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대하여

<끝>

by 박래여

운전대에 앉아 세 시간쯤 달렸을까 단성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지리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길은 이미 운치 있고, 좁고 구불구불한 소로가 아니었다. 2차선으로 멋지게 뚫려 있었다. 자양 고갯마루에 올랐다. 남강으로 흐르는 덕천강 줄기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거기서부터 덕천강 줄기를 따라 큰들에 이른다.

큰들이라 하면 안골에서 십리 밖에 있는 평야지대의 큰 마을 이름이다. 하 씨 집안은 대대로 그 마을 지주 집안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렸지만 안골과 큰들의 땅과 주변 산이 거의가 하 씨 집안 문중 땅이기도 했다. 현재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하 씨 문중 종손인 하 정태 씨는 그 많은 재산을 다 말아먹은 장본인이다. 노모를 모시고 겨우 입치레나 하고 사는 가난한 집안으로 전략했지만 한 때는 그 마을에서 큰 방앗간을 운영했고, 목재소를 하던 집안이었다. 그러니 가진 자의 유세도 대단해서 그 집안 가족을 누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 마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세도를 부렸었다.

그런 하 씨 집안 안 식구들이 다니는 작은 암자가 있었으니 안골의 내원 암이었다. 안 內자 고을 邧자 해서 내원 암이다. 내원 암은 한 마디로 하 씨 집안의 무병장수를 비는 개인 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 씨 집안에서 절을 먹여 살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절 주변의 땅이 전부 하 씨 집 문중 땅이었던 것이다.

하 씨 집안에서 그 절을 먹여 살리게 된 사연이 또한 그럴듯하다.

현재 하 씨 문중 종손으로 살고 있는 하 정태 씨의 증조할아버지가 30대 젊은 나이에 문둥병에 걸렸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문둥병에 걸리면 온 몸이 썩어 문드러져 죽게 되는 병으로 알려졌었다. 나병, 한센병, 천형병이라고도 하는 문둥병이 전염병인 줄 알고 사람들이 귀신 보듯 했다. 코가 문드러져 없거나 눈썹이 없는 사람, 손가락이 없는 사람이 구걸을 하러 오면 아이고 어른이고 숨기 바빴다. 아이의 간을 빼어 먹는다는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던가. 문둥병에 걸리면 나환자촌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 정태 씨의 증조할아버지는 문둥이 촌으로 잡혀가는 것이 두려워 골방에 숨어 지냈는데. 어느 날 꿈을 꾸었단다.

안골 뒷산이 오대산인데. 오대산 산신령이라면서 수염이 허연 영감이 다짜고짜 증조할아버지에게

‘네 이놈, 냉큼 내원 암에 들어오지 않고 뭐 하느냐.’

하면서 냅다 호통을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났단다.

그때 젊은 중이 안골에 들어와 손수 움막 같은 절을 짓고 내원 암이라 문패를 달았다. 법명이 용봉이라 했다. 하 씨 집안에서 사람을 보내 용봉 스님을 청했고, 병자가 기거할 뒷방 한 칸만 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용봉 스님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병자는 그 길로 내원 암에 들어가 살면서 부처님께 정성을 치성으로 들였다. 신기하게도 불과 서너 달 만에 환자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빠져버렸던 눈썹도 다시 나고, 진물이 흐르던 손등도 새살이 돋았다. 정말 병의 흔적도 없이 깨끗이 나은 데다 더 젊어졌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동네 사람들 말을 빌리면 정태 씨 증조할아버지의 나병이 나은 것은 순전히 내원 암의 신기한 샘물 덕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내원 암의 샘물을 마시거나 그 물로 몸을 씻으면 속병이나 피부병이 말끔히 없어지는 신기한 샘물로 이름이 난 것이다.

