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안실 댁은 개똥이네를 생각했다. 그녀는 보부상들이 드나드는 읍내 삼거리에서 술장사를 했다. 장사수완이 좋았던 여자는 딴 각시를 두지 않아도 전대가 두둑한 장사꾼이 오면 밤손님으로 받았다. 청상에 두 아들을 데리고 혼자된 여자였다. 인물이 반반했던 여자는 기둥서방이라도 꿰차야 난봉꾼에 기갈 드센 술꾼들 상대를 할 수 있었지만 기둥서방 대신 스스로 각시 노릇을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30대 농익은 육체는 남자 없이 밤을 지내기 힘들었고, 떠돌이 남자 역시도 하룻밤 객기 풀기에는 옷고름 쉽게 푸는 주막집 여자의 푸짐한 육덕이 좋았다. 수완이 좋아서 구멍동서들끼리 잘 지내게 하는 비법도 터득하고 있었으니 삼거리 주막집 여자는 인기 있는 은근짜였다.
덕분에 아비 모르는 자식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주막집 여자는 하룻밤 풋정 턴 사내들 내력을 쌈지에 모셔놓고 정표를 받았다. 주막집 여자는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갓 피어난 목련꽃처럼 살다가 서리 맞고 추해져 떨어지는 목련꽃이 될 때까지 주막집을 했다. 끈으로 달린 아들을 내세우는 바람에 오쟁이 진 남자는 매달 여자의 치마폭에 쌀섬을 져다 나르고, 지전을 던져야 했다. 주막집 여자는 늦둥이를 낳고 서리 맞은 목련꽃이 되어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술장사를 접었다. 여자는 본 남편의 두 아들에게 의탁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제법 번듯한 사업체를 꾸리던 두 아들은 제 어머니를 받아주되 조건을 걸었다. 배다른 동생들을 제 아버지 찾아 주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섯 아이는 주막집 여자를 거쳐 간 사내들 중에 핏줄을 찾아 나누어졌다. 대를 이을 아들 없는 집이나 살림이 톡톡한 집에는 어김없이 업둥이가 배달되었다. 여자의 마지막 늦둥이 아들이 바로 안실 댁 장남으로 온 장수였다.
“할머니는 왜 아들을 못 낳았어요?”
“너거 고모 놓고 애가 또 들어섰는데 머가 잘못 됐는지 대 수술을 했다 아이가. 의사가 다시는 아를 못 놓는다 캤다더라. 너거 징조 할매가 땅을 치고 통곡을 했제. 자기 대에 집안 망하게 생겼다고 말이다.”
안실 댁은 웃었다. 기갈 드세던 시어머님을 생각했다. 시어머님은 안실 양반을 앞에 앉혀놓고 양단간에 결정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겠다고 했다. 양자를 들이는 것보다 첩을 들여 배 다른 자식을 보든가.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든가 결정하라고 했다. 안실 댁 부부는 금실이 좋았다. 안실 양반은 안실 댁을 버리기보다 첩을 얻겠다고 어머님과 약속했다. 시어머니는 아들 낳아주는 조건으로 중매쟁이를 청했다. 몇몇 여자가 중매쟁이를 통해 소개되었다. 안실 양반은 맞선을 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결국 시어머니는 암암리에 수소문을 했다. 아들을 쑥쑥 잘 낳는다는 읍내 주막집 여자 소식을 들은 것이다. 시어머니와 주막집 여자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실 댁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안실 양반에게 읍내 주막집에 장작을 해다 대 주라고 했다. 안실 양반은 달구지에 소나무, 참나무 장작을 가득 패서 싣고 읍내 주막집을 오갔다. 그때는 벌목이 불법이었다. 산림조합에서 엄하게 단속했다. 안실 양반은 야밤에 달구지에 장작을 싣고 그 위에 솔가지를 덮어 장작이 보이지 않게 하고는 달구지를 끄는 소를 몰고 외진 산길을 에돌아 읍내까지 다녀와야 했다. 가끔 안실 양반은 읍내에서 자고 왔다.
