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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20. 2024

차밭을 다듬고

차밭을 다듬고     


 

 그는 아침을 먹자마자 일감을 던진다. 아이들 있을 때 차밭 정리를 하자는 것이다. 네 사람이 작업복에 안전화를 신고 예취기, 수동 전지가위, 전동전지가위를 든다. 농부는 아랫말 친구 집에 가서 예취기 한 대를 더 빌려온다. 오전 내내 골이 시끌시끌했다. 딸은 중간중간 새참을 챙겨간다. 나는 남은 나물과 튀김과 부침개 뒷정리를 하고 두 애들이 가져갈 것들을 챙긴다. 유자청, 참기름, 가래떡, 떡볶이 떡, 야채 등이다. 나는 아이들이 챙겨달라는 것만 챙겨준다. 


 네 사람이 차밭에 붙으니 차밭은 금세 깔끔하다. 모두 오랜만에 노동을 하니 배가 금세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는다. 그 사이 나는 점심을 챙겼다. 훈제 돼지고기와 재탕한 튀김과 나물, 동치미로 밥상을 차린다. 내가 한 음식을 맛있다며 싹싹 비우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음식 하기 싫다 하면서도 남매가 오면 뭐든지 만들어 먹여 보내고 싶은 것 또한 어미 마음이다. ‘역시 엄마 음식은 맛있어.’ 아들이 칭찬을 한다. 나는 ‘울 아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이 맛있는데. 아들 가고 나면 어쩌나.’ 짓궂은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나는 오전 내내 예취기 작업을 한 세 사람을 향해 ‘한숨 자고 목욕탕 가자. 저녁은 판돈 모은 것으로 밖에서 해결하기. 나 일등 했잖아. 한 턱 쏜다.’ 내 말에 딸은 ‘억울해. 왜 나만 꼴찌야. 나 일등 한 번도 못 했어.’하면서 울상이다. ‘욕심을 버려야지. 욕심을 부려서 그래.’ 농부가 한 마디 하자 ‘맞다. 누나는 일등 하고 싶어 큰 건수 바라다 바가지 썼잖아.’ 아들이 옆구리를 찌른다. ‘딸 미안해. 엄마는 뒷걸음치다 쥐 잡은 거야.’ 그래서 또 웃음판이 된다. 설 연휴 나흘간 밤마다 화투판을 벌였다. 윷놀이, 카드놀이도 있었지만 처음 배운 나이롱 뽕에 반했던 것이다.


 단체로 목욕탕을 갔다가 중국집으로 직행했다. 깐풍기, 탕수육, 깐쇼새우, 짬뽕, 간짜장을 시켰다. 연태 고량주와 맥주도 더했다. 엄마가 쏘는 거니까 맘껏 먹어. 나는 통 큰 생색을 낸다. 깐쇼새우는 토마토잼 범벅이라 우리 식구들 입에는 안 맞았다. ‘차라리 유산슬을 시킬걸.’ 깐풍기는 매콤하니 맛있다. 그 중국집은 배달 앱이 깔렸나 보다. 계속 배달 주문이 들어오고 배달기사가 줄을 선다. 옛날에는 중국음식 시키면 그릇도 찾으러 갔지만 지금은 모두 일회용을 쓴단다. 빈 그릇 거둘 필요 없지만 그만큼 생활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편리만 좇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일은 남매가 떠난다. 갑진 년 설 연휴도 끝났다.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잠이 없는 나는 혼자 중국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휭휭 날아다니는 멋진 남녀의 무술과 비술, 황당무계한 이야기라 책으로 읽은 『산해경』을 드라마로 보는 것 같아 즐긴다. 마계와 인간계, 천계의 싸움도 볼만하다. 도사들이 던지는 문장들이 새겨볼 만해서 그렇다. 세상사 요지경이다. 신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인간의 삶에 얼마만큼 도움을 줄까.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서 더 흥미로운 것은 아닐까. 삶에서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을 황당무계한 이야기에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어 그럴까.


 한 나절의 노동이 신선했던 것일까. 편하게 놀다가 중노동을 한 농부가 코를 곤다. 나는 농부의 코 고는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뒤척인다. 잠이 나를 데려갈 때까지 흘러가는 대로 둔다. 노인이 되면 잠이 없어진다고 하던데.   

                 20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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