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단편 소설>
아쿠아로빅
박래여
1.
“꽃샘잎샘 추위에 반늙은이 얼어 죽는다더니 땡땡 얼겠네. 얼겠어.”
현숙은 봄풀이 파릇한 마당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사월 초입인데도 밤이면 얼음이 얼었다. 단단한 땅거죽도 뚫고 올라온 고사린데 영하의 온도에는 속수무책이다. 냉해를 입어 폭삭 주저앉았다. 자연의 섭리는 사람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다. 고사리 밭을 돌아보고 온 그녀는 서둘러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저녁을 차렸다. 농부와 오붓하게 사는 일상에서 유일한 낙은 저녁마다 수영장 가는 일이다. 수영장에 갔다.
“아쿠아로빅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무슨 소리야? 2/4분기 시작한 지 며칠 됐다고. 갑자기 폐강이라니?”
“회원이 정족수를 못 채워서 그렇답니다.”
조례에 의해 회원 수가 모자라기 때문이란다. 강사도 동의했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다. 오전에 아쿠아로빅 강사인 민초의 문자를 받았지만 폐강한다는 말은 없었다. 어젯밤 민초에게 문자를 넣었었다. 아쿠아로빅 회원이 원하는 것은 안무보다 에어로빅을 기본으로 하는 운동이다. 물에서는 무조건 빠른 음악에 맞춰 절도 있는 동작을 반복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민초는 열심히 해보겠다는 당찬 대답을 했다. 그랬는데 폐강이라니.
2.
사실 지난 연말부터 아쿠아로빅의 생존 문제가 불거졌다. 2년을 뛴 아쿠아로빅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다른 강사에게 바통을 넘겼다. 계약기간 만료 한 달 전이었다. 새로 온 강사는 젊고 연약했다. 하체는 운동복이지만 상체는 목까지 단추를 채운 티를 입었다. 몸매는 가늘었지만 단단했다. 대학에서 스포츠를 전공했단다. 눈빛은 맑고 투명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데 잘할 것 같았다. 그녀가 민초다. 아쿠아로빅을 가르치려는 열정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문제는 금세 불거졌다. 회원들 간에 불만이 터졌다. ‘운동이 안 된다. 춥다. 템포가 느리다. 동작이 까다롭다.’ 날마다 다른 동작의 안무를 선보이자 회원들은 재미없다며 하나 둘 빠져나갔다. 봄이라지만 아직 춥다. 다들 빠른 동작, 반복 동작으로 물에서도 땀이 날 정도로 해 주길 원했다. 회원들은 노련한 전임강사의 아쿠아로빅을 그리워했다. 물에서 하는 운동은 절도가 있어야 하고, 반복학습이 중요하다. 민초가 가르치려고 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안무였다. 어떨 때는 단순하고 느렸고, 어떤 때는 빠르고 복잡했다. 아쿠아로빅은 나이 많은 회원이 대다수다. 수영은 배우려면 어렵지만 아쿠아로빅은 물 밖에서 하는 강사의 몸짓을 물속에서 따라 하면 되는 것이기에 쉽게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초등학생이야? 강사는 초등학생 수준 밖에 안 되는 것 같아. 다른 곳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다 온 것 같아. 추워서 못하겠어. 우린 운동이 안 되는데 강사만 땀 뻘뻘 흘리잖아.”
베테랑 회원 몇몇은 시간 날 때마다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요구를 했지만 민초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운 안무를 선보였고, 수업시간보다 30분은 일찍 와서 그날 가르칠 것을 열심히 연습했다. 민초의 눈동자는 더 파래졌고, 얼굴은 더 홀쭉해지고 몸은 더 탄탄해졌지만 아쿠아로빅 회원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한 달 만에 회원이 대폭 줄었다. 고정적으로 오는 회원 대여섯 명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민초는 씩씩했다. 회원이 줄어들어도 날마다 색다른 안무를 선보이려고 혼자 땀을 뻘뻘 흘렸다. 여자들은 말이 많다. 아쿠아로빅이 끝나고 샤워 실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뜨렸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쿠아로빅 없앤다는 말이 있더라. 진짜 이러다 아쿠아로빅 강습이 없어지는 거 아닐까? 겨우 연 강습인데. 그렇잖아도 수영강습생이 많아 자리가 복잡하고 음악이 시끄럽다고 수영강사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젊은 강사는 왜 그렇게 고집이 센 거야. 회원이 원하는 대로 강습을 해줘야지. 운동하러 왔지 우리가 춤추러 온 거야. 운동이 안 돼. 다음 달에 등록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첫 술에 배부르겠어.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강사가 참 열심히 하잖아. 혼자 땀 빨빨 흘리는 걸 보니 불쌍하더라. 솔직히 화도 나고, 속도 상하고. 아쿠아로빅 자격증 따려면 돈도 많이 든다는데. 수영장에 비치된 구닥다리 카세트가 자꾸 말썽을 일으키자 개인 걸 준비해 왔잖아. 카세트 성능이 좋아야 한다네. 그게 최하 몇 백 줘야 한다더라.”
