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꺾는 그 여자
그 꾀사리 밭 말이다. 옛날부터 내 밭이었어. 옛날부터 그 산에는 꾀사리가 천지였거든. 꾀사리 꺾는 봄이 돼 봐라. 주먹밥 한 딩이 싸서 새복에 그 산에 올라갔니라. 꾀사리가 즐변하게 피어있는 걸 보모 고마 가슴이 확 틔었니라. 그때는 야생이라 먼저 꺾는 사람이 임자였싱께. 서로 많이 꺾을라고 눈에 불을 켰니라. 그란데 말이다. 거기 배암이 한 마리 살았어. 내가 가는 곳마다 그 배암이 따라 댕기는 바람에 다른 사람은 내 졌테 얼씬도 못했지.
작은이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온몸에 파스를 붙였다. 발목에도 붙이고, 무릎과 어깨에도 붙였다. 차갑다. 뼛속까지 시리다. 한방 파스는 냉찜질하는 거야. 다음에는 신신 파스를 사라. 그가 말했다. 신신 파스는 뜨겁다. 매운 고추를 먹었을 때처럼 파스 붙인 부위가 후끈후끈하다. 후끈후끈한데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도 ‘어! 시원해’라고 말한다. 뜨거운데 왜 시원하다고 할까. 어릴 적에 그 말뜻이 몹시 궁금했다. 지금은 작은이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시원해.
우리 찜질방 갈까? 찜질방은 불결해. 그럼 사우나라도 갈까. 시간 없어. 작은이는 찜질방을 좋아한다. 뜨거운 곳에 앉거나 누워 땀을 질질 흘리면서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찜질방 하면 인디언의 땀 천막이 생각난다. 그들의 오랜 전통이다. 땀 천막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고 했다. 작은이는 찜질방에 가고 싶다. 그런데도 그의 청을 거절했다. 고사리 꺾어야 한다며? 볼멘소리가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하고 싶은 말을 침으로 돌돌 말아 목구멍으로 꿀꺽 넘겨버렸다.
한때 찜질방이 유행이었다. 도심을 벗어난 자리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었다. 맥반석, 옥석 같은 돌 찜질방, 황토 찜질방, 숯가마 찜질방 등, 찜질방을 찾는 고객은 주로 중년 여인들이다. 뜨거운 방에서 땀을 쭉 빼고 나면 피부도 고와지고 몸이 가뿐하고 좋다고 했다. 작은이도 찜질방을 꽤 즐겼다. 그는 찜질방이 불결하다고 싫어한다. 숨을 쉬면 미세한 먼지가 목구멍으로 들어와 목이 더 칼칼해진단다. 작은이는 그의 말을 묵살한다. 땀 쭉 빼면 온몸이 가뿐하잖아. 가자. 일 없다. 아파서 빌빌 대는 것보다 낫지. 작은이는 입총을 다다닥 쏘곤 했지만 오늘은 아니다. 고사리가 훨훨 피더라. 오늘 꺾어야 하는데. 그는 직접화법보다 간접화법을 즐긴다. 고사리를 꺾으라고? 비 온다잖아. 비 온다고 고사리가 안 크나? 그러면서 찜질방은 왜 들먹여. 작은이는 입술을 삐죽했다.
작은이는 온몸에 파스를 붙인 상태로 망태를 멨다. 망태 속에는 코팅된 장갑과 포대와 여분의 망태가 들어있다. 눈앞에 고사리 밭이 환하게 펼쳐진다. 고사리는 예쁘다. 예쁜 고사리가 손짓한다. 손바닥을 짝 벌린 것은 오지 말라고 손을 저었다. 갓난쟁이처럼 손을 꼭 쥔 것은 와서 날 좀 봐주라고 손짓한다. 예쁜 것, 귀여운 것. 사랑스러운 것.
그 나무 밑에는 가지 마라.
사람은 가지 마라 하는 곳에는 더 가고 싶고, 하지 마라 하는 것은 더 하고 싶다. 그가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은 고사리 밭 가장자리에 있는 자귀나무 아래다. 편편한 고사리 밭이 끝나는 곳이다. 따리를 틀고 앉은 뱀이 독 오른 대가리를 쳐들고 있는 형국의 둔덕이다. 그 둔덕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한쪽 뿌리는 장골 대 여섯 길은 되는 벼랑에 뿌리를 박고, 한쪽 뿌리는 고사리 밭으로 뻗어 버티고 있는 모양새가 특이하다.
갈 건데.
어제 잡은 독사 한 마리 나뭇가지에 걸쳐 놨다.
또 죽였어?
작은이는 앙칼지게 물었다. 그는 대답도 않고 힁허케 트럭을 끌고 나가버린다.
