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단편소설>
전화 속 풍경
박래여
농사꾼 아낙인 명희가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기 시작했다.
나, 미치겠다. 무슨 인간들이 저렀는지 모르겠네. 숨이 턱턱 막힌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을 덜덜 볶는다. 볶아, 저 인간들 어쩌지? 너 알지? 우리 집 앞으로 길 나는 것. 우리 집이 반쯤 들어가게 생겼다는 것 알잖아.
알지, 남들은 돈벼락 맞게 됐다고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것도 알지.
너까지 약 올리고 싶니? 그 보상금으로는 동네 헌 집 한 채도 못 산다.
그러니까 끝까지 버티라고, 민원 제기도 당당하게 하면서.
버티자니 내가 먼저 죽겠다. 참말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겠고. 감옥살이하는 기분이다.
감옥이 아니고 우물 안이겠지.
우물 안 개구리?
그래, 힘없고, 빽 없는 민초는 늘 당하고만 살잖아. 당하기 싫음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든든한 백 찾아서 돈뭉치라도 디밀어 보고, 담당 공무원이나 건축업자 대가리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사면서 사정해 봐.
그런 소리 마라. 뇌물 수수 죄에 걸려 감옥 간단다.
기가 막혀서, 그러니까 너는 안 돼. 구더기 무서워 장도 못 담그잖아. 하긴 그래. 그 짓도 해 본 놈이 하지. 너 같은 맹추가 그런 요령 부릴 줄 알았으면 진작 그 골짝 벗어났겠지.
너까지 너무 그러지 마라. 심란하다. 안 그래도 기가 막혀 죽을 맛인데.
그러니까 죽치고 있지 말고 뭐든지 해 봐.
무얼 하겠니.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는데.
그럼 그냥 수용하고 말든가.
그러자니 너무 억울해. 군민을 위한 길이라면서 왜 개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찾아가 따지라니까. 그들보고 손해 보라고 해. 요즘 관공서가 옛날보다 더 썩었다고 하더라.
아니야, 청렴결백한 공직자에게 주는 상도 받았다던데. 우리 군에서.
너 달나라 갔다 왔어? 겉만 번지르르하게 달라진 거야. 그 알맹이가 어디 가겠어. 제 자리에서 돌림놀이 할 뿐이래. 적어도 윗대가리부터 싹 갈아 치우면 뭐가 좀 달라질까? 뒷돈 챙기는데 이골 난 치들이 크고 작은 감투 쓰고 턱 버티고 앉아 감내라 배내라 하는데 달라지긴 뭐가 달라져. 생각해 봐 네가 수십억을 가진 재산가 거나 권력자라고 쳐, 지금처럼 골머리 앓을 일이 있겠어? 담당 공무원이고, 업자고 알아서 긴다고. 그게 세상살이야. 이 맹추야. 집에 가만히 앉았어도 돈다발을 갖다 바쳐. 너네 집 보상금으로 책정된 것쯤은 껌 값도 안 돼. 한 입에 탁 털어 넣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갈걸.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면 눈치라도 빨라 담당공무원이라도 살살 구슬리고 비위 맞추어가며 제 잇속 챙기는 게 장땡이라고. 군청에 아는 사람 있으면 줄 대 봐라.
난 그런 짓 못해. 낯 뜨거워서. 암튼 엿 같은 세상이야.
맞아. 엿 같은 세상이지.
나, 갈매기 조나단이 되고 싶다. 가장 멀리 나는 새가 가장 높이 난다고 했잖아.
소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니까 맨 날 고 모양이지.
우리 군만 그런 거 아니라더라. 요즘 사방팔방에서 벌이는 게 농어촌 개발 사업이래. 농사지을 땅이 자꾸 줄어든다고 입에 발린 소리는 하면서 농토 없애고 아파트 짓고, 골짝엔 전원주택 단지 짓고, 길 내는 게 지방자치 단체에서 하는 일이야.
맞아. 엊그제 우리 군 의원이 업자들하고 감리사 하고 왔더라. 밥 먹으면서 하는 말을 들었지. 귀가 번쩍 뜨이데. 군의원 친척의 논인가 산인가가 길 내는 옆에 있는데 설계도에서 빠졌나 봐. 그걸 들어가게 해 달라던 걸. 설계변경이야 공사 측에서 칼자루 잡고 있는 것 아니겠니.
그러니까 뭐래?
예예 알겠습니다. 하지 뭐.
세상이 왜 이럴까.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 못 살게 굴게 뭐람. 속상해 죽겠어. 집을 다시 짓는 것도 힘들고, 쥐꼬리만큼 나오는 보상금으로는 집을 다시 짓는 것도 엄두가 안나. 주택자금을 저리 융자를 받게 해 주겠다지만 농사꾼이 국가 빚쟁인데 또 빚지고 집 짓고 뭘 먹고살지?
