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현숙은 깜짝 놀랐다. 이십 대 처년 줄 알았는데 삼십 대 후반에 아기 엄마라니. 그랬구나. 여기저기 쥐어 박히면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던 이유가 엄마였기 때문이구나.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현숙은 민초에게 섹시한 아쿠아로빅 옷을 입혀본다. 안 어울린다. 가슴은 절벽이다. 몸통은 얇다. 엉덩이는 작다. 아니 몸 전체에 살집은 없지만 근육으로 다져졌다. 그녀는 다부져 보인다. 그녀는 뒷정리도 잘한다. 회원들이 썼던 봉이나 허리띠 같은 것도 말끔하게 치워놓고 간다. 예전에는 회원들이 치웠다. 수업이 끝나면 그녀는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 놓고 나간다.
“아쿠아로빅이 슬슬 재미있더라. 음악도 좋고. 강사가 제법 하던데. 역시 시간이 약이야”
“초등학생 운동복 같은 그 옷 좀 벗어버리고 섹시한 옷을 입으라니까 안 듣네.”
“난 좋기만 하더 마.”
현숙은 겉치레보다 속이 알찬 그녀가 좋다. 왜 여자들은 겉모습에 치중할까. 골 빈 여자들 보면 한심하다. 샤워 실에서 여자들끼리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가십거리에서 민초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나가는 사이 그녀의 가르침도 제법 여물었다. 허리와 척추를 바른 자세로 잡아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면서 자세를 강요했다.
그즈음이 되자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현숙은 가능하면 결석을 안 한다. 수영장에 가서 몸을 풀고 와야 개운하다. 피치 못 할 사정이 없는 한 개근상을 받아 마땅하다. 현숙과 서너 명의 회원은 민초의 강습에 익숙해져 갔다. 음악도 안무를 곁들린 동작의 변화에 슬슬 재미가 붙었다.
“6개월만 지나 봐. 아쿠아로빅 시간이 기다려질걸. 요즘도 재미있어. 허리와 고관절 운동이 제대로 되더라니까.”
고정 아쿠아로빅 회원들 간에 칭찬이 늘어진다. 전임 강사에게 배운 동작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강사에게 적응하자 재미있다. 강사마다 가르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각자 장단점이 있다. 강사가 회원을 사로잡아야 수업이 제대로 되는데 그러지 못할 때는 안타깝지만 뭐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회원들 간에 수긍할 정도가 되었다.
“기다려보소. 완전 아쿠아로빅 붐이 불거야. 이만큼 좋아진 것 봐. 좀 더 지나면 베테랑 될 거야. 수업이 달라졌잖아. 우리가 반늙은이라 못 따라 하는 점도 인정해야지. ‘단순하게 반복학습’ 명심하고 있잖아. 강사는 아직 젊어. 우리는 늙었고. 인정할 건 합시다.”
서로 간에 그런 말도 서슴지 않고 오간다.
민초는 회원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날이 실력이 늘었다. 개인적으로 투자도 많이 했다. 수영장의 낡은 전축이 무용지물이라서 개인 카세트를 준비했고, 다른 지방까지 다니며 개인 교습도 받는단다. 운전도 배웠단다. 아직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못했지만 잘할 수 있단다. 장거리를 오가려면 운전이 필수다. 민초, 가난하고, 힘없는 촌부의 이름이다. 현숙도 민초다. 억울한 일이나 불이익당할 때 분노하기보다 체념하는 것이 민초다. 그 민초라는 이름 때문에 강사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삼월이 되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가뭄도 심했다.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게 나자 감기 환자가 속출했다. 민초도 감기에 꽉 잡힌 채 수업을 했다. 병원에 다니는데도 감기가 안 떨어져 속상하단다. 마늘 죽을 푹 끓여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 슬슬 2/4분기 강습생을 모집할 때가 되었다. 카운터에 앉았던 여직원이 2/4분기에도 아쿠아로빅을 하실 거냐고 의향을 물었다. ‘당근이죠.’ 대답하고 탈의실에 들어가자 이런 말들이 난분분했다.
“4월부터 아쿠아로빅은 폐강한다네.”