작은이는 궁금하다. 그 뱀이 아직 거기 있을까. 닭장 안에서 병아리를 삼키던 독사를 봤었다. 그가 막대기로 두들겨 패자 성이 바짝 오른 뱀은 먹던 병아리를 토해놓고 꼬리를 딸딸 떨었다. 꼬리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죽이지 말고 쫓으라고 소리치는 작은이를 흘끗 쳐다보던 그가 목이 긴 장화를 신은 발로 독사의 대가리를 짓밟아 뭉개며 ‘독사는 죽여야 돼. 안 죽이면 밤에 찾아와 당신을 물지 몰라.’ 진저리를 쳤었다. 나뭇가지에 축 늘어진 뱀은 보나 마나 대가리가 짓찧어져 있겠지만 회갈색 비늘 옷을 입은 몸뚱이는 미끈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너거 동상들이 죽고 집안이 쫄딱 망하게 된 것도 다 배암 때문이란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독사가 왜?
니가 쪼매 더 커모 이약하꺼마. 우짜모 말이다. 내 업인지 모르것다. 그래, 업인기라.
어머니의 눈이 먼 하늘바라기를 했다. 작은이는 늘 업 타령을 하는 어머니를 가여워하며 자랐다. 열다섯 살에 팔려온 여자, 그때 어머니는 예뻤을까. 인물이 참 고왔다는 동네 할머니의 말을 듣곤 했다. 인물이 좋으면 인물값을 해야지. 어째서 어머니는 씨받이로 팔려왔을까. 어머니의 택호는 칠선 댁이다. 칠선이 어느 골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친정붙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시집온 이래 친정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칠선 골에는 말이다. 배암이 참 많았어. 독사랑 살모사랑 너불댕이랑, 물재수랑, 구렁이랑, 이런 뱀들이 뒷산 언덕에만 올라가도 돌구멍마다 내다봤어. 거긴 차암 바구가 많았단다. 나는 엉가한테 쫓기 나모 늘 뒷산에 올라가 옴마를 부르며 울었단다. 내가 울모 알록달록한 배암이 내 발아래 와서 모가지를 까닥까닥하며 치다 봤단다. 나는 그 배암의 목을 살짝 만져주곤 했어. 배암의 몸은 아주 차가웠단다. 그 배암을 내 손에 쥐고 있으면 어쩐지 옴마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어. 그 배암을 손목에 감고 오면 엉가는 기겁을 했었지.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여섯 살에 돌아가셨다. 아이고 머리야, 머리가 와 이리 아풀꼬. 하면서 방에 들어간 후 다시는 그 방을 나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거적에 둘둘 말려 나오는 외할머니를 봤다. 어머니는 엄마가 그리워서 울었다. 올케는 어머니를 업었다. 올케는 어머니의 다리를 꼬집고 또 꼬집었다. 이 웬수 덩어리, 이 웬수 덩어리 하면서.
작은이는 가끔 어머니에게 대들었다.
왜 살아, 왜 살았어. 자식도 못 낳는 여자 밑에서 노예처럼 왜 살았어.
그러게 말이다. 우리들 시대는 그렇게 살았다. 여자는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돼야 했다.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절대로 끊어서는 안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세상 같으모 백 번 안 살았제. 형님한테 머리끄덩이 질질 끌려 살밖에 내침을 당해도 갈 데가 없었다.
아버지를 사랑했어?
어머니의 눈이 가늘어진다. 파란 하늘에 뜬 흰 구름을 바라보는 눈길이다. 봄이면 지천에 피는 개복숭아 꽃빛이다. 아니, 고사리 밭가에 있는 자귀나무 꽃빛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푸른색 밖에 없는 한 여름에 은은한 분홍빛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꽃, 붉은 명주실을 수십 가닥 모아 만든 것 같은 꽃이다.
젊어서 너거 아부지 차암 멋쟁이었다. 하얀 뾰족 구두에 하얀 양복 착 걸치고 하얀 중절모 씌고 나가봐라. 동네가 훤했니라.
피이, 거짓말, 그 멋쟁이가 지금 저 모양 저 꼴이야?
작은이는 아래채를 힐끔 바라봤다. 아버지는 여전히 노랗게 변한 손가락 사이에 꽁초를 꽂고 있다. 손가락이 익는 줄도 모르고 중얼 중얼 중얼 염불을 외고 있다. 손톱에 담뱃진이 새까맣게 낀 채 방문을 배꼼 열어놓고 줄담배를 태우고 있는 꾀죄죄한 노인네. 성치도 않은 몸뚱이를 시도 때도 없이 굴리고 다니면서도 딸에게 미안해하는 구석도 없는 노인네.
아버지 고사리 꺾어 올게 예.
밥때 안 늦고로 오이라.
밥 한 끼 굶으면 죽을까 봐 그래요? 배고프면 냉장고 뒤져서 배라도 내 깎아 드세요. 아니면 동네 회관에라도 나가서 놀다 오시든가.
