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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꺾는 그 여자

<단편소설. 끝>

by 박래여

다래골 양지마을은 옛날부터 부촌이었다. 너른 들판을 끼고 앉은 덕에 소작인이라 해도 살림이 따뜻했다. 그곳에 최 부잣집이 있었다. 무남독녀 외딸 초옥은 참 곱고 예뻤다. 최 부자는 일제강점기에 신식 교육을 받은 인텔리라 굳이 아들을 원하지 않았다. 집안의 대가 끊어지게 생긴 마당에 첩이든 후처든 들여 대를 이을 아들을 봐야 한다면서 애가 탄 최 부잣집 안방마님은 남편을 닦달했지만 최 부자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데릴사위를 들여 가산을 물려주면 된다고 했다.

초옥이 여남 살 때였다. 가을날이었다. 소작농들이 가을걷이를 해서 곳간에 쟁일 때였다. 온 집안 식구가 들일에 매어 있을 때라 집안에는 초옥의 부모님만 계셨다. 초옥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햇곡식과 햇과일을 차려 사당에 인사를 가자고 했다.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은 본채에서 가장 후미진 대나무 숲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당에 들린 초옥의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조상의 신위 위에 징그럽게 생긴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혀를 날름날름하고 있었다.

영감, 저 독사를 죽여야 해요.

쫓아버립시다.

안 돼요. 독사는 아무데도 안 가요.

머슴을 불러 오시오.

들에 갔는데 어떻게 불러와요. 타작한다고 바쁠 텐데. 잠깐 기다려 봐요.

본채로 돌아온 초옥 어머니는 헛간의 시렁에 걸린 낫을 챙겨 다시 사당으로 갔다. 조상의 신위 위에 똬리를 튼 뱀은 그때까지 꼼짝도 안하고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초옥의 아버지는 낫으로 독사의 목을 댕강 잘라버렸다. 망나니가 검으로 죄인의 목을 치듯 가볍게 날려버린 것이다. 독사의 몸은 대숲에 버려졌다.

다음날 또 사당에 간 초옥의 아버지는 여전히 조상님 신위 위에 똬리를 튼 독사를 만났다. 화가 난 초옥의 아버지는 낫을 가지고 와서 또 독사의 대가리를 날렸다. 그 뒤에도 독사는 계속 나왔다. 네 마리 째 독사를 죽였다. 마지막 다섯 번째 나온 독사는 어린 새끼였다. 그때 초옥이 그 사달을 알고 사당으로 달려갔다. 아부지, 제발 고정하세요. 저건 새끼잖아요. 새끼는 살려 주이소.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요. 조상님이 다 보고 있잖아요. 하면서 간곡히 아버지를 말렸다. 그 한 마리만은 잡아서 살려주라고. 어린 딸이 애원하자 초옥의 아버지는 머슴을 시켜 독사를 잡아 대숲에 풀어주었다. 독사는 무조건 다 죽여야 한을 안 품을 건데 한 마리를 살려 보내서 악물 할지 몰라. 저 집 조상이 뱀으로 환생한 것인지 몰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인데. 불길 해. 하면서 동네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초옥의 아버지도 한 마리 살려 보낸 독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깨끗하게 죽여야 했는데. 독사는 자신이 죽을 때가 되어야 사람 눈에 띈다고 하지 않던가. 간단하게 목숨을 끊어주었다면 찝찝하지 않을 텐데. 초옥의 어머니 역시 불길하고 두려웠다. 꼭 집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무당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무당은 독사처럼 가늘게 눈을 뜨고 초옥의 아버지를 호되게 나무랐다.

너거 집안은 나로 인해 씨를 말릴 거다. 내 가족을 다 죽인 너에게 복수할 거다. 나는 너희의 윗대 조상의 넋이었다. 그런 나와 내 가족을 이렇게 천시하다니. 벌 받아 마땅하다.

무당의 목소리는 음산하고 차가웠다.

미흡한 중생이 모르고 저지른 일이니 부디 한을 푸시고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어떻게 하면 한을 풀 수 있는지 알려 주시면 그대로 행하리라.

초옥의 부모님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무당은 대나무 숲에 독사의 무덤을 만들어 크게 위령제를 지내 주라고 했다. 석공을 불러 비석도 세웠다. 음식도 거창하게 차려놓고 위령제, 천도재도 지내주었다.

그 후, 아무 탈 없이 최 부잣집은 여전히 건재했고, 초옥은 곱게 자라 열일곱 살이 되었다. 초옥의 어머니는 친정 동네에서 의지가지없지만 허우대 멀쩡하고 심성이 착하다는 청년을 데려다 데릴사위를 삼았다. 작은이의 아버지였다.

