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허무의 실체
9. 죽음, 그 허무의 실체
어머니의 비보를 접한 것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였다. 사무실 사람들과 점심으로 우리 밀로 만든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와서 오후 업무를 보기 위해 서류철을 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였다. 이상하게 수북하게 쌓인 결재서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멍한 것이 꼭 어딘가 심하게 부딪힌 것 같기도 하고, 명치끝이 갑갑한 것이 점심 먹은 게 체한 것 같기도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허둥대고 앉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아내였다. 아내는 막무가내로 울기 시작했다. 전화기에 대고 대성통곡을 하는데 가슴이 쿵 떨어졌다.
“무슨 일이야?”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면서 언성을 높였다.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손을 끄덕거려 주고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물었다.
“말을 해야 알지. 무슨 일이요?”
“어떻게 해?”
“뭐가?”
“어머이가 돌아가셨답니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금 꽃 보살이 전화를 했습니더. 저는 집에서 바로 갈 테니까 당신도 택시 타고 곧바로 오이소.”
갑자기 사지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귀에서 윙윙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의식이 몽롱해졌다. 이럴 수는 없어, 절대로 이럴 수는 없어. 뭔가가 둔탁하게 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손에 잡고 있던 전화기를 떨어뜨리면서 털썩 의자에 주저앉은 것 같았다.
“과장님, 과장님, 와 이라십니꺼.”
“강 양아, 물 좀 떠 와라.”
“빨리 과장님 좀 부축하이소. 119 불러야 안 되나.”
웅성거리는 소리들 속에 구급차를 부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애를 쓰면서 손을 내 저었다.
“나는 괜찮아.”
“과장님, 정신이 듭니꺼? 무슨 일입니꺼?”
눈을 떠 보니 사무실 직원들이 내 책상 주위에 쭉 둘러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제 자리 로들 돌아가게, 김 주사만 남고.”
나는 김 주사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리며, 내 대신 결근계를 내주고 뒷정리를 부탁해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여기는 계장님이 알아서 해 주실 끼고, 과장님은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더.”
“사적인 일에 공무를 등한히 할 수 있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염려 말게.”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직원들이 웅성거리면서 내 거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왔지만 방향 감각도 없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던 도로도, 가로수도 아니었다. 택시를 타야 하는데. 빨리 어머니께 가야 하는데. 기다리실 텐데. 밥도 안 드시고 기다릴 텐데.
어머니는 내가 밥상 앞에 앉기 전에는 수저를 들지 않으셨다. 내가 숟가락으로 국이나 반찬을 집어 입에 넣는 것을 보고는 당신도 수저를 들었다. 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밥상을 차려 상보를 덮어 놓고 책을 읽고 계셨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셨다. 어머님이 집에 계시는 한 나는 늘 어머니를 생각해야 했다. 늦으면 늦는다고, 회식이 있으면 회식이 있다고 전화를 드려야 했다. 어떤 때는 그런 것들이 쇠사슬이 되어 어머니에게서 풀려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또 그런 내 속을 환히 읽고 계셨다. 행상을 떠나거나, 절에 가 계시거나 해서 나의 막힌 숨통을 틔어주셨다. 나는 그 자유를 즐기면서 어머니는 참 현명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고는 했다.
나는 갑자기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을 알았다. 망망대해에 혼자 표류하는 로빈슨 크로스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만 했다. 가긴 가야 하는데. 겨울 찬바람이 내 살갗을 발가벗기고, 내 영혼을 파내어 가 버린 것 같았다.
“과장님 타이소.”
김 주사가 내 옆에 차를 세우더니 옆문을 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김 주사 옆자리에 올라탔다.
“집입니꺼?”
“아니네, 백양산 아래 있는 선암사로 가세.”
