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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울었다.

<단편소설. 처음>

by 박래여

까치가 울었다.



안실 댁은 마루에 나와 앉았다. 햇볕이 마루 깊숙이 들어와 따뜻하다. 파란 하늘에 앙상한 그림자로 서 있는 감나무를 봤다. 감나무 가지에서 까치 두 마리가 안실 댁을 보고 지저귄다. 삽짝 가장자리에 있는 늙은 감나무는 고목이다. 감나무 잎은 몽땅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아니 빨갛게 익은 말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아침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 했는데. 누가 오려나.’

안실 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골목을 바라본다. 골목은 도둑고양이나 강아지의 기척도 없이 조용하다. 가랑잎을 굴리고 다니는 바람만 돌담을 넘나 든다. 오늘은 살구 댁 개도 짖지 않는 것을 보니 동네가 텅 빈 듯하다. 안실 댁은 벽에 걸린 달력을 본다. 오일장이다. 매주 7일과 2일은 덕산 장이다.

‘모두 장에 갔나. 살구 댁한테 자반괴기라도 한 점 사 오라 할 것을.’

‘배달부가 댕겨 갔는가.’

안실 댁은 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나갔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삽짝문은 한쪽 돌담에 비스듬히 널브러진 채 삭았다. 삽짝 문을 달았던 기둥에 붙은 우편함을 살폈다. 우편함은 텅 비어 있다. 우편함이 채워질 일도 없지만 가끔 남편 이름으로 부고가 오기도 하고, 결혼청첩장이 오기도 한다. 전기요금 청구서나 전화요금 청구서가 오기도 한다. 안실 댁은 빈 우편함에 손을 넣어 휘휘 저어 보고 돌아섰다.

감나무 아래 떨어진 홍시가 널렸다. 짜부라져 썩어가는 것들 천지다. 그중에 온전한 것도 더러 있다. 감나무에 달린 홍시는 까치들의 겨울 밥으로 손색이 없다. 까치는 안실 댁을 겁내지 않는다. 감나무에 까치집까지 짓고 사니 안실 댁으로서는 반가운 동거 새다. 안실 댁은 홍시 하나를 주워 홍시에 묻은 흙을 옷에 쓱 문질러 버리고 베어 문다. 달다. 노인도 홍시처럼 달달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다.

안실 댁은 홍시 하나를 맛있게 먹고 지팡이로 감나무를 툭툭 두드려 본다. 시집올 때 친정아버지가 심어 주고 간 감나무도 환갑진갑 다 지나는 사이 늙은 먹감나무가 되었다. 감나무는 해거리도 안 하고 잘 자랐고, 감도 푸지게 열려 가을이면 감 돈도 제법 포실하게 보태주곤 했었다. 남편의 등을 곱사등이로 만든 나무이기도 하다. 남편은 감 따러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었다. 그때는 돈도 귀했고, 병원도 멀었고, 약도 귀했다. 남편은 젊은 덕에 살았고, 똥 술 덕에 살았다. 서른 살 겨우 넘겼던 안실 댁은 기갈 센 시어머니로부터 남편 잡아먹은 년 소리 들을까 봐 오금이 저렸다. 무슨 약이든 해 먹여 남편을 살려야 했다. 남편은 등뼈가 부러졌으니 운신을 못했다. 안실 댁은 밤마다 변소에 통발을 박아놓고 첫새벽에 일어나 통발에 고인 맑은 똥물을 퍼다 그 물에 막걸리를 빚어 남편에게 먹였다. 어떤 때는 애들 똥을 받아 모아 못 쓰는 옹달솥에 덖어서 막걸리를 부어 놨다 걸러 먹였다. 똥 술 덕인지 남편은 살아났다. 등에 혹 하나 툭 불거졌지만 일흔다섯 살까지 살다 갔다.

