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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18. 2024

도박하는 심리

 도박하는 심리    


  

 우리 가족은 화투놀이와 멀다. 민화투도 새 잡는 화투? 고도리도 못 친다. 그랬는데 나이롱 뽕에 취했다. 돈내기 화투 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박에 미치는 사람들 심리를 알 것 같다. 명절에 대식구가 모여도 화투놀이도 노래방 가기도 거의 없이 조용히 보내곤 했다. 어쩌다 윷판을 벌이기도 하고, 두어 번 아이와 어른으로 나누어 노래방 나들이를 한 적도 있지만 그것은 농부와 내가 설레발을 쳐야 했었다. 참 재미없는 가족 모임이었다. 삼동서는 만들고 먹고 치우고 손님맞이 하고 지쳐 눕기 바쁜 명절이었다. 


 두 어른 살아계실 때는 첫새벽에 일어나 세배를 드려야 했고, 떡국을 끓여 두 어른께 올려야 했었다. 명절 음식 챙겨 동네 친인척 어르신 찾아뵙는 일도 만만찮았다. 내가 명절음식 만들고 먹고 치우는 것에 넌더리를 내게 된 것도 삼십 수년간 계속되어 왔던 명절 풍경에 질린 탓이리라. 분가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꾀가 생겼다. 분위기 봐서 살그머니 시댁을 빠져나오곤 했다. 숨통 틔우기 작전이었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친인척이 시어른께 새해 인사를 오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상도 봐야 하고, 떡국도 끓여 대접해야 했던 시절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내 무의식을 지배하게 된 것이리라. 우리 가족만 보내는 이번 설은 마음의 짐은 하나도 없었다. 삼시 세 끼를 애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뭐 먹을래?’ 아니면 ‘엄마, 뭐 해 드릴까요?’ 남매가 척척 알아서 해 준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먹으니 내가 챙기지만 점심저녁은 두 애가 맡아서 해 준다.


 설 연휴에 화투놀이로 딴 판돈 들고 바다를 보자고 했지만 길이 막힐 것 같아 포기하고 고향 길 중간에 있는 민물장어구이를 먹으러 갔다. 그 집은 시부모님 살아계실 때 가끔 모시고 다니던 집이다. 설 다음날인데 장사를 시작했다. 설날 오후부터 장사한다는 집도 흔해졌다. 명절 음식 안 하고 설날 아침 떡국 한 그릇 끓여 먹고 산소 갔다가 점심은 밖에서 해결한다는 집도 흔해졌다. 명절 음식 많이 해 놓고도 나일론 뽕을 쳐서 1등 한 사람이 점심 사기로 했었다. 내가 일등을 했다. 화투 칠 줄도 모르는데 순전히 운 같다. 


 그러나 점심 값은 딸이 냈다. 그냥 올 수 없어 지리산 한 바퀴 돌았다. 법계사에 오르고 싶었지만 순두루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에는 안 다닌다. 오후 한 시부터 지리산 입산을 통제한단다. 지난가을에도 못 들렸다. 아쉽다. 딸은 어떻게든 어미를 순두루에 데리고 가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빈 차는 정차한 채 움직이지 않고 운전기사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그냥 가자. 순두루에 가면 조릿대에 맺힌 눈을 구경할 수 있지만 어쩌겠어. 젊은 날 봤던 눈길 떠올리며 돌아가야지.’ 그렇게 돌아 나와 들린 곳은 빨치산 소탕작전 기념관이었다. 


 육이오 동란 때 지리산은 참으로 지난했던 곳이다. 군경과 빨치산의 대치로 인명 피해가 속출한 곳이기도 하다. 밤에는 산사람들 조건을 들어줘야 목숨을 부지했고, 낮에는 군경의 서릿발 같은 추궁을 견뎌야 했던 곳이다. 빨갱이라는 말만 해도 잡혀 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곳, 울던 아이조차 순경이나 빨치산이 잡으러 온다는 말에 눈물을 뚝 그쳤다는 곳, 유년의 그곳은 이야기의 산실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해골을 차고 다니며 공놀이를 했다는 선배들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추억한 줄 엮고 콧바람 쐬며 돌아왔다. 


 명절 연휴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올해 우리 집 명절은 화투판이었다. 저녁마다 화투장을 잡고 웃고 떠들다 보니 소화도 잘 되고 흥겹다. 마음 편하게 보내는 명절, 스트레스 없는 명절을 보내는 중이다. 밤에 또 화투를 잡았다. 판돈으로 내일 또 외식하기로 했다. 그득하던 명절 음식도 쑥쑥 군다. 아이들 가져갈 것을 미리 챙긴다. 연휴 끝나면 남매도 제 자리로 돌아간다. 방학이 다 끝나 섭섭하다는 아들이다. 아들 돈 많이 쓰고 일 돕느라 고생했다. 


 나는 화투판을 잡고 앉았다가 허리가 아파 엎드려서 화투를 친다. ‘근데 말이야. 이래 힘든 도박을 왜 하는지 모르겠네. 윷놀이가 더 재밌는 거 아니야? 허리 작살나겠다.’ 내 말에 ‘그럼 엄마는 저기 의자에 앉아 구경만 하세요.’하는데 아니 될 말이다. 바가지 씌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점수는 오르락내리락, 판돈도 왔다 갔다. 이런 재미로 도박을 하나보다. 도박하는 심리도 도박에 빠지는 심리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판이 끝나고 계산을 해 보면 돈을 몽땅 딴 사람도 없고, 몽땅 잃은 사람도 없다. 화투 치는 실력이 비슷비슷해서 그럴 거다. 

     20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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