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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08. 2024

냉이꽃

<단편소설.  처음>

 <단편소설>     

                    냉이 꽃

                           박래여    

      

  지연은 아파트를 나와 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아파트 옆의 나지막한 산인데도 지난 일 년은 멀기만 했다. 겨우 산길 산책을 다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지연은 몸이 아프면서 나이를 의식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휩쓸려 다니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 같다. 외국으로 골프 나들이도 다니고 유럽 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건강을 잃은 후에야 건강이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고 하던가. 길섶에 피어난 어린 냉이 꽃과 눈을 맞추었다. 개나리도 노란 입술을 쏙쏙 내밀고 있었다. 산책길도 한산하다. 코로나 19의 여파일까. 노인보다는 중년층이 많다. 마스크에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색안경을 끼었기에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그중에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지연의 앞에서 느릿느릿 걷는다.


 “엄마, 조금만 더 힘내. 오늘은 저기 벤치까지만”

 간편복 차림의 중년 아낙이 오리털 조끼를 입은 백발의 노인께 말한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은 숨을 헐떡이면서 딸의 손을 꼭 잡고 한 발 걷다 쉬고 또 걷는다. 백발의 노인에게 엄마가 겹친다. 노인은 나무의자에 힘겹게 앉는다. 산책길 중간중간에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다리 쉼 하라는 뜻이다. 지연은 그들을 지나쳐 천천히 숲길을 오르며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를 보러 가야 하는데. 마음은 날마다 엄마 곁에 가지만 몸은 꼼짝도 않고 제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이건 누구 탓도 아니야. 아버지 탓이야. 지연은 아버지를 탓하지만 알고 있다. 정작 엄마를 만나러 가기가 겁나는 것이다. 


 일 년 전이었다. 시골에 계신 친정엄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아버지는 엄마 죽기 전에 보고 싶으면 내려오라고 했다. 지연은 밤길을 달려 친정집에 도착했다. 오빠와 올케가 엄마를 돌보고 있었다. ‘이대로 둘 수 없어. 병원에 가자.’ 엄마를 119에 태워 대학병원으로 달려갔었다. 폐렴에 뇌경색이었다. 엄마는 폐렴 치료를 하고 다음날 경동맥 수술을 했다. 핏줄 안에 스턴트를 넣었다. 엄마는 석 달간 병원신세를 졌다. 처음 2주일은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인근 재활병원에서 보냈다. 친정 부모님을 지척에서 돌보고 모시는 오빠도 칠십이 된 노인이다. 


 지연은 대학병원에서 엄마를 간병했다. 딱 일주일이었다. 개인 간병인을 구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 엄마는 십 년 넘게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앓았다. 뇌수술 후유증으로 언어기능이 상실되었다. 말도 못 하면서 밤낮으로 줄기차게 화장실을 가려는 바람에 지연과 담당간호사도 진땀을 뺐다. 엄마는 기저귀를 채워 놓으면 스스로 뽑아 던져버렸다. 침대를 막아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잠깐 졸거나 병실을 비울 때면 어김없이 엄마 때문에 소동이 났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휠체어 조정도 못하면서 기어서라도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엄마, 제발 기저귀에 볼일 봐. 내가 치울게. 괜찮아. 병원에 오면 다 그래.’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황소고집이었다. 


 지연은 병원생활 일주일 만에 생병이 났다. 엄마의 화장실 출입은 왜 그리 잦은 지. ‘엄마, 십 분도 안 됐어. 또 가려고?’ 말려 봐도 소용이 없었다. 잔뇨 때문이거나 정신적인 문제 같았지만 지연은 엄마를 막을 수가 없었다. 말이 안 통하는 환자였다.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지연도 병을 얻었다. 엄마를 말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문제가 됐다. 고관절에 염증이 생겼다. 지연도 환갑이다. 젊지 않다. 뼈마디가 쑤시고 아플 나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엄마 따라다니느라 지쳐갔다. 어렵사리 24시간 간병인을 구했다. 


 지연은 엄마를 간병인과 오빠에게 맡기고 집으로 오자마자 병원신세를 졌다. 병원과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하다가도 오빠의 연락을 받으면 또 엄마에게 달려갔다. 지연은 올케들이 미웠다. 엄마가 저 지경이 됐는데도 아무도 엄마의 간병을 자처하지 않았다. 엄마를 퇴원 즉시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친언니는 ‘이제 엄마는 큰오빠가 모셔야지.’했다. 맏며느리인 올케는 ‘나도 환잔데 어떻게 노인을 모셔. 다른 집에서는 딸들이 모신다더라. 고모가 좀 모시지.’한다. 둘째 올케도 아프단다. 두 노인 모시느라 이미 파김치가 됐다. 셋째 올케는 ‘두 형님이 있는데 내가 왜 모셔. 생전 효자는 딸이란다. 고모가 모셔야지.’한다.  지연은 막내딸이다. 엄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엄마는 평생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눌러 입도 뻥긋 못하고 머슴처럼 살았다. 아버지로부터 하녀처럼 부림 당하며 생가슴만 앓다가 치매환자가 된 엄마다. 불쌍한 엄마, 지연은 엄마를 모시고 싶지만 자신 없다. 오빠가 셋이나 되는데 내가 왜 모셔? 그 마음이 더 컸다. 또한 남편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싫었다.


 작은올케가 말했다. 

