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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14. 2024

냉이꽃

<단편소설.  끝>

지연은 이번 설에도 엄마를 보러 못 갔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할 때라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핑계로 서울 사는 큰오빠도 큰언니도 시골 행을 접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했지만 어쩌겠나. 추석에 이어 설에도 고스란히 작은올케가 명절 준비를 했고 셋째 오빠 내외면 잠깐 다녀갔단다. 다행스럽게 작은올케 마음이 많이 풀렸다는 거다. 언니에게 미안해서 전화를 하면 ‘괜찮다. 노인들이 오래 살아서 그런 걸 어쩌겠니. 나도 이젠 마음 내려놓았다. 화낸다고 현실이 달라질 것도 없잖아. 너의 오빠가 고생이 많지. 나도 환자라 미안하지 뭐.’ 결이 삭아버린 목소리다. 지연은 내심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지연은 산길 중턱에 있는 오래된 약수터로 향했다. 아랫마을 아파트 사람들은 거기 와서 생수를 길어다 먹었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오곤 했는데 약수터 가는 길목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힘이 세다. 2년째 사람들을 제멋대로 휘두른다. 가난한 사람은 생계가 위태롭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라고도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 불신을 심어 조장하고 빈부격차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이 바이러스의 힘 같다. 어려운 현실은 모두 코로나19 탓으로 돌린다. 코로나19 덕에 떼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쫄딱 망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산길을 되짚어 내려오는데 아까 봤던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산길 입구의 나무의자에 앉아있다.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환하게 웃고 있다. 중년 아낙은 할머니의 귓바퀴 뒤에 하얀 꽃을 꽂아준다. 그들 가까이 내려가자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냉이 꽃 예쁘지? 엄마랑 닮았다. 오늘은 운동 꽤 했지? 조금씩 다리 힘이 생기는 것 같아. 내일은 조금 더 걸어볼까? 엄마가 우리 집에 와 있어 참 좋다. 안 그러면 나 혼자 외로웠을 텐데. 엄마가 있어 참 좋아. 오래오래 우리 이렇게 살자. 엄마, 점심은 뭐 먹을래? 우리 맛있는 것 시켜 먹을까?” 


 지연은 눈물이 핑 돈다.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에 나도 저런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그땐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엄마랑 단 둘이 오붓한 나들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내 삶에 치어 사느라 엄마 생각은 못했다. 평생 흙만 파고 살던 엄마, 엄마랑 둘이 여행 한 번도 못해봤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어쩌면 둘째 오빠가 잘 모시기 때문에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둘째 언니가 아버지랑 엄마랑 좀 떼어놨으면 좋겠다고 엄마 좀 모시고 가서 며칠간이라도 호강 좀 시켜 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을 때가 있었다. 두 사람 시소게임에 고래 등이 터져버렸다고. 나도 좀 살자면서. 둘째 언니의 하소연에도 지연은 묵묵부답했다. 왜냐면 엄마를 모시고 오고 싶어도 남편 눈치가 보여 모실 수가 없었다. 변명 아닌 변명이요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다. 나도 엄마나 아버지에게 정이 없어서가 아닐까. 솔직히 엄마도 내게 애틋한 잔정은 못 준 셈이다. 늘 생활에 치어 허덕대고 아버지 뒷바라지만도 벅차했다. 자식들에게도 냉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무뚝뚝하다. 잔정 없이 우리를 키웠다. 오빠나 우리 형제자매 모두 엄마의 정을 모른다. 엄마는 자식을 품에 안아 다독일 줄도 몰랐고 표현할 줄도 몰랐다. 엄마는 우리 집 부엌데기고 머슴이었다. 늘 일만 했다. 엄마에 대해 한마디 하라면 평생 고생하고 살았고, 평생 남편 시집살이에서 못 벗어난 불쌍한 엄마라는 거다. 정작 부녀관계나 모녀관계에서 돈독한 정을 말하라면 할 말이 없다. 며느리가 애를 낳았는데 누가 가야 맞을까. 단 며칠이라도 해산구완을 해 줄 시어머니가 가야 하는데 시아버지가 갔을 정도다.


 지연은 첫 딸을 낳았을 때를 생각한다. 엄마를 불렀다. 처음으로 엄마가 신혼집에 왔었다. 딸의 해산구완을 해 주러 온 엄마는 차멀미로 며칠을 앓아누웠었다. 엄마는 모든 것을 힘들어했다. 사위 보기도 힘들어했다. 엄마 자신이 애 낳고 해산구완을 받은 적이 없어 그럴까. 지연도 불편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했기에 더 힘들었다. 결국 엄마는 큰오빠 집에 가서 쉬는 날이 더 많았다. 엄마도 그만큼 이기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지연은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아무래도 다음 주말에는 엄마에게 다녀와야겠다. 둘째 언니에게 전화부터 넣었다. 


 “언니, 난데 다음 주에 엄마 보러 갈까 하고. 뭐 필요해? 엄마 먹고 싶다는 것 없어?” 

 “엄마는 말을 안 하니 모르겠다. 새 반찬만 드리면 잘 드신다. 들깨 국이나 추어탕은 번갈아가며 드린다. 고춧가루 든 것은 사절이다. 아버지는 또 전복 타령이다. 마트에서 산 전복은 자잘하다고 전복으로 치지도 않으신다. 생삼 갈아 자시는 것도 이젠 질렸는지. 알아서 해.”

 “아버지는 내버려 두고 엄마 잘 먹는 것만 해 갈래.”

 “날마다 새 반찬에 새 밥 지어드리면 최고다. 냉동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잘 안 드셔. 나도 대충 한다.”

 “아버지는 여전하셔?”

 “더 젊어지셨다. 나도 아버지 짜증 내는 것 보기 싫어서 두 번 갈 것도 한 번 간다. 그때 보자. 힘들면 안 와도 돼. 와 봤자 엄마 꼴 보면 마음만 아플걸. 저렇게 사는 것도 행복하실까 묻고 싶다.”


 지연은 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보았다. 모녀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참 정겨워 보인다. 엄마도 저 노인처럼 걸을 수는 있으니 모시고 동네 한 바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문이 막혀버린 엄마지만 엄마 손을 꼭 잡고 산책하고 엄마 옆에서 잠들면 헛헛한 속이 채워지지 않을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엄마를 볼 수 있을지. 돌아가신 뒤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아버지 미워서 엄마 보러 가기 싫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핑계 대지 마. 그래, 엄마에게 다녀와야겠다. 마음을 굳히자 길섶에 핀 어린 냉이 꽃이 환하게 웃는다. 겨울 한파도 이겨내고 핀 하얀 냉이 꽃에 엄마 얼굴이 어룽거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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