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놓다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다리를 놓다


정배는 주춧돌 위에 곧은 자세로 서 있는 소나무 기둥을 쓰다듬었다. 아이 한 아름은 됨직하다. 은은한 솔 향이 코끝에 닿는다. 상큼한 맛이 박하사탕을 입에 넣은 것 같다. ‘소나무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싫지 않단 말이야. 소나무 중에서도 이 적송이 젤이야.’ 혼잣말을 하면서 매끈한 기둥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자꾸 쓰다듬었다.

겨울 동안 열 평짜리 황토 집을 짓는 중이다. 집터를 다지고 고른 후 기단 위에 묵직하고 넓적한 자연석을 구해다 주춧돌을 놓았다. 집터의 네 귀퉁이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도리와 보를 올리고 동자기둥을 세운 후 그 위에 용마루를 얹었다. 지붕의 골조가 되는 뼈대를 완성한 것이다.

“형님, 그걸 말라꼬 그리 정성껏 씨다듬어 샀소? 꼭 처니 방디 만지는 거 맹키로.”

한쪽 구석에 임시로 만든 비닐하우스 속에서 자잘한 서까래 재목에 대패질을 하던 한수가 담배 한 가치를 피우러 나왔다가 그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나무 냄새가 좋으네.”

“나무 냄새가 머가 좋소. 나는 여자 냄새가 더 좋더마.”

“소나무가 이 정도 클라모 한 오십 년은 자랐을 낀데.”

한수의 말을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며 그도 서둘러 비닐하우스 속으로 들어갔다. 비닐하우스 속에는 고막이 공사와 바닥재로 쓰일 황토가 큰 묏등처럼 쌓여 있다. 밤에는 황토가 얼지 않도록 보온 덮개로 푹 덮어놨다가 낮에는 보온 덮개를 걷어 놓곤 한다. 벽채는 황토벽돌을 이용할 것이다. 모든 재료는 이미 확보된 상태다.

정배는 껍질을 벗겨 잘 건조한 자잘한 소나무 등걸을 받침대 위에 올렸다. 낫을 이용하여 옹이를 깎아내고, 튀어나오거나 약간 굽은 곳은 대패질을 하여 반듯하게 만들었다. 한쪽 구석에 서까래 재목이 보기 좋게 쌓였다.

“형님, 뼈대가 서니 벌써 집을 반쯤 지은 거 같습니더. 인자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네 예”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한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던진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겨울에 황토 집 지을 자신이 없던 그도 착착 일을 진행하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 자신감을 한수가 읽어내는 것 같아서 한수의 눈길을 피했다. 한수가 ‘이게 다 내 덕이란 것 잊지 마소.’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사실 그랬다. 손 맞잡아 줄 사람이 없었다면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이다.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주인은 한시가 급하다고 했다. 한 겨울에 황토 집을 지어달라는 주인도 딱했지만 사정을 알고 나니 안 된다고 뚝 잘라 거절하지 못한 그도 딱했다.

그 사정 이야기를 들은 한수가 시원하게 결정을 내려주었다.

“형님, 해 봅시다. 까짓, 대신 하자 부분이 나온다는 것만 계약서에 명시하고 시작하지 예. 어차피 겨울에는 할 일도 없는데. 노가다라도 해야 우리 엄니가 장개 가라 닦달 안 하지. 해 보입시더. 맘 묵으모 못할 게 머 있겠습니꺼.”

그렇게 시작한 일이다. 일단 시작하고 보니 한 겨울 살갗을 얼얼하게 하는 매운바람도 그의 일손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손놀림은 재발랐다. 굼뜨게 일을 못하는 것이 그의 천성이다.

집 짓는 일이 주어지면 정배는 신들린 사람처럼 일에 매달린다. 온종일 끌과 대패, 망치, 톱 등으로 나무를 다듬고, 쪼고, 파고, 세우는 일로 심혈을 기울이다 보면 춥다는 느낌조차 없다. 그렇게 집의 뼈대를 세우고 보니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하다. 옆에서 보조 맞추어 주고, 손잡아 준 한수도 자신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것 좀 들고 하세요.”

정배는 애교가 철철 넘치는 여자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굽실굽실한 파마머리를 뒤통수에 질끈 동여맨 여자가 큰 쟁반에 뭔가를 잔뜩 담아 들고 서 있다. 보통 키에 약간 오동통한 몸매를 가졌다. 쟁반에는 양은솥과 대접이 있고, 김치보시기도 놓여있다. 여자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은 듯 눈을 살짝 내려 깔며 배시시 웃는다. 여자의 눈꼬리에 애교가 자르르 흐른다. 정배는 속으로 ‘누굴 후리려고 눈웃음인고. 그나저나 새참 시간도 지났는데. 뭘 가지고 온 거야.’ 하면서 쟁반을 받으려는데.