그랬다. 암자 뒤에 옹달샘이 있었다. 대웅전 마당을 빙 돌아 골짝 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닿고, 거기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었다. 물은 그 너럭바위와 절벽 틈새에서 흘러나왔고, 그 물은 너럭바위 아래 자연스럽게 파인 돌 웅덩이에 고였다가 절 아래로 흘렀다. 돌 웅덩이는 손바닥을 웅덩이 바닥에 대면 팔목이 잠길 정도였지만 신기한 것은 샘의 물이 늘 고정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그 샘에 물이 철철 넘치는 법도 없거니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퍼내면 퍼낸 만큼 채워질 뿐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물로 목욕을 하고,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고 그 물로 밥을 지어먹고, 그 물을 마신 탓에 병이 저절로 나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 씨 집안사람들이 그 절의 부처님과 옹달샘을 신주 모시듯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절에 사는 중외에는 그 물을 함부로 퍼다 먹었다가는 하 씨 집안 머슴들에게 치도곤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병이 나은 증조할아버지는 용봉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로 땅 보시를 했다. 절을 말끔하게 새로 지어 부처님께 바쳤던 것이다. 내원 암은 드디어 대웅전과 공양 간, 요사 채를 갖춘 아담한 절이 되었다. 절만 단장을 한 것이 아니고 그 옹달샘도 다른 사람이 드나들 수 없도록 샘가에 돌담을 높이 쌓고, 출입문을 만들어 자물통을 채워 놓았던 것이다. 아무나 드나들다 보면 물을 더럽히게 되고, 약효가 떨어질 우려가 있으니 집을 지어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용봉 스님도 어쩌지 못하고 따라야 했다. 그 옹달샘의 출입문 열쇠는 용봉 스님과 하 씨 집안에서만 가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피부병이 생기거나 속병이 나면 내원 암에 가서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 씨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품삯으로 물 한 통을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내원 암의 신기한 약수 이야기는 소리 소문 없이 퍼져나가고, 타관에서 신기한 샘물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내원 암 절에 와서 치성을 드리기보다 하 씨 집안과 거래를 하여 물을 사 갔던 것이다. 하 씨 집안에서는 물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은근히 용봉 스님을 압박했다. 절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불자들에게 맘대로 옹달샘 물을 퍼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지스님 용봉은 병자가 와서 옹달샘 물을 원하면 언제든지 열쇠를 내주었다. 그 절에 기거하면서 병을 치료하고 가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내원 암에는 늘 사람이 끓었다. 사람이 끓으면 당연히 돈이 생기고, 돈이 있는 곳에 권력이 생긴다 하지 않던가. 하 씨 집안의 시주 돈으로 살던 내원 암의 살림이 점차 부유해지자 하 씨 집안사람들도 은근히 마음이 쓰였지만 생명의 은인인 용봉 스님을 봐서 어쩌지 못했다. 대신 절 초입에 원두막을 지어놓고 절에 가는 사람들에게 출입 세를 받았다. 물을 들고나가게 되면 물 값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탈을 잡을 수 없었다. 안골이 하 씨 집안의 사유지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몇 해가 흘렀다. 용봉 스님은 절의 안위가 갈수록 걱정스러워졌다. 하 씨 집안 덕으로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 씨 집안이 은인이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하 씨 집안사람의 유세가 갈수록 심해지는데 문제가 있었다.

어느 날, 용봉 스님이 먼 길 나들이를 나갔다가 길에서 부모 잃고 오갈 데 없는 여남 살 짜리 어린 소년을 만났다. 척 보니 부처님과 인연이 있는 아이라 절로 데리고 와서 사미로 삼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환이라 이름을 얻은 동자승은 인물이 참 좋았다. 붙임 살도 있어서 절에 오는 신도들도 그만 그 어린 스님께 푹 빠질 정도였다.

“환아, 이 열쇠가 너에겐 복이 될지 화가 될지 그것은 너 하기 나름이다. 오늘부터 부처님의 물시중은 네가 들어라.”

용봉 스님은 환이에게 옹달샘의 열쇠를 맡겼다. 부처님 앞에 올리는 물 공양과 공양 간에 먹는 물을 떠다 채우는 일이었다. 물 당번이 된 어린 동자승은 성실했다. 자신을 친 아들처럼 거두어주는 스님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하 씨 집안 며느리도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현재 하 정태 씨의 노모다. 그녀에겐 정분이란 딸과 아들 정태가 있었다. 그녀는 절에 올 때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왔다. 9살짜리 여자 애가 제 어미를 따라 절에 오면 어미가 치성을 드리는 동안 딸은 또래의 동자승 환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놀았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 엄연하던 시절이었지만 치성드리는 스님과 어머니와 아랫사람들 눈을 피해 둘이는 서로의 손을 잡고 안골 골짝에 내려가 가재를 잡고 놀거나 절 뒤의 소로를 따라 숲에 들어가 놀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옹달샘 가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옹달샘 물을 퍼내 물장난을 하면서 놀았다는 것이 맞다. 절에 손님이 오는 날은 환이의 일이 더 많아졌다. 공양 간에 물을 수시로 채워놔야 했으니 물통 두 개가 달린 지게를 지고 옹달샘으로 향하는 환이를 정분이가 따라다녔다는 이야기다. 둘이서 물 한 동이 퍼 놓고, 샘에 물이 찰 동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기 씨는 집에서 뭐 하노.”

