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중간>
....겨울 방학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지윤은 뜻밖의 전보를 받고 그날로 시골집에 내려왔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하시고 무슨 큰 변화의 조짐이 없는 한가롭고 조용한 집이었다. ‘잘 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를 반갑게 맞이할 뿐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지윤도 아버지께서 입을 열 동안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 저녁상을 물린 후 아버지는 조용히 사랑채로 지윤을 불렀다. 지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다란 쇠죽솥이 걸린 사랑채 앞에서 지게문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버지!”
지윤이 지게문을 열었다.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야 드나들 수 있는 문이다. 방에 들어섰다. 더운 김이 훅 하고 풍겼다. 어두침침한 방안이다. 사물은 흐릿했고 아랫목에 정좌한 아버지 모습도 흐릿했다. 아버지는 등잔의 심지를 돋우셨다. 아버지 앞에는 개다리소반에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손수 술상을 마련한 것이었다.
“우선 공무원 시험 본 거 축하한다. 너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거나 진배없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신원조회가 남았는데. 신원조회만 통과하면 돼요. 혹 경찰서에서 연락 온 것 있어요?”
아버지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요? 무슨 문제가 있어요? 신원조회에 걸릴만한”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왜요? 우리 집안에는 금치산자도 범죄자도 없잖아요.”
“있다. 너의 큰아버지, 구월구일에 제사 모시는 큰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했고 지리산에서 실종 됐다. 경아 큰아버지가 토벌대 사령관이었다고 했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살아있는 것이 국가 보안법이고 연좌제니 하는 거다. 네가 기름때 묻히고 살면 평생 몰라도 될 일이라고 생각한 아비의 소견이 짧았구나.”
“그건 과거사예요. 전두환 정권 때 연좌제법은 폐지된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은 20세기예요. 아버지. 케케묵은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겉만 그렇다. 암묵적으로 아직 연좌제 법은 살아있다. 큰 기대는 하지 마라.”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한 때 공무원이 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했던 나는 포부가 있었다. 공무원이 되어 우리 집안을 일구는 것이었지. 할머니께 효도하는 길은 내가 출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급제를 해서 할머니께 보답하고 싶었다. 고 3학년 때였다. 너처럼 국가공무원 시험도 쳤었지. 성적은 일등이라더라. 하지만 신원조회에서 빨간 줄이 그어져서 떨어졌다는 경찰서장의 통고에 절망했었다. 그때 할머님께서 나를 불러 앉히고 차분하게 하신 말씀이 내 인생을 바뀌게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너에게도 말해 주마.”
아버지는 그 일로 인해 한동안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눈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조차 가면을 쓴 얼굴로 주시하는 것 같았다. 정신적 충격은 방황으로 이어졌고 아버지는 공부를 접고 소설책 속으로 도망을 쳤다. 학교수업은 대충 때우고 시립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조지 오웰의 <1984년>, <동물농장>,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고골리의 <어머니>, <외투>, 루쉰의 <아큐정전>같은 소설과 <새로 쓴 한국현대사>를 다시 읽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이니 연좌제니, 오제도 검사니 하는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공부를 다시 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그동안 가식적인 삶을 산 것 같았다. 백성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정치판, 거짓과 공모가 판치는 세상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태백산맥이 왜 금서가 되었는가.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국가보안법 폐지 운운하는 뉴스들, 연좌제에 연루된 사람들 근황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때도 아버지는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그즈음 시립도서관에서 일하던 한 여자를 만났다. 우린 금세 친해졌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헤어졌다. 나는 싸릿골로 들어와 농사꾼이 되었지. 여러 해가 지나갔지.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싸릿골로 찾아온 여자가 있었다. 그녀였다. 노총각 노처녀로 다시 만난 우리는 부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너를 낳고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먼 길 가더라. 먼저 떠나 미안하다던 사람, 가여운 사람”
그때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어둡고 깊었다. 가물가물 흔들리는 등잔불 앞에서 세상 모든 것을 다 체념해 버린 쓸쓸한 얼굴, 지윤은 그 밤을 생각하면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다.
