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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

<짧은 소설>

by 박래여

<짧은 소설>


그림 한 장


문학상 심사를 하는 날이다. 우리 군의 별관에서 심사는 진행됐다. 전체에서 뽑혀 올라온 십여 명이 예심을 통과했다. 예심에 오른 작품을 본심 심사위원 다섯 명은 아침부터 눈이 시리도록 문장을 읽고 있다. 본심은 예심을 통과한 작품 중에 딱 두 작품만 뽑아내야 한다. 지역문학상으로서는 상금이 두둑하고 기성 신인 구분 없이 받은 작품이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어떤 작품이 심사위원의 눈에 쏙 들어오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감독관인 문학상 운영위원장은 현장에 있고 김 국장은 심부름하기에 바쁘다. 과일과 차와 과자를 일회용 쟁반에 담아 심사위원 석에 나르고, 이 회장과 찬조 출연한 우리 문학회 회원 대여섯 명은 강당 밖 복도에서 대기 중이다.

팔월 장마는 뜨겁다. 햇살은 짱짱하고 후덥지근하다. 모두 건물의 처마 밑 그늘에 있지만 불구덩이 앞에 나앉은 것 같다. 저마다 손에 잡히는 것으로 부채를 만들어 부친다. 손수건, 휴지를 꺼내 땀을 닦는다. 햇볕이 살짝 구름 속으로 숨을 때는 그나마 살만하다. 화창하던 하늘이 어둑해진다. 순식간에 캄캄해지는 하늘,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금세 와달비가 쫘르르 쏟아진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심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서성대는 우리 회원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올해도 좋은 작품이 선정되어야 할 텐데.”

박 과장이 긴 나무의자에 기대앉아 다리를 건들거리며 말한다.

“심사위원들이 실력자라 좋은 작품이 뽑힐 것 같은데요.”

안 시인이 희망적으로 말하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쏟아진다. 본심이고 예심이고 심사위원들은 초장에 손 전화까지 압수당한다. 사심의 여지가 끼어들 틈을 안 준다는 취지다. 응모 작품에는 응모자 개인의 어떤 흔적이 있어도 사전 탈락이다. 공정에 공정을 기해야 글쓴이나 글을 뽑은 이나 당당할 수 있다.

“그나저나 노인이 깨알 같은 글씨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본심에 올라온 사람만 열 명이 넘는데. 시만 해도 한 사람이 일곱 편 이상이고. 소설이나 수필은 더하고!”

“몸이 그렇게 안 좋으면 심사 위촉이 와도 사양했어야지. 우리가 그분 상태를 알 수도 없었는데. 안타까워요.”

손 시인이 별관을 힐끔거리며 말한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느는 게 뭔지 아는 사람?”

박 과장이 웃으며 말한다.

노인 한 분이 심사석에 앉았다. 몸이 불편한 어른이셨다. 뇌졸중을 맞아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심사장에서 뵙고야 알았다. 육체적 병을 앓는다고 정신적 가치도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연륜만큼 작품의 진미를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노인이 몇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깨알 같은 문장을 읽어내기가 곤혹스러울 것 같아서 모두 마음이 된 거다.

그러나 젊은 문우들은 너나없이 노탐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노탐은 남에게 인정받길 원하고, 누군가 불러주길 원하고, 누구에게나 자기 뜻이 관철되길 원하고, 뒷방 노인으로 치부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탐욕은 나이와 상관없다. 나이테만큼 강해지는 것이 탐욕 아닐까. 나도 노인 석에 입문한 나이라 사람들 입방아가 불편하다. 나도 슬슬 문학회 모임에서 빠져주는 것이 후배들을 위하는 것이 아닐까 심적 고민을 할 때가 많다.

“예심에 실력 있는 작가들을 불러야 해. 그래야 좋은 작품을 뽑아낼 수 있어. 예심 심사비를 본심 심사비보다 더 줘야 해. 예심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한 사람이 수십 편의 응모작 원고를 다 봐야 하잖아. 소설 같은 경우는 이틀에 걸쳐 봐야 해. 제대로 된 작품 뽑기가 가능이나 하겠어? 올해처럼 중편이 무더기로 들어오고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이 많을 때는 더 어렵지. 수필도 엄청나던 걸.”