어머니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단정히 말아 올린 반백의 머리에 회색 승복을 입고 암갈색 염주를 목에 걸고 한 손은 염주 알을 헤면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약간은 창백한 얼굴빛에 아담한 몸매를 아직도 곱게 간직하시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차 안은 스팀이 들어와 따뜻했다. 나는 의자의 등받이를 한껏 뒤로 젖히고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조금 전까지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기억에 없어지고 막막하기도 하고, 텅 빈 것 같기도 한 묘한 기분에 젖어들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나는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곧 잘 잊는 버릇이 있다. 갑자기 권태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도 유유히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여자와 사랑 행위를 하고,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장으로 향하는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나의 침묵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자책감은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강한 분이셨고 사십오 년을 끈질기게 나의 출생을 지하 감옥에 넣어둔 채 밀봉을 시켜 버리고도 꿈쩍도 않았던 분이다. 어머니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언의 강요를 했는지 모르나 이제야 내 조상과 출생의 비밀을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려니와 내 아버지란 분의 무책임에 화를 낼 만큼 젊은 혈기도 가고 없다고 느꼈다. 무언가 착오가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선암사에 살아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 절간 좁은 방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깊은 잠, 더 이상 깨어나지 않을 잠의 신 곁으로 가신 어머니셨고, 아내와 딸 영진이의 오열이었다. 영덕이는 꽃 보살의 손을 잡고 과자를 먹으며 무표정하게 앉아 어머니의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주지 스님이 모든 장례 절차를 주관하고 계셨다. 그 옆에 어머니와 같이 계셨던 두 공양주 보살이 소곤소곤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내 귀에 너무나 또렷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보살님은 진작 열반에 드실 줄 아셨던 기라. 어젯밤에 손자를 데려다 칼칼이 씨끼고 보살님도 목간을 하시데. 저녁 공양을 맛있게 드심 시로 ‘두 보살님 덕에 내가 참 편하게 절밥 묵었네.’함서 ‘애 많이 썼네.’ 하지 않던감.”
“짐도 깨끗이 정리해 놓으신걸 보모 가실 시간을 아신 기라.”
“밤늦도록 꽃 보살 하고 이약을 하는 눈치던데.”
“자는디끼 갔으니 극락 가실 끼라. 하모 그리 좋은 일 많이 하신 보살님인데 복 받는 기 당연하제. 인자 누가 그 보살님 맹키로 해 주것노.”
“주지시님이 덕 많이 봤제. 제우답꺼정 사서 절에 보시했다면서?”
“하모. 시님이 보살님 돌아가시고 나모 그 이익금으로 고아들 돌보고 불쌍한 사람들 도우꾸마 약조도 했다는 소문이던데.”
나는 어머니의 시신을 집으로 모셔 오고 싶었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절에서 돌아가셨으니 절에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장례비용조차 어머니는 다 마련하셔서 절에다가 시주를 했던 것이다.
“보살님이예. 어젯밤에 저를 보자 하시데예. 한참 제 손을 잡고 계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더. 혹시 보살님께 무슨 일이 있으모 영덕이 아버님 오시라 해서 말을 좀 전해 달라하데예. 외삼촌이란 분께 알리고 그분이 오시면 고향 땅에다가 재를 뿌리 달라고.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시냐면서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 예. 아니라면서 사람 명이란 기 어찌 될지 몰라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 괘념 말라하시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더. 더구나 영덕이를 잘 부탁한다면서........ 그게 유언이었나 봅니더.”
꽃 보살이 아내가 없는 틈을 타 내게 전한 말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소지품에서 외삼촌의 주소를 찾아 김 주사에게 急傳을 치게 했다.
<누님 별세, 급래. 선암사.>
어머니의 장례는 3일장으로 간소하게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불교식이라지만 어머님이 승려가 아니었기에 임종과 입관 절차는 일반 장례식 절차대로 행하고 영결식만 다비식으로 하는 것이었다. 스님의 사홍서원이 끝나고 영결식은 끝났다. 어머니의 관은 운구차에 실려 다비 터로 향했다. 상복을 입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안은 영덕이가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아들도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아 더욱더 가슴이 미어졌다. 오고 갈 친인척이 없는 장례식에 외삼촌과 우리 네 식구만 꽁지 떨어진 매 꼴로 어머니의 관을 붙들고 낙루했다.
외삼촌은 장례식 전 날 도착했다.
“누야, 불쌍한 우리 누야, 만내자 마자 영이별이 머란 말이고, 이리 갈라꼬 그리 죽은디끼 살았디요.”
외삼촌은 어머니의 관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셨다.
