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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릿골에 뿌린 눈물

<단편소설. 처음>

by 박래여

싸릿골에 뿌린 눈물


지윤은 서울 외곽에서 조그마한 카센터를 운영한다. 오전 열 시다. 전화벨이 울린다. 지윤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정리를 하다가 무심코 전화기를 들었다.

“네, 민이 카센터 조지윤입니다.”

“내다.”

싸릿골에 계신 아버지다. 지윤은 전화기를 고쳐 잡고 의자등받이에 비스듬하게 눕혔던 자세를 바로 세웠다. ‘할매가 많이 편찮으시다. 너를 찾는다. 가능하모 오늘 중으로 내리 오모 좋겠고, 며칠 말미를 챙기 온나. 추석도 다가오는데 벌초도 해야 하고. 할 이약도 있다. 굳이 둘이 올 필요는 없다만 알아서 해라.’는 것이었다.

“할머님이 많이 편찮으신가요? 병원에 계세요?”

아니란다. 다만 맑은 정신일 때 지윤을 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 문장이 지윤의 뇌리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굳이 아내와 동행할 필요 없다는 말씀이 이상하리만큼 서늘했다. 지윤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고에 들어가 담배 한 대를 깊이 빨았다. 왜?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으실까. 머릿속은 금세 과거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아내와 연애시절이었다. ‘사귀는 처녀가 있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취직만 하면 결혼하려고 한다.’했을 때 할머니와 아버지는 흔쾌하게 허락을 하셨다.

그런데 막상 그녀를 데리고 시골에 인사를 갔을 때다. ‘아버지는 뭘 하시냐. 고향이 어디냐. 서울에서는 언제부터 살게 됐느냐’ 등등, 집안 내력을 물었다. 경아는 ‘본적은 경북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백부님이 많이 도와주셨다’는 말을 했다. ‘백부님은 어디 사시나. 어떤 분이냐? 고마운 분이구나.’하셨는데.

“백부님이 육이오 때 경남지역 계엄사령관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 육이오 사변 때 말이지?”

경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어른은 깜짝 놀라는 눈치셨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결혼 이후 경아를 별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셨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지윤은 내성적인 집안 내력이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다. 헌데. 할머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데. 손부를 꺼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단은 아내 의사부터 물어볼 수밖에.

지윤은 서둘러 아내에게 전화를 넣었다.

“경아, 싸릿골 가야 하는데 갈 수 있겠어? 할머님이 위독하신가 봐.”

“마침 잘 됐네. 바람 쐬고 싶었는데. 할머니 핑계 대고 한 사나흘 연가 낼까?”

지윤은 아버지 말씀이 머릿속에 걸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혼자보다 둘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혼한 후에도 아버지는 늘 경아를 어려워했다. 평생 홀아비로 늙어가는 아버지시다. 언젠가 ‘아버지도 재혼하세요. 저는 대찬성입니다. 할머니도 덜 힘드실 텐데. 저는 엄마 얼굴도 기억 못 하잖아요. 할머니께 효도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아버지께서 빙그레 웃으며 ‘글세, 니 어미가 민이어미랑 비슷했니라.’하셨다. 지윤은 아버지의 그 한 마디를 가슴에 새겼다. 정말 아내가 엄마 같을 때가 있다. 아버지도 며느리가 아내 같을 때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윤은 카센터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며 아내와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아내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지윤은 공무원시험에 불합격한 그해 홧김에 군대를 다녀왔다. 2년여 공백을 깨고 나온 복학생이었다. 첫 동아리 모임에서 수인사를 했을 때 아내는 ‘초식 동물 중에 육식 동물이 들어온 것 같네. 선배, 우리 인사해요. 난 국문과 2학년 김경아’라며 손을 내밀었다. ‘지리산 유독골에서 세상 구경 나온 복학생 조지윤임다. 잘 부탁하요.’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았다. 찌르르! 감전사할 뻔했다. 경상도 말로 첫눈에 뽕 갔다. 그녀는 훤칠한 키,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었다. 거기다 성깔도 보통내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동아리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지윤은 싸릿골로 향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선배 안 오고 뭐 해?”

“나, 못 가. 지금 시골 내려가는 중이거든”

“낼이 내 생일인데. 언제 올라와?”

지윤은 깜짝 놀랐다. 경아의 생일이 엄마의 제사 파짓날이라니. 운명 아닐까? 아내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부잣집 딸이다. 반면 지윤은 경상도 보리문둥이다. 그것도 지리산 자락 오지 중의 오지 싸릿골의 가난한 농갓집 외동아들이다. 지윤은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 못 한다. 지윤은 할머니의 금지옥엽이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유별났다. ‘할매 떡!’하면 떡이 나왔고, ‘할매 엿!’하면 엿이 나왔다. ‘할매 홍시!’하면 홍시가 나왔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귀하디 귀한 내 새끼’였다.

