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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 위에 꽃잎이 화르르

<단편 소설 . 마무리>

by 박래여

“할매에~~~~”

삽짝으르 들어서는 도화가 숨이 차서 할딱거렸다.

“또 봐라. 조신하게 굴라캐도 선머스마 맹키로 뜀박질은”

말은 그래도 할머니는 도화만 보면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열다섯 살이 된 도화는 활짝 피는 꽃이었다. 온갖 벌과 나비가 도화의 향기에 취해 몰려들 판이었다. 도화의 뒤를 따라 삽짝에 들어서는 수야도 훤칠한 청년이 되었다. 수야의 손에는 도화의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늘 그랬다.

“할매 배고파 밥 줘.”

“수야도 밥 묵고 가거라.”

도화는 샘에 가서 물 한 바가지를 퍼다 수야에게 내밀었다. 수야가 바가지를 받아 물을 마시자 도화가 그 바가지를 툭 쳤다. 수야는 물을 뒤집어썼다. 도화가 까르르 웃었다. 할머니는 두 아이의 장난질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티 없이 순수하고 맑았다. 마루에서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수야가 말했다.

“할머니 제가 군대 갈지 몰라요.”

도화도 할머니도 망연자실 했다.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겨우 해방을 맞이했지만 민초들이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지난한 시절이었다. 간간히 만택 씨로부터 나라가 위태위태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여전히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곧 전쟁이 날 것이라고 했다. 미륵골도 불안의 바람이 불었다. 소문이 기정사실이라 믿게 된 것도 경찰서나 군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동네마다 청년들을 차출하는 것을 보면서였다. 15살 이상 소년들을 소년병으로 차출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도화는 새벽 기도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도화가 시키지도 않은 3천배를 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봤다. 손녀의 속내를 어찌 모르랴.

“수야는 군대 안 가도 될 끼다. 3대 독자는 군대 안 간다. 걱정 말거라.”

“진짜? 진짜 군대 안 가도 돼?”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 도화를 보며 한숨을 쉰다. 저 예쁜 것이 어쩌다 몹쓸 운명을 타고 났는지. 어릴 적부터 싹튼 연정은 애틋하다 못해 눈물겹다. 두 아이는 첫정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정 든 아이들이다. 두 아이의 가슴에 연정이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할머니는 진작 두 아이의 사주를 꿰고 있었다. 도화가 수야를 싫다고, 더러운 아이라고 곁을 주지 않을 때도 수야를 데려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며 도화랑 놀게 만든 것도 다 할머니의 계획 아니었던가.

“할매, 나도 전문학교 보내 조라. 수야는 전문학교 간다하더라.”

“가시나가 글자만 깨치모 됐제 더 공부할 필요 없다. 글고 니는 신딸이란 거 명심해라. 내 죽고 나모 미륵님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니 운명이다. 밖에 나가봤자 늑대 굴에나 빠지기 십상이다. 니 타고 난 사주가 그렇다는 기다. 그라이깨내 잔말 말고 미륵님이나 지극정성으로 모시거라. 그라마 니 팔자가 펴일 날 있을 기다.”

“나는 시집도 몬 가것네.”

“니는 미륵님캉 살아야 하는 팔자다.”

“싫어. 나는 수야한테 시집 갈래.”

할머니는 도화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수야와 니는 견우와 직녀다.”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가슴이 아팠다. 타고 난 사주팔자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할머니의 괘에 의하면 수야는 별을 타고 난 아이다. 성공은 하겠지만 도화의 짝은 아니다. 할머니는 도화가 세 번의 액살을 면하고 만난 남자라야 백년해로를 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할머니는 도화의 타고 난 액살을 풀어내주고 죽을 수 있길 바랐다. 미륵님의 염력으로 그렇게 되길 빌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단다. 한 달 전쯤 수야와 만택 씨가 소리 소문 없이 마을을 떠났다. 수야의 집 대문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걸렸다. 도화는 밥맛을 잃었다.

“할매, 수야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쁜 자식, 배은망덕한 놈”

“수야 아부지가 진작 내한테 귀띔 했다. 저거가 없어져도 놀라지 마라쿠더라. 무슨 사정이 있것제.”

그렇게 수야 네가 잠적한 후 군인들이 들이 닥쳤다. 수야 네 잠긴 대문의 자물통을 부수고 가택 수색을 했다. 수야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이다. 엿장수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닌 것도 남로당의 사주를 받은 연락책이었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작은 미끼만 물어도 빨갱이로 숙청당하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미륵골에도 불신의 시대가 왔다. 경찰은 수시로 마을을 점검하고, 동네 사람들을 감시했다. 이웃은 이웃을 믿지 못하고 쉬쉬했지만 그렇게 떠난 수야 부자는 종적이 묘연했다.