그해 가을은 유난히 풍요로웠다. 나락은 모가지가 휠 정도로 토실토실했고, 푸성귀는 땅 넓은 줄 모르고 허벅지게 자랐다. 풍요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철이었다. 인심도 넉넉하고 사람들 얼굴도 훤하게 펴진 나날 중 햇살 좋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딸은 학교에 가고, 안실 양반은 이웃에 타작을 해 주러 가고 안실 댁은 새벽부터 집 옆에 있는 논에 나가 나락을 베다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 참이었다. 마루에 두레상이 놓이고 작은댁은 부엌에서 음식을 날라 상을 차리고, 시어머니는 명수를 안고 안쪽에 자리 잡았다. 안실 양반만 빠진 채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 막 숟가락을 들려는 참이었다.
“이 집이 맞나? 개똥아 들어가자. 인자 여가 니 집이다.”
삽짝 밖에서 당당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식구들이 몽땅 삽짝을 주시하는데. 하늘거리는 옥색 저고리와 감청색 치마로 쭉 뽑아 입은 여자가 대여섯 쯤 되는 머슴아 손을 잡고 삽짝에 들어섰다.
“어무이 저 왔어 예.”
여자는 당당하게 시어머니를 찾았다.
“아이가, 이기 누고?”
시어머니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품에 안았던 명수를 안실 댁에게 넘기더니 두레상을 옆으로 밀어내고 서둘러 축담에 내려섰다. 시어머님은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가더니 여자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번쩍 안았다.
“어서 오이라. 이 아가 그 아가?”
그렇게 주막집 여자의 아들은 하 씨 집안의 큰아들로 들어왔다.
그날 안실 댁은 아래채에서 명수를 가운데 눕히고 작은댁과 함께 누워 밤새도록 뒤척였다. 여자는 안실 양반과 작은 방에서 자고 안방에는 시어머님이 개똥이를 안고 잤다.
안실 댁은 작은댁에게 미안했다. 주막집 여자에게 아들이 생긴 줄도 모르고 아들을 낳아주는 조건으로 들어온 작은댁은 착했다. 본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살던 여자였다. 작은댁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임신해서 아들까지 낳았다. 씨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지만 안실 댁은 아니었다. 든든한 친구이자 동생이 생긴 것 같았다. 한 남자의 두 여자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느꼈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은 안실 댁을 엄마라 불렀다. 작은댁은 젖엄마였다. 명수의 첫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실 댁은 두 아이를 고이 품에 안았다. 시어머니는 작은댁이 낳은 아들을 장손에서 빼고 주막집 여자가 낳은 아들을 장손으로 호적에 올리라고 했다. 작은댁이 낳은 아들보다 네 살이 많으니 당연한 처사겠지만 작은댁이 반발했다.
“형님,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더 이상 여기 살고 싶지 않습니다. 형님은 착하니까 우리 애 잘 길러주실 것으로 믿고 저는 갑니다. 다시는 이 집에 오는 일도 없을 것이고, 내 아들을 찾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았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잘 대해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작은댁은 울면서 떠났다. 안실 댁은 둘째를 업고 큰 것의 손을 잡고 동구 밖까지 작은댁을 배웅했다. 남편 몰래 시어머니 몰래 한 푼 두 푼 모아 꿍쳐놨던 뭉치 돈도 톡톡 털어 작은댁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아직 젊으니까. 어딜 가든 잘 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정이 들었다. 친자매 이상이었다. 안실 댁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아들 못 낳은 탓으로 돌렸다.
개똥이는 장수란 이름으로 하 씨 집안의 장손이 되었다. 아들은 주막집에서 그냥 개똥이로 불리며 천덕꾸러기였던 모양인지 제 어미를 찾지도 않았다. 금세 안실 댁에게 정을 붙였다. 아들은 행동이 느리고 굼떴지만 천성은 착하고 밝았다. 명수랑 형제간에도 잘 지냈다. 아들은 몇 년이 지나 학교에 보냈지만 공부 머리는 없어서 늘 꼴찌를 못 면했다. 대신 힘이 세서 지게질이나 낫질은 곧잘 했다. 아들을 도시로 내 보내지 않고 안실 댁 곁에 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부 머리가 없으면 농사일이라도 제대로 가르쳐놔야 할 것 같았다.