그 귀한 할머니의 손자가 사랑을 찾았다. ‘내 사랑, 당신은 내 것’하는 여자를 만난 것이다. 지윤은 경아라는 단맛에 취했다. ‘경아 힘 딸려’하면 지글지글 끓는 석쇠불고기 집에 앉았고, 수시로 떡도 나오고 엿도 나오고 덤으로 야들야들한 젖무덤에 파묻혀 살맛도 봤다. 경아는 내숭을 떨지 않았다. 여걸 같았다. 지윤은 ‘우리 저기 어때?’ 모텔을 바라보며 농담 한 번 했다가 오쟁이 졌다고 우스개를 한다.

“왔어? 준비 끝났습니다. 작업복과 간편복 기타 등등.”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이미 여행 준비를 끝내놓고 기다렸다. 지윤은 신바람이 난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괴이쩍다. 당연히 노 할 줄 알았던 아내가 흔쾌히 예스라고 했으니 그것부터 수상쩍다.

“시집만 와 봐라. 내가 금 방석에 앉혀 줄게 하던 당신, 골치 아플 때 싸릿골 바람이 최고지. 갑시다. 내 차? 당신 차? 아무 거나 오케.”

“싸릿골이라면 넌덜머리 난다더니 웬일이야?”

“그러게. 나도 신기해. 있잖아. 사실 통한 거야. 어딘가 나르고 싶었거든. 숫자만 바라보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할 때였어. 당신 전화가 어쩜 그렇게 반갑던지. 싸릿골이 구세주야.”

아내가 너스레를 푼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도착하자마자 밥순이 해야 하는데도? 당신 부엌데기 싫어하잖아. 싸릿골 가는 것도 싫어하고. 아무래도 수상한데? 무슨 꿍꿍이속이야?”

“됐네요. 갑시다. 서방니이임”

그렇게 출발했다. 지윤은 자신의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는 아내가 새삼스럽다. 반짝인다. 왤까. 지윤은 부부란 천연염색한 옷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예쁜 물을 들인 옷가지도 빨면 빨수록 희끄무레 해진다. 색깔이 바래고 낡고 닳아도 편하고 좋아서 자꾸 입는 옷 같은 게 부부 아닐까. 사랑이 연민으로 연민이 인간애로 살다 가는 인생, 길거나 짧은 마지막 길을 함께 가는 여정이랄까.

“내가 설거지는 책임진다. 사실 할머니는 이제 남자 거시기 떨어진다고 나무랄 연세도 아니지. 많이 아프신 것 같아. 어지간하면 우릴 오라고 하실 아버지도 아니고.”

경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할머니 흉내를 낸다. 정색을 하고 지윤을 노려보며

“어디 감히 하늘 같은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켜. 남편 체통을 세우는 것도 안사람 몫이다. 아녀자가 남편 이름을 탕탕 부르는 것도 남의 입질에 오르내릴 일이야. 아가는 공부도 많이 했담서? 자고로 여자는 삼종지도를 따라야 하는 게야. 요즘 젊은것들 쯧쯧”

경아는 할머니의 눈에 걸리기만 하면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파닥거려야 했다. 새댁시절부터 할머니께 혼쭐이 났다. 당연히 시댁에 들어설 때부터 시댁을 떠날 때까지 아내는 묵언 아닌 묵언에 부엌데기 못 면했다. 두 아이가 나고 자라는 동안 아내는 슬슬 시자 들어간 말만 들어도 멀미 난다 했다. 시골 나들이도 거부했다. 시할머니의 시집살이가 맵고 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만 좋아한단다. 그 할머니가 올해 아흔다섯이다.

“당신 그럴 때 꼭 우리 할머니 같아.”

“그치, 나도 참 고생 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면 엄청 눈물 날 것 같아.”

지윤은 주마등처럼 스치는 삽화들 중 한 개를 잡았다. 한 때 밥벌이를 생각하다 공무원 시험을 쳤었다. 시골사람들에게 공무원은 과거시험에 해당됐고, 말단 공무원이라도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영리하고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의 꿈이 국가공무원이나 지방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지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1차 시험은 너끈히 합격했다. 면접도 잘 봤다. 자취방에서 합격통지서만 기다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보 한통이 날아들었다. <금일 急來>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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