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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사랑

<단편소설 - 황소개구리 다 죽었다. 처음>

by 박래여

<단편소설>

증도 사랑 (소제목 :황소개구리 다 죽었다.)

박래여


나는 펜션의 이층 구석방에 짐을 풀었다. 골방이지만 작고 깔끔했다. 무겁게 드리워진 커튼을 걷고 창을 열었다. 비릿한 갯내가 먼저 반겼다. 거무죽죽한 갯벌, 그 너머 노을이 떨어지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에 이어 갯벌은 조금씩 어둠에 묻혀갔다. 고요하다. 나는 창 쪽으로 엎드렸다. 방바닥이 서늘하다. 짭짤한 바다 냄새를 실은 바람의 숨결도 좋다. 이렇게 좋은 것을. 진작 다 버릴 걸. 내려놓지 못해 끙끙 앓던 것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가는 이 느낌이 좋다. 참 좋다.

‘자아, 지금부터 나팔 좀 불어야 안 쓰것나?’ ‘조오치. 좋아.’ 이어 아래층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녀 열 명이 떠들어대는 소리는 그대로 자유롭다. 집과 가족을 떠났다는 것이 저렇게 좋은지. 동네 부녀회에서 단체로 증도, 슬로시티 섬으로 1박2일 여행을 왔다. 남자 여섯에 여자 다섯, 두 팀은 부부다. 부부, 새삼스럽게 낯설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중에 딱 세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첫 번째 남자는 첫 키스의 짜릿함을 간직한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두 번째 남자는 꿈에 볼까 무서운 두억시니 얼굴로, 세 번째 남자는 불쌍한 마음 때문에 관솔이 박힌 고사목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언니, 내려오세요. 혼자 고독 좀 그만 씹으시고요. 이빨 상하니까.”

민경의 굵은 목소리가 고요를 깬다. 고독하긴 한가? 나는 픽 헛방귀 같은 웃음을 짓고 일어서려다 무릎을 꺾었다. 창밖 어디선가 ‘우웡우웡’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귀를 곧추세웠다. 황소개구리? 가슴이 달달 떨렸다. 고슴도치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누군가 덥석 내 목에 올가미를 건다. 나는 숨이 막힌다. ‘괜찮아. 내가 있잖나.’ 누군가 내 목의 올가미를 푼다. 순간, 황소개구리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나는 휴 숨을 내 쉰다. 그래, 그가 있지.

‘박준만 씨이~~~~’

나는 조그맣게 당신을 불러본다.

나는 황소개구리라면 치가 떨린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어하고 무서워한 적이 있다. 털 뽑힌 닭의 몸피처럼 나의 팔은 황소개구리란 말만 들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마치 그 골방에서 나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남자의 얽은 얼굴처럼.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은 패야 한다고 갈퀴 같은 손바닥을 쫙 벌려 나를 후려치곤 하던 남자, 작은 골방에서 지상낙원을 꿈꾸던 나에게 남자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하이드 같았다.

나는 남자로부터 도망쳤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복 없는 년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다. 부모 복도 없는 년이 남편 복을 바란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죽어라 돈만 움켜쥐었지만 돈 역시 늘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바람 빠지듯 빠졌다. 낮에는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설거지를 했고, 밤에는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했다. 어디선가 황소개구리가 나타났다는 소문만 들리면 소리 소문 없이 그곳을 떴다. 남자가 칼을 품고 나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몇 년을 그렇게 떠돌이생활을 하던 중 그를 만났다.

나는 헤르만헤세의 유리알유희를 생각했다. 나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창 물 오른 서른 즈음 새뜰이라는 작은 읍에 정착한 나는 여전히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했고, 밤에는 노래방 도우미를 했다. 신사도 빵점인 중년 남자들, 노래방 도우미로 불려 가면 치마 밑에 손부터 잡아넣는 못 된 버릇을 가진 남자들, 그중에 그는 신사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하는 그가 재미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수박 재배를 한다고 했다. 사십이 넘은 농촌 총각, 그는 노래방에 자주 왔고, 늘 나만 찾았다. 그는 착했다. 나는 조금씩 그에게 기울어졌다.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으로 면사포를 썼다. 눈물 나게 고마웠고, 눈물 나게 행복했던 몇 년은 그가 잡아온 황소개구리를 보면서 끝나버렸다. 그날 그가 잡아온 황소개구리는 큰 자라만 했다. 우둘투둘한 등을 가진 황소개구리는 나를 노려봤다. 나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이것도 내 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는 아내의 반응에 무심했다. 아니, 제 흥에 겨워 떠들었다.