“원래 겨울에는 아쿠아로빅이든 수영강습이든 회원 수가 적잖아. 지켜보자.”
수영강사든 아쿠아로빅 강사든 일 년 계약직이라고 했다. 일 년 후에 재계약을 해야 하고, 경쟁자가 있을 때는 시험도 쳐야 하고, 그러다 밀려나면 끝이란다. 회원들이 자꾸 빠지자 민초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달라지려고 애썼다. 선별해 오는 음악도 달라지고, 아쿠아로빅 동작도 달라졌다. 날마다 다른 안무를 선보이지만 조금씩 회원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갔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까다로운 동작을 버리고 단순한 동작으로 반복했다. 어떤 때는 회원들 간에 재미있었다는 평이 나오고 어떤 때는 아무리 해도 이미 몸에 밴 동작을 바꾸기 어렵다고 한숨도 나왔다.
여자들이 찧고 까불어도 민초는 의연했다.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이 넘쳤다.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이다. 몸동작도 날렵했다. 현숙은 민초의 젊음이 좋았다. 물 밖에서 풀 쩍 풀 쩍 뛰어오르는 것을 보면 ‘저러다 관절에 무리 갈 텐데.’ 걱정됐다. 강사는 폼만 가르치고 운동은 우리가 하는 거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을 할 정도로 그녀는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었다. 수영장에서 정든 지수언니가 전화를 했다.
“아우야, 낼 낮에 수영장에 좀 나올래? 내가 강사 한 사람을 섭외했는데. 실력을 한 번 봤으면 싶어서. 지금 강사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성이 나서 못하겠어. 말을 하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자기 고집만 세우잖아. 이 강사는 에어로빅을 한 사람이야. 실력 한 번 보자.”
“언니, 지금 강사 열심히 하잖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지요. 지난번 강사도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잖아. 강습생이 없어 수업을 빠지기도 했는데 몇 달 지나자 베테랑이 됐잖아요. 이 강사도 몇 달만 지나면 잘할 겁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기다려줍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저 모양이잖아. 배울 때 저렇게 배운 강사는 바꾸기 힘들다. 어쨌든 내가 섭외한 강사 실력 보고 결정하자.”
“언니, 낼 병원에 가기 때문에 참석 못해요.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내 눈앞에 연약한 어린양의 커다란 눈망울이 들어왔다. 두려운 눈빛이었다. 그녀라고 회원들 속내를 모를까. 귀는 들으라고 있다. 듣기 싫어도 들리는 것이 자신에 대한 소문이다. 귀머거리도 자기 욕하는 줄은 용케 알아듣고 화를 낸다고 하지 않던가. 수영장에서는 웃지만 자기 집에 가면 통곡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양면을 가졌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자기 속에 든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용기다. 지수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했지만 상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음악에 귀가 틔고 몸이 음악에 맞출 수 있게 되기까지 노력은 필수다.
은성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춤을 잘 춘다는 말을 듣고 자란 학생이었다. 집안도 부유했다. 학생은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 부모도 학생의 재능을 믿었다. 부모는 학생을 어려서부터 무용학원에 보냈다. 학원 선생은 칭찬이 늘어졌다. 가르치는 것을 완벽하게 재현한다고 저런 아이라면 충분히 이름난 춤꾼이 될 소질을 타고났다고. 학생의 자질을 갈고닦으려면 돈 타작이라도 부모는 온갖 정성을 들여 학생의 뒤를 닦아 주었다.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예술대학의 무용과에 원서를 넣었다. 학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정해진 안무를 열심히 연습했다.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용실기 시험을 치는 날이었다. 학생은 자신 있게 시험장에 들어갔다. 심사위원들이 쭉 앉아 있었다. 학생은 떨지 않았다. 자신이 안무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학생은 자기 차례가 되었다. 준비해 간 음악을 털어놓고 완벽하게 안무를 마쳤다.
