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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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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01. 2023

 딸아, 힘내라

딸아, 힘내라.  

   

 딸이 왔다. 힘들어서 축 늘어졌다가 엄니 보고 싶어 왔단다. 사는 게 쉽지는 않을 터. 새로운 터전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야 하니 어찌 힘들지 않겠나. 성격도 둥글둥글하지 못하고 예민한 아이니 낯선 사람들 대하기가 쉽지 않을 터. 잘 왔다고 보듬어줬다. 예전부터 딸은 엄마 밥을 먹으면 기운이 난다고 했다. 대학, 대학원 다닐 때도 늘 반찬과 밥을 해서 택배로 보내줬었다. 입맛 까다로운 것은 집안 내림인지, 토종 입맛에 길들어 그런지. 


 한때 애를 잘못 키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거나 잘 먹는 입맛을 키워줘야 했다고 나를 탓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산해진미를 먹인 것도 없다. 조미료 가미하지 않은 시골 음식을 먹여 키웠다. 저녁 밥상에 앉은 딸은 ‘맛있다’를 연발한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어미 입장인 나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음식 하기도 힘에 부치는 어미지만 아직은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차릴 기운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농부가 만든 햄을 놓고 이런 맛 어디서도 구경할 수 없다고 칭찬이 늘어진다. 농부는 지난번보다 간이 덜 돼 맛이 덜하다고 겸연쩍어한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농부는 손을 재고 있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고생을 한다. 농부가 부지런하니 나는 게을러터졌다. ‘아빠가 다 해 주니 나는 책이나 보고 논다. 노는데도 끙끙 앓기는 일등이다.’ 이런 농담도 주고받는다. 행복해 보인다는 나, 파리하던 딸의 얼굴에 홍조가 인다. 소주와 맥주를 펴 놓고 부녀는 대작을 한다.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예전부터 농부는 늘 두 애가 집에 오면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든다. 툭 던지는 질문에 두 애는 속에 든 말들을 쏟아낸다. 나는 개똥철학으로 날밤 새운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술안주를 만들어주고 두 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부모에게 두 애는 솔직하다. 그 자리엔 믿음이  굳건하기 때문이리라. 자정이 넘도록 부녀는 술자리를 접지 않는다.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모두 토하고 나니 살 것 같다는 딸이다. ‘집에 오니 좋다. 엄마아빠가 있어 더 좋다.’는 딸이다. 우리가 떠난 자리에 남을 두 애는 부모를 추억하며 살아가겠지. 언제까지 두 애를 품어줄 수 있을지. 두 애가 가까운 곳에 살면 자주 만날 텐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요즘 새삼스럽게 공부에 불이 붙었다는 딸이다.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다는데 그 공부로 뭔가 성취할 생각은 없다. 그냥 공부하는 것 자체가 좋단다. 프리랜스 즉 자유업으로 살던 딸이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찌 힘들지 않겠나. 혼자 하는 공부는 재미있지만 그 공부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마음만 바쁘고 욕심만 앞서기에 힘에 부칠 수밖에 없으리라. 요령도 생기고 애정도 붙으면 달라질까. 힘든 고개를 넘어 평지에 오르면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이할 수 있다.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닐까. 


 딸과 함께 목욕탕도 다녀오고, 벚꽃 길 드라이브도 하고, 점심 먹고 떠났다. 반찬 몇 가지 싸줬다. 딸은 대학 공부하던 책들을 챙겨간다. 다시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다고 환하게 웃는다. 딸에게 필요한 직업은 학문인데 왜 그 길을 가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 길을 아직 못 찾아서 그럴까. 어떤 길이든 딸이 행복하면 된다. 몰입할 수 있는 길, 그 길에 들어서면 좋겠다. ‘소설을 쓰고 싶다며? 소설에 매진해 봐라. 일상의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에 골인해라.’ 그런다고 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하룻밤 자고 가는 딸인데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엄마, 나 집에 와서 살까?’ 대답하기 참 힘들다. 농사는 아무나 짓나. 농사꾼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아는 나는 가방끈 긴 딸이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달갑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 어미에 그 딸인데 어쩌겠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 잔데 딸이 원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노인의 길을 걷는 어미 옆에 딸이 있다면 노후가 편안하지 않을까. 조금 더 세상구경하고 산골에 들어와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한다면 가난인들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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