“이번에는 수필과 소설 응모작이 유난히 많아. 누가 될지 기대된다.”

저마다 한 마디 씩 하는데

“복불복이겠지.”

손 시인이 툭 던지는 한 마디에 좌중이 조용해진다.

“맞아요. 복불복, 어제 나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소설 예심은 심사위원을 두 명쯤 더 늘려야 해요. 이틀이 걸리니까 죽겠어요. 하룻밤 호텔비와 밥값도 더 나가야 하고. 올해는 중편 소설이 많아서 예심 선생님들도 힘들었어요. 아침 아홉 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 저녁 다섯 시 반에 끝났어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심사위원 옆에 다과 준비를 해 놓고 나온 김 국장이 하소연을 한다.

“군수에게든 예산편성 위원회든, 운영위원회든 건의를 합시다. 문학상 예산에서 심사비를 더 늘려서라도 소설 부문 예심 심사위원을 두 명 정도 더 위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심사위원을 위촉하는데도 노땅보다 젊고 실력 있는 문인을 불러옵시다. 상금이 두둑하고 심사비도 두둑한데 올 사람이 많을 거 아니요.”

손 시인이 목소리를 높인다.

“쉿, 안에 들린다.”

이 회장이 입술에 손을 댄다. 이 회장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속삭이는 것처럼 말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예산 편성하는 위원회 사람들이 문학을 알아야지. 문학이 살아야 그 지방의 역사나 인물이 살고 그 지방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걸 몰라요. 무조건 반대야. 우리가 올린 추경 예산도 삭감해 버리더라고. 쓸데없는 동네 축제에는 큰돈을 주면서도 전국적으로 우리 고장을 알리는 문학상 공모는 떨떠름한 반응이라고. 뭔 돈을 그렇게 많이 써야 하느냐고 따지니. 그러니 돈 이야기를 더 할 수는 없어. 우리가 고생을 해도 이 문학상 공모전은 해를 거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맞아요. 전국적으로 우리 군이 문학상 때문에 많이 알려졌어요.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까지 작품을 보내더라고요. 올해도 외국에서 작품이 여러 편 들어온 걸로 알고 있어요. 공모전에 들어온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대충 봤는데. 대부분 등단 작가에 난다 긴다 하는 신춘문예나 큰 문학상을 받은 기성작가가 많더라고요. 신인보다. 지난해 투고한 작품을 손 봐서 또 투고한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전화를 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데 작품을 냈다고 잘 봐 달라는 사람도 있고요. 심사는 우리가 안 하고 외부에서 심사위원을 위촉해서 공정하게 한다고 했지만. 별별 사람이 다 있어요.”

김 국장이 한심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다.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 거기에 두둑한 상금까지 따른다면 도전해 볼만하다. 당선만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글쟁이는 가난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작가로 이름을 올린 문인만 5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그중에 원고료만으로 먹고사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전업 작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이런 마당에 큰 상금이 걸린 공모전에 욕심이 안 나면 문학에 대한 열정이 없는 작가 아닐까. 공모전에 당선되면 자신의 재능도 인정받아 좋고, 돈이 생겨 좋고, 약력이 한 줄 더 화려해져서 좋다. ‘나 이런 사람이오.’ 명함을 돌려도 목에 힘이 들어가 좋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는 문학 지망생이 존재하는 한 그렇다. 욕망은 다다익선을 좋아한다.

“요즘은 문학에도 젊은 작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잖아. 우리 회원만 봐도 그래. 옛날부터 문학한다면 밥 빌어먹기 딱 좋다고 했으니 누가 돈 안 되는 글 나부랭이 잡고 늘어지겠어. 이십 대 젊은이 중 작가가 꿈이라면 희귀종 같아.”

“그래도 우리는 글을 쓰잖아. 글을 안 쓰면 자기가 죽을 것 같으니까 쓰는 것 아니겠어?”

“맞아. 이런 공모전에 도전해 보는 것도 꿈이지. 누가 당선될지. 참 좋겠다.”

“상금에 욕심내면 탈락이야. 작품성이 우선이니까.”

