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살, 관음보살
8. 꽃 보살, 관음보살.
겨울이 깊어지자 어머니는 선암사에서 내려오셨다. 칠순이라면 아직 정정할 나이건만 여름 지나자 아내의 말대로 어머니의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았다. 말수도 없어지고, 혼자 조용히 방 안에 앉아 염주를 굴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었다. 대신 영덕이는 뭔가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들 눈에 비쳤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영덕이는 할머니 옆에서 대침을 베고 누웠다가도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파트 뒤에 해송 몇 그루가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 가서 흙장난을 하거나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누이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거니와 아침에는 또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를 가니 나조차도 얼굴 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영덕이가 누이를 못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내는 영덕이를 데리고 한가한 낮 시간을 이용해 실내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가 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는 아내의 배려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자꾸만 어머님이 걱정스러워졌다. 지난번 외삼촌을 만나고 온 이후 혼자 앓는 가슴앓이 탓이기도 했다.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는 심정은 병이 될 지경인데도 나는 태연을 가장해 어머니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어머니도 나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눈치 같았다.
“낮에 어머이 모시고 내과에 다녀왔습니다.”
“속이 많이 편찮으시대?”
“소화가 통 안 된다 하시기에, 진지도 제대로 못 드시기에 안 가시려는 분을 억지로 모시고 댕겨 왔십니더.”
“어떻다 하시데 의사 양반이?”
“신경성 위염 같다는데 약 묵고 나모 괜찮을 끼라 하데예.”
나는 어머니의 속병을 조금은 이해할 듯했다. 평생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온 사연을 중년이 된 자식에게 내놓아야 할 처지에 어떤 이야기 먼저 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어머니의 말문 열기를 기다리는 동안, 영덕이를 데리고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장함산, 그 웃담에 다녀오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문을 닫고 살았다. 말문의 두께는 한파보다 더 두터워 보였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이 깊어져서 더 이상 깊어질 수 없을 때 다시 환생하듯 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봄이 올 것을 믿으며 나 역시 겨울 찬바람에 온 몸을 움츠리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무실과 집을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 이야기를 했다.
“여보, 영덕이가 아무래도 어딘가 아픈 것 같아예.”
“와? 당신이 수영장에 데리고 다니더니 너무 무리하게 다구 친 거 아이가?”
“언지예. 물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했는데. 한 이틀 지나자 심드렁해 하데예. 물가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라고만 하고 지가 끌고 들어가면 억지로 따라오기만 해도. 어디가 아프냐 해도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예. 집에 오면 잘 가지고 놀던 대침도 마다하고 방바닥에 번듯이 누워 천장만 쳐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해 예.”
“어머이하고는?”
“별 일입니더. 어머이하고도 겉도는 것 같아예.”
영덕이는 행동이 느리고 굼떴다. 저능아들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이다. 외모는 아내보다 나를 더 많이 닮았다고 했다. 쌍꺼풀은 없지만 큰 눈, 약간 두툼한 입술, 뭉툭한 코, 이목구비는 뚜렷한 편이다. 겉으로 봐서는 아이가 좀 모자란다는 것을 잘 모를 정도다. 그 아이가 그렇게 따르던 할머니에게도 등을 돌렸다는 것은 분명 큰 사단임에는 틀림없었다.
영덕이 덕분에 드디어 어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애비야, 안만 캐도 내가 다시 절에 가 있다가 와야겠다. 영덕이가 걱정돼서 데리고 내려왔다만 아가 간밤에는 열이 나고 헛소리를 하는구나.”
아내에게서 영덕이가 아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이삼일 뒤였다.
“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라예? 영덕이 어미 말로는 절에서 올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하던데.”
“그래, 별일일 수도 있고, 별 일 아닐 수도 있다만, 이약을 하는 기순선 같다. 너희 내외가 알고는 있어야 할 끼다. 조물주의 힘을 누가 말리 것노. 그 아도 사춘기를 격을 줄은 몰랐다. 말은 안 해도 속은 있는지 사람 만내는 것을 꺼리는 아이라 처음에는 꽃 보살을 따르는 것이 신통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것이 머스마 꼬타리라고는 생각도 몬하고 지 누이 따르듯이 하는 갑다 했제.”
“그런데?”
“그런데 거기 아인기라. 그 보살이 지 동생 맹키로 예뿌다꼬 했다. 절에서 내려오기 전이었다. 꽃 보살이 내한테 할 말이 있다드마. 꽃 보살 하는 말을 듣고 난 게 난감하더라.”