안실 댁은 감나무 등걸을 만져본다. 껍질이 우둘투둘하다. 갈라지거나 홈이 진 자리에는 푸르스름한 이끼가 자란다. 이끼와 감나무는 한 몸이다. 안실 댁은 홍시가 된 감이 아깝다. 한 때는 감나무 한 그루에 백 접 정도 감을 땄던 적도 있다. 감 값이 좋을 때는 서로 감을 사려고 들었고, 현금 주고 직접 따 가니 감 때문에 애를 끓일 필요가 없었다. 허나 올해는 아무도 감을 사러 오지 않았다. 감 풍년이라 처치곤란이란다. 안실 댁은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감을 땄으면 싶지만 그만두었다. 맞벌이하며 한창 돈뭉치가 들어가는 남매를 두고 제 살기도 급급한 아들내외를 오라 가라 할 염치도 없었다. 자식이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은 아직 젊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같이 살았으면 싶다. 혼자 사는 게 싫지만 어쩌겠나. 핵가족 사횐 걸.

안실 댁은 감나무 곁을 떠나 현관 쪽으로 가는데 언뜻 ‘할머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 듯하다. 안실 댁은 귀를 쫑긋하며 골목 쪽을 쳐다봤지만 아무도 없다. 나이 들면 귀도 멀고, 눈도 먼다. 할머니라 불러줄 아이가 없는 마을이다. 이명이겠지.

안실 댁은 구부정한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집을 향해 걷는데 또 ‘할머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얄궂기도 해라. 누가 자꾸 부르는 것일까.’ 안실 댁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집 뒤란의 산을 봤다. 산이 썰렁하다. 밤나무 잎도 상수리 잎도 다 떨어져 버린 뒷산은 허허롭다. 집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대나무만 청청하다.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였나. 대나무 밭 아래 언덕배기에 있는 텃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그림자가 쑥 튀어나온다.

“아이쿠마, 뉘고? 거 있는 기 사람이 가 귀신이가?”

검은 그림자가 여전히 텃밭 오르는 언덕배기에 서 있다. 안실 댁은 헛것을 봤나 싶어 지팡이를 짚지 않은 한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뜨지만 여전히 검은 물체는 그 자리에 있다.

“할머니 저 상진입니다.”

검은 물체는 성큼성큼 걸어 안실 댁 앞으로 와서 섰다. 선 자세로 꾸벅 절을 한다. 상진이, 상진이가 누구지. 손자 이름은 호영이고, 손녀 이름은 호란인데 상진이라니. 아무리 머릿속을 굴러도 모르겠다. 뉘 집 손자일까. 안실 댁은 앞에 선 늠름한 청년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살펴본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 눈매며, 코며, 하관이 약간 뻗은 것까지 눈에 익다.

“눈에 익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상진이라고? 뉘 집에 왔는가?”

“할머니, 이젠 손자 이름도 잊었어요? 하상진, 할머니 큰 손자 모르겠어요?”

청년은 안실 댁의 손을 잡고 흔든다. 안실 댁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은 금세 눈물방울이 뚝 떨어질 것 같다. ‘니가 누라꼬?’ 안실 댁은 청년의 눈을 뚫어지게 본다. 그제야 안실 댁은 ‘이기, 이걸 우짜노. 니가 상진이라꼬. 니가 상진이라꼬’하며 청년의 손을 더듬더듬 쓰다듬는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안실 댁은 비틀거린다. 청년이 안실 댁의 어깨를 꽉 잡는다.

“할머니이~~~”

청년이 울먹이다.

“어쩐지 아침부터 까치가 울더라니.” 안실 댁도 눈물을 훔친다. 안실 댁과 청년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마주 잡은 서로 손만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또 안실 댁은 눈가를 훔친다.

“니가 볼세 이리 컸나? 니가 우리 상진이 맞나? 우짠다고. 우짠다고 인자 오노.”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청년도 눈물을 훔치며 안실 댁을 부축해 현관 앞의 계단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어디 보자. 내 새끼. 인자 보니 너거 아베 쏙 빼 꼬잤다.”

“제가 아버지 닮았습니까?”

“그래, 또옥 닮았다. 나는 그 안 줄 알았다. 올해 몇이고?”

“스물다섯입니다.”

“벌써 그리 됐나. 그때 니가 대엿 살 됐던가.”