저마다 목소리를 낮추면서 수다를 떠는데

“좋은 작품이 뽑혀야 할 텐데. 작품성이 우선이지만 우리 지역의 문화재나 인물, 역사에 대한 위상이 살아있는 작품이면 더 좋겠지. 올해는 유난히 기성작가의 응모 수가 많은 것 같던데. 상금의 유혹 때문이라 생각하면 좀 씁쓸하긴 하지만 그 상금의 유혹이 없다면 누가 신경 써서 공모에 응할까. 나도 공모전에 몇 번 도전했다 물 먹고 말았지만 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안달 날 때가 있더라. 좋은 작품 만나면 위축도 되고, 왜 나는 이런 글을 못 쓰나 한심해지기도 하고. 돈도 안 되는 이런 시를 왜 쓰나 하다가도 또 쓰고 있는 나를 봐.”

공직에 있으면서 시를 쓰는 박 과장이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거 봐요. 시를 안 쓰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어서 쓰는 거잖아요. 공모 전? 포기하지 말아요. 계속 고 해 봐요. 미리 포기하면 후회만 남는다. 퇴직하고 느긋해지면 열정적으로 써 봐요. 당선되고 안 되고는 복불복이라고 하잖아요.”

안 시인이 부추긴다.

“나는 됐고 우리 딸이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문학회도 늙었네. 자식들 혼사 문제가 수시로 거론되는 걸 보니. 요즘 애들이 결혼을 안 해서 탈이잖아요. 싱글로 살길 원하고, 결혼을 해도 애 안 낳고 둘이 잘 먹고 잘 살자 주의가 팽배한 것 같더라고요. 우리 애도 장가갈 생각을 안 해 걱정이지요. 공부만 하고 싶대나. 부모 등골 휘는 줄 모르고 저거들 하고 싶은 것만 찾아요. 공무원 시험 본다고 학원에 다니네요. 공부를 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애들이 부모 경제는 더 잘 안다잖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럴 거야. 나도 걱정이야. 퇴직은 다가오고 아내와 자식은 아비를 돈벌이 기구로만 보고.”

“우리 애는 인문학이랍니다. 뭘 해 먹고 살 건지. 제 밥벌이나 했으면 좋겠어요.”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 씩 한다. 순간 번쩍, 번갯불이 비쳤다. 이어 천둥이 유리창과 천장을 박살 낼 것 같다. 모두 움칠한다. 지은 죄도 없으면서 움츠려든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든다. 거기 모인 여남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본심이 진행되고 있는 강당 쪽으로 눈을 돌린다. 모두 삐질, 삐질 묻어나는 땀을 닦는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삽시간에 쫙쫙 쏟아진다. 빗방울의 난타를 피해 벽 쪽으로 피신했던 나는 시원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 심사위원들 신경 안 쓰고 농담도 하고 수다도 떨 수 있는 냉방기 빵빵한 방이면 더욱 좋겠다.

“우리 자리 옮길까요? 자료실로. 거긴 에어컨이 빵빵한데.”

이심전심이 통했다. 멋쟁이 안 시인이 고맙다.

“그럽시다.”

김 국장과 이 회장만 남고 모두 자료실로 옮긴다.

나는 인터넷으로 소설과 시조 심사를 보러 온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한다. 심사위원 다섯 사람 모두 교수란다. 명예 교수, 현직 교수, 국문학을 가르치는. 나는 그중에 딱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했다. 오십 대 초반과 중반의 두 남자는 스카이 대학 국문학과 교수다. 한 사람은 시인, 한 사람은 소설가. 두 사람 각자 세상에 내놓은 저서만 해도 열 권이 넘는다. 신춘문예 출신 작가에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럽다. 부러운 들 어쩌라고 체념도 따른다.

나는 두 심사위원을 비교분석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시를 쓰는 사람은 성격이 활달해 보였고 밝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사람을 조금 꺼려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가의 품성은 시인과 달리 내적인 어둠이 있기 마련 아닐까. 내 판단일 뿐이고, 판단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감성을 가졌다. 시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동화든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을 때 살맛이 나는 인간, 세상을 새끼줄처럼 보든 줄자처럼 보든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매혹되어 사는 사람들,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 공통성이 아닐까.