“수놓고 학교 댕긴다. 애기 시님은 뭐 하노.”

“부처님 되는 공부 하지.”

“니는 학교 안 가고 싶나.”

“큰 시님이 학교보다 부처님 경전 배우는 기 더 큰 공부래.”

“내가 국어 책 가지고 와서 갈차 주까?”

“그래 주모 나도 언문 배울란다.”

환이는 늘 정분이가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절 생활이 단조롭고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스님에게 한자 공부를 하고, 염불을 외우고, 부처님의 계율을 배웠지만 남는 시간엔 늘 정분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분이가 갖다 준 국어 책을 스님 몰래 공부하면서 한글을 익혔다. 해가 바뀌는 것만큼, 환이가 한글에 능숙해지는 만큼, 두 아이는 철이 들어갔고, 어른이 되어갔다. 환이가 소년으로 탈바꿈하고, 정분이가 소녀로 부끄럼쟁이가 되면서 절에 다니러 와도 못 본 척 외면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싹튼 사랑의 감정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남몰래 만나 연정을 키우고 있었다. 그동안 어찌 된 셈인지 용봉 스님은 그때까지 환이에게 사미계를 내리지 않았다. 수계를 받아 머리를 삭발하고 정식 승려가 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환이는 머리만 박박 밀었지 사미계를 받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작은 스님이라 불렀다.

그의 눈에 큰들이 들어왔다. 한 발쯤 남은 저녁 햇살이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역광으로 비치는 햇살 속에 드러난 들은 이미 타작이 끝나고 그루터기가 파랗게 피어올랐다. 논두렁에 몇 개씩 피어있는 억새가 은빛으로 나풀거렸다. 큰들은 여전히 평야지대였다. 절반은 비닐하우스가 지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넓어 보였다. 타작 끝난 논에 동글동글하게 뭉친 짚더미가 꼭 눈덩이 같기도 하고, 푸른 그루터기 사이로 보리 순이 돋는 곳도 보였다.

그는 큰들을 지나 안골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2차선으로 잘 닦여진 길이지만 여전히 길옆에는 오대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푸르고 맑았다. 물빛은 여전하건만 어디에도 옛길의 흔적은 없었다. 길옆의 산자락은 온통 모텔과 음식점, 찜질 방 그런 것들로 치장되어 있다. 간혹 재래식 집이 보이는 동네도 있지만 그곳에는 민박이라고 크게 붙여 놓았거나 ‘산나물, 야생 차 팝니다.’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있기 일쑤다.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굶었다. 등짝에 붙은 배에서 이젠 꼬르륵 소리도 낼 힘이 없나 보다. 그냥 식은땀이 날 정도로 허기가 질뿐이다. 어디든 들어가서 배를 채우고 가야 할 지경이다. ‘이 놈의 아귀가 발광을 하면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단 말이야. 병신, 머저리, 그래, 그 죽 때문에 여기까지 정신없이 온 거야? 여기도 도시나 마찬가진데. 시래기죽 파는 곳이 있을 리 없지. 봐라. 보란 말이야. 이 멍청아.’ 그는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어느 곳에도 어린 날 그가 떠날 때 본 흔적이 없다. 낯선 곳일 뿐이다. 고향이라고 할 건더기가 아무 곳에도 없다. 아니다. 오대산 봉오리만은 아프게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안골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길옆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오랜 세월을 견뎌낸 흔적이 남은 구닥다리 집들이었다. 초가지붕은 없지만 낡고 닳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때 묻은 시멘트 벽, 허름한 유리문 등이 별반 세월의 때를 타지 않았다. 그는 길 가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물배를 채우고 입을 닦으며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 혹 옛날식으로 국밥이나 죽 같은 것 맛있게 끓여주는 집 있습니까?”

얼굴에 거뭇거뭇 검버섯이 핀 가겟집 할머니는 연신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며 말했다.

“죽? 요 우에 요새 새로 생긴 죽 집이 있다 카더마. 아매 하가네 처자가 한다카제.”

“하가네 처자요?”