초옥이 결혼한 지 석 달도 되기 전에 초옥의 부모님은 밤새 안녕을 해버렸다. 아침에 초옥 부부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안채에 들어갔지만 부모님은 기침이 없었다. 방문을 열어 본 초옥 부부는 기절을 할 듯 놀랐다. 부모님은 무엇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쫙 벌린 채 죽어 있었다. 얼굴과 몸이 시퍼렇게 변해 몰라보게 부푼 상태였다.

작은이는 가실할머니께 물었다.

왜 그렇게 죽었을까요?

동네 사람들 말로는 뱀한테 물린 기 아닌가 하더마. 그 독새가 원수 갚았다고도 하데. 독사는 그래서 보이는 족족 쥑이야 한다고 했것제. 누가 자리끼에 독약을 탔다고도 하고. 너거 외가 어른은 남에게 원수 질 분은 아니었다. 그란께네 독약 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제.

그럼 독사는 자신을 살려줬는데 은혜를 갚아야지 왜 복수를 해요.

저거 부모와 성제들을 다 죽였는데 복수부터 해야 옳제. 대신 너거 큰 옴마 초옥이는 살려준 기라. 원수도 갚고 은혜도 갚았다 아이가. 대신 니가 친정집 대주노릇 하는 기라. 업 갚음 하라는 뜻이것제. 옴마 아부지 잘 모시모 다 풀리는 기라.

작은이는 가실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까마득한 날을 거슬러 올라갔다.

옴마야!

작은이는 호롱불을 들고 골목 아래로 뛰어갔다. 중학생일 때다. 어머니는 안 보이고 커다란 보퉁이가 뒤뚱거리며 걸어온다. 작은이는 보따리를 받아 이고 싶지만 보따리는 작은이보다 두 배는 크다. 호롱불을 들어 어머니 얼굴을 찾는다. 입과 코가 보이고, 보퉁이에 눌린 눈이 환하게 웃는다.

우리 애기 씨가 마중 나왔네. 아부지는 들어오셨나?

아~까 왔어.

술 안 드셨던?

술 냄새났어.

그럼 주무시나 보다.

몰라.

작은이는 아버지가 야속하다. 어머니는 온종일 산 헤매며 고생하다 오는데 아버지는 저잣거리에 나가 술추렴하고 뾰족구두 신은 여자를 데리고 왔었다. 둘은 문간방인 어머니의 방에 들어가 오후 내내 시시덕거리며 놀다가 큰어머니께 날벼락을 맞았다.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계시던 큰어머니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내 요것들을 박살내고 말 끼다. 하면서 큰방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시더니 부엌으로 가셨다. 아픈 사람이 무슨 약을 먹은 것처럼 물이 반이나 찬 양철 물동이를 들고 나오시더니 아래채 어머니 방 앞으로 가셨다.

오냐, 이 잡 년놈아, 내 죽으라꼬 너거가 이라제?

지게문을 열어젖히고 양동이의 물을 방에다 확 뿌렸다. 방바닥에 누웠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도 여자도 홀딱 벗고 있었다.

아~니 이것이......

아버지는 베고 있던 목침을 들어 큰어머니께 던지려던 찰나 작은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목침을 내려놓고 이불을 끌어당겨 벗은 몸을 덮었다.

이년, 오늘 니 죽고 내 죽자. 작은이야, 통시칸에 가모 똥바가지 있제? 가서 똥물 한 바가지 퍼 온나. 저년 꼬시랑 머리에 똥물 디리 주고로.

여자는 아버지 등 뒤에 붙어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퍼떡 가서, 똥물 안 퍼 오나?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작은이를 채근하던 큰어머니는 기진해서 마당에 퍼질러 앉았고, 그 틈을 타서 여자는 옷을 걸치는 둥 마는 둥 하고 삽짝으로 줄행랑을 쳤다.

동네 챙피해서 원!

아버지는 속곳을 찾아 입으시고 곰방대에 불을 붙여 뻑뻑 빨았다.

작은이야, 너거 옴마 모시고 방에 들 가라.

옴마, 일어나서 방에 가자.

작은이는 쌀 한 포대보다 무거운 큰어머니의 몸을 흔들며 눈가를 훔쳤다. 작은이의 눈물에 큰어머님도 마음을 다잡았는지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드셨다.

작은이야, 물 한 그릇 갖고 온나.

물 한 그릇을 다 마신 큰어머니는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작은이는 어머니께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만다꼬 날마다 산에 가노?

