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이 뭐기에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조상이 뭐기에


택시는 숲으로 난 좁은 소로를 따라 들어간다.

구불구불한 산비탈은 오를수록 가을 정취가 완연하다. 소나무와 잡나무 군락을 이룬 숲도 길섶도 온통 가을 색이다.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들로 빼곡한 숲 아래 쑥부쟁이, 구절초, 꽃향유 같은 가을 들꽃이 간혹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마른 대궁만 남긴 넝쿨과 씨앗 주머니를 단채 말라 가는 풀들로 길섶은 을씨년스럽다. 바람이 슬쩍 지날 때마다 단풍 든 나뭇잎이 몇 개 시나브로 떨어져 내린다. 가끔 택시나 승용차가 서로 닿을 듯이 비껴가기도 한다.

숲길을 한 십 여분 올라왔을까 갑자기 시야가 확 터이면서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아래는 넓은 공터가 펼쳐졌다. 입구에 주차장이라 쓴 팻말이 반긴다.

“다 왔습니다. 손님.”

노인이 노란 택시에서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내린다. 택시는 노인을 짐짝처럼 부려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돌려서 내 빼버린다. 넓은 공터에 노인 혼자 덩그마니 서 있다. 노인만이 아니다. 평일 아침나절인데도 절 앞의 주차장엔 온갖 종류의 승용차가 꽉 차 있다. 사람만 노인이 있을 뿐이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은 중후했다. 옷 입은 맵시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검은 구두에 대님을 맨 한복 바지는 짙은 밤색이다. 밤색 중절모에 짙은 밤색 누비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 비록 지팡이를 짚었지만 허리는 꼿꼿하고 표정은 당찬 인상이었다.

그는 정차되어 있는 차들을 쭉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다 절에 온 건 아닐 테고, 등산 간 사람들이 태반이겠지. 아니면 절에 큰 재가 있는 날인가. 사람들이 너무 붐비면 번거로울 텐데.’

그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주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도 절까지는 20여 분은 족히 걸어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절에서 일보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지만 청소 복장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한 조가 되어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며 낙엽을 긁어모아 짐칸에 쟁이고 있고, 한쪽에서는 가을 소풍 온 유치원 아이들이 낙엽 위를 뒹굴며 유희를 하고 한 무리는 사진 찍는다고 바쁘다.

사진기를 든 예쁜 여선생님이

“자자, 여러 부운, 김치 하세요. 치즈, 옳지 잘하네. 자자 같이 사진 찍고 싶은 사람 손들고 나란히 서세요. 저기 단풍 참 예쁘죠? 그 앞에 가서 서 봐요. 선생님이 치즈 하면 다 같이 치즈 하세요.”

노란 체육복 차림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동그랗게 만들기도 하고, 옆 친구 어깨에 살짝 기대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깔깔거리기도 한다.

그는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우리 행운이도 저리 예쁜 짓 할 때가 있었지. 벌써 중학생이 됐을 텐데. 잘 사는지. 이 할애비도 벌써 잊었겠지. 철이 그놈만 살았어도, 나쁜 놈, 어찌 애비를 두고 먼저 갈 생각을 했을꼬.’ 라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카메라 세트 한 번 눌러 주시겠어요? 애들과 단체 사진 한 장 찍으려고요.”

“그러지요.”

아이들을 찍어주던 여자 선생님이 노인에게 사진기를 건넨 후 아이들 무리 속으로 뛰어가 가운데 퍼질러 앉았다. 까만 벼슬을 단 어미 닭이 노란 병아리들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사진기 키를 누르고도 한참을 네모난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치원 여선생이 꼭 행운이 어미 같았기 때문이다. 한창 젊은 삼십 대 후반에 홀몸이 된 며느리가 아들 한 명 데리고 혼자 살길 바라는 것은 자신의 욕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어찌 그리 독한지. 그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그는 손자가 눈에 밟혀 자꾸 전화를 했었다. ‘아버님 제발 저희를 잊어주는 것이 저를 돕는 겁니다. 찾지도 마시고 전화도 하지 마세요. 부담스럽습니다.’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막내가 떠난 지 6개월도 되기 전에 그가 확인한 사실은 전화번호도 바꾸고 살던 집도 팔고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이다. 마지막 전화는 다 잊고 싶다고 했었다. 제발 다 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 뭐 하세요?”

“아, 네 찍습니다. 기 임 치”

일부러 아이들과 여선생을 한 번 더 포즈를 잡게 해서 찍어줬다.