“손님이 하가네 처자를 아시오? 오데서 오셨소? 하가네 처자가 서울 살다 왔다 카든데. 혹 그 처자 찾아오셨소?”

“아니요. 하가라면 혹시 안골 하 씨 댁 말씀하시는 건가 싶어서요.”

“하암, 그 하가제. 여거는 모다 하 씨들 천지제. 하가들 집성촌잉께.”

“근데 그 죽 집이 어디 있지요?”

“안골로 쭉 들어가모 있어. 전에 내원 암이라카는 절이 있었던 그 절터라 카제 암만.”

그는 지체 없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가을이었다. 온 산이 붉게 물들었다. 오대산의 단풍은 유난히 붉고 알록달록한 것이 많았다. 그 가을에 환이는 정분이의 혼인 소식을 들었다. 정분이의 나이 열여덟 살이 되자 하 씨 집안에서는 매파를 들여 혼처 자리를 구했다. 사방에서 좋은 혼처 자리가 났다. 돈 있겠다. 살림 따뜻하겠다. 처녀 인물 훤하겠다. 소학교까지 나왔겠다. 하 씨 집안에서는 세도가의 사위 볼 일만 남았던 것이다. 읍내 사는 술도가 집 둘째 아들이라고 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청년이라고 했다.

내일이면 정분이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영원히 그를 떠나는 날이다. 환이는 옹달샘을 찾았다. 그는 우울해지면 열쇠를 가지고 옹달샘을 찾아가곤 한다. 늘 변함없이 찰랑거리는 물을 바가지로 퍼내 세수를 하고, 물끄러미 물속을 바라봤다. 빡빡 밀어버린 민둥산이 머리가 물속에서 마주 본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만 눈은 금세 왕방울 같은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다. ‘난 사랑할 자격도 없는 남자야. 내일은 스님께 정식 계를 내려달라 해야지. 부처님께 바친 몸인데.’ 환이 중얼거렸다. 물속의 남자 얼굴이 일그러진다. 붉은 단풍잎 하나 떨어져 내린다. 둥글게 파문 지는 옹달샘 안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비치더니 정분이의 아름다운 얼굴이 수심에 가득 차서 올려다봤다. 물속에 들어있는 그녀와 그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인연 아닌가.

“남자가 울긴.”

누군가 등 뒤에서 까르르 웃는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꿈에 그리던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오랜만에 보니 그녀도 많이 수척해져 보인다. 아무도 없는 옹달샘 옆에서 둘은 서로 꼭 껴안았다. 말없이 안고만 있어도 그들은 서로의 체온만으로도 서로의 심정을 알고도 남았다. 그들은 헤어져 살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한식경 지나서 말없이 바가지로 물을 떠서 샘가 바닥에 놓고 마주 서서 맞절을 했다. 그리고 바가지에 물을 떠서 여기저기 뿌리고 그 물을 함께 마셨다.

“이제 우린 부부야. 용봉 스님도 아셨던 거야. 그러니 내게 수계를 안 주셨지.”

“집에서 곧 들이닥칠 거야. 내가 없어진 줄 알면 바로 여기로 올 거야. 어머니께 말했거든. 환이 당신을 은혜한다고. 당신과 이미 부부 연을 맺었다고 거짓말을 했어.”

환은 그녀의 손을 잡고 법당으로 향했다. 용봉 스님이 부처님 앞에 가사장삼까지 걸치고 앉아 계셨다.

그들은 말없이 스님 뒤에 서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떠나려고? 무모한 짓이다. 너희들은 인연이 아닌 게야. 다음 생에 부부 연으로 만날 게야. 그러니 아가씨는 얼렁 집에 가십시오. 환아, 너는 부처님께 물 공양하거라. 공양 때가 늦었느니라. 서두르래도.”

눈을 감은 채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용봉 스님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이었지만 사람의 가슴을 무쇠 덩어리로 잡아 누르는 듯했다.

“스님! 우리는 이미.”

“서두르래도. 화를 자처하는구나.”

그들은 법당에서 나왔지만 그대로 헤어질 수 없었다. 손을 잡고 다시 옹달샘으로 향했다. 옹달샘 문안에 들어가 빗장을 질러놓고 마주 안았다. 이렇게 날이 밝고 내일이 후딱 지나갔으면 하고 빌었다.

“탕탕!”