“할머니,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공부 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착했니라. 니는 에리서도 똘똘했는데. 공부 잘하지야?”
“예, 엄마가 힘드니까.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것이 엄마를 돕는 거라 생각했어요.”
안실 댁은 사진첩을 가져와 펼쳤다. 안실 댁 부부가 가운데 앉고 뒤에 삼 남매가 서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청년은 그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할머니 이거 저 주시면 안 돼요? 엄마는 싫어하지만 제겐 소중해요.”
“그래라. 니가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다 지나간 일이제. 저승 가모 너거 애비 만나 옛날 이약 하며 살지도 모르제. 내가 이약 하나 해 주랴? 너거 증조 할매는”
안실 댁이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마흔 살의 과부였다. 동갑내기 시누이와 터울이 떨어지는 개구쟁이 시동생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성격이 콸콸했다. 동네 남정네도 괄시할 수 없을 만큼 배포도 크고 성격도 남자 같았다. 욕심도 많고 오지랖도 넓었다. 안실 댁은 날마다 시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었다. 매를 맞는 것도 예사였다. 대부분 시동생 때문에 받는 벌이기도 했다. 샘터에서 물을 가득 담은 질그릇 동이를 이고 골목에 들어서면 어디에 숨었다 나타나는지 시동생은 등 뒤에서 안실 댁의 비녀를 쑥 뽑았다. 길게 땋은 머리가 등에 툭 떨어지면 꼬리를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도망을 갔다. 안실 댁은 ‘옴마야’ 소리도 못 지르고 당연히 물동이부터 떨어뜨렸다. 박살 나는 물동이보다 시어머니의 질책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옴마, 형수가 또 물 동우 깼어.”
안실 댁이 골목에서 울고 있으면 시동생은 쪼르르 달려가 시어머니께 고자질을 했다. 시어머니는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동네가 들썩들썩하도록 ‘원수 덩어리, 살림 말아먹을 년, 썩을 년’ 입에 담지도 못할 육두문자에 등짝이 시뻘겋게 손자국을 남겼다. 어떤 때는 그것도 양에 안 차 며느리의 머리카락을 질질 끌어 집에 와서는 안실 댁의 농을 뒤져 옷이란 옷은 몽땅 마당에 내 던졌다. 친정에 가서 다시는 오지 말란다. 온종일 삽짝 밖으로 쫓겨나 배도 곪으며 달달 떤 적도 많다. 보통 안실 양반이 없을 때만 골라서 사달이 났다. 그래도 시누이는 주먹밥을 챙겨다 주었다. 시어머님의 분이 좀 풀렸다 싶으면 안실 댁을 불러들이는 것도 시누이였다. 더구나 안식댁은 딸 하나 낳고 석녀가 되었으니 시어머니 눈 밖에 나도 진작 난 여자였다. 그 안실 댁을 보듬어주고 다독여준 시누이마저 시집간 이듬해에 첫 애를 낳다가 죽었다. 시어머니는 당신 딸 죽음까지 안실 댁 탓으로 돌렸다.
“참말로 니 증조 할매는 대단하신 어른이었제.”
“작은할아버지가 더 짓궂어요.”
“그랬제. 그래도 우리 어무이는 돌아가실 때 내보고 고맙다 카드라. 문제는 너거 아베였어. 내 애간장 참 많이 태웠니라. 내가 지를 참 애낐는데도 말이다. 너거 아베는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다. 징조 할매가 치마폭에 싸고돌아서 그런지. 징조 할매 돌아가시고 나서 내 애를 많이 멕있제.”