그때였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다른 곡을 선정하며 그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어보라고 요구했다. 학생은 아연실색했다. 그 음악에 맞춘 춤을 출 수가 없었다. 음악도 들리지 않고 몸도 뻣뻣하게 굳어 제대로 된 춤 연기를 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은 물었다.
“학생, 앞의 춤은 완벽했는데. 왜 뒤의 춤은 엉망이지요?”
학생의 대답은 이랬다.
“그 음악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춤 동작도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못 췄습니다.”
당연히 그 학생은 미역국을 마셨다. 춤은 마음의 행로다.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에 맞추어 몸이 저절로 움직일 수 있어야 진정한 무용가다. 연습으로 되는 것보다 마음의 소리에 따라 완성되는 몸짓이 진정한 예술이다. 아쿠아로빅도 물속의 종합예술이다. 음악에 맞추어 동작을 하는 것이다. 기본은 있다. 자세를 곧추세우고 오른쪽과 왼쪽을 반대로 움직여 안 쓰던 근육을 풀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민초도 회원들 간의 민감한 반응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겉으로는 밝고 싹싹하게 굴었지만 가끔 ‘제가 너무 못하죠? 회원님들 수준이 높아서 기죽어요.’ 이런 말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새해가 열렸다. 연말부터 분기별로 초급중급 수영강습생과 아쿠라로빅 강습생을 모집한다는 방이 붙었다. 강사도 이 시기가 되면 긴장한다. 다시 계약을 갱신하거나 떨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민초도 바짝 긴장했다. 경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자리 잡기도 힘들다는 현실에서 겨우 잡은 강사 자리도 놓칠 수 있으니 혼신을 다해 회원들의 호감을 사야 가능한 일이다.
“회원님과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많이 모자라지만 힘껏 하겠습니다. 파이팅!”
그녀는 아쿠아로빅 수업이 끝나면 외쳤다. 우리도 파이팅을 외쳤다. 현숙은 그새 정이 들어 새해에도 민초의 수업을 원했다. 회원들 간의 무성한 뒷말로 멍든 민초, 그녀는 손 전화에 아쿠아로빅 단톡방을 만들어 회원들을 초대를 했다. 그때부터 문자를 주고받게 되었다. ‘민초 샘, 힘내셔’
‘감사합니다. 아자 아자.’
현숙은 민초를 보면 외국에 나가 사는 딸을 보는 것 같다. 비슷한 또래다. 지방 대학을 졸업한 딸은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딸은 관광 통역사 자격증을 가졌다. 대학원에서 만난 호주 청년과 장래를 약속했다는 소식이 날아왔을 때 현숙은 믿지 못했다. 다시 그 청년의 고향 타스마니아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드디어 실감이 났다. 딸을 잃어버렸구나. 딸은 타스마니아의 모 관광호텔에 통역사로 일한다. 딸은 민초처럼 여리고 순한 눈망울을 가졌다. 부끄럼쟁이에다 유순하지만 속이 꽉 찬 당찬 여자다. 민초가 그랬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보다 혼자 숨어 울고 마는 여자 같아서 더 애련하다.
“시험 날이네. 민초 샘 힘내! 잘 될 거야. 우리가 그댈 원하니까.”
문자를 날렸다. 민초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문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날, 아쿠아로빅 강사 자리를 놓고 두 사람이 겨루었다. 다행히 민초가 경쟁에서 이겼다. 1/4분기가 시작되었다. 수영강습 회원은 대폭 늘어나도 아쿠아로빅 회원은 대폭 줄었다. 수영장의 두 라인을 쓰던 아쿠아로빅 회원 라인이 하나로 줄었다. 아쿠아로빅 회원은 나이가 많다. 수영을 배우기 어려운 관절 환자는 아쿠아로빅을 택한다. 보통 여남 명이 강습에 참가했다. 들쭉날쭉해도 상관없었다. 신입 회원도 제법 늘었다.
“도대체 안 바꿔. 수영강습으로 돌리던지 해야지 원.”