 “이젠 방법은 하나야. 엄마는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상책이야. 아버지 등살에 저 몸으로 집에 모신다는 것은 무리야. 난 이제 엄마 못 모셔. 고모도 알다시피 내가 엄마보다 더 환자잖아. 더구나 평생 호령만 하고 당신 건강밖에 챙길 줄 모르는 아버지잖아. 아버지가 엄마 시중을 들겠어? 그렇다고 저 상태인 엄마가 밥상을 차리겠어. 집안일을 하겠어. 아무것도 못하게 됐잖아. 누군가 삼시 세 끼를 챙겨드려야 하고, 집안 살림도 살아야 해. 엄마를 집으로 모시면 아버지 등살에 엄마만 더 힘들어져. 엄마는 요양원에 계시는 게 나아.” 

 지연은 소리쳤다. 


 “그동안 힘들게 산 언니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섭섭하네. 엄마를 어떻게 요양원에 모셔. 그동안 누구 하나 우리 엄마를 위해 준 적 있어?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아? 이제 엄마 좀 편하게 모시자. 서울로 모시고 가면 되잖아. 서울에 큰오빠와 올케도 있고 나도 있고 큰언니도 있잖아. 우리가 돌아가면서 모시면 되잖아. 아버지는 둘째 오빠가 모시면 되고. 아니, 아버지 혼자 잘 먹고 잘 살도록 놔둬버려. 우리 엄마만 생각하자고.”

 “그래? 말 잘했다. 난 할 만큼 했어. 이제 손 놓을 테니 알아서 해. 엄마가 퇴원하게 되면 고모가 서울로 모시고 가. 나는 아버지 모실 테니. 두 노인 시소게임에 새우 등이 터져버렸다. 이제 나도 좀 편하게 살자. 나도 힘들었어. 아버지는 엄마를 부리고 엄마는 나를 부렸으니까. 이젠 나도 환자고 노인이야. 난 할 만큼 했어. 그래도 고모는 내 심정 알아줄 줄 알았더니 아니네. 왜 내 희생만 원해? 다른 집에서는 딸이 친정부모 모시더라. 그렇게 엄마가 소중하면 모시고 가.”


 작은올케도 냉랭하게 돌아섰다. 엄마가 병원생활 하는 동안 세 올케는 두세 번 면회를 다녀갔다. 둘째 오빠만 날마다 병원을 드나들었다. 둘째 오빠와 나만 빼고 모두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워낙 오랜 세월 노인 부부의 반목을 지켜봤던 탓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안 보여야 행복해지셨다. 엄마의 소원은 ‘너의 아베 죽고 일주일만이라도 홀가분하게 혼자 살아봤으면 원도 한도 없겠다. 너의 아베 절대로 나보다 먼저 안 죽는다. 어릴 때부터 몸에 좋은 것만 잡숫고 살았는데 죽을 수가 없지. 지금도 몸에 좋은 것만 챙긴다. 그 수발하기 징글징글하다.’는 엄마였다. 


 아버지는 남존여비 사상이 골수에 박힌 우리 집안의 독재자다. 엄마는 순종을 미덕으로 아는 양반가 규수였다. 삼종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장을 지지고 자란 세대다. 부부금실은 애초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싫다면 어떻게 우리가 생겼느냐고 농담을 하면 애 생길 때가 되면 강제로 취하는데 어떻게 반항하느냐고 했다. 나라가 뒤숭숭한 대동아 전쟁 말기였다. 서둘러 혼처를 정한 외할아버지께서 엄마를 불러 앉혀놓고 다짐을 받더란다. 그 댁은 우리 고장에서 독립 운동가 집안에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니 남편이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너는 출가외인이다. 그 집 귀신이 되어라.’  아무리 친정이 가까워도 함부로 오가서는 안 된다며 못을 박더란다.


 지연은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사랑받는 아내로 살 거야.’ 다짐했었다. 남편은 중매로 만났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을 했다. 남편이 아버지와 똑 같이 가부장적인 남자였다. 지연은 한숨을 쉬면서도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남편은 가정에 도통 관심도 없었다. 잔정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애정을 느끼기보다 책임감만 늘어갔다. 남매를 잘 키우고자 혼신을 다했다.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엄마의 삶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데도 남편은 미동도 없다. 아내를 아끼기는커녕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물건처럼, 꾸어다 둔 보릿자루 취급했다.  


 지연은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면서 엄마를 이해했다. 평생 독선적이고 자기 자신만 챙기는 아버지 옆에서 숨이 막혔던 엄마는 술과 일하는 낙으로 사셨다. 농주를 담가 먹을 때는 새참이란 명목으로 마셨고, 막걸 리가 떨어질 때는 소주병을 장독간이랑 부엌이랑 집 안팎 여기저기 숨겨두고 들며 나며 마셨다. 술 냄새라도 풍겼다간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입 싹 닦았다. 대신 엄마는 말을 잃어갔다. 지연도 남편 앞에서 말을 잃어갔다. 할 말이 있어도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외면해 버렸다. 남편에게 기계적인 아내였다. 남편이 술을 떡이 되도록 먹고 온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꿀물을 타서 대령했다. 엄마가 아버지께 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자신을 봤다.   


 지연이 본 엄마는 아버지의 종이 었고 집안의 머슴이었다.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집안 망한다는 아버지는 ‘무식하고 못 배워먹은 것’이라며 엄마를 무시했다. 남편도 지연을 그렇게 무시했다. ‘너도 돈 벌어라.’며 생활비를 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지연은 대기업 간부의 사모님이 아니라 3D 업종 종사자가 되어 생활전선에서 뛰었다. ‘오냐, 너 안 바라본다. 내 힘으로도 벌어먹고 산다.’ 오기로 버티면서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는 일꾼을 부리며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의 도움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량이셨다. 늙어 노인 되면 보자고 이를 악물었던 엄마지만 엄마가 먼저 무너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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