아내는 뜻밖의 사태에 놀라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아내에게 어떻게 외삼촌을 소개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궁여지책으로 어머니와 오래전부터 잘 알던 사이라고만 했다. 그날 밤, 나는 그분께 어머니의 유언을 말씀드렸다. 외삼촌은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이 어머니의 완고함을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동백꽃보다 더 검붉은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김 주사와 몇 안 되는 조문객도 돌아갔다. 나는 어머니의 뼈를 재속에서 골라내면서도 나 아닌 나를 닮은 사내가 그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관객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생각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비 터에서 어머니의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를 안고 절에 돌아왔다. 그 항아리를 명부전 앞에 올려놓고 어머니가 거쳐하던 방에 들어갔다. 마지막 가신 분의 소지품을 불살라 드리기 위해서지만 내심 어머니의 체취를 찾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거쳐하던 방은 너무도 간소해 참선하는 선사의 방을 방불케 했다. 붙박이 벽장 안에 이부자리 한 채, 승복 몇 벌, 허드레 옷가지와 속옷 몇 벌, 무명 보자기에 싸인 옷이 있었다. 내 결혼식 때 예단으로 아내가 해 드린 두루마기와 한복 한 벌이었다. 옥색 한복이 빛도 바래진 것 없이 보따리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대침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예? 어머이가 아끼시던 물건인데. 영덕이 땜에 흠집투성이가 되었지만 어머이 가시는 길에 보내 드리는 것이 도리 같기도 하고, 아가 찾을라 쿠끼고.”
“어머이 가져가시게 해 드려.”
그건 어머니만의 것이었다. 당신 평생을 품고 산 그리움의 정표라는 것을 안다. 그 대침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었고, 그 베개를 내가 잠들면 살며시 옷장에서 꺼내 안고 몸부림치던 당신만의 비밀스러운 슬픔과 고통의 해소책이었다는 것을 안다. 어찌 어머니를 따라 보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마 영덕이도 알리라 이제.
“여보, 여기 이상한 기 있네 예.”
아내는 어머니의 옷이 담긴 보자기를 끌러 옷을 들추어보다가 한지로 곱게 싼 제법 두툼한 직사각형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에 어머이가 글을 적어 났십니더.”
나는 아내의 손에서 봉투를 얼른 빼앗았다.
<권섭이 보아라. 이 봉투를 뜯기 전에 순심이를 찾아가거라.>
순심이가 누구일까, 순심이, 기억 속에 있는 이름인데 통 기억나지 않는다. 외삼촌께 물어보면 아시겠지. 어머니는 이미 자신이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지난번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 집에 다녀가셨단 말인가.
나는 그 봉투를 들고 외삼촌을 찾아 명부전으로 갔다. 외삼촌은 삼우제 지내는 것을 보고 가시겠다며 절에 머물고 계셨는데 날마다 명부전에 가서 앉아 계셨다. 불쌍한 우리 누야, 누야, 하면서.
“외삼촌, 순심이가 눕니꺼?”
“누구라꼬?”
나는 그 봉투를 내밀었다. 외삼촌은 그 봉투에 적힌 글귀를 눈으로 읽더니 한숨만 푹 쉬셨다.
“누야 친구다.”
“지금 오데 삽니꺼?”
“고향에 산다. 삼우제나 지내고 보자. 지금 안다고 찾아 나설 것도 아니고, 그 누님이 오데 갈 것도 아니니 궁금해도 쪼매 참거라. 너거 옴마가 가라 캤시모 무신 뜻이 안 있것나. 참, 그라고 우짤래? 너거 옴마 뼛가리는?”
“어머님이 원하신 대로 해 디리는 것이 도리 아닙니꺼.”
“그라모. 삼우제 지내고 내랑 바로 고향으로 가자.”
나는 다시 어머니의 방으로 돌아왔지만 방은 네모반듯한 빈 상자 같았다.
어머니를 찾듯이 아내를 찾아 일주문을 나섰다. 피부가 얼얼하도록 차가운 기운이 몸 안으로 사정없이 쳐들어 왔다. 헐렁한 승복 안에 속옷만 입었으니 추운 것이야 당연한 일일 테지만 유난히 추운 것은 어머니의 부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셔서는 안 될 분이었다.
굴참나무의 썩은 옹이 속에서 날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 나오더니 잽싸게 그 옆의 나뭇가지로 점퍼 뛰기를 해서 건너간다. 저 날다람쥐가 나 때문에 놀라서 겨울잠을 깬 것은 아닐까. 나는 어디서나 불청객이 아닐까. 불청객,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나는 분명 불청객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날다람쥐가 건너간 나무를 보았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겨울 하늘빛이 너무도 맑고 깨끗해 눈이 시렸다.
“내~ 꺼~ 어. 시일어~~~어”
순간 어디선가 영덕이의 악 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갔다. 아내와 영덕이가 뭔가를 잡고 실랑이를 치고 있었다.
“여보! 뭘 갖고 애를 그렇게 울려?”
“이거요. 어머이 대침 예.”
“아가 못 보고로 하지 않고. 이미 봤는데 무슨 수로 빼앗노? 그만 두람.”
“아바, 내꺼. 내꺼.”