“그럴 리가. 그래서도 안 되고. 한 번 폐강되면 다시 개강하기 어렵잖아. 아쿠아로빅 강사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강사가 있고, 회원이 있는데 폐강이라니 말도 안 돼.”
“이미 기정사실이 된 것 같던 걸. 아쿠아 인원이 15명이 안 되면 폐강한대. 강사 실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는데.”
항상 새로운 강사가 영입되면 후유증이 있다. 작은 읍이다 보니 베테랑 강사를 구하기 어렵다. 아쿠아로빅 강사를 못 구해 애를 먹은 적도 있고, 한동안 아쿠아로빅이 없어지기도 했었다. 젊은 사람은 초급, 중급 수영을 하지만 나이 육칠십 대는 수영보다 아쿠아로빅을 선호한다. 오랫동안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는 현숙은 수영장 덕에 산다. 아쿠아로빅이 수영보다 관절에 좋다고 했다. 현숙은 아쿠아로빅 열성파가 되었다.
그런데 폐강소식이라니. 사무실 내에서 꿍꿍이짓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관리소장이 바뀌었다. 탈의실에서도 욕실에서도 강사가 잘하니 못하니 수영 강습생이 많아 자리가 좁다느니 음악소리가 커서 수영강사들 불만이 터져 나왔다느니 여론이 분분했다.
“아쿠아로빅을 없애면 안 돼요. 강사 있을 때 밀고 나가야 해요. 등록 많이 해 주세요.”
현숙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민초 강사가 잘한다고, 많이 늘었다고, 조금만 더 지나면 아주 베테랑이 될 것이라고 노래했다. 현숙은 이상하게도 민초에게 끌렸다. 호주 있는 딸 같아서 안쓰러웠다. 생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도 한 했다. 그녀는 아쿠아로빅 수업을 하고 땀에 절어서 집으로 간다. 목욕을 하고 가지 왜 그냥 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친정에 맡겨둔 아들 때문에 빨리 가야 한단다.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생활전선에서 뛰어야 하는 일이 요즘 젊은 세대다. 머나먼 호주의 외딴섬에서 딸도 민초처럼 살지 않을까. 딸의 전화 속말은 늘 ‘괜찮다. 잘 산다. 건강하다. 아무 문제없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 돈 때문에 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현안이 돈이다.
현숙은 미리 아쿠아로빅 등록을 하겠다고 설쳤다. 카운터 여직원은 구두 약속만 받고 강습비는 뒤에 계산하면 된단다. 일단 숫자 파악부터 한단다. 3월 말이 되어도 수영장센터에서는 등록을 받지 않고 의사만 물었다. 의외로 아쿠아로빅을 하겠다는 회원이 17명이나 되었다. 안심을 했다. 3월 말에 이틀 동안만 아쿠아로빅 강습비를 받았다. 사월 첫날 개강을 했다. 민초는 모든 회원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더 열심히 보답하겠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개강한 지 닷새 만에 갑자기 폐강 소식이 날아들었다.
현숙은 카운터 여직원에게 물었다. 폐강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오늘이 마지막 수업입니다.”
“이유가 뭐지요?”
“아쿠아로빅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다고 했다던데요.”
“강사 말은 다르던데요. 사무실에서 그만 두든지 결정하라고 했다던데요.”
옆에 있던 회원이 따지고 들었다. 담당 공무원이 나왔다. 그는 조례까지 들먹였단다. 아쿠아로빅 강습비를 낸 회원이 10명뿐이라 부득이 폐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이래. 17명이 등록한다고 했으면 조만간 등록을 할 것 아닙니까. 하루 이틀 못 기다려준다는 거야. 뭐야. 강사는 일 년 계약직이라며? 겨우 석 달 했잖아. 폐강이라니. 그럼 강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따따부따 한다고 달라질 리도 없다. 현숙은 탈의실로 들어갔다. 현숙도 앞뒤좌우가 어찌 된 건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샤워 실에서도 말이 많았다.
“아쿠아로빅이 오늘부로 없어진다며? 어떻게 된 거야? 회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강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건 말도 안 돼.”
“담당공무원이 갑이고 우린 을인 거지 뭐.”
“폐강한다는데 당장 사무실에 가서 따져야지. 왜 수영강습만 하냐고. 회원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강습을 계속해야지. 등록한 회원이 열 사람이나 되는데 강습을 없앤다고? 이건 완전 월권이잖아. 따져야 해. 아쿠아로빅 회원들끼리 똘똘 뭉쳐서.”