“일루 주이소.”

하면서 옆에 있던 한수가 잽싸게 쟁반을 덥석 받아서 나무 다듬는 받침대 위에 놓았다.

“말라꼬 이런 걸 가져왔습니꺼. 춥은데. 형님 묵을 거는 없는 갑소. 아지매 맞지 예?”

한수의 너스레에

“배고플 것 같아서요.”

하면서 눈을 치떠 그를 살짝 쳐다보고 눈을 내려 깔며 또 생긋 웃는다.

‘저 눈웃음은 도대체 어떤 놈 애간장을 녹이려고 저러는 거야. 아무리 봐도 끼가 많은 여잔데 촌에 사는 게 신기하단 말이야.’

생각하면서 그가 하던 일을 계속하자.

“저기 목수아저씨 잡수고 하이소.”

“나는 와 묵으라 소리 안 하요. 기분 나뿌게. 멀 가꼬 온 기라요?”

한수가 일부러 삐진 척 뿌루퉁하게 한 마디 하자 여자는

“어제 한수 씨가 그랬잖아요. 목수 아저씨 팥죽 좋아한다고. 그래서 끼리 봤어요. 맛이 있을라나 모르겠지만.”

“아니, 그럼 내가 아니라 형님 줄라고요? 에이 김 팍 샜네. 난 안 묵을 라요. 형님이나 많이 묵으소.”

하면서 한수가 담배에 불을 붙여 저만치 양지쪽에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어린애처럼 토라진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참, 한수 씨, 두 사람 드리려고 끓인 겁니다. 목수 아저씨 어서 오이소. 식기 전에 드셔야 할 것 같은데......”

여자는 양푼에 담아왔던 그릇에다 팥죽을 떠놓고, 김치보시기를 가운데 놓았다.

정배는 일손을 멈추고 여자 곁으로 갔다. 짙은 자줏빛 팥죽이 보기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팥죽 무로 온나. 맛있것다.”

그가 소리치자 한수는 못 이기는 척 피우고 있던 담배 불을 땅바닥에 비벼 끄고는 여자 곁으로 다가왔다.

“배부른데 죽은 무슨 얼어 죽을. 챙기 줄라모 좀 일찌감치 챙기다 주든지. 점심도 못 묵 것네. 아지매요. 생각해 주는 척하지 말고, 생각해 주려면 확실하게 하소. 우리 형님이 좋으모 좋다고 딱 깨 놓던지. 내가 좋으모 좋다고 깨 놓던지.”

“이봐요. 아저씨, 무슨 흰소릴 그렇게 하세요? 좋긴 누가 좋아요. 괜히 사람 무안 주고 그러네. 아무래도 아저씨는 삐딱 구두 신으셨나 봐요.”

여자가 한수를 째려보더니 심통난 목소리로 되받아친다.

정배는 한수와 여자가 서로 눈을 흘기며 으르렁거리는 것을 보다가 여자는 저렇게 애교도 부릴 줄 알고 톡 쏘는 맛도 있어야 하는데. 문득 아내 얼굴이 겹친다. ‘두 여자 반반씩 섞어 놓으면 제격이겠는 걸.’ 정배는 숟가락질을 하다 말고 피식피식 웃었다.

한수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뜬다. ‘여자 놀려 먹는 것 구경하는 것도 솔찬이 재밌지요?’하는 뜻이다. 여자 역시 그가 두 사람의 수작을 애써 못 본 척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수와 입씨름하는 것을 그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지매요. 총각을 와 꼭 아저씨라 하요. 여자 맛도 못 본 숫총각이라니깐. 우리 형님 꼬실라모 좀 더 신경 써야 할걸요. 차라리 나라면 모를까.”

한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여자를 자꾸 골려먹자 여자는 한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그릇은 나중에 챙겨 갈 테니 저 옆에 놔두이소. 하면서 집 쪽으로 내려가 버린다.

정배는 여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그릇에 남은 팥죽을 뒤적거린다. 들척지근한 것이 별 맛이 없다. 단 음식을 싫어하는 그에게 설탕을 넣어 끓인 팥죽이 맛이 날 리 없다. 눈웃음이며 애교를 보면 남자에게 사랑받겠는데. 음식 솜씨를 보면 아무래도 남자에게 사랑받기는 그른 여자 같다. 옛말에 여자가 음식 솜씨 좋으면 거시기 맛도 좋다는데. 김치 맛 한 가지만 봐도 음식 솜씨가 있고 없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데. 이건 매번 실망이다.

