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먼 옛날 지심도에는 동백이라는 아리따운 처녀가 귀머거리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대여섯 살 적에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다용이 데려갔다고 하고, 뭍에서 딴살림을 차리고 잘 먹고 잘 산다고 했지만 동백은 믿지 않았다. 언젠가 아버지는 돌아오리라. 가끔 동백은 아버지를 데려간 바다를 원망했다. 동백은 아버지가 그리우면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나고 자란 동백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수영을 익혀 세상에 나왔다. 바다는 그녀의 놀이터이자 아버지의 품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데려간 바다가 미워져 때려주고 싶을 때면 물속으로 잠수질을 했다. 바다 밑까지 내려가 바닥을 갈퀴로 마구 긁었다. 거기 기생하는 전복이며 해삼이며 소라 같은 것을 모질게 떼 냈다. 숨이 턱에 찬 채 물 밖으로 나와 휘파람을 불었다. 속이 후련해졌다.
그 날도 동백은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다. 귀머거리 엄마도 해녀였다. 엄마가 만들어 준 물옷을 입고 물질도구를 챙겨 바닷가로 나갔다. 파도가 거칠었다. 파도가 거친 날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게 안전하다. 동백은 바다 곁의 너럭바위에 퍼질러 앉았다.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밀려왔던 파도가 바위를 세차게 때리고 물러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파도는 바위를 치면서 슬쩍 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물보라가 그녀를 감쌌다. 옷이 젖어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하얀 포말을 움켜쥐었다. 금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녀는 파도가 자신의 처지랑 같다는 것을 느꼈다. 날마다 물질을 해도 바다는 늘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동백은 귀머거리 어머니가 알려준 조상을 떠올렸다. 조상 중에 고존지 고 고존지 모르겠다. 하여튼 조상이 나라에 큰 죄를 짓고 섬으로 귀양을 왔다. 수염이 허연 조상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방안의 벽, 돌로 만든 집, 파도가 섬을 삼켜도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 안방에 걸린 초상화 한 점. ‘이목구비가 너의 아버지랑 판박이다. 잘 봐 두어라. 아버지 생각나면 저 그림을 보아라.’ 어머니는 손짓 발짓으로 말했다. 동백은 초상화를 보며 자랐다. ‘아니야, 우리 아버지 아니야.’ 동백은 안다. 대여섯 살 때까지 목마를 태워주던 구릿빛에 강인한 어깨를 가진 아버지를 기억한다.
또 여기 앉아 있는 겨? 밥은 묵었어?
돌아보니 상구가 싱그레 웃고 있다. 금세 찢어질 것 같은 낡은 반바지만 걸친 상구의 벗은 웃통은 기름을 바른 것처럼 번질거린다. 동백은 아버지의 어깨를 본 듯 실눈을 뜬다. 상구는 어딘가 기억 속의 아버지를 닮았다. 둘이는 지심도에서 한 달 간격으로 태어나 자란 남매 같은 친구다. 친척이기도 하다. 타성바지 없는 섬에서 사촌끼리도 결혼을 한다. 동백은 상구를 바라보다 덕룡할머니의 말이 생각나 피식피식 웃었다.
왜 웃는 겨?
덕룡할매 생각나서. 어깨가 쩍 벌어지는 저 놈이나 궁디가 팡팡해지는 저 년이나 어서 혼인식을 해 줘야 새끼를 까제. 빨랑 안 해 주모 용신이 둘 중에 하나는 무 치운다 캉께. 아이고, 멈스리 난다. 내 말을 안 듣다간 용신이 노한다 카이.
그녀는 바위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몸을 떨떨 떠는 덕룡할머니의 모양새를 흉내 냈다. 치매 끼가 있는 덕룡할머니는 팔십이 넘은 지심도의 무녀다. 상구가 배꼽을 잡는다.
가시나야, 지금 니를 보모 덕룡할매가 머라쿠것노?.
니 보고는 머라 카것노. 말만한 머스마가 괴기 잡을 생각은 안하고 가시나랑 시시덕거린다고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안 쿠것나.
가슴에 바람이라도 들었시모 좋것다. 이 놈의 섬만 벗어날 수 있다면.
니는 그리도 뭍에 가고 잡나? 울 아부지 맹키로. 니가 울 아부지 겉애 보이는 기 참말로 싫다아.
내가 우째서 너거 아부지 겉노.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근처도 안 간다.
