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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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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03. 2024

호박죽 한 그릇

호박죽 한 그릇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창문을 열고 장작 패는 농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칫국에 아들이 보내준 떡갈비 한 장 구워 김치랑 먹을까. 무파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을까. 삼시세끼 먹는 일이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벌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밥때만 되면 신경이 곤두설까. 나만 그런가. 저녁에 뭘 먹지? 애교스럽게 물었다. 아무거나 먹자. 농부의 대답은 밍밍하다. 어젯밤 난로에 구운 고구마가 식탁에 놓여 있다. 고구마 먹고 말까? 농부만 밥 차려주고. 


 전화벨이 울린다. 저녁 먹자는 말이길 기대하며 받았다. 머 하노? 수영장 댕겨 왔나? 아랫동네 친구다. 응, 저녁 뭘 먹을까 고민 중.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호박죽 무로 온나. 아이거 반가운 거. 울 영감도 가면 돼? 남의 신랑이 같이 오면 더 좋지. 흔쾌하다. 나는 창문을 열고 소리친다. 여보, 0 여사가 호박죽 끓였다고 먹으러 오래. 당신만 오라는 것 아닌가? 아니야, 나보다 당신이 더 보고 싶다는데. 농담을 섞는다. 나는 식탁에 내놨던 김치 통을 냉장고에 넣는다. 뭐 가지고 갈 것 없나. 창고랑 찬장도 뒤져본다. 마침 당면 봉지가 서너 개 있다. 그것도 선물 들어온 거다. 설에 잡채는 할 테고 이걸 갖다 주자. 당면 한 봉지 챙겨 현관을 나서자 농부는 도끼를 놓고 따라나선다. 


 친구 집에 갔다. 남의 신랑 온다는데 반찬이 없어 두부 굽는다는 친구다. 노릇노릇 구운 두부도 가득이요. 김칫독에서 갓 꺼내 썰어놓은 김장김치도 수북하다. 두부 위에 김치 척 걸치면 나갔던 입맛도 돌아오겠다. 거기에 새알심과 동부 콩을 적당히 섞은 걸쭉한 호박죽이 먹기도 전에 입맛 돈다. 부지런도 해라. 울 영감은 나처럼 게으른 여자랑 살면 고달프겠다. 자기처럼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 좋은 여자랑 살면 날마다 행복할 텐데. 진담이다. 요즘 내가 반찬 만들기도 귀찮아 있는 반찬으로 내놓기 일쑤라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반찬 까탈 부리지 않고 먹어줘 고마운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농부는 알까.


 복스럽게 담긴 정갈한 밥상이다. 수저 세 불, 생미역에 무채 넣어 무친 나물과 김장김치와 두부, 동치미 한 양푼, 사발이 넘칠 것 같은 호박죽이 놓였다. 호박죽 한 숟가락을 푹 떠먹었다. 죽은 달지도 않고 맛나다. 우리 엄니가 호박죽 엄청 좋아하셨는데. 내 말에 친구도 고개를 끄덕인다. 친구가 요양보호사로 시댁을 오가며 시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물김치는 기본이고 호박죽이며 단술을 자주 만들어 갖다 드렸다. 이번에도 요양보호사로 나가는 집 할머니가 입맛이 없다기에 호박죽을 끓여 한 양푼 갖다 드리고 남은 죽이란다. 그대는 날마다 복을 짓고 살아요. 그 덕에 자식들이 잘 되나 봐. 진담이다. 간병하는 노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시부모님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 덕에 내가 참 많이 편해졌었지. 고마워. 그 정을 어찌 잊겠나.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또 나를 챙겨주네. 오랜만에 먹어본 호박죽이 참 맛있다. 내 손으로 끓인 호박죽보다 더 맛나다. 호박죽 좋아하시는 시어머님을 위해 농부는 호박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넣고 호박씨를 심었었다. 두 어른은 호박 나물을 좋아하셨다. 애호박은 애호박대로 조갯살 넣고 새우젓 간을 해서 볶아 드렸고, 호박잎은 호박잎대로 쪄서 갖다 드렸다. 가끔 호박잎 된장국도 끓였었다. 누렁호박은 거두어 놨다 겨울이면 호박죽, 채를 썰어 호박부침개도 구워드렸었다. 시집오기 전까지 펜대만 굴리던 내가 음식솜씨가 있을 리 없었다. 삼십 수년이 지나는 사이 시어머님 솜씨가 내게 전수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호박죽을 먹으며 돌아가신 시부모님을 추억했다. 그때는 참 힘들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시부모님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인근 여기저기 맛집도 시부모님 모시고 다닌 집이기 일쑤라 시부모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기 덕에 몇 년은 참 편했지. 자기가 시댁 냉장고 책임져주는 바람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공치사가 아니다. 요양호보사가 몇 번을 바뀌어도 시어머님은 요양보호사에게 음식을 맡기지 않았었다. 우리 며느리가 올 기요. 냉장고는 열지 마소. 그랬었다. 두 집 부엌살림을 맡아 허덕대는 며느리 마음을 어찌 알았겠나. 며느리는 당연히 시부모님 봉양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계신 어른들이셨다. 상노인이셨던 두 어른의 마지막 서너 해는 내게도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 과정에서 친구는 내게 힘이 되었다. 늘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진다. 나는 돈보고 했잖아.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는 참 인정 많은 착하고 부지런한 심성을 지닌 여자다. 그러기에 요양보호사 일이 안 떨어진다. 노인들은 서로 자기 집에 와 달라고 보챈다. 부르는 곳이 많이 쉴 틈이 없다는 친구, 이제 친구도 간병일이 힘들단다.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시대, 간병인이라고 젊지 않다. 친구도 공식 노인대열에 들어섰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자식들도 그만하라지만 노느니 염불 한다고 간병일이 재미있단다. 몸만 건강하면 오래 하고 싶은데 자꾸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단다. 


 호박죽 맛나게 먹고 간식으로 먹으라며 또 한 통을 싸 준다. 몸집도 손도 작은 아낙이 씀씀이는 늘 푸짐하다. 손은 조막만 한데 음식은 와 그리 많이 하노. 생전의 시어머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도 조막손인데 손이 크다. 뭐든지 적으면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상차림만 푸짐한 것이 아니라 퍼내는 것도 푸짐하다. 나도 그랬다. 지금은 뭐든지 조금씩 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다. 제 때 먹을 만큼만 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농부의 지청구지만 아직도 조금씩에 익숙하지 않다. 따뜻한 호박죽 한 통 들고 오며 저승 간 시어머님이 그립다. 

 “오메, 오늘 밤 오셔서 호박죽 드시고 가요. 식탁에 올려놓을 게요.”

         20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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