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노스님 코에서 실뱀 한 마리가 꼬물꼬물 기어 나오더란다. 그 실뱀이 문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기에 밥충이가 주장자를 들고 그 뱀의 뒤를 따라갔단다. 뱀이 길을 가다가 소 두 마리가 붙어서 흘레(교미)를 하니 그 속에 들어가려고 하더란다. 밥충이가 주장자로 실뱀을 탁 쳤지. 못 들어가게 한 거야. 그러자 실뱀은 다시 길을 가더란다. 산을 넘고, 들을 지나고, 인가를 지났지. 이번에는 개가 흘레하는 곳에 가서 기웃거리더란다. 그래서 또 주장자로 탁 때려서 앞으로 가게 했지. 시간이 갈수록 실뱀은 초조한 지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쑤시고 들어가려고 하더란다. 벌레가 흘레하는 곳에도 기웃거리고, 닭이 흘레하는 곳에도 기웃거리고, 뱀이 흘레하는 곳에도 기웃거리는 것을 그때마다 주장자로 때려서 길을 가게 했단다.
새벽녘이 다 됐는데. 드디어 어느 동네 길목에 있는 고랫등 같은 기와집으로 쓱 들어가더란다. 그제야 밥충이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 집주인 보기를 청했단다. 대문을 두드리니 청지기가 나와서 신 새벽에 젊은 스님이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묻더란다.
“이 집이 뉘 댁입니까?”
“하이고, 참, 시님. 이 댁이 뉘 댁인 줄도 모르고 오셨소? 3정승 6판서를 낸 판서 대감 댁을 모르다니. 참 나, 이제 알았으니 썩 꺼지시오.”
하면서 청지기가 거만하게 내치더란다.
“허허 참, 큰일이로고. 이 집에 큰 액(厄)이 들었는데. 이 일을 어찌할꼬.”
하면서 혀를 쯧쯧 차고 공손히 합장을 하고 물러날 듯하니 그제야 청지기가 깜짝 놀라 다시 물었지.
“거기 뭔 소리요? 액이 들었다니?”
“집안의 대가 끊어질 운세입니다.”
밥충이가 능청스럽게 한 마디 하고 등을 돌리자
“보이소 시님, 잠깐 들어와서 지달리시오. 내 긴히 대감마님을 모셔 오리다.”
하면서 청지기가 아이를 사랑방으로 안내하고 힁허케 안 집으로 달려가더란다.
조금 있자 수염이 허연 영감이 곰방대를 길게 물고 나오더란다.
“시님, 꼭두새복에 거기 무슨 말씀입니까? 듣자 하니 우리 집에 무슨 화가 미친다는데.”
“예,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대감을 뵐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결례를 했습니다만 대감께서 제 말을 귀담아들으셔야 할 것으로 압니다. 집안의 생사가 걸린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어디 들어봅시다.”
“이 집에 젊은 새댁이가 있습니까?”
“며늘애가 있지요. 그렇잖아도 3대 독자 외아들을 장개 보낸 지가 수 삼 년인데 아직 태기가 없어 걱정하고 있소이다. 며눌 애가 안 사람과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디리고 어제 하산을 했지요. 와 그러십니까.”
“이 집은 4대 독자가 태어나긴 하나 4대에서 집안의 손이 끊어질 운명입니다. 집안의 대를 잇고, 세세손손 영화를 누리려면 제가 시키는 대로 하셔야 합니다. 하시겠습니까?”
대감이 젊은 중의 관상을 보니 예사 중이 아닌 거라. 대감 속을 훤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지. 더구나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는데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리 하겠다고 했지.
