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Feb 16. 2024

경진 년 설날이 저물고

 경진 년 설날도 저물고


  “명절이라 해봤자 일 년에 두 번인데 이럴 때 튀김 같은 거 안 하면 언제 해요? 우리가 할 테니 엄마는 감독만 하세요.”

  남매 덕에 명절음식을 푸지게 했다. 까치설날은 온종일 명절음식 한다고 분주했다. 몇 년 전부터 명절 차례 상 지내는 집이 사라져 가는 추세다. 명절 차례 상을 없앴더니 서운하다며 간소하게 지내는 집도 생기고 간단한 음식 몇 가지 만들어 산소에 가서 인사하는 집도 늘었다. 


 시어른 두 분 돌아가시고 지내는 첫 설날이다. 남매의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챙겨줬다. 기분이 묘하다. 곰국에 만두 떡국을 끓여 먹었다. 농부랑 남매는 챙겨놨던 명절 음식을 들고 시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엄마가 끓인 떡국이 참 맛있다고 했어요.”

 아들의 너스레에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 식구만 맞이한 설날이다. 이태 전까지 시댁에서 대식구가 모여 만들고 먹고 치우다 떠나기 바빴던 명절이었다. 대식구 떠나고 나면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만 남아 또 며칠을 종종걸음 쳤었다. 두 어른 모시고 병원 나들이가 연례행사였고, 명절 뒷정리 하느라 허리가 휘었었다. 두 어른 떠나고 나니 마음의 부담은 없어서 좋은데 내가 팍삭 늙어버린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설날 인터넷 뉴스에서 동반 안락사 소식이 눈에 쏙 들어온다. 안락사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총리를 지낸 93살 부부의 이야기였다. 70년을 해로하고 함께 떠난 노부부의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안락사를 신청해도 돈이 많이 든다는데. 부자들이나 편하게 죽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안락사조차 택할 수 없나 보다. 별 생각이 다 든다. 


 우리나라는 자발적,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다. 2018년 2월부터 자발적, 소극적 안락사는 합법으로 정해졌다. 몇 년 전 나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등록했다. 연명치료거부권을 갖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의식주 해결을 남의 손에 맡기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 나도 노인대열에 들어서면서 아흔 중반의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힘에 부쳤다. 체험하고 깨달은 덕일까.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산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더 이상 의사표현도 못하고 숨만 붙어 있다고 인간일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자식들 마음고생 몸 고생 시키면서 연명만 한다면 서로에게 못할 짓 같다. 노인이 되면 몸의 기운이 떨어지고 병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기계도 오래 쓰면 낡아서 기능을 멈춘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도 고장 난 곳의 부품을 교체하기도 하고, 고쳐서 쓰기도 한다. 덕분에 평균 수명이 늘었다. 앞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0살이 될지도 모른단다.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끔찍하다. 적당히 살다 자는 잠에 갔으면 하는 것은 모든 노인의 소망 아닐까. 


 그런데 그 적당한 선이 어디까지일까. 칠십 대 후반에서 팔십 대 초반까지를 거론한다. 그 연세에 돌아가시면 부모도 자식도 모두 좋단다. 그렇다면 친정 부모님과 두 형부도 딱 적당한 연세에 돌아가셨다. 자식들도 지치지 않아서 부모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 친정 부모님과 달리 시부모님은 구십 줄에 들어서면서 자식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늙어가는 시부모님을 지켜봐야 하는 나도 힘들었다. 내가 대신 아플 수도 없고, 아무리 좋다는 약이나 음식을 대령해도 소용이 없어졌을 때 노인은 생에 대한 집착만 늘고 자식은 조금씩 지쳐 갔다. 막상 두 어른 저승길 보내고 나니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노인이 된 자식이었다. 


 “엄마, 피곤하지? 쉬세요. 우리한테 맡기고” 

 “그래, 명절 쇠기가 쉽지 않구나. 너희들 덕에 편한데도 되네. 나이 탓이다. 너희들에게 잔소리할 날이 짧을수록 좋겠다. 묻고 싶은 것 있으면 언제든 물어라. 엄마는 지금 죽어도 좋다.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연명치료는 하지 마라. 자연사하면 좋겠지만 그 길이 젤 어려운 길인 것 같다.”

 “아직은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데요.”

 남매의 대답에 빙그레 웃었다. 아직은 내가 움직일 수 있으니 빈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과정이 자꾸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 손으로 할 수 없어 자식 손이나 남의 손을 빌리게 될 때까지 살게 될까 두렵다. 잘 늙어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잘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잘 늙어가는 일인 것 같다. 아직 노인 명찰 내밀기도 부끄러운데 마음은 구십 노인 같다. 왤까. 반면교사였던 두 어른을 모시면서 마음이 먼저 늙어버린 탓은 아닐까. 


 오후에 아흔넷 농부의 외숙모님을 뵙고 왔다. 허리 굽어 웅크린 외숙모님 모습이 돌아가신 시어머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되다. 내년에도 외숙모님께 세배를 드릴 수 있을까. 외사촌들 역시 힘들다는 눈치가 보인다. 옆에서 모시는 며느리 역시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짠하다. 부모를 외면할 수도 없는 자식의 입장에서 동병상련을 느낀다. 

 설날이 저물고 있다. 

                           2024.   2. 

매거진의 이전글 얼큰한 짬뽕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