아들이 중학교 졸업반일 때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아들은 그해 고등학교 연합고사에도 떨어졌다. 사춘기가 된 아들이 슬슬 빗나가기 시작했다. 지게와 낫을 집어던졌다. 친구들과 어울려 읍내 나들이가 잦아졌다. 누나와 동생과 차별한다는 거였다. 안실 댁은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읍내 기술고등학교를 찾았다. 아들은 중학교 졸업한 지 2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입학시험 안치고 줄만 서면 들어가는 학교였다. 아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공부는 못해도 친구는 많았다. 손재주는 있어서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아들은 자동차에 관해 쓴 책은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는데. 헌 자동차 한 대 분해해서 다시 조립했더니 책 열 권 떼는 것보다 훨씬 쉽더라고 했다.
아들은 졸업하고 제 누나와 동생이 있는 도시로 갔다. 삼 남매가 한동안 같이 지냈지만 딸의 결혼과 막내아들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큰아들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들은 한동안 정비소에 취직했다고도 하고,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다닌다고도 하고, 택시회사에 취직했다며 택시를 몰고 집에 오기도 했다. 대형 운전 면허증을 땄다더니 시내버스 운전을 한다고도 했다. 아들은 집에 오면 여전히 덤이를 알뜰살뜰 보살폈다. 덤이도 아들만 오면 입을 헤벌리고 뒷다리를 치켜들며 깨춤을 추었지. 안실 댁이 멍하니 아들 생각에 젖어 있는데 청년이 침묵을 깼다.
“할머니는 처음 엄마를 봤을 때 며느리 감으로 마음에 들었어요?”
“인자 말이지만 너거 옴마가 행인물이 아니더라. 남자 여럿 잡을 여수라고 생각했제.”
아들이 서른인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하겠다며 어린 여자애를 데리고 인사를 왔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여자가 예쁘장한 것이 인물값 하게 생겼다. 안실 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둘이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여자는 아들이랑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 했다. 계모 밑에서 눈칫밥 먹다가 일찌감치 집을 나와 친엄마를 찾았고, 친엄마랑 계부랑 살다가 독립했다는 것, 둘은 이미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다. 서로의 아픈 곳을 다독거리며 잘 살기를 바랐다. 안실 댁은 서둘러 아들을 결혼시켰다. 덤이를 팔아 결혼자금으로 아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두 손자가 태어났다. 손 귀한 집에 손자가 둘이나 생겼으니 좋았다. 해실해실 웃기만 잘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큰며느리도 예뻐 보였다. 안실 양반은 손자에게 상진이와 상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특히 집안의 대를 이어갈 장손이라고 상진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아들은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올 때마다 돈타령을 했고, 안실 양반은 전대를 털어 주었다. 그러다가 안실 양반 회갑 잔치에서 그 사달이 났던 것이다.
“할머니, 이제 아버지를 용서해 주세요.”
“부모 자식 간에 용서하고 말고가 오데 있것노. 그놈이 그리 허무하게 빨리 갈 줄 누가 알았것노. 너거 옴마도 우리한테 맺힌 한이 짚을 기라. 그랑께 한 분도 안 왔제. 늘 우찌 사는고 했다. 니가 와조서 참말로 고맙데이. 오래 산 보람이 있구나.”
“할머니, 방학하면 또 내려올게요. 그때는 상건이도 데리고 올게요.”
“고맙구나. 저녁이라도 묵고 가야제. 내가 팔십 노구라 다음에 니 올때꺼정 살아 있을란지 모르것다. 할미가 해 주는 밥이라도 묵고 가거라. 여거서 서울 가는 막차가 일곱 시 반인가 있다 쿠더라만.”
안실 댁은 급하게 저녁을 지었다. 다행히 며느리가 해다 준 밑반찬이 있었다. 쌀뜨물을 톡톡하게 받아 뚝배기에 된장을 자작하게 끓였다. 밥상이 거실에 놓일 때쯤 골목의 가로등이 주홍빛으로 빛났다. 청년은 밥을 달게 먹었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안실 댁은 수저질 보다 손자의 밥 먹는 모습만 지켜봤다. 어찌 저리도 제 아비 밥 먹는 것과 닮았을꼬. 밥을 참 복스럽게 먹었다. 아들도 밥을 참 복스럽게 먹었다. 어딜 가도 배는 안 곪고 살 것이라 장담했는데.