“형님요. 저 여자 생긴 거 하고 음식 맛 하고는 영 딴판이지 예. 품어볼 맛이 들다가도 음식 맛보면 그만 정나미 떨어지니 원.”

“고마 무라. 해 주는 것도 오감타. 맛이 이만하면 됐지 머.”

“형님, 관심 있소? 꼬리 치는 여자 싫다는 남자 못 봤소만.”

“내가 보기엔 자네가 더 혹한 것 같은데 뭘 그래.”

그가 한수에게 의미심장한 눈짓을 하다가 ‘하 하’ 크게 웃었다.

“에이, 그래도 난 총각이오.”

“생각이 있긴 있는 모양이네. 잘해 봐라. 그나저나 너무 그리 놀리지 마라. 얻어 물것도 못 얻어 묵는다. 아지매가 되게 무안했것다.”

“아닌 말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예. 손등이 쩍쩍 갈라지는 이 한 겨울에 형님캉 내캉 무슨 재미로 일만 죽으라 합니꺼. 약방에 감초 맹키로 들락날락하는 저 여자 방뎅이 흔드는 재미라도 봐야지. 근데 말입니더. 안만 캐도 형님한테 맘이 있어 보이는 눈친데. 내 형수한테는 비밀로 해 드릴 용의가 있으니 함 해 볼라요?”

“쓸데없는 말 말래도. 난 생각 없으니 자네나 어찌해 보게”

“나도 싫소. 저런 여자는 트럭으로 갖다 줘도 싫소. 밥맛이라니까.”

하면서 한수는 빈 그릇을 챙겨 한쪽 구석에 내놓고 다시 서까래 재목을 다듬는다.

그는 한수의 ‘밥맛이라니까’하는 말에 왠지 빙긋 웃음이 나왔다.

정배는 능글능글한 한수의 성품이 마음에 든다. 더구나 손끝이 매워서 같이 일하기도 수월 하다. 다만 사십이 넘도록 총각 신세 못 면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평소 한수가 ‘곰보 째보면 어떤가. 여자가 심성 하나 고우면 되지’하면서 여자 소개해달라고 보채지만 정작 여자 보는 눈은 높고 까다롭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눈에 콩깍지가 끼지 않는 이상 만년 총각으로 늙어갈 판이다. 그가 알기로도 맞선 본 처녀가 열 손가락은 넘는다. 한수 말을 빌리면 돈 많이 갖다 버렸단다. 뻥 좀 쳐서 한 백번은 맞선을 봤을 것이라며 늙은 어머니께 죄송할 따름이란다. 맞선이 들어오면 싫다 않고 나가는 것을 보면 장가가려고 무진 애를 쓰긴 쓰는 모양이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돈 좀 들여서 베트남 처녀든, 필리핀 처녀든 데리고 와야겠단다. 중국 조선족 처녀는 발랑 까져서 한물갔단다. 소문에 의하면 한국 국적을 인정하는 주민등록증 같은 도민증이 나오면 가지고 도망가 버린단다. 어찌 믿고 맘을 주겠느냐는 것이다.

언젠가 술좌석에서 여자 보는 눈높이를 좀 낮추면 어떻겠느냐고 했다가 일장 연설을 들었다.

“형님요, 여자가 말 입니다.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데가 있어야지. 요새 가시나들은 간 뎅이가 배 밖으로 나온 기라요. 또옥 모개 겉이 생긴 것도 첫마디가 이런 다니까요. ‘촌에 산다면서요? 재산은 얼마나 되는 데요? 도시로 나가 살 생각은 없는지요? 대학 나오셨다면서 왜 촌에 살아요? 회사 취직하면 될 텐데. 전 체질적으로 농촌에는 살 수 없어요. 맞벌이를 해도 도시에 살고 싶은데. 그럴 생각 없나요? 시어머니랑 함께 살 건가요? 분가했으면 좋겠는데.’ 이 정도 되면 앵무새처럼 나불대는 새빨간 주디를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어 진다니까 예. 저걸 그냥 여관에 끌고 가서 확 조져버려? 이런 생각도 한다니까 예. 요새 가시나들 조져봤자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처녀 딱지 가진 걸 수치로 생각하는 가시나들이 있다니까 세상 말세 아니것소. 형님, 형수 님 같은 여자라면 두말도 않고 장개 갈낀데.”