안실 댁은 안실 양반의 회갑 잔칫날을 떠올렸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억에 구멍이 뚫린 지 하 오래되었으니 앞은 이렇고, 뒤는 이랬다는 것을 연결 짓지 못한다. 다만 그날의 풍경만 들쭉날쭉 떠오른다.

잔치가 끝난 저녁 무렵이었다. 구월 중순이라지만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낮에는 따끈따끈한 햇볕에 땀이 비죽비죽 나왔지만 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린 저녁은 서늘했다. 마당은 어둑어둑했다. 마루에 불을 켰든가. 안실 양반은 온종일 손님들과 대작은 했는데도 기분이 좋은지 마당의 멍석에서 두 아들과 딸과 사위를 앉혀놓고 뒤풀이를 하고 두 며느리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를 했다. 안실 양반과 멍석에 앉았던 안실 댁은 고단했다. 잠깐 방에 들어가 다리 쉼을 한다는 것이 내처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안실 댁은 비몽사몽간에 ‘와그르르 꽝!’ 뭔가 박살이 나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다.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주랑 맥주 박스가 박살이 나 구르고 술 취한 아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나는 인자 이 집하고 끝났소. 피 한 방울 안 섞인 거 안다고요. 상진아, 애들 챙겨 나서라. 다시는 이 집에 발 안 붙이요. 호적 정리도 깨끗이 할 끼요. 두고 보소. 내가 여태 참은 거는 머슴살이 오지게 한 것이 억울해서요. 새경은 받아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참았는데. 인자 새경도 필요 없소. 나도 친 아부지 찾았단 말이오.”

아들은 그 길로 제 식솔 거느리고 떠날 차비를 했다. 며느리와 두 아이를 앞세우고.

“야가 와 이라노. 상진아, 상옥아, 우리 새끼들 안 된다. 안 된다 카이.”

안실 댁은 맨발로 달려 나가 아들의 손에 매달린 어린 손자의 손을 잡았다. 손자는 ‘할무이, 할무이’하면서 안실 댁의 품에 안겼다. 안실 댁은 두 아이를 꼭 껴안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귀한 내 새끼였다. 누가 뭐래도 하 씨 집안의 장손이었다. 아들에 포원 진 안실 댁은 큰며느리가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내리 둘이나 안겨주자 얼마나 좋은지 어깨춤을 추었다. 특히 큰 손자 상진이가 집에 오면 한 시도 떼어놓지를 못했다. 업고 안고 데리고 잤다.

아들은 안실 댁을 제치고 두 아이를 빼앗아 데리고 나갔다. 새치름한 며느리 역시 뒤도 안 돌아보고 따라 나갔다. 안실 양반과 온 식구는 넋이 빠져 멍하니 삽짝만 바라봤다.

“그래, 가라. 이놈아. 20년을 키워 준 부모 앞에서 참 잘하는 짓이다. 보세요. 아버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어요? 저는 주워온 딸처럼 냉대하더니.”

딸이 안실 양반을 향해 쏘았다. 딸이 쏜 화살을 맞은 안실 양반은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안실 양반은 벽을 보고 구들 목에 착 부치고 누웠다. 안실 댁도 방으로 들어갔다. 벽을 보고 돌아누운 안실 양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요?”

한참 뜸을 들인 후 안실 양반이 일어나 앉았다.

“저 놈이 산을 지 앞으로 해 도란다.”

“산은 작은 아 몫이라 캤다 아이요?”

“그랬제.”

안실 양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안실 양반은 동네 친구들이 하나 둘 이승을 떠나고 자신도 병이 깊어지는 것을 알자 두 아들을 불러놓고 구두로 재산을 분배했다. 딸에게는 작은 텃밭 하나를 떼어주고, 큰아들에게는 집 옆에 있는 논 서 마지와 대밭을 물러주면서 집은 안실 댁 살아생전에는 안실 댁이 갖고 있다가 죽으면 큰아들에게 주라 했다. 사대봉제사 모실 몫이라 했다. 작은 아들에게는 산을 물러 주었다. 큰아들은 그 산까지 욕심을 낸 것이다.