“이게 말이야. 보약이야 보약, 푹 고아봐. 정력에 최고라는 거야. 또 있지. 야맹증에 최고라는 거야. 동네에 얼라가 없어서 그렇지. 얼라만 있다 카모 이거 몇 마리만 푹 고아 믹이모 약발 잘 받을 낀데. 내라도 무야 안 되것나. 혹 아나. 늦둥이 하나 맹글란지.”

나는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의 장광설은 계속되었다.

“내가 이래 봬도 애국자다. 저것이 토종 개구리와 토종 괴기들 씨를 말린다 안 카나. 이래 잡아 무모 제까진 기 씨를 내리 것나. 니는 마, 애국자 남편하고 사는 걸 고맙다 생각해라. 퍼뜩 도마하고 칼 가지고 온나. 이거 장만해서 술 한 잔 더 해야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렁에 걸린 호미를 내려 삽짝을 나섰다. 그는 나의 등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야, 니 오데 가노? 이거 장만하라쿵께. 서방을 핫바지로 아나. 사람 말을 우찌 알고. 아 새끼 배태도 몬해 봤담서 성질만 살아서. 니 겉은 여자가 내 겉은 서방 징기고 사는 기 오감체. 그걸 알모 지가 고분고분해야 할 낀데. 저거는 간이 배 밖에 나왔다 카이.”

그의 목소리가 뒤통수에 따라붙었지만 금세 구시렁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를 이기 물라 쿠는 내가 병신이제’ 골목에 접어들다 말고 힐끗 돌아보니 그는 부엌으로 들어 가 칼과 도마, 냄비를 챙겨 나온다. 황소개구리를 담은 그물망태기를 들고 마당가의 수도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참 별일이다. 황소개구리하고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남.”

그는 중얼거리며 황소개구리의 내장을 들어내고 속을 씻는다.

그는 나와 한 약속을 생각할지 모른다. 과거 묻지 않기, 손찌검은 단 한 번이라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음. 그는 과거는 흘러갔으니 돌아볼 필요도 없고, 손찌검 같은 것은 자기 사전에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 했다. 그렇게 약조를 하고 결혼을 했지만 그는 그 약조를 금세 잊어버렸다. 여자는 결혼 초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고 주변 친구들의 속닥거림에 넘어갔다. 작은 티에도 트집 잡아 손찌검 몇 번 하면 여자는 나긋나긋해진다고.

햇살 좋은 봄날, 술에 절어 집에 온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손찌검을 했다. 날 죽이라며 길길이 날뛴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반 미친 여자처럼 입에 거품을 물었다. '오늘이 니 제삿날이다. 이놈아.'부터 시작해 ‘니가 날 때려? 오냐, 니도 한 번 맞아봐라.’하며 그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고, 웃옷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광란에 빠진 나를 보며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순간 ‘절대로 손찌검은 안 됨’ 약조가 섬광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고스란히 맞았다. 비록 키도 나보다 컸고, 몸도 나보다 두 배는 실했지만. 그날, 그를 흠씬 두들겨 패 놓고 나는 약조를 어긴 너랑 안 산다며 집을 나가 버렸다. 한 달 동안 그는 나를 찾아 미친놈처럼 사방천지를 헤맸다. 나중에 동네 형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한 달 후, 나는 들꽃을 한 아름 꺾어 안고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잠깐 이웃집에 마실 다녀오는 여자처럼. 삽짝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의 곁을 스치며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 말 마. 여기서 한 마디만 하면 이 길로 돌아 나가서 진짜 너하고 끝낸다.”

그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덥석 안아주었다. 그의 품은 언제나 너르고 따뜻했다. 나도 그를 받아들였다. ‘황소개구리란 말만 들어도 싫어. 황소개구리가 이 지구상에서 싹 사라졌으면 좋겠어.’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그의 등을 때렸다. 그는 내 볼에 뜨거운 입술을 댔다. 그 후 욱하는 성질머리에 손바닥을 쫙 펴는 시늉은 했지만 손찌검은 없었다. 대신 그의 주사는 더 늘었다. 친구들끼리 틈만 나면 황소개구리를 잡아 친구 집에서 잔치를 벌였지만 내 앞에서는 입을 싹 닦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술에 만취된 채 트랙터를 몰고 무논을 갈다가 잠이 들어 트랙터와 함께 논두렁 아래로 처박힌 적도 있고, 친구 집 안방에서 자다가 실례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황소처럼 무지막지하게 울던 황소개구리가 동네 저수지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 것이다. 황소개구리가 사라진 것과 같이 그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굳이 그를 찾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알 바 아니었다. 그랑 살면서 터득한 것이라면 그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이 걸렸지만 이번처럼 3개월째 소식이 없기는 처음이다. 오겠지. 안 와도 그만이고. 박준만이 없다고 내가 못 살 것도 아니고, 농사 못 지을 것도 아니다. 내 이력을 제멋대로 꿰는 동네 노인들의 입방아 정도는 이십 년 촌부로 살고 나니 바뀌어 있었다. 박준만이 장가가서 사람 됐다는. 애가 없어 안타깝다는. 어디 가서 애 하나 만들어다 줘도 잘 키울 여자라는.