“그래그래 니끼다. 할무이가 니끼라 캤다.”
“가운데다 밀어 넣었는데 하필이면 거기 와 보이것노. 어머이가 안 가지고 갈라했는가.”
절 밑에 있는 주차장 옆의 공터에서 아내가 어머니의 남은 흔적을 태우고 있었고, 꽃 보살과 영덕이, 영진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덕이가 괴성을 지르며 제 어미를 밀치고 훨훨 타는 불꽃 더미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바로 대침이었다. 아내는 그것을 아이에게서 빼앗으려 하고 영덕이는 안 빼앗기려고 하다가 그런 괴성을 질렀던 것이다.
“애들은 왜 데리고 와서는....... 이런 거 태우는 걸 보여야 하남.”
아내에게 불만을 표시하는데. 아내도 미안한 표정으로 오지 마라 당부했는데도 아이들이 따라 내려왔다는 것이다.
“아까 그거는 우쨌십니꺼?”
“별거 아니다. 뒤에 알아볼 생각이다.”
“그 분과 어머이가 진짜 남매 아입니꺼?”
“와?”
“빼 박은 거 맹키로 닮은 데다 당신 하고도 흡사해서 물어본깁니더.”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어머님이 없는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되어 줄 것인가.
나는 이 모든 것이 한 바탕 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님이 그리 쉽게 돌아가시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 주위에서도 죽음은 더러 보아 왔었다. 젊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 됐다는 생각을 했고, 노인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갈 때가 되어서 가셨으니 복 받은 것이라 위로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계약 결혼으로 유명한 보봐르 여사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늙고 싶어도 늙을 수 없는 인간의 비애를 소설 속에서 그렸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속의 주인공 훠스카는 이십 대의 청년 모습으로 700년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세월 따라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을 수 있는 인간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지니고 살 수 없는 것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훠스카는 말한다. ‘삶이란 똑같은 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영원한 삶, 그것은 결국에는 권태와 피로와 죽음에서 소외된 자의 고독과 좌절뿐이라고.’ 역사는 결코 똑같은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살아온 훠스카는 마른나무토막 같은 사람이다.
훠스카는 말한다. ‘잠을 자도 악몽을 꾸게 되오. 인간들이 모두 죽어 버리고 지구는 흰색을 하고 있소. 그러나 하늘에는 아직 달이 있고 하얀 지구를 비추고 있소. 그곳에 나는 하얀 새앙쥐와 함께 홀로 남아 있는 꿈을 말이오. 언젠가는 이 지구에 나만이 홀로 남아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나의 어머니만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왜 생을 포기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 스스로 사는 일을 포기하신 것 같았다. 얼마나 모지셨으면 자는 잠에 가실 만큼 그렇게 자신을 단련하실 수 있을까. 참 모지고 독한 분이셨다. 어머니가 미워져 돌아갔다. 돌아가다 생각하면 아닐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분이 아니셨다며 어머니를 변호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래, 어쩌면 어머니의 집은 이 절간이었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내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왜 억장이 무너질 만큼 모진 세월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내 출생에 대한 비밀이겠지만 이제 와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어머니의 젊음이 세월에 삭아지는 것을 보며 비애를 느꼈던 적도 있었다. 왜 이 좋은 세상에 오로지 아들 한 명만 바라보고 사셨느냐고 따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옴마는 좀 더 젊어서 팔자 고치지 와 혼자 사셨습니꺼. 그라모 나도 아부지 생기서 좋았을 낀데.”
“지랄한다. 세상 남정네가 다 눈이 삤던 갑제. 내한테 목매다는 남정네가 있어야 말이지”
“제가 중학교 땐가 우리 담임선생님이 옴마한테 홀딱 반해서 찾아 댕겼다 아닙니꺼.”
“인연이 아니었던 게지. 니가 내 인생에 전부였싱깨. 사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니라. 참 그 선상님 내가 중매 섰던 거 니 모리제?”
“참 옴마도, 옴마한테 맘이 있는 선생님을 딴 여자한테 중매 예?”
“모리는 소리 마라. 봉 대신 닭이라는 말이 안 있나. 참한 색시였다. 시장 안에서 분식집을 하던 색신데 자슥도 없이 혼자된 거라. 그 선상이 니 핑계 대고 내 보로 오모 그 색시 집에 데리고 댕깃제. 그 색시캉 친해지도록 해 놓고 나는 자리를 살째기 빠져나와 삐고는 했더니 두 사람 다 눈치를 챘던 거라. 요리조리 서로 맘 붙도록 너스레도 떨었제.”