“나도 오늘 등록하려니까 폐강했다고 등록을 안 받아 주네요.”
예전에 아쿠아로빅을 하던 회원이었다. 그녀는 개인 사정으로 며칠간 결석하는 바람에 등록 기간을 놓쳤단다. 샤워 실이 와글와글 떠드는 중에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쿠아로빅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현숙은 서둘러 복장을 갖추고 실내수영장으로 들어섰다. 민초에게 직접 자초지종을 들어야겠다. 주민이 갑이고 공무원이 을이어야 마땅한데 항상 권력 쥔 자가 강자로 군림하는 세상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강사본인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쿠아로빅 회원이 적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평균 대여섯 명은 기본으로 강습을 받는다. 수영장 라인도 한 개만 사용한다. 회원 수가 적다고 이미 개강한 강습을 폐강시킨다는 것은 이해불가다.
“냄새가 나 냄새가”
한 회원이 입을 삐죽거린다. 그렇다. 3월에 공무원 인사이동이 있은 직후부터 국민체육센터 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탈의실과 욕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1년 계약인데 6개월 후에는 나가라고 하더란다. 퇴직금도 없어졌단다. 계약직의 설움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단다. 강사는 모두 계약직이라고 했다. 상사에게 밉보이면 모가지다. 민초도 일 년 계약을 했을 텐데. 상사에게 밉보였을까. 계약직이지만 여러 해를 수영장에 붙박이로 있는 수영강사들 간에 미운털이 박혔을까. 사실 수영강사들 심정도 이해한다. 음악 때문에 수영강습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강습생에게 큰 목소리로 가르쳐야 하니 피곤하다고도 했다.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폐강이라니. 그동안 민초는 얼마나 노력했는데. 살얼음판을 디딘 것 같았으리라. 강사가 스스로 못 견뎌서 그만두겠다고 할 만큼 코너로 밀어붙인 이유가 뭘까. 직접 민초에게 묻을 수밖에 없다.
“민초 샘,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니. 자다가 날벼락 맞은 기분인데. 설명 좀 해 주소. 오전에 나랑 문자놀이 할 때만 해도 그런 말 없었잖아.”
“어머님 죄송해요. 저는 계속하고 싶어요. 이게 제 밥줄인데. 제가 많이 모자라서 이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모자란 데다 조례에서 정해진 15명 이상이 안 되니 폐강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회원 수가 모자란다는데 어떻게 해요. 개강할 때부터 회원이 20명이 안 되면 중간에 그만둬야 한다더라고요. 제가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다음에 더 많이 배워서 기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니까 끝까지 열심히 하고 싶어요. 마무리 잘하도록 어머님들이 도와주세요.”
그녀의 눈에 크렁크렁 괴었던 눈물이 금세 떨어질 것 같은데 억지로 웃는다. 하얀 치아가 참 고르다. 차라리 그녀가 울어버리면 우리가 덜 미안할 것 같다. 나풀나풀 입방아 찧은 회원들 잘못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이니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자.’ 우리는 서로 눈짓했다. 똘똘 뭉친 여섯 명의 회원은 일부러 즐겁게 수업에 임했다. 민초도 밝게 웃으려고 애썼다. 시간은 금세 50분을 넘겼다. 민초는 여기저기 놓인 알록달록한 봉을 주워 창고에 갖다 넣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떠났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아쉽다는 말, 다음에 만나자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소중한 것도 곁을 떠나고 나면 그만인 것이 인생 아니던가.
그렇게 마지막 수업은 끝났다. 우리는 욕실에 모였다. 무성한 말 꽃이 피었다. 사무실에 쳐들어가 따지자는 말도 나오고, 한 번 아쿠아로빅이 없어지면 강사도 귀한데 다시 개강하기 어렵다고 군청 홈페이지에 민원 제기를 하자는 말도 나왔다. 차라리 잘 됐다며 수영강습을 받아보겠다는 사람도 있고, 목욕탕으로 자리를 옮기겠다는 사람도, 자유 수영을 하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사무실에서 안 된다는데 방법이 없단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나랑 같이 사무실에 갈 사람 손드세요.”