“니도 내 꼴 보기 싫어 집 나갔제? 하늘 겉은 남편을, 그것도 술에 취해 몸도 몬 가누는 남편을 두들겨 패 놓고 나갔다 왔제? 인자 내가 나갈 끼다. 니가 속 좀 썩어 봐라.”

언젠가 그가 집을 나갔다 보름 만에 돌아와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가소. 속 안 썩어요. 오히려 속 시원하니까. 언제든 나가소. 안 말리요.”

나는 피식 웃었다. 어린애 같은 남자였다. 칠삭둥이 한명회는 나라를 쥐락펴락 했는데. 그는 칠삭둥이가 아니라 다운 증후군을 가진 사내 같았다. 힘이 셌고, 술을 안 먹을 때는 없지만 우직하게 노가다는 잘했다. 힘으로 하는 일은 꾀도 안 부리고 잘했다. 그가 나를 못 버리는 것도, 내가 그를 못 떠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만 모르겠다. 젖어 사는 것인지.

어쨌든 그는 나를 떠나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지나자 안달이 났다. 내가 그를 기다린 것인지 내 몸뚱이가 기다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독히 외로웠고, 지독히 서러워서 그를 기다렸다. 이 남자 나타나기만 하면 북어 패듯 패버릴 것이라고 이를 갈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그에게 의지하고 사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나를 감싸주는 벽이자 기둥이었다. 그에게 잘 한 점보다 못한 점만 생각났다. 어디서 여자 꿰차고 누워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라고 아무리 도래 질을 해도 한 번 든 의심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믿는 편이 나를 위해 나았다.

‘당신 돌아오기만 해라. 황소개구리를 들통에 가득 잡아와도 내가 요리해 줄게. 이제 황소개구리 무섭지 않아. 당신 안 오는 게 더 무서워.’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하다가

‘그래, 딴 년 하고 잘 먹고 잘 살아라. 애도 없으니 거치적거릴 것도 없겠다. 잘 됐네. 뭐.’

체념한 척도 했다. 이럴 때 진짜 아이라도 한 명 있었으면. 그를 닮은. 나에게 절실한 문제였다. 나도 한 때 아기를 원했다. 부부 사이에 아이는 필수 아닌가. 그 필수가 황소개구리 같은 남자로 인해 파괴된 것이라면, 비정상적인 자궁으로 인해 착상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면 나는 그에게 평생 속죄하고 살아야 마땅하다. 그가 단지 황소개구리를 잡아 왔다고 밀쳐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저수지의 황소개구리 씨를 말렸으면 됐지 당신까지 사라질 게 뭐냐고 따져 봐도 바람 빠진 풍선 꼴이다.

그가 사라지던 날이 총천연색처럼 선명하다. 친구들과 숲에서 영양탕을 끓여 먹기로 했단다. 개고기를 삶는 것이 아니라 황소개구리를 족대로 건져 개구리백숙을 해 먹을 참이라는 것이었다. 늦게 올 테니 기다리지 말라며 족대와 큰 들통을 들고나갔다. 늦게 온다던 그가 해 질 녘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술기운도 없었다. 완전히 허탈한 모습이었다. 몸에 있던 기운이 쑥 빠져나간 허깨비 같다고나 할까. 뭔가 꼬였구나 싶어 눈치만 살피는데 그는 마당가의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어쩐 일이요? 벌써 오다니.”

“이상하데. 진짜 이상해, 사라졌어. 전부 싹쓸이 사라졌어.”

“뭐가?”

“황소개구리”

“당신은 안 사라졌잖아.”

“나도 갈 때가 됐어.”

“갈 때가 됐다니.”

“나갔다 올게.”

“어딜?”