산에 안 가모 누가 우리 작은이 공납금 내 줄꼬.

그랬다. 어머니는 우리 집 상머슴이다. 아니, 동네 상머슴이다. 아니, 우리 집 밥순이다. 어머니가 벌어다 주는 돈이 없으면 우리는 굶어야 하고 나는 학교도 못 다닐 것이다.

아부지 밉다. 에나로 아부지 밉다.

작은이가 쫑알거린다.

떽, 그런 말 하모 못 써.

어머니 입에서 단내가 난다. 숨을 헐떡일 때마다 어머니 입에서 박하향기가 난다.

너거 큰어무이는 머 좀 묵었나?

옴마가 끼리 놓고 간 죽 도라캐서 준께 반만 묵고 내놓더라.

큰 옴마앞에서 니 내 보고 옴마라 쿠모 안 된데이. 그라네도 아푼 사람인데. 성나고로 하모 안 되것제?

알아.

작은이는 짧게 대답한다. 어머니는 한 손은 머리에 인 보퉁이를 잡고 한 손은 작은이의 손을 잡는다. 어머니 손은 갈퀴 같다. 아니 쟁기 같다. 울퉁불퉁한 나무둥치를 잡은 것 같다. 어머니의 숨소리가 더 거칠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밉다.

우리도 저 신작로 가에 살았시모 좋것다.

작은이의 말에 어머니가 묻는다.

와아?

옴마가 심들잖아.

작은이는 손이 아팠다. 어머니가 갈퀴 같은 손으로 작은이의 손을 너무 꼭 쥐었기 때문이었다.

작은이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학업성적도 좋았다. 선생님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안 된다고 딱 자르셨다. 여자는 많이 배우면 못 써. 니라도 집에 있어야제. 니 뿌인데. 일찌감치 혼인해서 외손자라도 둬야 너거 옴마가 죽어 눈을 감제. 작은이는 집을 뛰쳐나갔다. 그 길로 도시로 나간 그녀는 공장에 다니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큰어머님 초옥이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작은이는 가방을 꾸려 집으로 향했다. 큰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진지 십 년 동안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 어머니를 하녀로 부렸다. 큰어머니는 해가 바뀔수록 조금씩 더 추해지기 시작했다. 큰어머니의 눈은 뱀의 눈처럼 차갑게 변했다. 쪽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어머니에게 독을 품었다. 아버지는 큰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문간방에 기거했다. 당신, 내 옆에 와 자소. 안방 놔두고 와 문간방이오. 했지만 아버지는 병자 냄새에 골이 아프다고 했다. 큰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대소변도 스스로 못 가렸다. 어머니는 큰어머니의 병시중을 말없이 들었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큰어머니는 저 년이 들어 집안 망했다고 독을 품고 이를 갈았다. 아푸다. 좀, 다 죽어감서 손꾸락 힘은 와 이리 좋노. 어머니가 팔에서 큰어머니의 손을 떼어냈다. 기저귀를 가는 어머니의 팔을 어찌나 꼬집었는지 어머니의 팔에는 피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혹여 작은이가 큰어머니 앞에서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면 턱을 떨떨 떨었고 손을 부들부들 떠셨다. 어떻게 저 여자가 너의 어미냐고, 너를 키운 것은 나라면서 젖 빨린 것 밖에 없는 년을 어떻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니도 저것들과 한 통속이 되어 나를 죽인다고 악을 썼다.

작은이는 그런 집안 풍경이 싫어서 좀체 집에를 오지 않았다. 혹여 이빨 다 빠진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결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어디 참한 남자 있다는데 선이라도 보라고. 넌지시 의향을 물을 때면 면전에서 초전박살을 내 버렸다.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싫습니다. 딸은 어머니 사주 닮는다면서요. 아버지 같은 남자 만나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 같아 싫습니다. 자식 넷을 앞세우고도 정신 못 차리는 아버지 같은 남자 만날까 봐 싫습니다.

그랬는데. 그날 집으로 오는 버스 칸에서 만난 남자는 오래전부터 알던 남자였다.

상미 친구 작은이 맞지요? 다래골 사는........

머리카락이 희끗한 중늙은이가 먼저 운을 뗐다. 이웃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 상미의 오빠였다. 오래전 상처하고 남매를 키우며 혼자 산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남매도 장성해서 제 밥그릇 차고 나가 산다고 했다.

네에........상미 오빠군요. 상미 소식은 가끔 동창회를 통해서 듣고 있어요.