서울에서 싸릿골까지 네 시간이 걸렸다. 지윤과 경아는 싸릿골 면소재지 마트에 들러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홍삼알사탕과 복숭아를 샀다. 고향집이 지척이라는 생각에 느긋했다. 싸리골 들입에 섰다. 동네 앞을 지키는 수령 몇 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는 여전히 건재했다. 느티나무 아래 빙 둘러 나무를 덧댄 평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길손이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길섶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느티나무 아래 섰다. 주변을 빙 둘러봤다. 넓었던 덕천강은 실개천으로 변했다. 나룻배가 다니던 강은 그의 머릿속 잔재만으로 남았다. 강은 돌밭과 모래와 작은 솔밭 사이로 명맥만 유지한다. 강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싸릿골이 아슴푸레 시야에 들어온다. 다랑이와 산비탈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싸릿골은 고즈넉하다. 대숲에 반쯤 감춰진 싸릿골, 저녁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 고향마을, 어린 삽화가 필름처럼 돌아간다.
지윤은 차에 시동을 건다. 싸리골 향기는 맑고 상큼해서 좋다. 미세먼지에 주눅 들어 살아야 하는 서울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알싸한 바람향기, 거의 들리지 않는 차량의 소음들, 사람의 말소리조차 없는 그곳에 길손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해거름이 찾아들었다. 안온하다. 지윤은 서둘러 들녘을 지나 동네 골목 안으로 차를 몰았다. 동네에서 가장 골짝에 위치한 집, 창문만 열면 푸른 저수지와 너른 강이 보이는 집, 옹치면 한 줌 밖에 안 될 것 같은 할머니가 기다리는 집이다.
그러나 싸리골도 변했다. 울창한 대숲의 반이 사라지고 그 위에도 현대식 양옥집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던 옆집도 사라지고 그곳에도 말끔한 현대식 이층 집이 자리를 잡았다. 마당과 담장이 갖추어지지 않은, 공사가 현재 진행형인 집이었다. 국적불명의 집이지만 산뜻하고 밝아 보였다. 두 집 사이에 낮게 앉은 고향 집은 할머니처럼 낡아 보였다. 여전히 대문은 없었다. 꽤 넓었던 마당이 좁아 보였다. 마당 한쪽에는 아버지의 트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양지쪽에 놓인 평상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 있었고, 텃밭에는 가을무와 배추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싸릿골은 이미 가을이었다.
“할머니 지윤이 왔어요. 경아도 왔어요.”
승용차를 아버지의 트럭 옆에 세우고 나오자마자 고함을 쳤다. 승용차에서 선물을 꺼낼 즈음 현관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버지께서 먼저 나오셨다. 몇 달 못 본 사이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더 백발이 되었고 볼은 홀쭉하고 주름이 더 깊어졌다.
“같이 왔구나. 잘 왔다. 너거 올 때꺼정 기다린다고 저녁 전이다. 어여 들어가자.”
아버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쿠, 니가 왔구나. 우리 손자가 왔어.’ 할머님이 기어서 문지방을 넘는데 눈은 벌써 젖어 있다. ‘할매, 할매, 우리 할매’ 지윤은 선물을 거실바닥에 놓자마자 달려가 할머니를 덥석 안았다. 병색 짙은 할머니의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쳤다. 그에겐 향기로운 냄새였다. 할머니는 앙상한 두 손으로 지윤의 얼굴을 감쌌다.
“어이쿠, 내 새끼, 어디 보자..... 저 아는 누고? 가만, 니 지윤이 에미 아이가?”
“할매는 옴마가 아니라 손부며느리 민이에미잖아. 할매 나는 누고?”
지윤이 어리광을 부리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자 할머니는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아내를 빤히 바라봤다. 한참 후에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민이 어메라? 우째 꼭 우리 지윤이 에미를 보는 것 같어. 아가, 일로 온나. 잘 왔데이.”
경아도 다가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때 아버지께서 저녁부터 먹자고 말씀하셨다.
“니 방 치아 놨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나. 밥만 퍼서 상만 들고 오모 된다. 요새는 내가 밥을 해 묵는다. 할매가 반찬 맹그는 거 일일이 갈차 주신다. 정신이 맑을 때만 그렇다. 가끔 정신 줄 놓을 때가 는다. 그럴 연세도 됐지만 조금이라도 본정신 가지고 계실 때 보고 가라고 불렀다.”
“아버지 힘드셔서 어떻게 합니까?”
“심들 거 없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머가 심드노.”
