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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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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06. 2024

얼큰한 짬뽕처럼

얼큰한 짬뽕처럼     



 얼큰한 짬뽕이 먹고 싶은 날 짬뽕 집에 갔다. ‘아끼면 망한다.’ 벽에 붙은 문장이 마음에 든다. 얼큰한 국물 맛을 내려면 적어도 열 가지가 넘는 신선한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홀은 만원이다. 손님이 먹고 나가면 상을 깨끗하게 닦아 새로운 손님을 맞이한다. 자리가 없으면 문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중국 음식은 집에서 시켜 먹는 재미도 있지만 산골에 사는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배달주문도 쇄도한다. 옆 좌석의 손님상에 음식이 나왔다. 뱃속이 요동친다. 바람 찬 겨울이다. 나는 음식이 나올 동안 문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지.


 어떤 식탁은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들어설 때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남이야 춥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두 사람의 수다를 보며 진상손님이 따로 없다. 배려라는 낱말을 떠올린다. 나와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난처한 경우를 당하면 다가가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요즘엔 그런 배려심이 드물다. 선한 마음으로 도왔다가 덤터기 쓴단다. 불신의 시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팽배한 사회다. 콩 한 조각으로 열두 명이 나누어 먹던 시절이 있기나 했을까. 가난한 시절을 살아온 우리 세대는 나눔과 배려가 몸에 익은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남의 집에 갈 때도 빈손으로 못 가고, 내 집에 왔다 가는 손님도 빈손으로 못 보내는 것이 몸에 밴 세대다. 


 짬뽕 두 그릇이 나왔다. 따끈따끈한 짬뽕은 맛있었다. 이 맛 때문에 문밖에 서서 기다리는구나. 이웃에 중국집이 있는데도 거기 가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음식의 맛 때문이다. 만약 우리를 보고 기다리라 했다면 농부는 다른 음식점을 찾았을 것이다. 짬뽕 맛을 음미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 그릇을 비우고 일어났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자리 났어요. 들어가세요.’ 밖에 선 손님에게 말했다. 손님들은 두 손을 비비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다. ‘잠깐만요. 치우고 앉으세요.’ 홀 주인의 목소리에 손님은 음식부터 시켜놓고 나온다. ‘기다린 만큼 맛나요.’ 미안했다. 농부는 각자 알아서 할 텐데. 오지랖 넓은 짓한다고 눈치를 준다.


 나이 들수록 체면치레를 하고 품위유지를 해야 한다지만 나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거치적거릴 것이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말문을 터고 인사를 하는 게 예사다. 내가 맹한 것 같고 모자라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 그대로 받아들인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에도 무심하다. 내 행동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으면 만사형통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선한 마음은 선함을 불러오고 악한 마음은 악함을 불러온다고 믿어서는 아닐까. 말 보시라도 하고 싶어서는 아닐까. ‘아끼면 망한다.’ 짬뽕 집에 걸린 구호처럼 말보시도 아끼면 망할 수 있다. 


 노인이 되어갈수록 꼰대가 된다거나 꼰대질 한다는데 좀 모자라면 어떤가. 바보스러우면 어떤가. 똑똑한 사람이 넘치는 사회다. 나까지 팽팽 돌아가는 세상과 맞물려 팽팽 돌 필요는 없다. 돈 안 드는 말 보시, 웃는 보시라도 많이 하고 살아야지. ‘결국 모든 것은 우스개다’ 찰리 채플린이나 ‘웃으면 복이 와요.’ 배삼룡처럼 낯선 이라도 웃게 만들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아니한가. 하루를 살아도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나오는 담백하고 얼큰한 짬뽕국물처럼 진한 맛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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