“며느님이 곧 태기가 있을 겁니다. 그 아이를 제게 맡겨 주십시오. 아이가 태어나 다섯 살이 되는 생일날 아이를 데리러 오겠습니다. 그리고 십 년 후, 그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는 생일날 집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대가 끊어질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대감님이 꼭 해 두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손자가 태어나면 이름을 만주로 짓고 이 동네 들어오는 길목에서 대문 앞까지 길 양쪽으로 잣나무 만 주를 심으십시오. 꼭 만 주여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대감님이 직접 땅에 심어 가꾸십시오. 또한 만 주에서 한 그루라도 모자라서도 안 되고, 넘쳐서도 안 됩니다. 꼭 만 주여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하시겠습니까?”
그러겠다고 대감이 약조를 했지. 약조를 받은 스님은 그 길로 일어나 휑하니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단다. 그 대감은 귀신한테 올렸나 했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겠지.
업이란 말이다. 알고 짓기도 하지만 모르고 짓는 일이 수두룩 빽빽한 거라. 우리가 예사로 생각하는 것들도 예사롭지 않은 거라. 공부를 많이 한 노스님이 윤회를 몰라서 축생의 몸을 빌리려 했겠나. 다행히 제자 한 명 잘 건사한 덕에 미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거지. 사실 노스님은 지지리 가난한 소작농 집에서 태어난 거라. 부모가 입 하나 덜 욕심으로 절에 보내 중을 만들었던 거지. 자신이 원해서 중노릇하는 것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 풀칠하려고 중노릇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알겠지.
대감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게 맞은 것처럼 긴가 민가 하던 어느 날이었어.
“아이고, 대감 경사 났소. 드디어 우리 집안의 대가 안 끊어질 모양이오. 며늘애가 입덧을 하요.”
대감 부인이 호들갑을 떨면서 소식을 전하더란다.
그제야 대감은 그 젊은 스님이 예사 스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 그날부터 대감은 직접 괭이를 잡고 전나무 묘목을 구해 와서 심기 시작했어. 집안 종들이 자기들이 심겠다고 해도 ‘그만두어라.’ 단호하게 자르는 것이었어. 만 그루야. 만 그루 심는 일이 어디 쉽겠나. 더구나 평생 책상 앞에 앉아 공자 왈 맹자 왈만 하던 선비가 말이다.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몸살을 하면서도 손수 만 그루의 전나무를 심었지. 한 그루라도 죽이면 안 된다고 했으니 지극정성으로 나무를 가꾸어야 했어. 나무 가꾸는 것이 심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대감은 묵묵하게 그 일을 해 냈어. 조정에 들어가서 나랏일을 볼 때 외엔 늘 전나무 길을 오가며 손자를 보살피듯 보살피는 것이었어.
열 달 후 아이가 태어났지. 장군감이었어. 집안의 경사도 그런 경사가 없는 기라. 금이야 옥이야 키웠지. 아이가 얼마나 영특한지 하나를 갈치면 열을 아는 신동이었어. 대감은 손자 이름을 만주로 지었지.
만주의 나이 다섯 살이 된 생일날 아침이었어.
“똑 또르르, 똑 또르르”
대문간에서 목탁소리가 났어.
대감이 맨발로 뛰어나갔지.
“어서 오십시오. 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십시오.”
“전나무를 잘 키우고 계시는군요. 이제 십 년만 공을 들이면 됩니다. 한 그루라도 없어지면 안 되니 각별히 보살펴 주십시오. 십 년 후 아이 생일날 돌려보내겠습니다.”
스님은 아이를 데리고 떠났지.
그러구러 세월이 흘렀어. 십 년이 되었지. 그 사이 대감은 죽고 없었어. 청년이 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어. 십 년, 길다 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 대감 댁은 잔치 분위기로 떠들썩했어.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여서 헌헌장부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렸지. 비록 대감은 이승을 떠났지만 아이의 아비가 작은 대감으로 집안의 대를 이어가고 있었으니 말이야. 오죽했겠나. 사대 독자가 돌아오는데. 그 사이 대감댁 집 앞에 심은 전나무는 어찌나 푸르고 창창하게 자랐던지 전나무 숲 속에 든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
저만치 전나무 숲길을 향해 청년이 된 만주와 밥충이 스님이 걸어오고 있었어. 집안사람들이 몽땅 대문 밖으로 몰려나왔지.