그는 족대를 마당에 던져 놓고 입은 옷 그대로 휘적휘적 삽짝을 나갔다. 출가는 저렇게 한다던데.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 ‘삼겹살 구 묵고로 퍼떡 오소.’ 소리쳤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텃밭으로 나갔다. 나 역시 왠지 기운이 쑥 빠졌다. 그의 축 처진 어깨가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상추와 쑥갓을 따고 풋고추 몇 개 땄다. 저녁밥상에는 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삼겹살이라도 구워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돼지고기 삼겹살은 딱딱하게 굳어 개를 포식시켰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천적이 사라진 무논에는 다시 토종개구리가 울고 밭고랑에도 수시로 뛰어다니고, 비 오면 밤길에 아스팔트에 수도 없이 나와 차바퀴에 널브러지는 토종개구리를 보면서 황소개구리가 진짜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황소개구리를 잡던 족대도 두고 입은 옷에 집을 나간 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벌떡 일어나 테라스로 나갔다. 황소개구리가 어디서 우는지 살폈다. 설마 바닷물에 들어가 살진 않겠지?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다, 어둠살에 눈이 익자 펜션 앞의 바다 옆에 작은 못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황소개구리는 그 못에서 우는 것이었다.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나.’ 문득 그 말이 귀를 스쳤다. 황소개구리는 네 발 달렸는데. 아무리 황소개구리라지만 한 주먹 밖에 안 되는 것이 어떻게 이 섬까지 왔을까.

나는 반소매 위에 소매가 긴 남방을 걸치고 살그머니 펜션 밖으로 빠져나왔다. 멀리서 찰싹찰싹 갯벌을 때리고 가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차량 한 대 다니지 않는 바닷가는 조용하다 못해 적요하다. 슬그머니 펜션 숲을 돌아봤다. 방마다 불이 환하고 테라스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행객을 본다. 모두 집을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에 한껏 취한 마음일 게다. 나는 펜션 숲을 벗어나 큰길을 따라 걸었다. 텅 빈 길이다. 사람도 차도 없다.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다. 저기 숲이 있는 짱뚱어 다리까지 갈 수 있을까. 은근히 어둠이 겁난다.

나는 내리막 길 앞에서 망설였다. 몸통이 굵은 가로수가 짱뚱어 다리로 가는 길 양쪽에 길게 줄을 섰다. 황소개구리가 우웡우웡 더 크게 더 시끄럽게 울었다. 작은 둠벙은 바로 지척에 있었다. 갯벌과 만나는 자리, 갯벌 둑길을 걸어 둠벙 쪽으로 가려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풀이 무성한 둑길이 와락 달려들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걸었다. 황소개구리울음이 따라왔다. 다리가 저렸다.

길 옆 언덕배기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란 팻말이 서 있다. 그 앞에 긴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나는 나무의자에 가서 앉았다. 갯벌은 어둠에 반사되어 반질반질 빛이 난다. 바닷물이 들어온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작은 둠벙에서 황소개구리가 자꾸 울며 따라왔다. 마치 ‘여보, 나 여기 있소. 황소개구리에게 잡혔어.’ 허우적대는 그가 보인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첨벙, 첨벙, 갯벌을 두드리는 소리, 갯벌은 잠들지 않는 천년의 숲 같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황소개구리울음소리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의 볼을 스쳐가는 바람이 끈적끈적하다. 끈끈하게 달라붙는 유월의 바람, 눈을 떴다. 어둠에 눈이 익어도 보이는 것은 회색빛이다. 멀리 언덕 위에 반짝거리는 불빛이 꼭 바닷길을 비추는 등대의 불빛 같다. 갯벌을 채우는 소리는 밤새 몽유병자처럼 바닷가를 배회하는 사람에게나 들리는 음악일까.

바다는 아침이면 다시 질퍽거리는 진흙탕만 남아 그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게와 망둥어의 애교스러운 몸짓을 보게 될 것이다. 진흙 팩이 피부미용에 좋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얼굴과 몸에 진흙을 진탕 바르는 진풍경도 봤다. 이 바닷가에서도 그런 질펀한 축제가 벌어지지 않을까.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 증도는 그렇게 황소개구리울음으로 나 가슴에 들어왔다.

“옆자리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먼 미로 속을 돌아 나온 목소리 같았다. 낯익은,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듯한.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반짝거리는 은파가 확 달려들었다. 어둠을 밀어내는 파도소리가 저렇게도 들리는구나. 했는데 ‘옆 자리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등 뒤를 봤다. 거기 나의 등 뒤에 어떤 남자가 서 있다. 남자의 그림자가 나의 얼굴로 쏟아졌다. 남자의 등 뒤, 길 건너편에 서 있는 주홍빛 가로등이 환하게 빛났다. 나는 가로등이 눈부시다는 것을 처음 안 것처럼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지 마세요. 나는 그저 말동무가 필요할 뿐인데.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남자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낯선 외간 남자니까 겁낼 수밖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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