여선생이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해야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여자 선생은 아이들과 함께 합장을 한다.

그는 빙그레 웃고 사진기를 선생에게 건네주고 일주문을 향해 걸어 올랐다. 푸른 이끼와 돌 꽃이 핀 오래된 돌담을 짚고 천천히 일주문 돌계단을 오르다 숨이 가쁘면 돌계단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다시 걸었다. 일주문 앞에 닿았다. 절간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장골 두 아름은 족히 될 것 같은 일주문 기둥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참 오랜만에 와 본 절이 아닌가.

그는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곧장 대웅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웅전 뒤쪽 옆에 있는 명부전으로 향했다. 넓고 큰 절 마당은 고즈넉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마당을 지팡이 짚은 노인이 천천히 가로질러 걸어갔다. 명부전 뒤에 늘어진 대나무밭에서 싸한 바람소리가 난다. 대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참새들이 후룩후룩 날아오른다. 새들 우짖음이 참 맑고 청아하게 들린다.

그는 명부전 옆문을 열고 댓돌 위에 구두를 벗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 한 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인등 앞에 삼배를 드리고 아들의 이름을 찾았다. 눈도 어둡고, 글도 잘아서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딘가 있겠지.’ 포기하고 구석에 놓인 방석을 챙겨 와서 깔고 앉았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인철아, 내가 왔다. 우리 인철이 혼백을 이 절에 데려다 놓고 그동안 한 번도 못 왔구나. 마음은 늘 너에게 와 있었지만 내가 아팠니라. 아니, 멀리 미국에 가 있다 보니 못 왔니라. 니놈 가고 나서 곧바로 너거 누가 사는 미국으로 들어갔었다. 행운이 에미가 날 안 보려고 해서. 나 때문에 니 보냈다고 원망이 커서. 너거 큰 누한테 갔니라. 갈 때는 바람이나 쐬고 나올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가니 나오기가 쉽지 않더구나. 이번에 내가 안 나오면 영영 못 나올 것 같아서 왔다. 니도 보고 싶고, 너거 옴마랑 할아부지랑 할무이 산소도 돌아보고 이 절에 아예 혼백을 매끼 놓고 갈라고 일부러 나왔다. 인자 너도 안 외로울 끼고 나도 한 짐 덜란다. 조상님께는 고개도 못 들 불효자지만 우짜것노 세태 따라 살아야제. 조상 모실 넘은 너뿐이었는데. 우리 행운이 봐서라도 니가 좀 참지. 행운이 에미 나무랄 일도 아니다. 애초에 내가 처신을 잘못한 기라. 내가 죄인이다. 철아.’

그는 자꾸만 눈물을 닦았다.

4년 전, 설을 며칠 앞둔 새벽이었다.

그날도 아들은 밤늦은 시간에 집에 왔다. 연일 그랬다.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는 아들은 자주 야근이다 뭐다 하면서 외박을 했고, 근 한 달을 아들과 며느리 사이는 살얼음판이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노인이라 해도 아들과 며느리가 각방 거처를 한다는 것을 어찌 모르랴. 늘 며느리는 손자 행운이 방에서 자고 나오는 것 같았다. 27평 아파트는 네 식구 살기엔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그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아들과 며느리는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지내고, 손자 공부방은 더 좁았다. 그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봐야 마음 놓고 잠이 들 것 같았다. 푹신한 보료 위에 누워 ‘아무래도 내가 방을 비워주는 게 옳은 것 같아. 며느리에게 안방을 내주고 내가 작은 방으로 가는 게 옳아. 늙으면 주책이 없어진다더니 안방 거쳐하라는 말에 덜컥 생각 없이 차지하고 앉다니. 늙으면 빨리 죽는 게 복인 게야. 임자, 나도 더 늦기 전에 좀 데리고 가 주구려.’ 그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는 중인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는 척 누웠지만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눈에 보이듯 훤했다. 좀 있으면 아들이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잠자리를 돌봐주고 나가거나 방문 앞에서 인사를 할 것이다. 막내아들인 인철이는 효자였다. 아무리 술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도 그냥 제 방으로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노인의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꼭 ‘아버지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춥지는 않습니까?’하면서 방바닥의 온기를 더듬어보고 나갔다. 불이 꺼져 있으면 방문 앞에 와서 ‘저 이제 왔습니다. 아버지 편안히 주무십시오.’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간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발자국이 방문 앞에 멎더니 나지막하게 속살거리듯 혀 꼬부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늦어 죄송합니다. 그만 제 방으로 가겠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어 방문이 닫히는 것 같더니 다시 열리고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며느리의 화 난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깼다.