다시 불만이 터졌다. 현숙은 오랫동안 자유 수영을 했었다. 수영강습도 아쿠아로빅도 거부했었다. 정해진 시간, 단체 행동이 싫었다. 시간 날 때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유 수영이 좋았지만 낮에는 수영장 갈 시간이 없어 대부분 저녁시간에 갔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자유 수영을 할 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일곱 시부터 8시에는 수영과 아쿠아로빅 강습생이 차지했다. 자유 수영을 하러 온 사람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강습생이 우선이었다. 그러던 중에 일이 터졌다. 수영강사가 강습을 해야 하니 자유 수영 하는 사람은 수영장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현숙은 화가 치밀었다. 사무실로 쳐들어가 고함을 질렀다.
“뭐 이따위 행정이 있어. 여기가 강사들 밥줄이야? 나도 엄연히 한 달 사용료 내고 오는 이곳 주민이라고. 여긴 개인 수영장도 아니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개설한 국민 체육센터잖아. 왜 강사가 군민을 나가라 말라해. 국민 체육센터가 강사들 밥 먹여주려고 연 곳이냐? 주민을 위한 센터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거야? 수영강습도 좋아. 다만 한 라인 정도는 자유 수영을 할 수 있게 해 줘야 하잖아. 나도 바쁜 사람이야. 강습이 없는 시간에 맞추어 수영을 올 수 없는 실정이라고. 그러니까 강습생을 줄이든지. 다른 시간대에 맞춰 강습 시간을 조정하든지 해야지. 어쨌든 자유 수영을 할 자리는 남겨 줘야지. 다시 말하지만 여긴 돈벌이 수단으로 연 개인 수영장이 아니잖아. 행정에서 이러면 안 되지. 강습생을 위해 자유 수영은 못한다고 조례에 명시라도 되어 있어?”
따따부따했다. 현숙만 그렇게 따진 것이 아니었다. 몇몇 사람이 소리 지르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시간에 자유 수영을 하러 갔다가 열받은 사람이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자 국민체육센터에서 조치를 취했다. 저녁 7시에서 8시까지 자유 수영을 할 수 있는 라인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시간대에 자유 수영을 금지한 것이다. 수영 강습 회원이 아니면 그 시간에는 수영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반 회원은 8시까지 수영장 밖에서 기다렸다 입장해야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없다. 관청에서 정한 조례에 따른 조치라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따따부따 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이럴 때 권력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관공서 직원은 계약직 공무원이라도 주민에게는 권력자로 군림한다. 칼자루 쥔 사람과 칼자루 쥐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명백하다. 그리하여 현숙도 자유 수영을 포기하고 아쿠아로빅 강습을 받기로 했었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기에게 이로운 것으로 결정을 본다. 남의 삶에 무관심하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 싸우라’ 했지만 싸우기보다 나를 내려놓는 것이 편하다. 현숙은 자신이 비겁하다 생각한다.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가 싫다는 것도 그녀 속에 옹송그리는 이기심 때문은 아닐까. 특히 여자들은 말이 많다. 현숙도 수영장 가면 수다쟁이가 된다. 반쯤 모자라는 여자처럼 치부 다 드러내고 ‘하하 호호’ 한다. 여자들은 남의 삶에 호기심이 많다. 가십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아쿠아로빅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민초의 능력도 연말보다 월등하게 좋아졌고, 회원들 상호 간에도 ‘재미있다. 운동된다’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아쿠아로빅은 한 라인이다. 수영강습 회원이 많은 탓이었다. 아쿠아로빅은 한 라인이라도 족하다. 물이 깊은 곳에서는 어려운 동작이니 물이 얕은 곳에서 운동을 한다. 회원들 키가 작은 탓이기도 하다. 불금이라는 금요일은 두세 명일 때도 있지만 민초는 주눅 들지 않고 신명을 다해 수업을 한다. 음악 선정도 좋았다. 여전히 반복학습보다 새로운 안무를 선보여 아쿠아로빅에 익숙하지 못한 회원은 곤혹스러워 하지만 대순가. 문제는 그런 회원은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한다는 생각보다 강사가 제대로 못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탈이다. 말끝마다 전임강사를 내세우며 ‘그 강사는 참 잘했는데.’ 아쉬워했다. 물에서 춥다는 것은 몸을 그만큼 덜 움직인다는 뜻이다. 강사가 하는 동작을 제대로 따라 못하면 비슷한 흉내라도 내면서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회원님, 저 다섯 쌀짜리 아들이 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