“아이고, 저기 오는 게 만주 데련님 아닌가 베. 마님, 데련님이 와요. 시님이랑 같이 와요. 퍼떡 나와 봐요.” 아랫것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 법석을 피웠지.
그때였어.
“조용히들 하거라.”
한 어른이 조용히 한 마디 하면서 앞에 나섰어. 누군지 알 수가 없었지. 하얀 도포자락을 펄럭이면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거야. 그런데 거기 나왔던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오금이 딱 올라 붙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어. 그 어른만 유유히 앞으로 나가는 거였어. 가만 보니 청년과 시님도 전나무 시작되는 자리에서 꼼짝을 않고 서 있더래.
그 어른이 성큼성큼 걸어서 스님과 청년 앞에 다가가더래.
“스님, 아이는 제가 데리고 가겠소이다. 전나무 한 그루가 모자라지 않소.”
별로 큰 소리도 아닌데 그 어른이 하는 말이 거기 서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들리더래. 그 말을 듣자마자 스님이
“잠깐, 만주가 맞지 않느냐. 여기 한 주 더 있지 않느냐.”
하면서 소년을 마지막 전나무 옆에다 우뚝 세우더라는 거야.
그 어른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흠흠, 헛기침을 자꾸 하더니 한다는 말이.
“허참, 내 스님과 약조를 했으니 이 아이의 명은 거두어가지 않겠소. 다만 후손이 대를 거듭나면서 업장 소멸을 해야 할 것이오.”
하면서 가더란다. 그 후 밥충이 스님 명성이 올매나 널리 알려졌던지 한 때 서원암이 이 일대에서 제일 큰 절이었단다.
“밥을 하모 한 가마니 쌀로 지었단다. 신도와 대중이 올매나 많았것노. 뒷바라지하던 공양주들이 멈서리를 낼만큼 사람들이 줄을 이었단다. 그 큰 절이 임진년 난리에 불에 다 타 버렸단다. 안 그랬시모 이 일대에서 젤 큰 절일 끼다. 오랫동안 절터만 남아 있었제. 이곳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절터를 지금 시님이 들어와 콧구멍만 한 움막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지. 시님이 불심이 깊었던지 차츰차츰 신도 수도 늘고, 살림도 늘었어. 자꾸 불사를 해서 지금 절이 된 기라.”
결국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숨으로 끝났다.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근데 엄마, 지금 스님과 그 밥충이 스님과 인연이 있는 거 아니고? 밥충이 스님이 장개를 가서 아를 놨다거나 그런 거. 왜 있잖아.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랑 사랑해서 설총을 낳았잖아. 밥충이 스님도 자손을 낳았을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말이야 전나무를 만주 심었는데. 왜 한 나무가 모자란 거야? 누가 베어버린 거야?”
“그래, 한 나무가 모지랬제. 그건 말이다. 대감이 죽고 나서 맨 마지막 나무가 시름시름 시들어 가더니 죽어삐더란다. 하인은 주인이 알모 혼꾸녕이 날끼라서 살짝 베삐고 흙을 덮어 흔적을 없앴단다. 맨 끝에 나무라 한 나무 베삐도 몰랐던 기라. 안 세 보모 우찌 알것노. 밥충이 시님이 벌써 그것까지 다 알고 있었던 기라. 그래서 그 아 이름을 만주라 지었던 기제.”
“그럼 그 어른은 저승사자?”
“저 승사 잔 지 산신령이었는지 모르제. 그나저나 절은 올매나 더 가야 하노?”
“다 왔어 저기잖아.”
서원암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숲길을 지나 아늑하게 자리 잡은 곳,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 앉은 형국의 산속에 있는 아담한 절이었다.
어머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팡이를 짚고 잰걸음으로 대웅전을 향했다. 대웅전 삼 부처에게 절을 하고 산신각, 명부전을 두루 돌아오시더니 선걸음에 내처 집에 가잔다.