그렇잖아도 딸은 아버지 처사에 섭섭했는데. 큰 동생이 산까지 욕심내자 그만 참았던 화가 터져 나온 것이다. 장녀와 장남은 콩이네 팥이네 하면서 옥신각신하다 말 줄 알았는데. 큰아들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세상사람 다 알아도 한 사람은 몰라야 할 출생의 비밀을 큰아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실 댁은 억장이 무너졌다.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면서 넋두리를 했다.

“저 아가 장개 가더이 영판 달라졌어. 전에는 안 그랬는데. 올매나 정이 많고 착한 아였소. 그런데 요새는 통 내 새끼 같지가 않다니까. 집에만 오모 ‘돈이 없다고 옴마 돈 돈’할 때부터 이런 사단이 한 번은 날 줄 알았소. 장개 가고 나서는 제 식구 끌고 우리 집에 올 때도 과일 하나 안 사고 빈손으로 탈래탈래 와서는 이것 달라 저것 달라 바리바리 싸 가는 거 봄서 인자 저것이 철이 들어 지 식구 건사하려고 저러는구나. 기특하게 생각했었소. 인자봉께 딴생각이 있었던 갑소.”

“장개 들고 저거 에미가 찾아왔더란다. 진작 저거끼리 연락하고 지냈는 갑더라.”

“우짠지. 우짠지 큰아가 달라진 거 같았제.”

안실 댁은 영감의 회갑 날을 떠올리며 청년의 손을 꼭 잡았다. 청년은 장가들기 전의 아들 모습이었다. 씩 웃는 모습까지 빼다 박았다. 껑충 큰 키며, 까무잡잡한 피부며 각진 얼굴이 아담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막내아들 명수와 딴판이다. 아니, 안실 양반과 딴판이다. 명수는 안실 양반을 쏙 뺐다지만 큰아들 장수는 아니었다.

“상진아, 너거 아비를 보는 것 같구나. 야속한 놈, 아직도 그놈 생각하모 내 가슴이 찢어진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부모 자식 간에 맺은 정은 쉬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니도 인자 알제?”

“조금은 알아요.”

“옴마는 잘 있나? 재혼 했것제. 젊으나 젊은 기 혼자 살지는 안 했지 싶은데.”

“아닙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랑 서울로 이사 가서 여태 살아요.”

“그래? 기특허네. 젊은 기 너거들 키운다고 고생 많이 했구나. 에미한테 잘해야 한데이. 그란데 우짠 일이고? 너거 어메가 찾아가 보라 쿠진 안 했을 기고.”

“오고 싶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니까요. 할아버지께서 목마 태워주시던 거, 겨울이면 꽁꽁 언 저수지에 데리고 가서 앉은뱅이 스케이트 태워 주시던 거, 그런 것들이 잊히지 않았어요.”

“그런 걸 기억하고 있다니 고맙구나. 지금은 뭐 하노?”

“지난달에 군대 제대 했어요. 구월에 다니던 대학에 복학하려고요.”

“군대 제대 했다고? 그렇구나. 너거 아베는 군대 못 간기 그리 한이라 캤는데.”

안실 댁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다.

“손가락 두 마디가 없어서 못 가셨다면서요?”

“그래 중학교 2학년 땐가 싶다. 너거 삼촌은 고모랑 같이 도시에 나가 핵교 댕기고 너거 아부지만 우리랑 살던 때였지. 우리 집에 덤이라는 쇠가 한 마리 있었는데. 너거 아부지가 엄청시리 좋아했다.”

그때는 농촌 집집마다 농우 한 두 마리는 키웠다. 안실 댁도 부룩데기(수송아지)를 사다가 키워 중소가 되자 코뚜레를 뚫었다. 아들은 소에게 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애지중지했다. 안실 댁은 덤이가 아들의 장가 밑천이라고 했다. 또한 덤이는 안실 댁 농사 밑천이기도 했다. 아들은 학교 다녀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덤이를 데리고 풀을 먹이러 다녔고, 꼴망태를 메고 꼴을 베어 날랐다. 꼴을 작두에 썰어 여물을 쑤어 덤이에게 주는 것도 아들 몫이었다.