“할머니도 드세요.”
“오냐. 너거 아부지가 죽기 전에 우리 집에 댕기 간 거 아나?”
청년은 물끄러미 안실 댁 표정을 살핀다.
“모리것제. 애비가 말해 주지 않았시모. 이 할미랑 너거 아베랑 맺힌 고는 다 풀고 갔다. 너거 할배 초상 칠 때도 먼발치에서 배웅했다 카드라. 그 맘이 올매나 아팠것노. 지가 벌 받아 아푼 거 같다고 이 할미보고 죄송하다 쿠더라. 내가 지 아푼데 무라꼬 사방천지 댕김서 약초 캐다 다리 놓고 오라 캤더이 왔더라. 그 약 다 묵지도 못하고 갔지 싶다.”
“그때 저는 어려서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 손을 잡고 할머니 말씀을 하셨어요. 할머니께 은혜도 못 갚고 가게 됐다고 우셨어요. 후일 어른이 되면 꼭 찾아뵈라 하셨어요.”
“지라꼬 맘이 편했것나. 인자 다 지난 이약이다. 니가 이리 찾아준 것만도 고맙제. 저승에 계신 할배도 참 좋아할 끼다. 할배 등에 엡피 본 손자는 니뿐일 기다.”
청년이 밥 한 그릇을 싹 비우자 안실 댁도 숟가락을 놓았다.
“할머니, 차 시간이 빠듯해서 설거지는 못 해 드리고 가야겠어요.”
청년은 밥상을 들어다 싱크대 아래 놓고 안실 댁 앞에 와서 앉았다. 안실 댁은 청년의 손을 잡았다. 안실 댁은 아직도 청년에게 할 말이 많다. 어린것이 애어른 같아서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 안실 양반 칠순에 아들과 손자 둘을 그렇게 보내고 안실 양반이 아파 누웠다가 이태 만에 초상 친 이야기, 5년 만에 바짝 야윈 몰골로 찾아왔던 아들 이야기, 무슨 암이라고 했다. 말기라서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그래도 엄마가 해 주는 약을 먹으면 나을 것 같아 찾아왔다는 말에 모자가 껴안고 펑펑 운 이야기, 하룻밤이라도 할미 곁에서 자고 갔으면 좋겠지만 청년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안실 댁 손을 놓고 일어났다.
“할머니, 다음에 뵐 때까지 꼭 건강하게 계셔야 해요.”
“오냐, 그래, 우리 새끼. 이건 할미가 주는 맘잉께 꼭 받아 가거래이.”
안실 댁은 속곳 아래 꿍쳐놨던 쌈지를 열어 똘똘 뭉친 만 원권 몇 장을 잡히는 대로 꺼내 청년의 손에 잡혀 주었다. 청년은 안 받겠다며 손을 뺐지만 안실 댁은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청년은 ‘할머니 고맙습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갔다. 안실 댁은 마음이 급해 허둥지둥 따라 나가며 중얼거렸다.
“이래 가모 서운해서 우짜노. 할미랑 하리 밤이라도 자고 가지. 까치가 날마다 울어도 오늘 겉이 기뿐 날은 없었는디. 까치가 울 때마다 니 생각이 날 낀 디.”
안실 댁은 지팡이를 짚고 청년을 따라 나가며 자꾸 중얼거렸다.
청년은 어둠살이 내리기 시작한 골목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거래이. 조심해서 가거래이..........”
애절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갔다. 안실 댁은 청년이 어둠 속에 완전히 묻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청년이 사라진 골목은 적요했다. 안실 댁은 어둠에 묻힌 골목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감나무 곁에 쭈그리고 앉아 우둘투둘한 감나무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아가, 사는 기 한 때의 바람이다. 다 그리 지나가는 기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실 댁은 침침해져 오는 눈을 닦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