거실에 두레상을 펴고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녹두죽을 드시는데 새 모이만큼 드시고 숟가락을 놓았다. 아버지와 셋이 밥을 먹는 사이 할머니는 당신 방에 들어가 잠이 드셨다. 경아가 부엌으로 향한 후 아버지께서 할머니의 근황을 말씀하셨다. 요즘은 온종일 현관 밖으로 나가려고도 않으시고 자리에 누워 지내신단다. 자다가 깨다가 하시는데 잠이 깨면 ‘윤이가 왔나?’하시며 나를 찾으신단다. 오늘 아침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할머님이 급하게 아버지를 찾으시더니 ‘그 아를 불러라. 당장 오라 캐라. 그 아를 봐야겠다.’ 하시더란다.
경아는 다과상을 차렸다. 지윤은 다과상을 들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아랫목에 누워 주무시고, 지윤은 아버지랑 윗목에 앉았다. 아버지께서 평소 마시던 소주병을 챙겨 오셨다. 술잔을 기울였다. 아랫목에 누워 계시던 할머님이 ‘윤아! 우리 새끼 왔나?’하신다.
“할머니 저 여기 있어요. 저예요.”
지윤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님이 눈을 뜨셨다. 지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할머니의 눈빛이 형형해지며 ‘내가 또 깜빡했구나. 그래, 우리 새끼가 왔제. 밥은 묵었나?’하며 일으켜달라고 하셨다. 할머니를 벽에 기대 앉혔다. 할머니는 지윤의 손을 꼭 잡았다. 지윤은 할머니 앞에 퍼질러 앉아 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맞잡았다. 돌아보니 아버지 혼자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고 계셨다. 경아는 거실에 나가 텔레비전을 봤다.
“아가, 내 죽기 전에 니 핏줄의 내력은 갈카 주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 인자 니를 봉께 내 한도 다 풀리고 속도 후련하구나. 고맙다. 내 좀 뉘피도고(눕혀 달라).”
할머니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려 있었다.
“할매, 뭔 말인교?”
지윤은 재차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손아귀 힘만 더했다. 백수가 다 된 노인의 손아귀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셌다.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눈물 글썽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를 푹신한 요위에 곱게 눕혀 드렸다. 할머니는 금세 잠이 드셨다. 쌕쌕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곁에 다가가 앉았다. 아버지께서 내미는 술잔을 받아 벌컥 마셨다.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듯 몽롱하다. 술 몇 잔에 헛소리를 들었나. 할머니 쪽을 다시 봤지만 할머니는 편안하게 잠이 드셨다.
“아버지!”
지윤은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더니
“니는 보도연맹이란 것에 대해 올매나 아노?”
“뜬금없이 보도연맹은 예? 할매가 한 말이 무슨 뜻입니꺼?”
“낼 이약하자. 너거도 피곤할 낀데. 나도 자야겠다. 산밭에 참깨 쬐끔 심은 거 벤다고 용을 썼더니 몸이 묵지근하구나. 묻고 싶은 기 있어도 낼 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않겠다고 작심하신 듯 술상을 들고나가셨다.
지윤은 살그머니 현관을 나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집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둠에 눈이 익자 비스듬히 드러나는 풍경이 아늑하다. 아래위집에 불이 환하다. 골목마다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나는 마을이 색달라 보인다. 지윤은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만감이 교차한다. 생각이란 놈은 질서가 없다. 제멋대로 왔다가 가는 기억의 파편들이 혹독하다. 지윤은 집의 난간을 쓰다듬었다. ‘그래, 이 집 지은 지도 꽤 됐지.’ 아버지 회갑을 맞아 헌 재래식 집을 뜯어내고 양옥집을 지어드렸다. 어쩌면 재래식 부엌살림에 익숙하지 못한 아내를 배려한 조치였는지 모르겠다.
“당신 또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시골에만 오면 무슨 청승이야? 한밤중에 옥상에 올라와 별이랑 달이랑 놀고 나랑은 놀아주지도 않고, 부엌에서 울고 있는 바리데기 생각은 한 푼도 안 해주는 잔정 없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내가 옥상으로 올라와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조잘거렸다.
“조용히 하세요. 마님, 아버지 할머니 깨십니다.”
“뭐 심각한 일 있어요? 나도 잠이 안 오더라. 당신이 옆에 없으니까.”
“그냥 아버지가 보도연맹에 대해 생각 좀 해 보라기에.”
아내는 손전화로 보도연맹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더니 그대로 읽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