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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13. 2024

냉이꽃

<단편소설.  중간>

  엄마가 쓰러졌을 때 아버지는 엄마를 죽도록 놔두라고 했다. ‘사나흘만 있으면 명 떨어진다. 병원에 데리고 갈 필요 없다. 고마 죽도록 놔두라.’고 했다. 어떻게 칠십 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눈을 감고 누워있던 엄마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라는 것을 지연은 알았다. 사실 엄마는 둘째 오빠와 올케 애도 많이 먹였다. 엄마는 십 년이 넘도록 노인우울증과 치매를 앓았다. 한 달에 20일은 병원을 오갔다. 두 노인이 번갈아가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는 것을 안다. 엄마는 농사일에서 손 떼고부터 큰오빠에게 가서 의탁하고 싶어 했다. ‘오메, 제발 저 좀 덜 힘들게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사입시다.’ 두 노인이 서로 갈구는 것에 지쳤던 작은올케가 엄마에게 함께 살자고 했다. 엄마는 첫마디에 ‘내가 왜 너네한테 가? 서울 큰 아한테 가야지. 가들이 모실 기다.’ 정색을 하는 바람에 작은올케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시어머니는 친정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맏자식에게 의탁하려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큰오빠부부도 노인이라 두 노인을 모실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의 상처는 병을 악화시키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더 강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밥도 먹기 싫다고 했다. 아버지께 대놓고 괌 지르고 하고 싶은 말 다 쏟아내고 싸우라고 해도 평생 아버지에게 지배당하고 세뇌당해 산 엄마는 여전히 끽소리도 못했다.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만 한숨 쉬고 한탄을 했다. ‘내가 먼저 죽을 끼다. 저 영감탱이 오래 살 끼다. 두고 봐라. 너들 애 많이 먹일 끼다.’하셨다. ‘돌볼 자식 없으면 아버지는 요양원 가셔야지 뭐.’했지만 ‘아이가 요양원? 강제로 넣어야 가지. 안 갈 인간이다.’며 혀를 찼었다. 


 결국 지연은 둘째 오빠와 엄마를 집으로 모셨다. 작은올케는 엄마의 귀환을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두 노인을 떼어 놓는 것이 상책이라면서 자기도 더 이상은 두 노인의 시소게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작은올케는 지연에게 말했다. ‘너 엄마를 모시고 간다고 했잖아. 모시고 가. 한번 모셔 봐. 그래야 내 심정을 알지. 그런데 내게 의논 한 마디 없이 집으로 모셔? 너의 오빠가 모신다고 했으니 모시겠지. 너도 너의 오빠도 똑같아. 어찌 그리도 이기적이니?’ 그랬다. 세 올케도 언니도 집에 온 엄마를 보러 오지 않았다. 작은올케는 나까지 거부했다. 둘째 오빠 네도 부부갈등이 도를 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연은 사흘간 친정에서 지내며 엄마를 돌봤다. 언니조차 아버지 보기 싫다고 친정에 안 왔다. 그나마 요양보호사 덕에 살았다. 작은올케 덕이었다. 작은올케는 엄마가 병원에 계신 동안 아버지를 꼬드겨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놨던 것이다. 엄마는 치매판정을 받은 지 오래됐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주중에 두 시간 반은 요양보호사가 오갔다. 둘째 올케는 요양보호사 덕에 숨통이 튄다고 했다. ‘점심 한 끼와 청소, 빨래라도 해결해 주니 얼마나 좋은지.’라고 했다. 이제 아버지도 장기요양 등급을 받았으니 점심 한 끼는 해결된다고 좋아했다. 엄마만 요양원으로 모시면 아버지는 자기가 돌볼 수 있다고도 했었다. 작은올케도 국가 공식적인 노인이고 기저질환자다. 그 몸으로 유별난 시부모를 모셨으니 지칠 만도 했다. 시부란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까. 그렇지만 지연은 그 짐을 나누어질 마음은 없다. ‘오빠들이 알아서 해야지. 내가 왜.’ 그런 마음이 더 강했다.


  엄마는 집에 오니 좋다고 했다. 딸이 삼시 세끼를 챙겨주니 더 좋다고 했다. ‘같이 살자’ 서툴게 말했다. 지연은 사사건건 시비 걸고 엄마를 향해 삿대질하고 화를 내는 아버지가 보기 싫었다. 겨우 사흘을 참다가 더는 못 참고 보따리를 쌌다. ‘엄마, 미안해. 아버지 때문에 못 있겠어. 집에 갔다가 또 올게. 아침은 아버지 보고 챙겨 잡수라고 했으니까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돼.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오고 주말에는 우리가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올 거야.’ 지연은 둘째 오빠를 믿었다. ‘오빠가 엄마아버지를 모신다는데 언니가 어쩌겠어.’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작은올케의 거부 반응은 심했다. 자신은 할 만큼 했다면서 외면했다. 오빠랑 이혼할 생각이라며 전화조차 안 받았다. 지연은 안다. 엄마가 얼마나 작은올케에게 의지하고 살았는지.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는 언니를 칭찬했다. 샘날 정도로 고부간에 끈끈했다. ‘내가 가아 때문에 산다. 안 그라모 벌써 죽었을 기다. 너거 엉가 같은 며느리 없다. 딸인 니보다 더 낫다.’ 했었다. 그 언니가 왜 엄마를 더는 모시지 않겠다고 냉랭하게 돌아섰는지 몰라도 지연은 섭섭했다. 그동안 지연도 올케를 많이 생각해 주고 챙겨주었다. 시부모 모시며 고생한다고. 