그렇게 그와 말문을 틔웠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자 알고 있다고, 자신이 상두꾼 중의 한 사람이라고 웃었다. 시골에서는 비밀이 없다. 이웃집 살강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벌이고, 일 년 기제사가 몇 번이라는 것까지 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세상이 바로 시골동네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작은이는 안 해도 될 말을 했다.

오빠도 재혼하셔야겠네요.

그러고 싶지만 요새 촌에 들어와 살려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더구나 나 같은 처지에. 돈이 있으면 돈 보고라도 와서 살아주겠다는 여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농사는 무슨 농사를 지어요?

몇 년 전부터 고사리 농사를 짓고 있지요. 칠선 아지매 덕이지요. 근래 들어 아지매도 건강이 많이 안 좋은 줄 아는데. 큰 아지매 간병하느라 힘드셨을 겁니다.

그래요. 큰어머님이 돌아가셨으니 한 짐 벗었지요. 저는 엄마가 오빠 집에 고사리 꺾으러 간다는 말씀 듣고 못 가게 했는데요. 이젠 울 엄마도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생활비 보내준다고 남의 일 다니지 말라고 해도 상우 오빠 네는 꼭 가야겠다고 하더군요.

그가 웃었다. 그 웃음에서 작은이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보았다.

어머니는 늘 고사리 집 상미 오빠 이야기를 했었다. 사람이 참 진국이라고. 혼자 살면서도 두 아이 참 반듯하게 키웠다고. 좋은 사람 있으면 재혼하라고 해도 아이들 어릴 때는 아이들 고생시킬까 봐 싫다고 하더니 두 아이가 번듯한 직장 잡아 나가자 누가 살림만 살아주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그 사람에게 시집오는 사람은 마음고생은 안 할 거라고. 세상이 아무리 돈 세상이라지만 여자는 남자가 아껴주면 평생 그 남자 바라보고 사는 것이라고. 남자가 부지런하니 먹고사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촌에 들어와 살겠다는 여자가 없어 안타깝다고.

그는 다음날 새벽같이 달려와 큰어머니 초상을 도왔다. 맏상제처럼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 주었다. 큰어머니 삼우제를 지내고 집을 떠나려는 작은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상오가 이번에 참 고생했다. 니가 대신 인사나 제대로 좀 하거라. 니가 시집을 갔시모 사위가 할 일을 그 사람이 대신해 준 기라. 참말로 고맙더라. 니 친구 오빠라 항게네. 내 대신 니가 인사를 해야제.

상오 오빠께는 제가 알아서 인사할 테니 걱정 마세요. 엄마가 마음병을 앓는 것 같아요. 이제 아버지께서 엄마 좀 잘 보살펴 주세요. 평생 고생만 한 엄마잖아요. 안 그러면 엄마는 제가 모시고 나갈래요.

알았다. 너거 옴마 살아온 과거사야 니가 더 잘 알끼다만 내가 차암 못할 짓 했다. 니한테 늘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니가 가장노릇 한다꼬 고생했는데. 인자 니도 존 사람 만내서 잘 살았시모 싶다. 애비가 니 볼 낯이 없다.

그러나 큰어머니 돌아가시고 49제도 끝나기 전에 어머니가 이상해지셨다.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국 끓인다고 빈 가마솥 앞에 앉아 불을 때기도 하고, 빨래한다고 이불을 싸들고 냇가에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온종일 넋을 잃고 고추밭에 앉아 푸른 고추를 따기도 했다. 오일장 간다고 나갔던 어머니를 경찰서에서 모셔오기도 했다. 어머니를 돌 볼 누군가가 필요했다. 작은 이는 고향에 눌러앉았다.

사람의 일생이란 참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참으로 별 것이기도 하다. 넓은 세상으로 나갔으면 넓은 세상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야 옳겠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누구에게나 귀소본능이 잠재 돼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고향을 떠나면서 동구 밖에 똥 한 무더기 싸 놓고 떠났던 사람도, 우물에 침 뱉고 떠났던 사람도 늙어 의지 가지 없어지면 고향으로 돌아올 꿈을 꾸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닐까.

작은이는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평생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며 밀고 당기던 끈이 한순간 뚝 끊어져버리자 어머니는 혼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큰어머니가 살아있어야 어머니의 존재도 아버지의 존재도 살아있는 것이었을까.