나는 승복을 입고 있던 그 소녀를 생각했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던 소녀는 올해 스무 살이란다. 내 눈에는 무척 앳되고 어려 보여 우리 딸이랑 비슷한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한창 공부할 나이에 왜 승복을 입어야 했을까 궁금했었다.
꽃 보살에 대해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 역시 묘했다. 고향이 진주라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란다.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길이었단다. 길에서 선암사 주지 스님을 만나게 되었단다. 스님이 불교 포교당을 찾던 길인지라 그 여학생에게 길을 물었다.
스님의 행색을 가만히 살피더니 자기가 길 안내를 하겠다고 하드란다. 스님은 학교 가는 길인 모양이니 대충 설명만 해 주면 자기가 찾아가겠다고 했단다. 그 여학생은 괜찮다면서 앞장을 서는데 스님이 그 여학생의 관상을 보니 절밥을 먹어야 할 팔자구나 싶더란다. 그래서 농담 삼아 말했단다.
“니 중질 하로 안 갈래?”
여학생은 스님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다는 말이
“우리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 보고도 그런 말을 했어요.”
스님이 오히려 반문했단다.
“할머님이 불자셨니?”
“예. 저는 쪼맨할 때부터 할머님이 부처님께 공양한 아이라 했거든요.”
“그람 니 이 질로 내 따라 절에 가 살래?”
“스님이 두 말하면 지옥 고에 떨어진다는 사실 아시지 예? 저 따라 갈랍니더.”
농담인 줄 알았더니 농담이 아니었다. 그 여학생은 그 길로 포교당에 눌러앉았다. 스님이 그 여학생을 제 집으로, 제 학교로 돌려보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들은 척도 안 하는지라 나중에는 하던 공부 다 마치고 그래도 절에 들어 올 마음이 생기면 그때 스님을 찾아오라고 간곡히 타일렀단다. 그래도 소녀가 막무가내라서
“니 맘이 꼭 그렇다면 당장 부모님께 허락받고 오거라.”
“발심이 일어난 자리에서 출가하는데 부모 형제의 허락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는 것이 아닌가.
“불연이로다.”
스님은 그 여학생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든지 마음이 변하면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연락을 했다. 여학생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승려의 길을 가겠다는 아이의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다. 2년 여 사이에 부모가 찾으려 와서 억지로 끌려가기도 하고 오빠라는 사람이 와서 며칠을 묵으며 달래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에 데려다 놓으면 이틀이 안 돼 다시 절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공무원 생활을 하는 단란한 가정의 고명딸이었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태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그 아이의 사주팔자가 그런 걸 사람의 힘으로 어쩌겠느냐며 울며 돌아갔단다. 부디 수행을 열심히 해서 일엽 스님처럼 훌륭한 스님이 되어 달라면서.
꽃 보살은 제 집을 찾은 아이처럼 편안해했다. 고된 행자 생활을 겪어 나가면서도 힘들어하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진작 사미계를 받아야 할 보살인데 큰스님이 좀 더 기다리자며 머리도 몬 깎고로 하는 모양이다. 그 보살은 애달아하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갑더라. 그런데 영덕이가 그 보살을 이성으로 좋아하는 기라.”
꽃 보살에게 들은 이야기를 어머니는 아내와 내게 조심스럽게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기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그 아이는 나를 눈물겹게 했다. 그 보살과 같이 있으면 그저 몸을 안으려고 들고 젖을 만지려 하고 얼굴이 상기되어 쌕쌕거리면서 끙끙거린단다. 그 꽃 보살이 아무리 불심을 타고났다 해도 갓 피어나는 꽃송이 아닌가. 이성에 대해서도 알고, 부끄러움도 아는 처녀임에는 틀림없었다. 처녀 마음으로 혼자 고민하다가 어머니께 말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왜 그런지 알지 못하리라. 턱 밑이 꺼뭇해지고, 샅이 간지러워지면서 오는 어지러운 마음을 그 아이도 격고 있는 것이었다. 명색이 불알 달린 사내니까.