“옴마는 넘 좋은 일만 시키고 속이 안 아푸데예?”
“그런 소리 마라. 내가 시집을 갔시모 니는 찬밥 신세됐을 낀데.”
“우찌 압니꺼. 더 호강함시로 살았을지.”
“지 키움 시로 욕봤다는 말은 안 하고. 목심 구해 준께 보따리 내놔라는 사람 캉 같네. 이놈아, 씰대 없는 소리 말고 가서 니 볼일이나 보거라.”
가끔 나는 어머니께 어리광을 피우곤 했다. 어머니가 한없이 고와 보이거나 쓸쓸해하실 때다. 그 외에도 눈이 침침해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노안이라며 안경을 권유했을 때, 머리카락이 너무 희다며 아내에게 염색을 부탁했을 때, 아내와 둘이 다정히 외출하거나 잠자리에서 사랑을 할 때, 어머니는 왜 청춘을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홀로 사셨을까, 젊은 날의 열정을 어떻게 삭이며 사셨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나는 불덩이가 되어 타고 있는 어머니의 흔적을 보며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 그 허무의 실체는 바로 저 불덩이 같은 것이 아닌가. 타고나면 재만 남아 그 재마저 바람에 흩어져 버리면 오직 살아남은 자의 기억에서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것, 그것이 죽음의 실체가 아닐까.
어머니를 모르는 이들은 칠순이 되도록 살았으면 한평생 잘 살았다고 할지 모른다. 때맞추어 잘 돌아가셔서 복 받았다고 할지 모른다. 아프지도 않고 자는 길에 갔으니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스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기가 싫으셨던 것이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머니를 지탱해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가슴에 묻고 있던 비밀이 아니었을까. 비밀이랄 수도 없는 이야기 일지 모른다. 타인에겐 하찮은 이야기라도 당사자에겐 운명이 걸린 문제 일 수도 있으니까.
“삼우제 지내도록 여기 있을 낍니꺼?”
“그래야 안 되것나. 제만 지내고 나는 어머이 모시고 갔다 올 때가 있다. 니는 아들 데리고 집에 가거라. 49제 부탁해 놓고 가는 거 잊지 말고.”
“그 분하고 같이 갈낍니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그 점이 늘 마음에 들었다. 남정네가 하는 일에 감내라, 배내라 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일. 어쩌면 그것이 아내의 미덕으로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가 아닐까.
“뒤에 소상히 말 하꺼마.”
나는 장례식이 끝나고 이틀 동안 새벽 예불에 참석했다. 어머니 방에서 네 식구가 새우잠을 자다가도 새벽 3시 반이면 어김없이 스님이 치는 타종소리에 깨어났다. 그 소리에 일어나 보면 아내는 벌써 몸단장을 하고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스님의 독경 속에 삼우제를 지냈다.
“보살님은 내생에 좋은 인연 만나실 것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셨지요.”
주지 스님은 마지막 가는 어머니의 유골 가루가 든 항아리를 명부전 앞에서 내려 주시며 합장을 했다. 살아있는 관음보살, 자비 보살이라 불린 어머니의 생전은 보리심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내가 알기로도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절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돕는데 앞장섰고 장애아 복지원에 다니시며 틈틈이 무료 봉사 활동을 하셨다. 내가 가정을 꾸릴 만큼 자라고 나서는 어머니가 버는 돈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으셨다. 장사를 해 남은 이익금을 어떻게 저축하고 어디에 써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쪼맨만 벌어도 우리 둘이는 묵고 산다.’하시던 어머니셨다. 영덕이가 장애아인 것을 아시고는 더욱더 열심히 남을 도우신 것을 아니었을까. 절에 가 계시는 동안 태반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그들을 찾아다녔다는 것을 안다.
아내의 차에 타고 절을 나선 우리 일행은 사상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어머니의 유골 가루가 든 항아리를 싼 보자기를 안고 외삼촌과 터미널에 내리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아내의 모습이 무척 수척해 보였다.
겨울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람도 잠잠했지만 바람은 턱이 떨떨 떨릴 만큼 차가웠다. 검은 외투 자락을 여미며 나는 자꾸만 항아리를 품에 꼭 안았다. 터미널 안에 들어갔다. 외삼촌에게 어디 가는 차표를 끊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끊어 오꾸마.’ 외삼촌은 매표소로 향했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 힘겨워 보여 하마터면 외삼촌을 불러 세울 뻔했다.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데 아무래도 실감 나지 않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