“당신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니야. 우리 이야기 좀 해, 피하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잖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의견을 듣고 싶어. 나도 좀 살아야겠다고.”

“쉬, 아버지 듣겠다. 조용히 좀 해.”

“들으면 대순가 뭐. 아버님도 알아야 할 일이잖아. 아니, 전적으로 아버님이 처신을 잘 못해서 생긴 일이잖아. 왜 나만 나쁜 여자 만드는 거야. 나도 할 만큼 했어. 당신도 알잖아. 나만 편하자고 하는 소리 아니잖아. 틀린 것을 바로잡자는데. 왜 이렇게 협조를 안 해 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만 못 넘어가.”

“왜 이래? 목소리 낮춰. 내일 날 새면 이야기해. 나 너무너무 피곤해 죽을 맛이거든. 너무 피곤해서 술 한 잔 하고 왔어. 술 마신 것 안 보여? 좀 참아줘라.”

“안 보여. 술 마실 시간은 있어도 나랑 이야기할 시간은 없다는 남자잖아.”

그날, 며느리의 언성이 문틈을 통해 거실로 쏟아져 나왔다. 그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며느리의 목소리는 쌩쌩 칼바람 일었다.

“술만 먹고 오면 단 줄 알아? 이번 설에도 내가 차례 상을 차리란 말이야? 형님이 없으면 모르나 있잖아. 왔잖아. 조카한테 갔다가 왔으면 제사는 당연히 도로 가져가야지. 50평이 넘는 고급 아파트에 내외가 살면서 아버님도 못 모시겠다. 제사도 못 지내겠다는 게 말이나 돼? 맏이라고 재산은 다 챙겨갔잖아. 아버님 모시겠다고 집 팔아 갔잖아. 아파트 평수 넓은 것 살 때는 고마웠어. 아버님을 모신다니까. 장손이니까. 제사까지 다 모신다니까. 당연히 형님 몫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뭐냔 말이야. 아버님은 내가 모시고 살잖아. 집은 좁고, 아파트 전세는 더 올려 달라 하는데 돈은 없고.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지금 있는 돈으로는 방 두 개짜리 밖에 못 구하는데. 아버님 모시려면 적어도 세 개짜리는 구해야 하잖아. 전세금 2천 올려줄 것 좀 빌려달라고 해도 없다고 딱 잡아뗀 사람이 형님이야. 그러면서 이젠 제사까지 나보고 맡으래? 난 못해. 죽어도 못해. 제사를 안 지내겠다는 것은 아니잖아. 어머니 제사만은 계속 내가 지내겠다고 하잖아. 아버님도 내가 모시잖아. 나는 무슨 죄 졌어? 버젓이 부자로 사는 큰 아들, 맏며느리 놔두고 왜 내가 맏며느리 노릇까지 다 해야 해? 난 형님이 괘심 해서라도 이젠 안 참을래. 아주버님 보고 설에 차례 상 차리라고 하란 말이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조상님 모시는 일은 아주버님이 알아서 하라고 왜 말 못 해.”

“나 좀 쉬자. 정말 힘들어.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집에서는 집에 대로 날 못 잡아먹어 달달 볶는구나. 여보, 나 숨 좀 쉬고 살자. 가슴이 아파서 숨을 못 쉬겠어. 나 좀 내버려 둘 수 없어?”

그는 아들 내외가 다투는 소리를 들으면 속을 끓였다. 막내며느리를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치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며느리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을까 싶어 오히려 안쓰러웠다. 집 판돈을 얼마간이라도 그가 가지고 있었다면, 그 돈을 막내아들에게 내놓을 수 있었다면 이런 사단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맏며느리에게 막내며느리가 방 세 개짜리 구할 때까지 몇 달간 만 그를 모셔달라고 통사정을 한 것을 안다. 맏며느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것도 안다. 그럼 좀 넓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구하게 돈 좀 융통해 달라고 한 것도 딱 잘랐다고 들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쿵쿵 벽에다 찧고 싶을 심정이었다. 막내며느리가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큰 집에 가서 좀 계시라고 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큰며느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한번 자기 집에서 나간 어른을 다시 받아들이기 싫다고 했단다.

그는 처음부터 맏며느리와 뜻이 맞지 않았다. 기갈 센 며느리였다. 똑똑하고 야무지긴 했지만 매사에 인정머리가 없었다. 그래도 맏며느리였다. 그가 죽고 나면 조상님 모시고 그의 제삿밥 챙겨줄 며느리였던 것이다.

