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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Feb 23. 2024

순박한 사람들

<손바닥 소설>

     

      순박한 사람들

           박래여          



   사월 초입인데도 봄 가뭄이 계속된다. 부지런한 농부는 찰옥수수와 고추 모종을 이식하고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심는다. 밭두렁은 온통 꽃 천지다. 땅땅한 제비꽃에서 주름잎꽃, 봄맞이꽃 등, 밭 귀퉁이에는 겨울을 난 상추가 너풀거리고 장다리가 노란 꽃을 피운다.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들판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들 그림 한 폭이 걸린다. 


 이른 아침, 오지마을은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로 깨어난다. 대실할멈은 남새가 담긴 소쿠리를 들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소쿠리에는 상추와 머위, 민들레 잎 등, 남새가 담겨 있다. 입맛이 통 없다. ‘봄 타는가. 쓴 나물을 먹으면 입맛이 돌아오려나.’ 집 앞을 흐르는 개울로 나갔다.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개울은 동네 아낙의 빨래터가 되고, 여름에는 동네 조무래기의 물 놀이터였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 언젠데. 대실할멈은 쓸쓸하다. 여든이 넘었다.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얕은 보를 막아 쓰임새 있게 만들어 놓은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대실할멈은 여러 가지 남새를 담은 소쿠리를 물에 담가 지그시 눌렀다. ‘엉 이기 뭔 일이고?’ 소쿠리에 새파란 잉크 색 물이 가득 차오른다. 초록 남새들이 잉크 색 물에 잠겨 보라색을 띤다. 대실할멈은 참 희한하다. 물이 어째서 새파랄까. 침침한 눈을 의심한다. ‘내 눈이 문제지. 백내장인가 녹내장인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 더 마 물 색깔까지 이상하게 보이는 기라.’ 대실할멈은 부지런히 남새를 씻어 물가에 놓고 마지막으로 빈 소쿠리를 헹궜다. 그 물에 세수도 했다. 씻어놓은 남새의 물기를 털어 소쿠리에 담고 집으로 향했다. 골목에서 이장을 만났다. 


 “아요, 이장님, 내 좀 보소. 시간 나먼 나 좀 안과에 델다 주소. 눈이 아무래도 이상타. 봇도랑 물이 새파랗게 보인당께. 우찌 보모 먹물 같어.”

 “봇도랑 물이요? 그럴 리가요. 감산에 일 좀 해 놓고 가입시더.”


 동네 이장은 일흔 살이 넘어도 청년이다. 이장은 대실할멈의 말을 무심하게 듣고 골목을 나섰지만 눈앞에 개울이 보이자 무심결에 살폈다. ‘물이 왜 저래?’ 이장도 자기 눈을 의심했다. 평소 다슬기가 살고 동사리와 피라미가 살던 맑은 물이 흐르던 빨래터도 그 밑의 웅덩이도 파랗다. 이장도 돌계단을 내려가 자세히 봤다. 틀림없이 잉크 색이다. ‘이게 어찌 된 거야?’ 이장은 산골짝을 바라본다. 물의 근원지 옆은 27홀 골프장이 턱 하니 버티고 있다. 이장은 지류를 따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잉크 색 물은 갈수록 탁해지고 개울 주변의 풀이나 돌조차 제 색깔이 없다. 예전에 기름 유출로 검은 띠를 두른 태안반도의 사진을 다시 보는 듯하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하다. 다리 밑의 개울물도 전립선 걸린 환자의 오줌줄기 같다. 비가 해갈해주지 않으면 올봄 농사 보나 마나 실농이다. 모판도 키워야 하고, 논에 물도 잡아야 하고, 논갈이도 해야 하는데. 하늘만 쳐다보는 촌로들이다. 재래식 농사법은 농사의 팔 할은 자연의 힘이고 이 할은 부지런한 농부의 힘이라고 했다. 현대식 농사법은 토지의 경지정리와 지하수 개발과 저수지 덕으로 좋아졌지만 ‘가뭄에 지하수를 아무리 퍼 봐라. 가뭄 해갈이 되는지. 비가 한 번이라도 넉넉하게 오면 농사는 저절로 된다. 농자지천하대본이라는 말이 저절로 생긴 줄 아나. 다 이유가 있다.’ 촌로는 여전히 하늘을 믿는다.