그렇제. 근처도 안 가는데. 니 하는 꼬라지 보모 울 아베가 생각난다.
니는 뭍에 안 가고 잡나? 내랑 같이 토끼까?
일 없다. 나는 섬이 좋다. 니나 가삐라.
상구와 동백은 다시 너럭바위에 번듯이 누웠다. 등을 쓰다듬는 바위의 따뜻함도 눈부신 햇살도, 몸에서 끈끈하게 말라가는 소금 끼도 아랑곳없다. 상구나 동백이나 순수했다. 늘 함께 하는 친구였다. 본능에 눈을 떴다면 혼전순결 운운할 처지도 아니건만 둘 다 그런 것에는 통 관심도 없었다. 상구는 자나 깨나 섬 밖으로 나가 대명천지에서 사는 것이 꿈이고, 동백은 자나 깨나 실종된 아버지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섬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천지개벽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은 부부가 될 것이다. 그 섬에서는 남녀 열 일곱 살만 되면 혼인을 시켰다. 모두가 같은 성씨니 족내혼이며 근친혼이지만 아무도 가타부타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섬의 전통이었다. 어쩌다 바다에 빠졌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사람이 있다 해도 섬 처녀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친인척이었다. 과부는 이웃집 남자랑 정을 통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남자는 바다에 나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집안 살림은 여자들 몫이었다. 지심도는 모계 중심의 사회였다. 두 해만 지나면 상구와 동백은 혼인을 한다. 상구는 어부가 되어 고기를 잡고, 동백은 물질을 해서 멍게와 해삼, 소라 고동, 전복을 따며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다.
니는 뭍에 가모 어떤 여자를 만나고 싶노?
몰라. 내가 아는 여자가 있간디? 이 섬 여자만 아니모 다 좋것다.
나는 여게서 우짜다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왕자님 기다릴 기다.
덕룡할매 이바구는 순 뻥이다. 그걸 믿나? 니는 멍치다.
상구가 놀려도 동백은 헤실헤실 웃으며 하늘바라기를 했다.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는 왕자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피부는 새까맣고 꼬챙이처럼 마르고 못 생긴 상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백은 잠이 들었다. 상구는 바위에서 일어나 앉아 잠든 동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슨 꿈을 꾸는지 약간 벌어진 입술이 웃고 있었다. 상구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바닷가에 내려가 예쁜 소라껍질 하나를 주웠다. 그것을 가지고 너럭바위로 돌아와 동백의 귀에 댔다. 동백은 바다소리에 잠이 깼다. 상구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아직도 동백은 꿈을 꾸는 것 같다. 상구를 눈부시게 바라본다.
꿈 깨라 가시나야.
엉, 니가? 에이, 김 팍 샜다. 어! 그 새 바람이 잠잠해졌네.
동백은 벌떡 일어나 망사리와 골괭이를 챙겨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는 포근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동백은 금세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해삼도 줍고 멍게와 소라도 땄다. 가끔 상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상구는 인어 한 마리가 유연하게 물살을 가르며 너럭바위 아래로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이라곤 가슴을 싸맨 무명천과 허벅지를 드러낸 속곳차림이었다. 쭉 빠진 하얀 다리가 유연하게 물살을 탔다. 상구의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동백의 몸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은빛 인어였다. 상구는 벌떡 일어나 바닷가를 떠났다. ‘난 여기가 싫어. 뭍에 가서 살 거야.’ 이를 꼭 깨물었다.
그리고 어느 봄 날, 상구는 사라졌다. 지나가던 고깃배에 올라타고 뭍으로 가버렸다. 그제야 동백은 상구의 빈자리가 얼마나 넓은지 깨달았다. 섬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둘만의 기억, 추억이 깃든 자리, 마음이 머문 자리였다. 동백은 날이면 날마다 물질을 핑계로 너럭바위에 앉아 바다 건너를 바라봤다. ‘상구야, 니는 언젠간 돌아올 거지?. 울 아부지 찾아 올 거지?’ 파도만 세차게 바위를 때렸다. 뭍으로 간 상구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진짜 아버지는 뭍에서 색시 얻어 살고 있을까. 바다귀신이 데려갔다고도 하고 뭍에서 생선장수 하는 아버지를 봤다는 사람도 나왔지만 동백은 믿지 않았다. 짜잔! 하고 상구와 아버지가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기를 몇 번이나 해도 상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동백은 꽃보다 더 예쁜 처녀가 되었다. 동백은 날마다 물질을 나갔다. 귀머거리 엄마는 동백을 혼자 보내지 않겠다고 따라다녔다. 섬은 나날이 비어갔다. 사람들도 하나 둘 뭍으로 떠나고 동백섬은 빈 집만 늘어갔다. 동백은 상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상구는 안 온다. 과년한 처녀가 엄니 생각해서 다른 혼처를 구해야지.