그날 저녁나절에도 늘 했던 것처럼 아들은 쇠죽솥에 구정물을 적당량 부어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안실 양반을 찾았다.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짚과 풀을 섞어 끓여주는데. 작두로 쳐 놓은 여물이 모자랐다. 아들은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를 깨웠다. 그날은 읍내 오일장날이었고, 오일장에 다녀온 안실 양반은 술에 취해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골아떨어졌었다.

“아부지는 자고로 두고 내랑 여물 치자.”

안실 댁이 나섰지만 잠 귀 밝은 안실 양반이 일어나 나왔다. 안실 양반은 작두에 올라서서 아들에게 짚을 먹이라고 했다. 순간 ‘악!’ 비명이 터졌다. 큰아들의 오른손 금지와 장지 손가락 마디가 날아갔다. 아들은 피가 쏟아지는 손가락을 잡고 뒤로 넘어졌다. 아들이 제대로 짚단을 작두날 밑에 밀어 넣고 손을 빼기도 전에 작두날이 내려왔던 것이다. 평소 안실 양반이 잡았던 작두의 끈이 느슨해진 것이다. 술기운이 덜 떨어졌던 탓인지. 작두가 빨리 떨어진 것인지. 안실 댁은 장독간에서 된장 한 덩이를 갖다 아들의 손가락에 대고 붕대를 칭칭 감았다. 술이 확 깬 안실 양반은 아들을 업고 면소재지에 있는 의원으로 뛰었다. 요즘 같으면 끊어진 손가락을 붙여 봉합 수술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의술이 미약했던 1970년대였다. 큰아들은 손가락 병신이 되었다. 아들이 군대 면제를 받은 것은 총구의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오른손 금지와 장지의 손가락이 반 토막이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던 것이다.

“니가 아부지 한을 풀었구나. 잘했다. 인자 들어가자.”

안실 댁은 청년의 부축을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청년은 안실 댁을 방에 앉히고 거실에서 큰 절을 했다. 안실 댁은 절을 받았다. 오래 사니 맺힌 고도 풀릴 때가 있구나. 죽은 아들 장수는 안실 댁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옹송그리던 생채기 난 살이었다.

“서울 너거 친 할매랑은 너나들이 함서 사나? 너거 친 할배도 만내고 사나?”

“저의 친할아버지는 아버지께서 찾았을 때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고 들었어요. 그 집에서 아버지를 아들로 받아주지도 않으셨다고 해요. 할머니는 아버지가 많이 아플 때 딱 한 번 엄마랑 찾아간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우리 보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 뒤로 안 찾아갔어요.”

“그럼 우리 집에라도 오지 그랬냐? 할미 보고 싶을 때 오지.”

“진짜 여기가 그리웠어요. 제게 친할머니 할아버지는 여기 계시잖아요. 오고 싶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는데. 찾아올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안 가르쳐 주니까. 후일 어른이 되면 찾아가 보라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야 왔어요. 엄마에게는 잠깐 여행 다녀온다 하고요. 여긴 변한 게 별로 없네요. 집만 바뀌었네요. 집 뒤란의 우물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쉬워요.”

“그래, 집을 새로 지면서 우물은 메캈다. 여름에 니가 그 새미에 빠져서 고래 등 겉은 괌을 질러 온 식구가 혼비백산한 적이 있었제. 기억나나?”

“그럼요. 할머니께서 달려와 우물에서 울고 있는 저를 꺼내서는 꼭 껴안아 주셨잖아요.”

“그 새미가 많이 안 짚어서 다행이었제. 간뗌 한 거 생각하모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안실 댁은 청년의 손을 놓고 싶지 않다. 20년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그 시절로 돌아가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행복해했다.

청년은 벽에 걸린 안실 양반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할배가 니를 참 귀애 했던 거 아나?”

“그럼요. 할아버지 곰방대 가지고 놀다가 부러뜨린 것도 기억나요. 할아버지께서 요놈, 요 이뿐 놈 하면서 제 궁둥이를 때려주셨던 것도요. 저는 무안해서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지만요.”

“그랬제. 너거 친 할매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기다. 내보다 서너 살 많았는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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