“모두 뭐 마실래요? 난 원두커피 연하게 먹고 싶은데.”

안 시인이 종이컵에 커피만 넣은 일회용 커피를 붓고 온수기에 댄다.

“나는 다방 커피”

박 과장이 말하자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반복한다. 설탕과 커피와 프리마가 적당히 섞인 일회용에 입맛을 빼앗긴 것이 언제부턴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냥 먹는다. 저절로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생수를 사 먹는 것도, 일회용 커피를 마시는 것도, 편의점에서 한 끼 음식을 사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익숙해진 현대 사회다. 한 때 집 밥이 대세라더니 지금은 혼 밥이 대세란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문학과 닮은꼴 같다. 문학도 지독한 혼 밥이지만 가끔은 문우들끼리 어울려 집 밥을 먹고 싶어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집 밥도 혼 밥도 나라는 존재 하나에 속해 있다. 무엇이든지 편리를 좇아 길드는 것에 익숙한 사회다. 문학도 여럿이 짜 맞추기식 작품을 생산하는 모임도 있다니 혼 밥도 달라질지 모르겠다.

공모전에 내놓은 작품도 온전한 혼 밥일까? 스승과 문우가 있어 서로 나누어보며 지적받고 수정하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작품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 덕에 미흡한 부분을 고쳐 온전한 작품으로 만든다고 그 사람 작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맹물 같은 블랙커피에 크림, 설탕을 적절하게 가미해 고소하고 달달하게 만든 믹스커피는 누구든 맛있다며 먹지 않는가. 다만 남의 지적에 의지해서는 자기만의 글이 나올 수 없다. 배우고 깨쳐 독창적인 자기만의 글을 써야 한다. 남 따라 장에 가다 보면 나는 없고 남의 모방한 글만 나올 뿐이다. 믹스 커피보다 자기 색깔의 에스프레소를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작가가 아닐까.

모두 커피를 마시며 침묵한다. 침묵이 어색하다. 누군가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작품이 뽑힐까. 당선자는 좋겠다. 어떤 사람인지. 분명 꿈도 꿨을 거야.”

“나중에 당선작이 나오면 알겠지. 누구나 공감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야. 시어와 문장이 살아있고 신선한, 바다에서 갓 낚아 올린 고기의 비늘처럼 빛나는 그런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뽑히겠지. 어떤 심사위원이 작품을 심사하느냐에 따라 당선작도 달라지는 것 같더라.”

“각자 취향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작품을 보는 눈은 비슷해. 아무리 작품이 많아도 그중에 눈에 탁 띄는 작품 한두 편은 있기 마련이야. 누구나 읽어도 좋다고 할 만큼. 우리 모두 글쟁이란 명찰을 단 사람들이잖아. 작품을 보는 안목은 비슷하지 않을까.”

“어쨌든 본심에 오른 작품은 어떤 작품이 당선작이 되던지 별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누가 됐든 그 사람 복인 거야.”

“그렇지. 누군지 벌써부터 부럽다.”

안 시인이 솔직하게 인정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한 때 열심히 공모전을 기웃거린 적이 있다. 공모전에 작품을 보내 놓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젊은 날,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었다.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며 몇 번 큰 상을 받은 적도 있고 두둑한 상금도 탔었다. 내 작품이 당선작으로 떠올랐을 때는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여전히 무명의 지역 작가 반열에 있을 뿐이다. 작가라는 명찰을 달고 있지만 빛바랜 명찰이다. 이순이 넘은 지금도 글에 대한 목마름과 절망을 수시로 경험한다. 접어버릴 수 없어 천형이라 생각한다. ‘글은 누가 알아봐 달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쓴다.’라며 나를 다독인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없는 것 같아서 글을 쓴다. 나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글에 대한 목마름이다. 그만큼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재능 없음에 한 표를 더하고 체념할 때가 많지만. 인정하긴 아직 싫다. 거기 들러리로 서 있는 우리들 모두 그렇지 않을까.

“하이! 심사가 막바지에 다다른 것 보고 왔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아. 다들 저녁 먹고 헤어지는 것 알지?”