형수님 같은 여자라! 정배는 아내 생각을 하면 명치끝이 지끈거린다. 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고집불통이기 때문이다. 무슨 여자가 성질났다 하면 석 달 열흘이고 말 한마디 하는 법 없다. 한 방에 자면서도 미동도 않는다. 여자는 남자가 다루기 나름이라 하드라 싶어 몸으로 때우려고 덤벼도 이건 숫제 나무토막이다. 차라리 반항이라도 하면 씩씩거리며 올라 타 보련만 물 먹은 솜처럼 쳐져 있으니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그가 성질을 내도, 무심한 척 바깥으로 돌아도 완전 벽창호에 돌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늘 솜사탕 같다. 애들 앞에서는 절대로 성질내는 법이 없다. 표정 역시 담담하다. 내가 언제 당신에게 화났어. 하는 표정이니 성질내는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아이들은 집에만 오면 성질내는 아빠 싫다는 말까지 하니 사면초가다. 집안일이라도 못하면 꼬투리라도 잡으련만 아무리 토라져도 제 할 일은 칼같이 하는 여자다.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조차 제 아비보다 어미를 더 따른다. 아내가 싫은 눈짓 한번 하면 아이들은 말 잘 듣는 기계처럼 어미 말을 따른다. 제 어미를 무척이나 두려워하면서도 또 죽자 사자 제 어미 편이다. 아내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 사람을 다루는 솜씨다. 그 비결이 뭘까.

정배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내에게 휘둘린다 해도 자기만은 절대로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백기를 들고 만다. 고집만 센 게 아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싶어 한심할 때도 많다. 아내가 다른 집 여자들처럼 남의 품앗이도 다니고, 공장에 나가거나 하다못해 음식점에 가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반찬값이라도 벌면서 똥고집을 피우면 밉지나 않겠지만 아내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럴 생각이 없는 여자다. 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세 끼 밥만 챙기면서 시장 갈 짬도 없다는 여자다. 도대체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더 기가 막힌 것은 생활비를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산다는 것이다. 돈 없다고 갈갈거리기라도 하면 트집거리라도 있지만 이건 숫제 무심이 천심이다. 말없이 순종하는 듯이 보이나 기실 주도권은 늘 아내가 잡고 있다.

그런데 이웃에 살면서 서로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한수가 그의 아내 같은 여자를 원한다니 할 말이 없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소?”

언제 옆에 왔는지 한수가 그의 사심을 깬다.

“와? 무슨 일이고?”

“서까래는 인자 다 끝냈는데 머부터 해야 할깅가 싶어서......”

“그라모 니는 가서 창틀 좀 짜라. 저기 도면 있응께 가지고 가서 보고, 낼부터 서까래 올리고 지붕 덮어 놓고 고막이 공사 시작해야겠다. 빨리 방구들을 먼저 놓고 군불부터 때야 일하기가 수월 할기라.”

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가만 보니 한수가 딴청이다. 자꾸 여자 집 쪽으로 눈길을 준다.

“그나저나 그륵 가지로 올 때가 됐는데.”

“니 지금 아지매 기다리나?”

“야? 형님도 참 내가 뭘.”

“발뺌해도 소용없다. 얼굴에 딱 쓰였네.”

정배는 얼굴까지 벌겋게 변하면서 발뺌하는 한수를 보자 그만 박장대소를 했다.

한바탕 신나게 웃던 그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저 여자도 외로운 처지란다. 대학물도 먹었고, 집안 번듯한 남자 만나 살다가 남자가 딴 여자랑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이혼하고 촌에 들어와 산다더라. 촌이 좋단다. 도시 나가 살 생각이 없단다. 딸내미가 한 명 있다던가, 남자라면 이가 갈린다고 재혼할 생각도 없다 했다더라만. 과부 맘은 홀아비가 안다고 나보다 니가 더 잘 알것네. 니하고 나이도 비슷할 것 같고.”

“온제 그리 빠삭하게 꿰고 있소. 관심 없담서? 그라고 내가 홀아비요? 숫총각이제.”

“코 밑에 쎄 대 봐라 숫총각인가. 지난번에 저 집 할매가 와서 말해 주더라.”

“우쨌든 내사 관심 없소. 밥맛이라니까 자꾸 그러네.”

시무룩해져 비닐하우스를 나가는 한수를 보는 그의 마음도 아프다. 부부연이란 하늘이 정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사십이 넘도록 배필을 만나지 못한 그에게 하늘이 정한 배필이 있기나 한 것인지. 한 때 한수는 우리 마을의 자랑이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꾼으로 잔뼈가 굵어갈 때 두 해 후배인 한수는 꽤 유명한 대학을 다녔었다.