어머니는 아이를 그 보살에게서 떨어져 있게 하면 괜찮을런가. 싶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그때부터 마음의 병을 얻은 모양이었다. 정상적인 사람도 그 열병을 견디기 힘드는데 그 아이 심정은 더 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생각이 없는 아이란 것은 나의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생각이 단순한 아이이기 때문에 상처를 더 심하게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생각은 나보다 더, 그 누구보다 더 깊고 넓은 아이가 아닐까. 다만 표현하지 못한다 뿐이지. 나는 부끄러웠다. 아니, 서러웠다. 부모가 되어 사춘기를 겪는 아이의 변화를 살피지도 못하고, 언제까지나 아들을 서너 살짜리 어린애로만 보려고 하고, 보고 있었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런 아이를 다시 그 절로 데리고 가모 어쩝니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병인데. 차라리 혼자 앓도록 집에 두는 것이 나을 것 같고, 더구나 어머이 몸도 안 좋으신데.”
“나는 괜찮다. 영덕이가 보통 아이 같으모 그렇것제. 그러나 우리 아이는 다르지 않느냐. 상사병은 아무 약도 없는 기니라. 영덕이도 외골이라 이대로 있다가는 탈 난다. 내가 꽃 보살이랑 의논을 해 봐야겄다. 부처님의 자비심을 바라는 수밖에. 집에 올 때도 영덕이 걱정을 많이 하드라. 불심이 깊은 처니라 무슨 방도가 안 있것나. 니도 그런 경우를 겪었던 기억 안 나나?”
그렇다. 까맣게 잊었던 삽화 한 장이 있었다.
순정이와 절교를 하고 대학 입시에도 실패한 그 해 겨울, 나는 선암사에서 한 동안 기거를 했었다. 재수를 해서 다음 해에 다시 대학을 갈 것이냐 이대로 공무원 시험을 쳐서 사회인이 되느냐 하는 갈등으로 번민하고, 순정이를 잊을 수 없는 가슴앓이까지 겹쳐 사는 게 벅차고 힘들어 허덕일 때였다.
어머니는 내게 절에 들어 가 생각을 정리하라면서 보따리를 싸서 보냈다.
나는 날마다 공부하기보다 절 주위를 쏘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조실 스님이 새벽 예불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해도 들은 척도 않으면서 내 인생은 실패작이 아닌가. 사는 게 뭔가 하면서 인생의 허무를 혼자 앓았었다.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니가 장개 가서 잘 사는 걸 보는 기 내 소원이다. 에미 걱정되거들랑 니 앞 길 니가 알아서 찾아 단단히 사는 모습 보이는 기다. 효도가 따로 없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 뒤를 따르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내가 제자리에 서면 그 아이도 서고 내가 앉으면 그 아이도 땅바닥에 앉았다. 열두어 살쯤 되는 단발머리 소녀였는데 나를 보고 실실 웃는 모습에서 정상이 아닌 아이란 것을 알았다. 그 소녀는 실실 웃으면서 내 뒤만 따라다녔다. 가까이 오지도 않았고 무슨 말을 건네지도 않고 그저 내가 쳐다보면 헤벌려 웃기만 했다. 처음엔 무척 불쾌하고 그 아이가 싫었다. 미친 딸아이 때문에 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이 싫었고 그 아이의 눈이 내 모습을 샅샅이 살핀다는 것이 못 견딜 일이었다. 그 아이를 만나면 서둘러 절 방으로 돌아와 웅크리고 누워 있곤 했다.
처음엔 산발한 머리에 다 해진 옷을 입고 얼굴에 땟국 자잘한 아이였는데 날이 갈수록 옷 입은 것이 깨끗해지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질이 되어 있곤 했다. 가끔 두터운 코트를 입고 나오곤 했는데 옷매무새를 보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아이는 아닌 것 같았고, 부모가 절 아래 동네쯤에 사는 집 아이 같았다.
절 옆의 산길을 오르면 주인을 모르는 묏등이 있는 언덕이 나왔다. 나는 주로 그 묏등에 가서 눕거나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미친 여자 아이의 출현으로 한동안 발걸음을 하지 않다가 간 어느 날, 아침나절이었다.
나는 시간도 때울 겸, 무료함도 달랠 겸, 필요한 일용품도 구입할 겸해서 절 아래 상가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었다.
동네를 벗어나 모롱이를 돌자 아이들의 왁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칭 게이, 미칭 게이 보지 봤대요, 보지 봤대요.”
“저 가시나 빤스 베끼 보자 보지에 털 났는가.”
“아야. 아파. 옴마야 아파.”