손을 흔들며 자료실로 들어서는 이 회장의 표정이 개구쟁이 소년 같다.

“그분은 왜 심사를 하겠다고 허락했을까? 그렇게 몸이 안 좋은데.”

늘씬한 키에 옷을 멋지게 입는 안 시인이 안타깝다는 듯이 또 그 말을 한다.

“안 시인은 아직도 그 어른을 못 내려놓았네. 그 마음이 예뻐 이야기 하나 해 주지.”

그러면서 이 회장은 좌중을 둘러본다. 좌중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이 회장을 바라본다. 책상 위의 종이컵이 비었거나 반쯤 묽은 커피가 담긴 채 역시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놓여 있다.

“두 스님이 길을 떠났어. 제법 깊은 냇물을 건너야 하는데 예쁜 여인이 물을 못 건너고 있는 거야. 여인은 두 스님에게 자신을 업어서 건너 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 한 스님은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지. 다른 스님은 선뜻 여인에게 업히라고 등을 내밀었지. 그 스님은 여인을 건너편 냇가에 내려주고 가던 길을 갔지. 한참을 가다 여인을 내친 스님이 다른 스님에게 물었어. 어떻게 불도를 닦는 스님이 외간 여인을 업어 줄 수 있느냐고. 그 말에 다른 스님은 웃으며 말했지. 나는 진작 그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있는가. 비유가 어째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안 시인 그만 내려놓지. 작품을 읽는 그 어른의 눈빛이 참 진지하고 깊던 걸. 아주 신나 하셨어.”

“글쟁이들 속에는 자라지 못한 순수한 아이가 한 명씩 있기 마련 아니겠소. 내 이름이 문단에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

“그렇지.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거야.”

“우리도 그렇게 노인이 될 텐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누군가로부터 잊어지는 일이래요.”

“맞아, 맞아.”

모두 한 마디 씩 하며 차를 마시고, 밀감을 먹고, 비스킷을 먹었다.

살짝 여며 놨던 자료실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나도 다방 커피 한 잔 주시오.”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은 뜻밖에 문학상 운영위원장이다. 안 시인이 서둘러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넸다. 운영위원장은 우리를 쭉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심사는 그럭저럭 다 끝나가요. 시와 시조가 젤 먼저 끝날 것 같네요. 사실 심사위원 위촉하기가 참 어려워요. 명단을 쭉 뽑아놨다가 심사 하루 전에 연락을 하는데. 대부분 일정이 잡혀 있어 힘들다는 말을 듣는 게 다반사지요. 미리 연락해 줄 수 없느냐고도 해요. 근데 공모전이다 보니 비밀이 샐까 봐 미리 연락을 해 놓을 수가 없는 거야. 참석하겠다면 당연히 고맙다고 해야지요. 오늘 본심심사위원으로 모신 저분은 스카이 대학 명예 교수님이지요. 서울에서 저 몸으로 여기까지 오신 것만 해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어떤 분인가는 모두 아실 거요. 저 어르신을 모시고 온 분이 저분의 제자랍니다. 모 유명출판사 편집장이기도 하고요. 불편한 몸으로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시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문학에 대한 애정이나 안목만큼은 대단한 어른이지요. 좋은 작품을 선정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모두들 숙연해졌다.

나는 슬그머니 자료실을 나왔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볕도 조금씩 뜨거운 위력을 잃어간다. 계절의 순환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올해만 유난히 뜨겁고 가물다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연례행사다. 해마다 여름은 뜨겁고, 가을은 더디 오는 것 같지만 항상 돌고 도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조락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인간이 할 일이다. 누가 대상을 받든 못 받던 문학에 뜻을 둔 사람은 행복하다. 크고 작은 공모전에 작품을 보내려고 밤낮을 잊고 심혈을 기울이며 작품을 다듬고 또 다듬는 시간이 애정이고 사랑이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살다 죽는다.

인연은 돌고 돈다. 초야에 묻혀 살아도 자신이 행복하면 된다. 일자 무식꾼도 성인의 반열에 들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배움의 장이요. 스승이다. 나는 조용히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인생살이도 복불복이다. 누구든 자신이 그린 그림 한 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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