“왜 그래 엄마, 스님도 안 뵙고 그냥 갈 거야?”
“뵐 필요 없다. 퍼떡 집에 가자. 그 아가 와서 지달린다. 퍼떡 가자니께.”
승용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미동도 없었다. 답답해진 내가 어머니를 다그쳤다.
“엄마, 아까 그 말은 무슨 말이야? 서원암 스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는 말,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인데. 서원암 스님을 언제부터 알았어? 내 어릴 적에도 서원암에 다녔잖아. 할머니도 다녔던 것 같은데.”
어머니는 대꾸를 안 했다.
“말 안 할 거야? 그 스님이 뭐랬는데. 엄마, 말 좀 해 봐. 참,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못 물어봤네. 울 엄마가 내 정신까지 홀랑 빼놨어 그래. 탱자나무는 왜 벴어? 그렇게 베어버리자고 사정할 때는 꿈쩍도 않더니 왜 그랬어? 탱자나무 베어버리니까 집이 훤해 참 좋더라. 진작 그럴 일이지. 어둠침침하던 집이 훤해졌잖아. 그치? 엄마도 속이 시원했지?”
그제야 어머니가 반응했다.
“그 골목을 시멘트 포장해서 넓힌단다. 우리 살박까지. 면에서 나와서 벴다. 내가 아무리 사정해도 안 된단다. 탱자나무는 보기 숭하다고 베 삐야 한단다. 대신 멋진 시멘트 담장을 해 주겠다 하더라.”
“잘 됐네 뭐. 돈도 안 들고 집도 훤해지고, 울 엄니 오래 살겠네.”
“오래 살기는 나도 갈 때가 됐다. 너거 오래비가 데리로 와 있다. 서원암 시님이 너거 오래비를 절에 데리고 가서 중 맹글어야 수명장수 할 상이라는 것을 너거 할매랑 내가 안 보냈던 기다. 너거 애비 그 험한 주검 보고 어찌 또 너거 오래비를 절로 보내 끼고 말이다. 나는 죽어도 조상님 볼 면목이 없다. 이 업을 우째야 하꼬. 니가 머스마라모 올매나 좋것노.”
그제야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았다. 내가 정가 아닌가. 정 대감 댁 정 만주의 후손이 나란 말인가. 그리고 죽은 아버지와 오빠는 윤회의 고리란 말인가. 내 대에서 친정 집 대가 끊어질 운명이었단 말인가.
“가만, 엄마, 아까 그 이야기가 진짜야? 우리 조상 이야기였어?”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랜 세월 어머니랑 단 둘이 살아왔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조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내 어릴 때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 있던 거적 데기 안의 주검이 아버지일 것이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오빠의 주검은 나도 뚜렷이 기억한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물에 빠져 죽은 오빠의 시체를 건져서 장사 지낼 때 혼절한 어머니를 안고 몸부림친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정 씨 집안 대를 내가 끊어 놨다. 집안 어른이 양자 들이라는 걸 끝내 거부했건만 내 죽고 나모 누가 조상님 제사 지낼꼬.”
“걱정 마 엄마, 내가 있잖아. 우리 아들이 정 씨 집안 대를 이어받으면 돼. 그래서 탱자나무도 베어진 거야. 우리 집에 새로운 기운이 도래할 것을 알고 조상이 도운 거야. 요즘 법이 바뀌어서 딸도 호주가 될 수 있어. 내가 호주승계받아 내 아들에게 줄 거야.”
다행히 딸인 내가 호주승계를 할 수 있다지 않는가. 내 아들이 정 씨 가문의 대를 이어갈 수도 있다지 않는가. 탱자나무 가시로 막혀있던 친정집이 시원하게 뚫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게 아들이 둘이니 한 명은 남편의 성을 따라 이 씨로, 한 명은 내 성을 따라 정 씨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어떻게 남편을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