너거 옴마한테 갈 때 안 됐나? 너거 옴마가 자꾸 꿈에 보인다. 어지 밤에는 또옥 시집올 때 맹키로 빨간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왔더라. 온제 갈래?
가모 머하게 예. 딸도 몬 알아보는 옴만데.
작은이는 툴툴거리며 삽짝을 나섰다. 건너편 산비탈이 온통 허허벌판이다. 소나무, 잡나무 한 그루 없이 민둥산이 가 된 산, 중대가리처럼 반질반질해 보이는 그곳이 고사리 밭이다. 고사리 밭 옆에 있는 짙푸른 자귀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돋보인다. 저기 그 뱀이 있을까? 작은이는 자귀나무에 눈길을 맞추고 풀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고사리 밭으로 향했다. 띠풀이 자꾸 발목을 잡아당겼다.
배암을 만내도 죽이지 마라. 생물이다. 사람이 겁만 안 주모 제 갈 길을 간다.
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손목에 뱀을 감고 놀았던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일자무식인데도 작은이는 늘 묻는다. 엄마, 마늘 심을 때 안 됐어? 엄마, 배추랑 무랑 상추, 시금치, 이런 것들은 언제 심어야 해? 고사리는 어떻게 삶아서 널어야 해? 고사리는 어떻게 꺾어야 해? 된장과 간장은 어떻게 담가야 해? 시도 때도 없이 물었다.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물을 어머니가 없다. 허울뿐인 어머니는 징그럽게 생긴 인조 뱀을 가지고 온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나를 아는 어머니는 없다.
진짜 내 옴마 맞아?
와아?
중학교 때까지 옴마는 우리 집 밥하는 식몬 줄 알았어. 큰어머니는 늘 밥순이라고 부르며 엄마를 구박했잖아. 작대기로 때리고 주먹으로 쥐어박아도 가만히 있는 엄마는 진짜 바보 같았어.
그랬지. 너거 큰어무이와 나는 전생에도 자매였던 기라.
자매였을까. 주인과 종이 아니었을까. 논 서마지기 값에 씨받이로 팔려온 여자와 서른 살이 넘은 부잣집 마나님이 어떻게 자매였을까. 어머니는 딸 셋에 아들 둘을 낳았지만 겨우 작은이만 건졌다. 태어나자마자 죽어나간 딸에 대한 연민은 없어도 두 아들에 대한 모정은 평생 어머니 눈에서 눈물을 마르게 하지 못했다. 남의 집 아들만 봐도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는 말을 아낀다. 입에 서캐가 하얗게 내릴 정도로 말을 안 해서 답답하다.
엄마, 큰 옴마도 없는데 이제 말 좀 해 봐.
할 말이 머가 있노.
어머니는 오십도 되기 전에 머리는 하얗게 세어버렸고 허리는 할미꽃처럼 굽어 버렸다. 팔순의 어머니는 이제 머릿속도 하얗게 세어버렸다. 굽은 허리를 펼 줄도 모른다. 모로 누워 가슴에 알록달록한 인조 뱀을 안고 산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하면서.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아이고 예뿌라. 아이고 예뿌라. 하면서 산다. 가끔은 큰어머니께 맞아 새된 고함을 질러 옆 침대의 할머니와 머리를 쥐어뜯고 싸운다. 잘못 했어예. 안 그러께예. 작은이야, 내 좀 살려 도고. 아지매는 뉜교? 우리 작은이 만내거든 말 좀 해 주소. 하나 나오고 또 나오고, 하나 나오고 또 나오고, 아이고 오골오골 예뿌라. 엉가 때리지 마. 엉가 내 새끼 때리지 마. 하나 나오고 또 나오고, 하나 나오고 또 나오고.
작은이는 고사리 밭에 들어섰다. 일부러 자귀나무 아래서 먼 쪽을 택했다. 고사리 밭은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빈 밭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연초록색 차 숟가락 같은 것이 여기저기 솟아 있다. 긴 것, 짧은 것, 굵은 것, 가는 것, 대가리를 빳빳하게 든 것, 고개를 푹 숙인 것, 손을 살짝 편 것, 손을 꼭 쥔 것, 제 나름대로 멋을 낸 모습이다. 어찌 보면 너불대 새끼를 닮았다. 배암, 작은이는 조그맣게 옹알거렸다. 배암! 고사리를 잡던 손이 진저리를 치며 등 뒤로 간다. 작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연초록색 어린 고사리가 갑자기 뱀 새끼로 변해 고개를 까닥까닥한다. 아버지가 늘 물고 있는 길이가 짧은 곰방대 같다.
너거 아부지는 꽃 따는 재미로 살았시끼라. 두 여자도 양에 안 차 심심찮게 한양 올라가 딴살림 채리싱께. 말하모 머 하노.