누군가 옹달샘 문을 거칠게 두드려 댔다. 그들은 서로를 더욱더 꼭 껴안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다가 종내는 사라져 갔다. 그렇게 세상 어느 누구도 그들을 떼어놓지 못했다. 두 사람은 옹달샘 출입문 위의 들보에 서로의 옷고름을 풀어 목을 매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분이의 시체는 하 씨 집안에서 거두어 가서 장사를 지냈지만 환이의 시체는 들 가운데 던져서 까마귀밥을 만들라는 하정태 씨 아버지의 추상같은 분부였다.

그날 밤 내원 암은 불꽃에 휩싸였다. 용봉 스님은 법당에 앉은 채 등신불로 산화했다.

그리고 들에 던져 놓은 환이의 시체를 남몰래 거두어 장사 지내 준 사람이 바로 소 원식, 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갔다. 도로포장을 되어있지만 2차선이었던 도로는 구멍가게가 있던 곳에서 끝나고 좁은 길이 되었다. 오가는 차도 없으니 피서 철이나 되어야 길이 좁아터질까 겨울 초입의 산길은 한산하기만 했다.

그는 안골 동네를 벗어나 내원 암 절터에 닿았다. 현재 3층 석탑만 서 있다. 그 석탑 앞에 내원 암 절터에 대해 ‘1957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절 전체가 소실되었다.’고 적혀 있다. 절터 앞에 차를 세울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 아래 물은 여전히 푸르렀다. 내원 암 들어서는 다리도 여전했다. 그 절터 옆에 몇 년 전 왔을 때도 없던 아담한 초가가 지어져 있었다. 석탑 옆이었다. <샘가에서 차 한 잔>이란 현판이 걸려있었고 대나무로 만든 삽짝이 활짝 열려 있었다. 삽짝 옆에 <야생차와 온갖 죽 됩니다.> 무명천에 얌전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찻집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은은한 조명과 명상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쪽에는 다구와 차들이 진열되어 있고, 그 앞에는 나무의자와 나무 찻상이 놓였고, 한쪽에는 문 없이 다다미처럼 만든 방이었다. 손님이 올라가 앉을 수도 있고, 다리 쉼을 할 수도 있는 곳 같았다.

“어서 오세요.”

갈색 개량한복을 얌전하게 입은 여자가 카운터에서 일어나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맑아 보였다. 순간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여자 같았다. 인사 동에 살았나?

“온갖 죽이 된다면서요? 그 죽 먹으러 한양서 왔는데. 내가 원하는 죽 좀 끓여 주시겠소?”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여자도 환하게 웃으며

“무슨 죽을 원하시는데요?”

“어려서 먹었던 시래기죽이요. 할 수 있겠소?”

“다행이네요. 시래기 삶아 둔 것이 있는데. 그 맛이 날지 모르겠지만 좀 기다려 주시겠어요? 저 쪽에 책 있으니 아무거나 보시면서.”

“가능하면 푸짐하게 끓여주시오.”

그는 방에 올라가 찻상 앞에 앉았다. 서너 시간을 길에서 시달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상하게 속이 편했다. 그는 찻상 아래로 발을 뻗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금세 등이 따뜻해져 왔다. 참 편하다. 중얼거리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희미하게 그를 흔드는 기척을 느꼈다.

“손님, 손님,”

그가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차방 안에 은은하게 등불이 켜져 있고, 찻상 위에 놓인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얌전하게 놓인 죽 그릇과 산나물 두어 가지였다.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어찌나 곤하게 주무시는지 한참을 기다렸어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실례를 했군요. 사실 먼 길 달려오느라 많이 피곤했나 봐요. 혼자이신 것 같은데. 같이 드시죠. 저녁 드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여자가 빙긋 웃으며 순순히 뚝배기를 들고 오는데. 그녀도 역시 죽이다.

시래기 죽, 그가 시래기를 걸친 죽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자 그만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 맛이었다. 어려서 어머니가 끓여주던 그 맛,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그 맛. 숟가락을 들고 그의 눈치를 보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잠깐 망설이는 것 같더니 슬며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에 포갰다.

“감사합니다. 이 맛이었어요. 이 맛.”

그는 감격해서 그녀의 손을 우악스럽게 흔들어댔다.

그리고 아예 남은 죽까지 솥 채 다 가져오라 하여 배를 채운 후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정말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포만감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배고픔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 살 것 같습니다.”

그는 그녀를 보고 웃고, 그녀는 그를 보고 웃으며 조곤조곤 서로의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 찻집에는 오래오래 불이 꺼지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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