‘영감, 내 죽고 나면 꼭 큰 아한테 의탁하소. 꼭 그리 하소.’

그보다 두 살이나 위였던 아내는 병상에 누워 그렇게 유언을 남겼다.

사실 아내 살아서부터 막내아들을 끼고 살았다. 장가를 갔지만 아들은 분가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막내며느리도 시부모와 살기를 원했다. 막내며느리는 세 며느리 중에 가장 맘에 들었다. 첫째는 너무 오만하고, 둘째는 인정스럽긴 하나 촌티를 못 벗었고, 막내는 유치원 선생을 하던 기량 탓인지 사근사근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 후 아내가 죽었다. 아내의 바람대로 막내아들을 분가시키고 집을 팔아 장남 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금세 후회했다. 아들이 며느리에게 쥐어 사는 꼴도 보기 싫었고 큰며느리가 더 그의 눈 밖에 난 것은 조상님 제사 모시는 것 때문이었다. 조상님을 하늘처럼 받들던 그로서는 며느리 하는 행동거지가 반 맘에도 차지 않았다. 어찌나 성의 없이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면 눈에서 천불이 났다. 제사장 보는 것도 대충이었고, 국산이 아닌 수입 산이 버젓이 제사상에 오르는 일도 다반사였고, 떡 같은 것이야 떡집에 맞추는 것이 보편적이라 하지만 부침개까지 시장에서 사다가 제사상에 올리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제사는 정성이다. 혼백이 흡족해야 집안이 잘 되니라.’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역정을 버럭 내며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느냐고’ 나무랐다. 그러자 한술 더 뜬 며느리의 대꾸가 부메랑이 되어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요즘 세상에 제사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꼭 장남만 제사 모시라는 법 있느냐고 대들었다.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할 소린가 말이다. 그에겐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로 들렸다. 아내 죽은 지 이태도 지나지 않아 시작된 사단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악아, 내가 너거 집에 가서 같이 살모 안 되것나?”

“아버님, 그렇게 힘드신 거예요? 형님 집에 비해 우리 집은 아버님 계시기엔 너무 비좁지만 오세요. 그렇잖아도 우리 행운이가 자꾸 할아버지를 찾아요. 할아버지라면 안 떨어지려고 했잖아요. 아버님도 행운이 눈에 밟혀 더 힘드시죠?”

그렇게 그는 다시 막내아들네로 거처를 옮겼다.

막내며느리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몇 년을 함께 살았었다. 그가 막내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아내의 제사 수발은 막내며느리 차지가 되었다. 명절 때와 제사 때 외엔 큰 아들네 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명절 때 차례 지내려 오는 사촌이나 친인척까지 배척하는 것을 보고 아예 큰 아들네는 발걸음을 끊었다. ‘저거야 조상님 제사를 거꾸로 쉬든, 옳게 쉬든 차라리 내가 안 보는 게 낫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런데 맏며느리가 그 제사 수발을 몽땅 막내며느리에게 전가시켜 놓고 외국으로 내 뺀 사건이 생겼던 것이다.

칠팔 년 전, 추석을 사나흘 앞두었을 것이다.

“아버님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형님이 호주 간다고 저보고 올 추석만 차례 상 좀 차려달라고 해요.”

막내며느리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호주는 만다 간다노?”

“윤이한테 가 봐야 할 일이 생겼답니다.”

윤이는 맏손자다. 호주의 무슨 대학으로 유학을 가 있었다.

“니 생각대로 해라. 큰 아가 없으모 작은 아든지 에미 니든지 조상님 차례 상은 모시야 할 것이고. 애 할미 제사도 여서 지내니 겸사겸사 모아서 지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만. 니 생각은 우떻노? 니가 많이 심들것지만 너거 당숙한테도 연락해서 모두 우리 집으로 오라 해라. 거기 좋것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어 자연스럽게 막내아들과 막내며느리가 조상님 제사 수발을 들게 된 것이었다. 맏며느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제사를 돌려달라는 말은 없었다. ‘제사는 한 곳에서 지내야지 이 집으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혼백을 모독하는 짓이란다.’하면서 그가 은근히 당신 생전까지 막내가 모셨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전하기도 했었다.

그랬는데 결국 막내며느리의 가슴에 봇둑처럼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큰 형님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제 의무는 수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뒤척이는 사이 건너 방도 조용해졌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으니 내일이면 며느리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도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며느리의 새된 목소리가 단잠을 깨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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