“함, 밥 주제. 부처님만 열심히 잘 받들모 밥만 주나. 니가 와 거렁뱅이 노릇함서 배를 곪았는지도 알게 해 주제.”
그리하여 아이는 노스님을 따라 절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날부터 노스님의 상좌로 절밥을 먹는데. 이놈의 아이가 산에 가서 나무 해 오라고 지게에 톱하고 낫을 챙겨 얹어 주면 한 나절이 지나서야 삭정이 몇 개 주워서 오거나 아예 빈 지개로 오는 거라.
노스님이 버럭 화를 냈지.
“이놈 낭구 해 오라 캤더니 오데 가서 놀다 오노. 놀모 밥도 굶어야 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시님 낭구를 할라꼬 톱으로 낭구 몸에 댕께 낭구가 아푸다꼬 웁디더. 그래서 낫으로 자잘한 낭구를 벨라쿵께 그 낭구들도 아푸다고 웁니더. 낭구를 아푸게 할 수가 없데예. 차라리 지가 밥을 굶겠습니더.”
이러더란다.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던 어린아이가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니 더 화가 난 노스님이 회초리로 종아리 몇 대를 때렸다.
“낭구를 몬 해 오것시모 밭에 가서 풀이라도 매라.”
호미를 들려 밭에 내 보냈지. 그런데 밭에 갔던 아이가 그냥 오는 거라. 왜 또 밭도 안 매고 왔느냐고 노스님이 호통을 쳤지.
“밭에 가서 풀을 매려고 하니 풀이 아푸다 쿠고, 지렁이랑, 개미랑, 그런 벌레들이 고물거리며 나와서 그것들 다칠까 봐 풀을 뺄 수가 없었습니더. 부처님이 모든 생명은 귀한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꺼.”
이러더란다.
노스님은 하도 어이가 없어 회초리를 들었다가 말았지. 때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 거야. 가만히 아이 눈을 보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가 않고 진지하고 깊은 것이 몇십 년을 마음공부한 자신보다 더 나아 보이더란다.
“그래, 니는 고마 경이나 열심히 읽고 부처님 전에 청소나 해라.”
노스님이 그만 손발 다 들었지.
그 뒤부터 애기스님이 불경 공부를 하고 참선에 드는데. 부처님 앞에서 낭랑하게 불경은 읽으면 시끄럽게 지저귀던 새들도 조용하게 경청을 하고, 참선에 들면 법당 주위가 훤하게 빛이 나더란다.
“허허, 선재로다.”
노스님이 대신 밭을 매고 나무를 해오고 탁발을 해 와서 어린 동자승을 보필했단다. 원체 가난한 시절이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자니 배를 곪아야 하니 노스님도 본의 아니게 선한 거짓말도 하고, 여신도들 등도 토닥거려서 절에 쌀이 안 떨어지게 했단다. 그 사이 아이는 주야장천 선방에 앉아서 경만 읽더란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러 어린 동자가 청년 스님이 되었단다. 청년 스님이 되어도 여전히 참선만 하고 경말 읽으니 절 밥 먹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밥충이> 하나 키운다고 했단다. 밥충이는 밥만 축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란 뜻이지.
그런데 갑자기 아흔몇 살까지 산 노스님이 임종을 하게 되었단다.
그날 밤, 밥충이가 노스님 임종을 지켜보고 앉았는데.<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