그리고 이듬 해 시집도 안 간 도화가 아들을 낳았다. 처녀가 애를 낳았으니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다. 할머니는 미륵님이 점지해 준 아이라고 했다. 소문은 도화가 산에서 내려온 밤손님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와 도화는 입을 닫았고, 도화는 여전히 신의 딸이었다. 도화는 산고를 겪은 후 시름시름 앓았다. 신병이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림굿을 했다. 도화는 내림굿을 받고 정식으로 신의 딸이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도화는 2대 명도가 되어 미륵님을 모시며 늙어갔다. 처녀 명도가 낳은 아이는 느티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 가정을 이루었고 노파의 머리카락에도 서리가 내렸다.


노파는 집에 왔다. 노파가 살던 오두막은 진작 헐어버리고 거기에 아담한 양옥 한 채 나붓이 앉았다. 사랑채에는 미륵불을 모신 신당이 꾸며져 있고, 노파는 거기 기거한다. 위채는 아들 부부와 손자가 산다. 며느리는 수봉이 아재의 손녀딸이었다.

노파는 미륵님을 지긋이 바라봤다. 인자한 미륵님의 얼굴에 환하게 서광이 비쳤다.

“미륵님, 인자 원도 한도 없십니더. 저도 거두어 주이소. 도화살 타고 난 년이 일부종사했으니 그 사람 따라 가고로 해 주이소. 참말로 긴긴 세월이었지 예. 우리 옴마도 수야도 만나겠지 예.”

노파는 장롱 깊숙이 넣어놨던 보따리를 꺼냈다. 하얀 버선과 속옷과 하얀 명주 치마저고리를 가지런히 챙겨 불당 앞에 내 놓고 목욕탕에 들어가 천천히 목욕을 했다. 몸 구석구석 때를 오랫동안 닦아냈다. 서랍장에서 오래 된 동백기름을 꺼내 머리에 발랐다. 노파는 천천히 속옷과 속치마를 갈아입고 그 위에 명주 한복을 입었다. 눈빛처럼 하얀 명주의 올이 저수지 물 위를 흐르는 은파 같았다.

노파는 불당 안에 깊숙이 간직했던 대나무로 만든 보석함을 꺼냈다. 방석에 앉아 그것을 치마 앞에 얌전히 올려놓고 미륵님을 바라보았다. 미륵님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 지었다. 노파는 눈을 감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단 하룻밤, 몸을 열고 평생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이 떠나는 시간이었다. 노파는 보석함에서 옥색 비녀를 꺼냈다. 동백기름을 명주수건에 묻혀 비녀를 닦았다. 하얀 머리카락을 돌돌 감아 쪽을 찌고 옥색 비녀를 꽂았다. 노파는 미소 지었다.

미륵불 위로 붉은 꽃송이가 화르르 화르르 쏟아졌다. 꽃 속에서 나비 한 마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왔다. ‘도화! 우리 갑시다.’ 꽃 속에서 음성이 들리고 손 하나가 쑥 나왔다. 노파는 그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노파의 영혼은 그의 손을 잡고 꽃 속으로 들어갔다. 사시였다. 하 씨네 선산에서 하관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

하얀 나비 두 마리가 춤을 추며 미륵불 둘레를 빙빙 돌다가 미륵골 너머로 날아갔다.

“할매, 다녀왔습니더.”

하관을 지켜보고 돌아온 청년은 할머니를 찾았다. 집이 조용했다. 청년은 아래채 신당 문을 열었다. 불당 앞에 얌전히 앉은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얀 상복 위에 옥색 비녀가 빛났다. 청년은 법당 안에 들어가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할머니가 청년의 몸 쪽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할매, 할매!”

청년은 할머니를 안은 채 흔들었지만 이미 온기가 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 할머니의 치마폭에 얌전히 놓인 보석함이 청년의 앞으로 굴러왔다. 청년은 보석함을 열었다. 뭔가 돌돌 말았던 것 같은 화선지가 들어 있었다. 화선지를 폈다. 화선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화, 내 사랑, 당신과 나는 부부요. 이 비녀를 증표로 남기오. 내 아이 잘 키워주오. 우리는 늘 함께 할 것이오. 몸은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어도 나는 당신의 수야 라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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