현숙이 앞장을 섰다. 그때 구석에서 몸을 씻던 여자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제 말 잠깐 들어보세요. 믿을 수 있는 소식통에서 전해 들은 이야긴데요. 아쿠아로빅에 관한 거요. 진작 다 끝난 게임이에요. 결정은 연말에 해 놨다고 하더군요. 다른 강사로 교체하려고 했는데 외지에서 온 심사위원이 현 강사의 손을 들어준 거지요. 왜냐면 새로 영입한 강사는 경력이 없었어요. 현재 강사는 6개월 간 아쿠아로빅을 했다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할 수 없이 아쿠아로빅은 개강을 했고 첫 분기를 채웠어요. 3월 마지막 날 강습비를 낸 회원이 10명이라더군요. 사무실에서는 제대로 빌미를 잡은 거지요. 우선 강사를 불렀답니다. ‘회원 수가 적다. 이래도 계속 강습을 할 거냐? 나갈 거냐? 회원 수가 20명이 안 되면 스스로 나가기로 한 것 아니냐.’ 강사가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압박한 거지요. 여러분이 사무실에 쳐들어가 따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싶어요. 지금까지 끌었던 것도 강사가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기를 기다린 거랍니다. 앞으로 현재의 강사가 나가고 나면 아쿠아로빅은 없어지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래요. 5월 달에 회원 모집을 할 거래요. 강사가 있대요.”
감이 왔다. 의혹은 의혹을 낳는다. 치열한 경쟁사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관공서의 청렴결백은 서류에 그친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생계형 도둑은 잔챙이고, 합법적으로 큰 물건을 훔치고 사기 치는 족속은 권력층이다. 생계형 도둑은 감옥에 가도 권력형 도둑은 미꾸라지보다 더 미끈하게 빠져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라고 생각한다.
현숙은 생계형 민초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가난한 민중에게도 감투를 씌우면 권력을 행사한다. 마을 이장도 권력자다. 면사무소 공무원도 권력자다. 국민 체육센터의 직원도 권력자다. 주민 위에 군림한다. 조례니 뭐니 서류 앞세워 자기가 가진 권력을 100% 활용하려 든다. 군민의 봉사자를 자처하는 공무원 사회가 국민이나 군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단 공무원조차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라 힘없고 평범하고 착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다. 철 밥통을 단 정규직 직원은 계약직 직원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할 권력을 쥐고 있다. 민초만 희생양이 된다. 새로운 민초는 아부를 잘하고, 같은 사무실 직원들과 잘 어울려야 왕따 안 당하고 잘 지낼 수 있다. 젊으나 늙으나 어떤 단체에 들어가 보면 은근히 멸시하고 왕따 시키는 분위기가 있다. 자기보다 강자다 싶으면 최대한 공손하게, 자기보다 약자다 싶으면 멋대로 부리고 짓밟으려는 심리가 인간의 본능인가. 현숙은 소름이 돋는다.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이 벌레보다 못한 것 같아.’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말처럼 천사도 악마도 내 속에 있다.
“내가 특별나게 굴 것도 없겠네. 다들 얽혀 들기보다 발뺌하고 구경하는 게 좋지요?”
현숙은 거기 있는 회원들을 돌아보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사회는 그렇게 굴러가는 거다. 우리 모두 타인이다. 민초는 계약직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했다. 사무실에 가서 따지고, 관청에 민원을 올리는 것도 소용없다. 이미 민초는 자진해서 강사자리를 내놓았다. 어떤 압박을 가했는지조차 본인이 따따부따하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 군민이 다시 아쿠아로빅을 개강하라고 강요하면 그들은 새로운 강사를 영입할 것이다.
“폐강은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네. 다들 고스톱 칠 줄 알아요? 나도 고스톱 배워야겠다. 멋지게 고도리 하게. 그나저나 아쿠아로빅은 물 건너갔고 이미 낸 아쿠라로빅 수강료는 어떻게 한 대요?”
“계좌번호 적어주고 가면 입금 시켜준다 하더라고요.”
“글쿠나. 새가 날아갔구나. 고도리는 깨졌다. 여러 분 날아간 새 잡긴 글렀어요.”