집안 어른들이 나서서 혼처를 들이대도 동백은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부터 짝으로 맺어준 상굽니다. 돌아올 겁니다. 아버지 모시고 올 겁니다.
동백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거센 폭풍이 닥쳤다. 동백나무가 뿌리를 뽑힐 정도로 거센 바람이었다. 섬은 초토화 되고 바닷물은 섬을 뛰어넘었다. 태풍이 멎자 바닷가에 좌초한 커다란 배 한 척이 널브러져 있었다. 배에서 여남 명의 짐승이 기어 나와 섬으로 들어왔다. 머리는 노랗고 몸은 백색이었다. 중요한 곳만 살짝 가린 벌거벗은 몸뚱이에 누른 털이 잔뜩 난 희한한 짐승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뇌까렸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집안으로 숨어 문을 잠갔다. 짐승은 쇠스랑처럼 생긴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 배는 먼 바다에서 노략질 하던 백인 해적선이었다. 태풍에 떠밀러 동백섬까지 온 것이었다. 그들은 섬을 제집처럼 들쑤시고 다니며 먹을 것을 챙기고 여자를 탐했다. 동백의 집에도 들이닥쳤다. 귀머거리 엄마는 동백을 벽장에 숨겼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고기를 잡고 섬사람들의 곡식을 빼앗아 배를 채우며 좌초된 배를 바닷가로 끌어내 고치기 시작했다. 섬에 있는 나무들을 잘라다 목재로 썼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수십 그루 베어졌다. 그들은 저녁마다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춤추고 노래하고 술에 취해 해롱거렸다. 마을 사람도 동백의 모녀도 낯선 사람들로부터 숨었지만 작은 섬은 안전하지 않았다.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친 해적에게 들켜버렸다. 부엌에서 밥을 짓던 동백은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아리따운 처녀를 보자 침을 질질 흘렸다. 동백은 뒷문으로 튀어 달아났다. 짐승은 처녀를 쫓고 처녀는 동백나무 숲을 지나 벼랑 끝으로 달려갔다. 거긴 동백이 그리움을 풀어 놓는 장소였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 동백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는 곳, 그 동백나무에 기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곤 했던 곳, 기다림의 장소였다. 거기까지 짐승들이 쫓아왔다. 동백은 바다로 몸을 날렸다.
아버지! 상구야! 엄마, 용서 하이소.
동백의 절규는 섬을 울렸다. 동백이 그렇게 죽고 귀머거리 엄마도 그 자리에 앉아 동백나무에 기대어 망부석이 되었다. 그때부터 동백나무는 바다 쪽으로 구부러지더니 기도하는 자세로 멈추어 섰다. 겨울이면 붉디붉은 동백꽃을 무수히 달았다가 바다로 송이 째 뚝뚝 떨어뜨렸다. 푸른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곤 한다는 것이다. 마치 동백 모녀의 영혼이 나무에 깃든 것처럼 바다에 떨어진 꽃들은 빙빙 돌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섬을 처녀의 넋이 깃든 섬이라 하여 동백섬이라고 불렀다.
“마지막 배가 몇 시랬어? 가자. 여긴 마음만 머물다 가는 자리 같아.”
“저기 펜션도 있다. 하룻밤 자고 갈까? 옛날처럼 한 방에서 손 꼭 잡고 자보면 어떨까.”
“그땐 둘만 아니고 여럿이서 날밤 새웠잖아. 그 친구들 다 부르지 그랬어?”
나는 윤 선생의 손을 놓고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윤 선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친구다. 어쩌면 우린 짝사랑만 하다가 말 운명은 아닐까. 나도 윤 선생을 은근히 좋아했지만 친구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을 산다.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동창회에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몇 십 년을 꾸준히 그래왔다. 우린 늙었고, 손자손녀도 있는 중늙은이가 되었다. 서로의 속내를 내비친 적 없지만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짝사랑이든 그리움이든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이 우정이라지. 둘 만의 오붓한 여행길은 처음이지만 지심도는 그렇게 내 마음이 머무는 섬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