“대실 띠 아들이 장학금 받고 댕기는 대학생이란다. 우짜모 그리 공부를 잘하꼬. 너머 아들이지만 참말로 좋다 아이가. 니도 공부라모 넘한테 안 졌는데. 전문대학이라도 보냈시모 촌에서 안 살아도 됐을 낀데.” 어머니는 가난살이로 대학 공부 못 시킨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한수에 대한 부러움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한수는 우리 동네 자랑이었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떡하니 대기업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회사원이 되었을 때

‘거 대실 띠 아들이 출세했다며? 내 그럴 줄 알았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니께. 쬐깬 할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인사성도 밝았제. 인자 대실 띠 허리도 확 피일 거야. 아무리 장학금 받고 공부는 지가 했다지만 대실 띠도 아들 대학 공부시킨다고 쎄가 빠졌제. 초련에 혼자되어 그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았으니 인자 보답받는 기라. 참말로 잘 된 기라. 인자 그 집은 참한 며느리만 보모 만사형통인데.’

그러면서 모두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몇 년 뒨가 한수가 부모에게 의논 한 마디 없이 보따리 싸서 집으로 와 버린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휴가 차 온 줄 알았다. 한 달이 넘도록 한수가 시골집에 머물자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우리 한수가 댕기던 회사가 사정이 좀 어렵다고 좀 쉬다 간답니더.”

대실 띠는 동네 사람들 앞에 그렇게 궁색한 변명을 했다. 펜대만 굴리던 아들이 중노동에 해당하는 농사를 지어보면 금세 손발 다 들고 도시로 나갈 것을 예상했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나. 제깐 넘이 심들모 설마 다시 양복쟁이로 돌아가겠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한수는 아예 농촌에 징을 박을 작정인지 비닐하우스 특수 재배를 하네, 어쩌네, 하면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한수가 농촌에 들어와 맨 처음 시작한 일이 그에게 경운기 운전을 배운 일이었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도시에 나가 산 한수에게 농사는 문외한이었으니 처음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경운기 운전을 배워 논을 갈아엎었다. 다음에는 이앙기를 사서 모를 심었다. 대실 띠는 아들이 팔 걷어 부치고 농사를 돕자 한결 수월해서 좋긴 하지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아들이 도시로 나갈 생각이 없자 나중에는 애가 탔다. 남 보기 부끄러우니 이제 그만 회사로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어머니 모시고 촌에서 살랍니더.”

아들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배울 만큼 배운 놈이 농사꾼으로 주저앉겠다는데 어떤 부모가 그러라고 하겠는가. 대실 띠는 ‘남부끄러우니 놀아도 도시에 가서 놀아라.’며 아들을 도시로 쫓으려고 갖은 회유 정책을 썼지만 한수는 끝내 농사꾼으로 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실 띠는 일가친척들을 대동하여 한수를 회유하려고 했지만 한수는 회사 생활도 싫고, 도시도 염증 나서 나가기 싫다는 것을 어쩌겠는가. 어머니 혼자 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도 못 보겠고 어머니 모시고 도시에 나가 살아도 뾰족한 수도 없다면서 가난하게 살아도 좋으니 어머니 모시고 촌에서 살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대실 띠는 마지막 카드로 촌에서 살다가는 장가도 못 가고 늙어 죽을 것이니 어미로서 그 꼴은 못 보겠다. 허니 더 늦기 전에 아무 회사나 취직해서 장가든 후에 돌아와도 돌아오라고 달래고 협박하고 윽박질러서 도시로 쫓아냈다.

그렇게 떠난 한수가 몇 달 뒤 정말 예쁘장한 도시 처녀를 데리고 왔다.

‘대실 띠 며느리 감이 행인물이 아니네. 역시 배운 사람은 노는 물이 다른 기라. 가실에 혼인을 시킨다고 하제. 사돈 될 양반이 교장 선생님이라 안 쿠나. 퍼떡 혼사 시켜서 손자나 연거푸 쑥쑥 놔 주모 대실 띠 입에 함박꽃이 필긴데.’

그러나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인가 보다. 혼인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에 그만 여자가 고무신 거꾸로 신어버렸다지 않는가. 이유야 뻔했다. 한수가 농촌에 들어와 살고 싶다는 꿈 이야기를 한 것이 원인인지, 처녀가 한수 네 집 사는 형편을 보고 간 후였는지 모르지만 여자에게 보기 좋게 걷어차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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