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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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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an 10. 2024

참 오랜만의 나들이

참 오랜만의 나들이    


 

 몇 년 만에 경남 작가 출판기념회 및 경남작가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낯선 얼굴들보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아 반가웠다. 모두 나이티가 나지만 몇십 년을 알아왔던 문우들이다. 문단도 늙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지방문단만 그럴까. 중앙문단도 마찬가지 아닐까. 젊은 작가들이 귀하다. 글쟁이로 사는 일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바닥에 깔고 있다. 예부터 책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원고료 수입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작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어떤 방법으로든 돈벌이를 하면서 틈새에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 작가들이다. 


 그런데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타고난 천형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지 않으면 가슴이 허전하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 머릿속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면서 시력저하로 인해 책 읽기가 자꾸 어려워지지만 하루에 한두 장이도 책을 읽어야 그날 하루치 영양분을 흡입한 것 같다. 어떤 작가가 ‘선생님은 어쩜 그리 다작을 하세요?’ 물었다. ‘그냥 씁니다. 글을 써야 내가 사는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대답했다. 


 지난해 하늘나라로 떠난 시인의 추모 시간이 있었다. 실천문학사에서 유고 시집이 나왔다. 진주 백정의 애환을 담은 시집이다. 살아있을 때 준비한 시집인데 완성을 못 보고 떠났다. 그 유고 시집을 경남 작가 회에서 마무리했다. 시인의 영혼이 고마워하지 않을까.  고향 선배이기도 한 그녀는 나와 달리 통도 크고 포용력도 가진 시인이었다. 겨우 한 살 많은 선배였지만 늘 큰언니 같았다. 윗사람 챙기고 아랫사람 품을 줄 알았던 품이 너른 시인이었다. 


 그 인연에 대해 한 마디 하라기에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졸지에 남편을 잃었던 친구가 술에 취해 토해놓은 토사물을 말끔히 치워주고 다독여주던 모습과 우리 집에서 한바탕 놀다가 묶어놨던 진돗개에게 무릎을 물려 병원에 갔던 일, 걱정하는 내게 괜찮다고 했던 일이었다. 그녀는 시집 몇 권을 세상에 내놓고 떠났지만 아까운 나이었다. 이순 중반을 겨우 넘어섰는데. 선배가 아픈 줄도 모르고 내 아픔에 취해 살 때였다. 태어날 때도 순서가 없지만 죽을 때도 순서는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승 하직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떠난 시인을 회상하며 내 삶을 돌아봤다.


 그리고 경남작가상 시상식이 있었다. 허영옥 시인과 전점석 칼럼니스트가 받았다. 허 시인은 나로 인해 경남 작가 회에 가입하게 됐다는 소감을 밝혔다. 경남 작가 회에 발을 담근 지도 30여 년이 다 됐다. 그동안 꾸준히 글을 썼다. 지금도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다. 글이 삶이고 삶이 글이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오랜 지기로 늙어가는 문우들 모습을 반추하면서 늙어가는 나를 보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 속에 들면 행복하다. ‘할매, 왔소?’라며 반겨주는 후배 문우 덕에 환하게 웃었다. 잘 늙어가고 있는 모습들이다. 낯선 문인들도 있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이미 한통속이 된 사람들이라 더 반가웠다.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2차, 3차 가는 사람들 틈에 끼기엔 몸이 고단했다.  


 늦은 밤, 환하게 불 밝힌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서며 이 집에도 경남 작가 회 회원들의 발자국이 몇 번이나 찍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당에서 사물놀이도 했었고, 내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었다. 제 자리에서 늙어가는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을 먹고사는 고목이 되지 않을까. 앞서간 선배 시인처럼 언젠가는 나도 이승을 떠나겠지. 누군가 나를 기려줄 사람 있을까. 선후배 잘 챙겨준 선배 시인과 달리 나는 선후배 챙길 줄도 모르고 문학회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줄도 모른다.


 내겐 늘 가족이 우선이었다. 아무렴 어쩌나. 타고난 성품인 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명작가라도 괜찮다.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과 함께 촌부로 늙어가는 일만 남았지만 사는 날까지 일상을 줍는 일은 계속되지 않을까.    

           20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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