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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an 17. 2024

버들 국수 어때?

 버들 국수 어때?     



 “점심은 국수나 먹으러 나갈까?”

 “버들 국수 어때? 국수 한 그릇 먹기엔 너무 멀지? 덕분에 친구도 만나고 수다도 떨고 좋잖아. 어머님 살아계실 때는 단감도 대봉도 챙겨드리곤 했는데. 올해는 단감 한 봉지도 못 줬네. 단감 두어 봉지 챙겨 갑시다. 겨울 우포늪 새떼도 보고.”


  그렇게 농부를 꼬드겨 창녕 우포까지 달렸다. 참 오랜만에 가는 친구 집이라 길도 헷갈린다. 그녀의 집에 가는 갈래 길은 여럿이다. 어떤 길로 가야 헤매지 않고 갈지 머릿속을 굴리다 기억을 믿을 수 없다. ‘우리 길 찾기 열고 갑시다.’ 손 전화를 열었다. 익숙했던 길이지만 한동안 안 다녔다고 길 찾기조차 헷갈리다니. 겨우 칠십 문턱을 넘은 남편도 칠십 문턱을 바라보는 나도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된다.


 그녀와 나는 삼십 대에 만나 예순 후반까지 왔다. 전국 농어촌 여성문학회 발족 구성원이었다. 60대 초반까지도 활발하게 너나들이했다. 사십 대에 그녀가 혼자되고 나서 목수가 필요할 때 농부가 제법 도왔었다. 지금 자리 잡은 우포늪 버들 국숫집도 농부의 손길이 여러 곳에 묻어 있다. 내부가 초장기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버들 국숫집은 긴 우정이 깃들어 있다. 내가 두 어른 모시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 친구도 친정어머님을 모셨다. 내가 힘드니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시나브로 접어버린 모임들 중 농어촌여성문학회도 있다. 


 오랜만에 들린 버들 국숫집은 조금 변화가 있었다. 앉은뱅이 식탁이 다리를 달았다. 의자가 놓였다. 맨바닥에 앉기 힘들어지는 나이를 살고 있는 손님에게 맞춘 자리였다. 우리는 얼싸안았다. 국숫집 여사장은 여전히 시인이다.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수다가 늘어졌지만 그녀는 들며 나며 음식을 내왔다. 기름에 구운 당근이 나왔고, 말랑한 곶감이 나왔고, 돼지감자 차가 나왔다. ‘국수도 먹기 전에 배 다 차겠다.’며 ‘우리가 오면 손님이 줄을 잇는데 기다려보자.’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나이가 되면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난다. 다스려가면서 사는 방법밖에 없다. 돈이 되면 몸 아픈 것도 잊고 몰입하지 않을까. 버들 국숫집에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면 좋겠다. 


 내 식성을 생각해 국수도 덤을 따로 한 접시 내 왔다. 맛깔스러운 버들 국수, 김장김치와 장아찌, 양념장, 멸치 맛조차 안 나는 한약재로 달인 육수는 담백했다. 국수 한 그릇 먹고 덤으로 내온 국수는 양념장에 비벼 먹었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 먹게 된다. ‘얘, 남은 국수 좀 치워줄래? 숨도 못 쉬겠다. 그런데도 자꾸 댕기네. 국수 식탐은 언제 끊어질까. 살 빼기는 글렀다. 너는 날씬해졌네. 비결 있어?’ 이런 수다도 즐겁다. 국수 한 그릇 먹고 일어서기엔 아쉽다. 더 있다 가라고 붙잡는 친구지만 오후에 또 예약이 있다니 좀 쉬어야지. 포장해 놓고 파는 버들 국수 한 박스를 샀다.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우포늪 한 바퀴 돌았다. 철새는 멀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모여 저들끼리 수다가 늘어졌다. 망원경을 통해 새떼를 관찰하면서 ‘해거름이면 가까운 곳으로 날아오는데 기다렸다 보고 갈까?’ 농부는 큰 기러기, 흰 고니를 눈으로 좇으며 늪가를 돌아보잔다. 그렇게 해서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은빛 구름이 아름다웠다. 일억만 년 전부터 존재했던 늪, 늪의 생태계가 교란되면 사람살이 힘들어진다고 하던가. 그 늪이 농토로 바뀐 곳도 많다. 늪은 줄어들어도 철새는 제 철을 맞으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경제가 자꾸 어려워질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떠올린다. 언론에서 떠벌일수록 호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쓰기를 겁내지 않을까. 돈은 돌고 돌아야 제 몫을 한다는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감세가 계속되니 부자는 더 부자가 되어갈 것 같다. 거기에 인공지능이 갈수록 진화된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는 미래세계가 다가오는 것 같다. 무섭다. 인간이 설 자리를 잃는 것도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대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겨울 우포늪, 맛깔스러운 버들 국수를 마는 친구가 있는 곳, 한가로운 새떼를 생각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별들이 먼저 반겼다. 우리 집 마당에 앉은 별들, 친구 집 근처 우포늪에 앉은 별들, 참 소중하게 여겨진다. 남은 나날을 아스라이 반짝거리는 별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 농부가 군불을 지피고, 난로에 불을 피우는 사이 나는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버들 국숫집에 남기고 온 국수와 친구의 모습이 새삼스레 다시 그립다. 


 잘 도착했네. 국수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리지. 청룡의 해에는 국숫집 대박 나게. 아프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정으로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이 사랑이네. 다 잘 될 거야. 

 친구에게 문자를 날린다. 

 20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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