작은이는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수시로 상오의 도움을 받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가며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도 그가 도맡아 해 주었고, 농사 역시 그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봄빛이 완연해진 이듬해 봄에 작은이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어머니 대신 망태를 메고 고사리 밭을 걸었다. 어린 고사리를 꺾어 망태에 담으며 어머니의 한을 가슴으로 안았다. 손만 대면 톡 하고 끊어지는 어린 고사리를 품에 안으며 젖만 물리고 큰어머니께 보내야 했던 어린 자식들 생각을 했으리라. 열 달 품었다가 배 아파 낳은 자식으로부터 젖엄마니, 밥순이 아지매로 불려야 했던 어머니, 그 한 서린 마음을 고사리 밭에서 풀었으리라.

작은이는 빵빵하게 찬 포대 옆에 역시 배가 빵빵한 망태를 벗어 논두렁에 놓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산기슭 억새가 은빛으로 찰랑거렸다. 역광을 받은 나무와 풀이 은물결을 일으킨다.

딸아, 여자의 일생이란 말이야. 굽이굽이 넘어가는 맛에 사는 기다. 사람마다 다 고비가 있기 마련이지. 수십 고개를 넘다 보면 북망산을 넘어 망각의 강을 건너게 돼 있는 기라. 그제야 편안해지지. 나도 형님 따라갈 날이 머잖은 것 같구나. 내 죽고나모 너거 아부지 건사 잘해 주어라. 두 여자 거느린다고 너거 아부지도 심들게 살았다. 그놈의 정이 뭔지.

그렇게 온전한 정신으로 작은이를 걱정해 주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알록달록한 인조 뱀을 손에 꼭 쥐고 큰 어머니께 날마다 맞고 있다. 형님, 잘 못 했어 예. 인자 안 그러께 예. 아무도 때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눈을 희번덕거리며 어두운 구석을 찾아 웅크리고 있다. 한일 치매병동 605호실에는 과거만 있고 오늘도 내일도 없다.

작은이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꾀사리 꺾다가 뭔 생각을 그리 짚이 하요? 인자 꾀사리는 다 꺾은 상 싶은데.

가실할머니가 옆에 와 앉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옴마 생각이 나서 예. 할매, 다 꺾었어 예? 그라마 가입시더.

작은이는 가실할머니를 앞세우고 논두렁에 나 앉았다.

할매, 고생하셨습니더. 망태에 담긴 거는 포대에 붓지 말고 가지고 가이소. 자 이걸 더 담아 가서 삶아 말리모 제사 서너 번은 씰 깁니더.

작은이는 배가 불룩한 자신의 망태를 벗어 가실할머니께 내밀었다.

이렇게 많이 주모 손해 아이가. 올 꾀사리는 비쌀긴데.

괜찮아 예. 며칠 후부터 동네 아지매 세 분이 오기로 했십니더.

작은이는 오후 내내 잰걸음 친 3천여 평의 고사리 밭을 바라봤다. 고사리 밭은 다시 갈색으로 고즈넉하게 가라앉는 중이었다. 서쪽 산마루에 걸친 해가 주황빛으로 물들며 고사리 밭을 비추었다. 산 그림자 아래는 벌써 해거름이 덮어가고 있었다. 작은이는 고사리를 꺾는 내내 어머니의 기억을 떨치려고 애쓰며 애써 피했던 자귀나무를 바라봤다. 저 나뭇가지 어디에 아직 뱀의 몸뚱이가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봐도 희멀건 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무언가 나무아래서 움직인 것 같았다. 나무아래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누굴까. 어머니 같기도 하고, 큰 어머니 같기도 했다. 작은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면 설마 아버지가? 다시 눈을 껌뻑이며 쳐다봤다. 똬리를 틀고 앉은 뱀이었다. 아니, 큰어머니였다. 역광을 받은 나무둥치 옆에 웅크린 것은 분명 큰어머니였다.

작은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실 할매 저기, 저기, 짜구사리 옆에.

작은이가 고함을 지르며 손을 들었다. 자귀나무 쪽을 가리켰다. 가실할머니는 허리를 펴고 자귀나무 쪽을 쳐다봤다.

내 눈에는 암것도 안 뵈는데. 뭐가 있다는 기가?

저기 짜구사리 옆에 웅크린 것, 아니야, 큰어머니일리 없어. 우리 아부진가 봐. 아부지이~~ 만다꼬 나오셨소. 걸음도 센찮은 분이. 또 옴마한테 가자고요? 젊어서 좀 애끼지. 옴마는 인자 아부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진작 좀 잘 하지. 에쿠, 내 팔자야.

작은이의 눈에 눈물이 크렁크렁 맺혔다.

야야, 니가 헛걸 봤는 갑다. 저기 아무도 없어.

가실할머니는 작은이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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