“미칭 게이, 미칭 게이 보지 털 났데이. 보지 털 났데이.”
“야, 저거 옴마 알모 혼난다.”
“병신아 도망가모 되제.”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모롱이를 돌아 올라가니 그 여자 아이가 길 가운데 주저앉아 울고 있고 머리는 산발을 했고, 옷은 찢어졌고 맨발이었다. 여남 살 짜리 아이들 대 여섯 이서 돌을 던지기도 하고 달려가 치마를 들치기도 했다. 그 여자 아이는 요리조리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야, 요놈들. 무슨 짓이야?”
내가 고함을 치자 아이들은 놀라서 산속으로 도망을 쳤다.
나는 그 순간 그 미친 여자 아이가 불쌍했다.
“다치지는 않았어? 일어나 집에 가라. 저 못 뗀 놈들이 또 와서 괴롭히기 전에 어서 가라.”
나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 일어서더니 헤벌려해서 웃었다. 순간 나는 그 눈빛이 아주 푸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텅 빈 바닷속 같은 눈이었다.
“집에 빨리 가, 알았지?”
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는 빨리 가라는 손짓을 하며 산길을 올라왔다. 한참 가다가 돌아보니 그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 아이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고 어쩌다 저리 된 것일까 궁금증도 일었다.
그날 그 아이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온 아이는 일주문 밖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니 이름이 뭐니?”
아이는 부끄러운 듯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나는 그 여자 아이가 벙어리인 줄만 알았다. 말 상대가 없었던 내게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다. 동생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는 자주 절에 왔다. 내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무던히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고 공무원 시험을 칠 결심을 했다. 나는 새벽 예불에 참석하면 꼭 그 아이에게 맑은 정신이 깃들기를 부처님께 기원했다. 그 아이에게 불교 설화를 읽어주고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을 낭송해 주기도 했다. 그 아이는 내게 순정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준 셈이었다.
어느 날 오후였다. 한 여인이 그 아이 손을 잡고 나를 찾아왔다. 손에는 커다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 여자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교양 있는 사십 대 아주머니였다.
“추운데 방으로 들어오시지예.”
“고맙습니다. 공부하는데 방해되는 건 아닌지. 긴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얘가 우리 딸입니다.”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작 한 번 찾아오려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 제법 시간이 흘렀군요. 우리 아이랑 부처님 뵈러 왔다가 먼발치에서 총각을 봤지요. 그 후 아이는 집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더군요. 전에는 동네 조무래기들이 괴롭히고 놀리니 밖에 나가는 것을 무서워했지요. 어미 손 안 잡고는 한 발짝도 안 움직이려던 아이가 요즘은 자꾸 밖으로 나갑니다. 못 나가게 하자 꾀까지 내서 나가더군요. 처음에는 저 아이 병이 더 심해지는가 싶어 식구들 모두 초긴장을 했는데 알고 보니 총각이 보고 싶어서 나가는 거더군요. 총각 덕분에 우리 애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불쌍한 우리 애를 예쁘게 봐주셔서 어찌나 고마운지.”
아이는 얌전하게 자기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여자 아이는 열다섯 살이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끼리 거제 바닷가로 해수욕을 갔었단다. 그때,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제 동생에게 수영을 가르친다며 물 깊은 데로 데리고 들어갔다가 둘 다 파도에 휘말리게 되었단다. 딸은 해양 경찰에게 구조가 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아들은 끝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단다. 딸아이는 자기 오빠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정신 이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다가 퇴원을 시켜 집으로 돌아온지 두어 달 된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이 얌전한 아이니까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어떤 계기가 생기면 제정신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면서 아이의 상태를 잘 관찰하라 하였단다.
“여태 머리 빗는 것, 옷 입는 것도 싫어했지요. 물을 무서워해서 세수도 못 시켰어요. 우리 딸을 한 번 씻기려면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습니다. 아이가 싫다는데 억지로 할 수도 없어 그냥저냥 지켜만 보던 중이지요. 그런데 총각을 알고는 옷도 예쁜 걸 찾고 머리도 빗겨 달라는 손짓을 하고 얼굴도 씻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참 좋은 현상이라더군요. 아마 총각을 죽은 제 오빠로 아는 건지, 이성에 눈을 뜬 건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단 희망 있는 일이라니 참으로 고맙고 좋아서. 우리 아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우리 아이 잘 좀 돌봐 주세요. 총각이 공부하러 와 있다는 거는 알지만 쉬는 시간에 우리 아이 말 상대 좀 해 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참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총각 어머님이랑도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 절에 다니거든요. 총각 잘 부탁드립니다.”