 이장은 갈래 길에 섰다. 왼손 편은 골프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짙은 먹빛이다. 오른손 편은 황소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맑다. 두 물줄기가 다리 하나를 두고 만나 사이좋게 흐른다. 그 물은 동네 곁을 지나 농업용수나 생활용수로 쓰이며 흘러 읍내를 거쳐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이장은 동네로 뛰었다. 급하다. 빨리 저 물을 잡아야 한다. 저 물이 어떤 물인지. 언제부터 흘렀는지. 무심히 지나친 개울이 아닌가. 조금만 세심히 봤어도. 몇 년 전, 골프장 건립을 놓고 동네 사람들끼리도 반목이 심했었다. 골프장 개발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패가 갈려 이웃사촌의 정도 멀어졌었다. 결국 골프장이 개장되고 사람들 사이도 안정을 되찾을 즈음인데 다시 일이 터진 것이다. 이장은 마을 회관에 들러 방송을 했다. ‘동네 어르신 여러 분 잠깐 마을회관에 나와 주십시오. 알아야 할 문제가 생겼습니다. 심각합니다. 아침은 나중에 잡수시고 퍼뜩 나와 주십시오.’ 마음이 급했다. 


 이장은 방바닥부터 따끈하게 데워 놓고 깨끗한 물통에 잉크 색 물도 한 통 받아 놓았다. 농민회에도 연락했다. 동네 어르신도 속속 도착했다. 바깥노인보다 안노인이 많다. 큰 그림보다 작은 그림에 익숙한 촌로들이다. 골프장 개발업자가 내미는 멸치 한 포, 우산 하나도 고맙다며 받은 사람들, 골프장 찬성을 하면 무엇이 이득이고 손핸지 따따부따 하기 전에 작은 인정에 끌려버리는 촌로들, 고라니가 사는 세상에 승냥이가 들어왔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촌로들, 승냥이가 고라니를 어떻게 잡아먹는지 모르는 촌로들, 어떤 독이든 독은 소리 소문 없이 인체에 스민다. 빗물처럼 땅에 스몄다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이장은 물었다. 잉크 색 물이 언제부터 흐르게 됐는지 아느냐고. 대충 이렇다. 이삼일 전부터 개울물이 시커멓게 변했다. 생각해 보니 가끔 물 색깔이 이상할 때가 있었다. 물에서 냄새도 나는 것 같아서 걸레 씻으러 갔다가 그냥 온 적도 있다. 누가 거름이나 분뇨를 고랑에 버린 줄 알았다. 비가 안 와서 생긴 일인 줄 알았다. 잉크 색 물이 흐르는 골짝은 내 생전에 처음 봤다. 요새는 개울에 바글거리던 송사리도 다슬기도 논고동도 안 보이더라. 예사로 생각했다. 비 한 번 푸지게 오고 나면 도랑 청소도 되고 물도 맑아질 거라 생각했다. 

 대실할멈이 이장에게 물었다. 


 “그게 그리 무서운 거요? 제초제 겉은 농약이요? 사람 목숨 앗아가는 거요? 텔레비전에 보니 저기 어디 비료 공장 있는 마을에는 암환자가 속출한다는데. 우리 동네 사람도 그렇게 되는 거요? 인자 개울물에 빨래도 못하고 손발도 못 씻는 거요? 청정구역으로 소문난 우리 동넨데 별 일이야 있을라고. 아침 물라고 남새 씻어 왔는데. 우짜꼬?”

 “일단 알겠으니 돌아가셔서 아침밥 맛있게 드십시오.”


 이장은 해산을 명하고 농민회 선후배와 남았다. 의논 끝에 우선 통에 받은 물을 수질관리 검사기관에 의뢰하고 낙동강유역 환경관리소에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오전에 골프장 담당 공무원과 골프장 책임자, 낙동강유역 환경관리소에서 사람이 나왔다. 일단 개울둑을 막고 물탱크로 잉크 색 물을 퍼 담아 폐수처리를 하기로 했다. 읍내 하천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가능 키나 할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골프장 측 말은 신빙성이 없다. 법적으로 걸릴 어떤 근거도 남겨놓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에 오지마을 면내 이장 단이 모두 모였다. 골프장 관할 공무원과 책임자도 참석했다. 골프장 책임자는 사죄했다. 골프장 경사 절개지 외벽에 잔디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쓴 시약이라며 친환경 제품으로 인체에 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 시약이 왜 개천을 오염시켰느냐고 추궁하자 실수란다. 사용하고 남은 시약을 물과 희석시켜 뿌려야 하는데 실수로 주차장 내 우수 관을 통해 버렸다는 것이다.  


 온종일 동네가 시끄러웠다. 대실할멈은 아침도 거른 채 현장구경을 하다 집에 왔다. 마루에 걸터앉았다. 기둥 옆에 얌전히 놓인 소쿠리를 본다. 푸른 남새가 힘없이 축 널어져 있다. ‘저 아까운 걸 버려야 하나 먹어야 하나.’ 남새 소쿠리를 들고 싱크대 앞으로 간다. 커다란 양푼에 수돗물을 가득 채워 남새를 담근다. ‘입맛 돌아오는 것들인데. 아까워서 어찌 버려.’ 촌로는 자연을 닮아 사는 사람들, 이 사건도 시일이 지나면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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