 엄마를 집으로 모신 후에야 둘째 올케의 반란의 원인을 알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많지도 않은 재산을 몽땅 큰오빠에게 준다고 했고 작은오빠에게 준다고 했던 밭조차 큰오빠에게 준 것이다. 그 밭은 작은올케가 시집오면서 갖고 왔던 돈으로 산 것이었다. 언니는 아버지가 그 땅은 자신에게 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사실 몇 년 전 아버지는 그 밭을 둘째 오빠와 셋째 오빠가 나누어 가지라 했고, 집은 큰 오빠에게 물려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어 재산을 몽땅 큰 아들에게 준다고 한 것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면서 당연히 맏자식이 모실 것이라 믿었지만 큰오빠는 부모님을 모실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는 큰오빠에게 재산을 다 주면 모시겠지 했던 것이다. 둘째 오빠나 언니와 의논한 마디 없이.


 작은올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이웃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 ‘아버님, 우리 준다고 한 밭도 큰 집에 가져가라 했다면서요? 그 밭의 일부는 제건데.’ 저녁을 차리다가 농담처럼 한 마디 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내 재산 내가 우리 제사 지내 줄 큰 아 준다고 했는데 네가 왜 나서느냐’고. 둘째 언니를 호되게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 일이 빌미가 되었지 싶다. 작은올케는 아버지께 만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삼십 수년이 넘도록 함께 살다 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두드러지고 눈엣가시만 남는 법인데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라고 다를까. 등잔 밑이 원래 어두운 법이다.  


 “고모야,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정 떨어지면 안 보는데. 아버님이 정을 다 뗀다. 어머니처럼 나를 부리려고 드는데 정 안 떨어지겠니? 사실 너의 오빠한테도 정나미 떨어졌다. 어쩜 그리 아버님 같니? 아버님이 어머님께 하듯이 내게 한다. 오래 살면 똑같아질 것 같아서 겁나. 엄니아베처럼 서로 먼저 죽길 바랄 것 같다. 삼십 년이 넘도록 나도 할 만큼 했다. 시댁에 발이야 끊을 수 없지만 예전처럼은 안 될 것 같다.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할 것이고 주말에는 너의 오빠가 한다니까. 나는 한 발짝 물러나려고 한다. 이젠 나도 나를 위해 살고 싶다. 아버님처럼.”       


 그러라고 했다. 작은올케 마음도 이해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다. 가족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문중과 조상이 우선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아버지는 엄마의 장롱을 뒤졌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엄마 이름으로 거금이 든 통장을 발견했다. ‘엄마가 어떻게 그런 돈을 모았을까. 엄마가. 돈의 힘, 엄마를 견디게 한 힘이 그것이었구나.’ 지연은 눈시울이 흥건해지도록 울었다. 아버지는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좋아했다. 엄마의 통장과 도장과 주민등록증은 아버지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 돈 때문에 작은올케는 아버지께 대들었다. ‘왜 아버님이 그 돈을 움켜쥐어요? 어머니 주세요. 어머니는 아버님보다 돈이 소중해요. 어머니 아직 안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 그 돈은 살아갈 힘이에요. 주세요. 어머니 병원비도 있어야 하잖아요.’ 아버지는 고함을 질렀다. ‘감히 네가 시에비한테 말대꾸를 해? 너의 시어매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다. 돈은 내가 관리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병원비는 너희들이 내야지. 나는 병원비 한 푼도 못 댄다.’는 아버지였다. 작은올케는 어떻게 칠십 년이 넘도록 동고동락한 아내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졌지만 돌아온 대답은 ‘사람 구실 못할 것 같으면 요양원에 보내라’였다. 작은올케는 확실하게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방구석에 모로 누워 들은 척도 안했다. 


 엄마를 집으로 모신 지 일 년이 지났다. 다섯 남매가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엄마를 돌보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두 노인은 둘째 오빠와 올케, 요양보호사에게 맡겨졌다. 아버지는 평생 당신 손발처럼 움직여주던 엄마가 삼시세끼 차려주는 밥상만 받고 손도 까딱 안 하자 툭하면 당신 성질에 못 이겨 쓰러졌고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을 오갔다. 병원에 입원하면 멀쩡해져서 사흘도 안 돼 퇴원했다. 그 수발은 고스란히 둘째 오빠가 감당한다. 작은올케 역시 엄마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 형제자매로부터 받은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두 집 살림 살던 것을 시나브로 접어버렸다. 시댁에 발은 끊을 수도 없고, 이혼하고 싶은데 시부모 때문에 이혼하는 것도 우습다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고 했다. 


 지난 연말부터 엄마의 치매는 심해졌다. 옷에 똥을 싸 놓고도 모를 정도다. 아버지의 짜증은 도를 넘어섰다. 자식들 역시 멀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주말에 엄마아버지를 모시자는 말은 헛말이 되고 둘째 오빠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끼니를 맡아주니 다행이란다. 그것도 엄마가 기저귀를 차기 전까지다. 엄마가 기저귀를 차면서 오빠는 날마다 엄마 기저귀를 갈아드리러 다닌다는 소식이다. 요양보호사조차 할머니는 요양원에 보내야 된다면서 기저귀 처리는 못하겠다고 하더란다.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찾는 말도 못 하는 엄마다. 아버지는 그 엄마에게 폭언을 일삼고, 작은오빠는 그런 부모님을 모시면서 겉늙어버렸다. 귀도 눈도 허리도 탈이 생겼단다. 노인이 되어버린 오빠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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