“이름을 물어도 말을 안 해서 말을 못 하는 지요?”
“이 다연이이라고 해요. 그때 충격으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고 하더군요. 아이 스스로 말하고 싶어지면 말문이 열릴 거랍니다. 그 게 언제가 될지.”
“절에 오고 싶어 하면 언제든지 보내십시오.”
“주지스님께 부탁도 들였으니 우리 아이 잘 좀 살펴 주세요.”
그 해 겨울을 나는 선암사에서 보냈다. 봄이 되어 절을 떠날 때까지 그 여자 아이는 내 친구가 되었다. 절을 떠나는 날 나는 그 아이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 소나무를 잘라서 만든 아기 동자의 목각 상이었다. 나는 손재주가 있었다. 뭐든지 만들기를 무척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엇이든지 만드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어머니는 장사를 나갈 때면 칼이라든가 위험한 연장을 숨겨 놓고 나가시곤 했다. 내 손등에 큰 상처가 있는 것도 칼을 가지고 놀다가 다친 상처 자국이다.
“다연아, 오빠는 이제 집에 가야 돼, 오빠 보고 싶을 때 이걸 보렴. 부처님께서 착한 우리 다연이 꼭 예쁘고 건강한 아가씨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실 거야. 알았지? 오빠도 너를 잊지 못할 거야.”
다연이는 그 푸르고 깊은 눈으로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해 지는 것이 아닌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알아, 니 마음.”
나는 가방을 메고 다연이의 손을 잡고 일주문을 나섰다. 택시가 절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다연이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연이는 자기 어머니께 가지 않으려고 했다.
“오빠 말 들어야 돼.”
나는 다연이를 그녀의 어머니께 맡기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가 떠나려 하자 다연이가 다급하게 달려오며 지르는 소리는 차라리 괴성 같았다.
“오오오 빠 아!”
“다연아, 니가, 니가 말을, 말을 하는 거니?”
다연이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던 것이다. 다연이 어머니가 달려와 아이를 안고 감격과 안타까움으로 낙루하는 것을 보며 택시를 출발시켰다. 나는 택시 뒷면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그 모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가슴이 벅찼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있지 못하고 가끔 기억하곤 한다.
다연이는 그 후 어찌 되었을까, 아마 지금은 사십 쯤 된 중년의 모습이리라. 제정신이 돌아왔다면 아마 어딘가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아들과 같은 나이 열다섯, 내 아들도 다연이처럼 그 꽃 보살에게 이유 모를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이다. 서로가 익숙해지면 저절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지 않는가.
“내 말이 틀림없다. 마음 병인기라.”
그러나 어머니와 의논하기를 좀 더 상태를 보면서 기다려 보자고 했다. 다른 병으로 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 보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아내도 어머니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 같았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자각 증세란 침울한 것이고 밤에 자면서 헛소리에 식은땀 흘리는 것은 아이가 허약해서 그렇다고만 했다.
아내는 한약방에 가서 아이의 보약을 지어다 다려 먹이기 시작했지만 아이는 예전의 그 천진난만한 웃음을 잃어버리고 멍청하기만 했다.
며칠 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도, 아이도 없었다.
“여보, 꽃 보살이 전화를 했어예.”
“어찌?”
“영덕이가 걱정된 담시로 아푸지는 않느냐고 예. 참말로 고마운 보살님이라 예. 영덕이 한테 전화기를 건네줬더니 '누우야, 보고 싶다.'하는 기라예. 꽃 보살이 절에 데려다주면 자기가 보살피겠다고 하데예. 애가 갈라꼬 야단이기도 하고.”
나는 관음보살님을 생각했다.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송 하면 중생의 고통을 사하여 구제해 준다는 대자대비 하신 보살님, 그 꽃 보살이 관세음보살의 화신 같았다.
영덕이는 꽃 보살 덕에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움이란 것을 알게 되리라. 나는 영덕이가 사랑이든 자비든 어떤 힘에 의해 지능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랐다. 어쩌면 아이 자신은 그 상태로도 행복한지 모른다. 정상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영덕이는 분명 바보 일지 모르나 영덕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버지인 내가 바보로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