지금 아버지 눈에는 고사리가 무엇으로 보일까. 고사리로 보일까 예쁜 꽃으로 보일까. 작은이 눈에는 그저 예쁜 꽃이다. 꽃을 똑 따는 재미, 몸통을 똑 꺾는 재미, 망태가 무거워질수록 땀이 뚝뚝 흐를수록 뭔가 보람찬 일을 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아지는 느낌. 그 느낌을 사랑한다. 망태가 가득 차면 포대에 붓는다. 포대가 찰수록 고사리를 꺾은 밭의 면적은 넓어진다. 하룻밤 자고 나면 고사리는 언제 꺾었느냐는 듯이 온 밭을 차지한다.
오늘도 꾀사리 꺾는 가베.
고개를 들었다. 이웃에 사는 가실할머니다.
우찌 오셨습니꺼?
꾀사리 좀 꺾어주고 한 주먹 얻어 가모 안 되것나? 며칠 있으모 영감 제사라서. 꾀사리 나물도 해야것고, 일손도 모지랠 것 같아서 왔제. 온제부터 일꾼 쓸랑가 모르것다만 그때는 내도 좀 불러주모 좋고. 꾀사리 꺾어 돈 좀 벌고로.
가실할머니는 웃으면서 작은이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고사리 밭에 들어선다. 작은이는 밭두둑에 놓아둔 포대 안에서 여분으로 챙겨 온 작은 망태를 꺼내 가실할머니께 내밀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할머니의 손놀림은 재바르다. 평생 농사꾼으로 이골이 난 노인이다. 칠십 다섯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 농촌에서 칠십 대는 할머니가 아니라 아주머니다. 할머니라 부르면 대답도 않는다. 할매가 머꼬. 아지매지. 나 아직 안 늙었다. 하면서 샐쭉해지는 것이 촌로다.
성이 아부지는 오데 가고 혼자 하요?
모르겠어 예. 꾀사리 꺾는 거는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라 다른 일 하로 갔을 깁니더.
꾀사리가 훨훨 필라 쿤다. 칠선 띠가 있시모 나는 듯이 꺾어내고 꾀사리 밭이 말끔할 낀데.
가실할머니 눈도 먼 눈 바라기를 한다.
작은이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 들린다. 모기소리만큼 작지만 작은이의 귀에 이명처럼 들린다. 작은이는 허리를 펴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자귀나무 아래다. 자귀나무 아래 오뚝이처럼 앉아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엄마, 거기 앉을 때는 조심해야 돼. 독사가 나온단 말이야. 이상하게 그곳에만 독사가 우글거려. 독사 굴이 있나 봐. 없다. 여게가 참 좋다. 내 죽으모 너거 큰어무이 옆에 묻지도 말고, 너거 아부지 옆에 묻지도 말고 이 낭구 아래 묻어다오. 어머니는 어린애 허리통만 한 자귀나무 몸통을 쓰다듬었다. 옴마, 거기 죽은 독사가 걸려 있단 말이야. 나뭇가지에 대가리가 짓찧어진 뱀의 긴 몸이 축 널어져 있을 것이다. 없다. 있어. 그이가 어제 죽여서 걸어놨다고 했어. 없다. 옴마, 제발 가버려. 나 꾀사리 꺾어야 한단 말이야. 작은이는 옆에 어머니가 서 있는 것처럼 성질을 버럭 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순간 자귀나무 그늘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 까악 울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짜구사리 밑에 머가 있나? 대낮에 까마구가 와 저 지랄이고.
가실할머니가 까마귀 소리에 깜짝 놀라 허리를 폈다.
옴마는 좀 우떻노?
가실할머니가 물었다.
늘 그렇지 예.
너거 옴마가 한이 많애서 그럴 기라. 인자 좀 편하게 살다 가모 되는데. 우짜다가 그 지경이 됐는지. 옴마 보로 자주 가나?
예. 아부지가 자꾸 옴마한테 가자캐서 예.
그래, 영감탱이가 인자 너거 옴마 귀한 줄 아나부다.
작은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솔직히 작은이는 어머니가 안고 갈 업의 무게에 짓눌리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이었다. 자식 넷을 앞세운 여자가 정신이 온전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문득 작은이는 큰어머니 옆집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가실할머니께 묻고 싶은 게 있다.
할매, 그 이약 좀 자세히 해 주이소.
무슨 이약?
큰어무이 집에서 나왔다는 그 독사 이약이요.
그거? 모리나?
어려서 귀동냥을 하긴 했는데. 큰어머니도 어머니도 자세한 이약은 꺼려해서 예. 안 해 주데 예.
해살 이약도 아니제.
인자 들어도 괜찮다 아입니꺼. 저도 머리가 반백인데 예.
그렇구나. 자네가 올해 몇 인교?
오십 둘 아닙니꺼.
세월 참 빠르데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