우리네 보통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지.
그러게. 이럴 때 든든한 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악어 백 빌러 줄까?
장난쳐?
화내지 마. 농담이다 야.
사실 내 주변에도 제 잇속 챙기는 똑똑한 사람도 있더라.
어떤 사람인데?
길난다니까 남이 파내버린 대추나무, 단감나무 주어다 길 들어가는 자기 논에 심고,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등등, 과실수 묘목 구해다 빽빽하게 심어 놓는 사람, 자투리로 묵정이가 된 터에 보상금 많이 나오는 과실수 심고, 담쌓아 창고 만드는 사람.
잘하는 짓이네. 국가에서 나오는 돈 알짜배기는 어느 놈 밑구멍으로 빠져나가는지 알 수 없는 입장에 제 잇속 챙기는 사람이 현명하지. 다들 그렇게 한다더라. 그렇게 못하는 너만 바보지.
도독질도 해 본 사람이 잘한다더라.
너도 손해 보는 장사하기 싫으면 된장 속에 뚝배기 박고, 간장에 물 섞어 팔아야지. 외국산 농수산물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세상 아니니, 중국산 고사리가 국산으로 둔갑하고, 꽃게 뱃속에 납 집어넣고, 송이버섯에 못 박아 넣고, 참깨 속에 모래 집어넣고, 물 먹여 잡은 쇠고기도 모자라 광우병 든 소일지 모르는데 수입해서 유통시켰다는 뉴스 못 봤어? 그것만이 아니야. 세상에 믿을 건 아무것도 없어. 제 손으로 직접 생산한 것 외엔 믿을 게 없어. 농약이나 화학 약품으로 도배한 먹을거리가 판치는 세상이야. 그런 수입 농산물이 암암리에 우리 식탁에 오른 지가 언젠데. 그러니 그런 사람들 탓할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아. 적당히 속고 속이며 사는 세상이란 걸 사람들은 알아.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해. 나만 안 당하면 장땡이라 생각하고 사는 거야. 너도 알지? 시골동네나 읍에 방 빌려 놓고 플라스틱 바가지나 소쿠리, 다래기, 고무장갑, 휴지 등, 공짜 선물로 유혹하는 약장사들, 봉고차 몰고 마을마다 다니며 노인네들 실어 날라 앉혀놓고 은근슬쩍 윤달에 수의 장만을 해야 저승길이 편하다고 중국산 싼 삼베 몇 곱으로 쳐 팔아먹고, 만병통치약 운운하며 가짜 약 팔아먹고, 만병에 좋다는 옥 장판 팔아먹는 양심 없는 사람들, 농촌 노인네들 외롭고 설운 맘 부풀려 감언이설로 녹여놓고 쌈짓돈 다 우려 가는 사람들, 그것만이 아니야. 효도 관광 시켜 준다고 말 빨이나 있는 노인네 뒷주머니 챙겨주고 회원 모집해서 데리고 다니며 가짜 약이나 물건 강매하는 것이 흔한 세상이야. 촌로들 알면서도 속아줘. 젊은 사람들이 촌로들 위로해 주니 고맙지 않으냐고. 한 술 더 떠 제 잇속 챙기느라 그런 사람들인 줄 뻔히 알면서 방 빌려주고 다리품 팔아주는 세상이야. 눈 빤히 뜨고도 당하는 사람들이 순진하다면 그게 욕이지 칭찬이야?
우리 동네는 그런 작자들 못 들어오게 막아 농민회에서.