현숙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아쿠아로빅 회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사람은 수영강습생으로, 어떤 사람은 자유 수영을 택했다. 현숙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 수영이 좋다.
현숙은 탈의실을 나설 때 소태 씹은 것처럼 입이 썼다.
다시 카운터 여직원이 물었다.
“수영강습을 받으실래요? 환불받으실래요?”
“환불해 주세요.”
강습비 환불 이유를 적으란다. 서류의 빈칸에 ‘사무실의 운영관계 때문’이라고 썼다. ‘국민체육센터에서 아쿠아로빅 강사를 압박해 폐강하게 했고 선불로 낸 아쿠아로빅의 강습료를 되돌려 받게 됐다. 이건 참 부당한 일이다.’라고 세세하게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니, 민초를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다.
호주에 사는 딸도 민초와 비슷한 일을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계약직과 정규직의 차별화보다 인종차별로 인해 받는 고통은 없을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수영이든 아쿠아로빅이든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우다 보면 능숙해진다. 그녀도 강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할 때는 회원이었을 것이고 강사가 되어 처음으로 회원 앞에 섰을 때는 두려웠을 것이다. 의욕은 앞서도 가르침을 펼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회원과 강사가 서로 화합하다 보면 서로 배우고 가르치게 되어 나중에는 능숙하게 된다. 이제 겨우 잘한다. 재미있다는 말을 할 정도가 됐는데. 민초가 밀려난 것은 계약직의 설움이고, 칼자루를 쥔 자의 농간이다. 문제는 공직에 있는 사람은 은밀하다. 나중에라도 자기가 다칠 짓은 안 한다는 거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는다. 증빙서류나 근거자료도 육하원칙에 따라 법규의 맹점을 이용해 용의주도하게 마련해 놓는다. 덫에 걸린 것은 약한 자다. 그대 이름은 민초.
3.
민초가 떠났지만 현숙은 여전히 수영장을 오간다.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아무 때나 시간 날 때 편하게 수영장을 찾는다. 누군가 오월부터 아쿠아로빅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군청 홈페이지에 떴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으로 지나쳤다. 오월 아쿠아로빅 개강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리고 석 달이 흘렀다. 석 달 동안 꾸준히 아쿠아로빅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첫 시작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초급, 중급 수영 강습생이 줄어든다. 수영장의 빈 레일이 늘고 넓은 수영장 전체를 몇 명의 수영강습생이 차지한 것이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저녁 일곱 시부터 8시까지 일반인은 수영장 입소를 못한다. 조례에 정해져 있는 것인지. 체육센터 사무실에서 정한 방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시간 엄수는 지켜지고 있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 수영장에서 지수 언니를 만났다.
“아쿠아로빅 회원 모집한다는 문자 받았어? 할 거지? 남자 강사를 초빙했다네.”
“아쿠아로빅이든 수영이든 강습은 안 하기로 했어요. 자유 수영하니 참 좋더라고요.”
7월 첫날부터 아쿠아로빅이 시작되었다. 젊은 남자 강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현숙은 민초를 생각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직장은 잡았을까. 우리 고장의 수영장에서 받은 수모를 잊지 않고 있다면 뭔가 해 내리라.
현숙은 단톡 방에서도 사라져 버린 민초지만 그녀를 우해 기도한다.
‘민초야, 잘 살고 있지? 내가 힘 있는 사람이었다면 너를 도울 수 있었을까. 겨우 석 달을 쉬다가 다시 시작한 아쿠아로빅이다. 너를 강사직에서 내쫓기 위한 모의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어. 나만의 생각일까. 민초야. 넌 잘할 거야.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넌 해 낼 거야. 사랑받을 거야. 난 너를 믿어.’
현숙은 그 여리고 심성 착한 강사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 그들이 누구이든 민초는 더 멀리 더 멋지게 비상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울지 마라. 길은 어디에든 있다. 그 길을 찾는 것도 너 자신이다. 항상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의심하지 말고 그 길을 가라. 가장 강한 적은 너 자신의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만 이기면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수영장에 오갈 때마다 그녀를 위해 짧은 기도를 올린다. 그것은 타스마니아에서 별똥별 떨어지듯 소식 오가는 딸을 위한 어미의 간절한 기도일지도 모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