그것 참 다행이다. 얼마 전에 우리 시어머니가 일을 벌였지. 몇 십만 원을 호가하는 옥 장판을 산 거야. 나 몰래. 노인네가 돈이 어디 있겠어. 우리 시누에게 손자들 학자금 타령하고 돈을 빌린 거 있지.'언니 힘든 줄은 알지만 노인네에게 그런 일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돈 보냈으니까 갚지 않아도 돼.'시누이 말에 억장이 무너지더라. 무슨 소리냐고 따졌더니 말하데. 열이 꼭지까지 치솟더라. 시어머니께 대들었지. 내가 펄펄 뛰니까 방문 판매원 전화번호를 주더라. 반품하겠다고 했지. 첫마디에 안 된대. 물건에 하자가 있으면 모르지만 하자가 없는 한 반품은 사절이라네. 소비자 보호 센터에 신고를 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 물건 강매를 한 것도 아니고, 할머니 스스로 사신 것이니 법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단다. 다만 법적으로 물건 산 지 일주일 안에는 반품이 가능하니까 타협을 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거 있지. 판매원에게 그 이약을 했지. 그래도 안 된다는 거야. 그래요? 알았어요. 하곤 우리 마을 파출소에 연락을 했지. 경찰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드라. 자기들은 아무 권한이 없다는 거야. 그 사람들도 제 능력껏 먹고살려는 일 아니냐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물건을 강매한 것도 아니어서 경찰이 나설 수 없단다. 다 짜고 찌는 고스톱이라나. 오냐. 두고 보자 싶어서 경찰청에다 전화를 했지. 수사과장이 직접 받더라. 전후 사정을 말하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 자기들이 해결해 볼 테니까 기다리라고 하데. 좀 있으니까 판매원이 화가 나서 전화를 했더라. 아예 협박조야. 절대로 반품을 받아줄 수도 없고, 돈을 내줄 수도 없다는 거야. 누가 손핸지 보자고 나도 큰소리쳤지. 회사를 상대로 고발도 하고, 농촌 노인네들 모아놓고 몇 만 원짜리를 몇십만 원에 파는 사기꾼으로 고발하겠다고 했지.
그래서?
결국엔 반품을 받아주되 현금에서 20%를 제하고 준다는 거야. 더 이상 싸우기 싫어 그렇게 하라고 했지. 노인네는 날 보고 뭐라는 줄 알아. 어찌 그리 독하냐고. 시어미가 허리가 아파 몸조리 좀 하려고 샀더니 그 꼬락서니를 못 봐서 미꾸라지 소금 친 것처럼 발광을 쳐 사람 꼴 우습게 만들었다고 되레 큰 소리데.
효도 좀 하지 그랬어?
돈이 썩었어? 배 보다 배꼽이 큰 장산 줄 뻔히 알면서 눈감아주게?
세상이 그런 걸 어떻게 하니.
그래. 그러니까 너도 당하지 말고 나처럼 해 봐.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언론에도 알리고.
그렇게 해 봤어.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 방법이 없다는 걸 어떡해. 이젠 도로 설계변경이 아니라 보상금이 문제가 되니까 더 골치가 아프다. 집을 새로 지으려면 또 빚내야 할 것 같아서.
너 진짜 바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도 몰라. 자꾸 울어야 젖을 얻어먹지. 그들의 생리가 그래. 처음엔 슬쩍 작은 미끼를 던져보는 거야. 땅 임자들이 수용을 하면 옳거니 하는 거고, 수용을 하지 않으면 적당히 조금 더 미끼를 던져 놓고 당겼다 놓았다 하는 거야. 밑지는 장사 하는 거 봤어? 너도 맘 독하게 먹고 인정에 끌리지 마. 그들이 울상을 지으며 인정을 호소하면 너도 울상을 지으며 '어떡해요. 우리 형편이 이러니' 하면서 먼저 우는 거야.
배우 노릇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
참 잘났어. 배우가 따로 있어? 사는 일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고 우리는 다들 배우야. 제 배역에 맞추어 살면서도 깨닫지 못할 뿐이지. 세상은 거대한 연극 공연장이야. 때에 따라서 우린 배우이기도 하지만 관객이기도 해. 지금은 자기가 주연이야. 다만 조연이거나 관객이고 싶은 거지. 그 심정 나도 알아. 나도 당한 적이 있으니까. 내 남자가 사업이란 것을 하지 않았니. 남에게 퍼 주기만 할 줄 알았지 제 잇속 챙길 줄 아는 위인이 아니었어. 그러다 보니 결과야 빤하잖아. 뼈 빠지게 일해 주고도 땡전 한 푼 못 건졌지. 남은 건 풍선처럼 부푼 빚더미 아니겠어. 몽땅 넘겨주고 몸만 빠져나왔지. 가진 게 없으니 눈에 뵈는 게 없더라. 닥치는 대로 하고 살았어. 붕어빵 장사도 해 보고, 요구르트 장사, 화장품 장사, 보험회사 영업사원, 뭐 안 해 본 게 별로 없군.
그래도 지금 밥장사 잘하잖아. 나보다 훨씬 속 편하게 사는 것 같아. 나는 네가 부러워.
어처구니없네. 남정네 잡아먹은 팔자 드센 여자 소리나 듣는 나를 부러워해? 나는 네가 부러워죽겠는데 말이야.
부러울 것도 많다. 난 시방 길거리에 나 앉을 판이라 환장하겠는데.
말 되네. 길거리 나 앉을 판이라고? 아스팔트 길나고 새 집 짓게 됐는데? 땅 값, 집 값 오르는데?
너까지 약 올리면 전화 끊을래.
알았다. 알았으니까 시원하게 속 풀이나 해 봐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