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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24. 2024

사할린에 핀 벚꽃

<단편소설 1>

<단편소설>      

  사할린에 핀 벚꽃      

    

1.     

  상해는 지난해부터 부모님 제사를 합쳤다. 칠십이 넘은 아내의 몸이 부쩍 힘들어지면서 내린 조치다. 아내는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오그렸다하며 주방과 거실에서 잰걸음 친다. 집안은 온통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긴다. 아내는 전을 굽고 상해는 튀김을 했다. 전과 튀김이 완성되었다. 아내는 제상에 놓을 튀김과 전을 따로 한 접시 담아놓는다. 상해는 설거지거리를 챙겨 싱크대에 갖다놓고 채반에 담긴 새우튀김 하나를 입에 물고 서쪽 창을 본다. 벚꽃이 탐스럽다. 벚꽃 잎 몇 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창가에 앉는다. 늙은 벚나무의 몸통에 핀 흰 무늬도 꽃 같다. ‘미오!’ 상해는 지그시 입술을 문다.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미오를 불렀다.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간절한 눈빛, 숨을 몰아쉬면서도 아버지의 눈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던 엄마는 허공에 내민 아버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아버지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의 삼우제를 지내고 어머니께 물었다. 미오가 누구냐고. 엄마는 그렁그렁 눈물 고인 눈과 달리 미소를 지었다. ‘잃어버린 내 큰 딸이란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었다. 벚꽃이 필 때쯤 돌아온 아버지는 온종일 벚나무 아래 의자를 내 놓고 앉아 꽃을 바라봤다. 벚꽃가지에 입을 맞추기도 하고 포근히 안아주기도 했다. 벚나무가 마당을 반이나 점령하고 그늘을 드리워도 나뭇가지 하나 베어내지 못하게 했다. 벚꽃이 지고나면 아버지는 또 말없이 집을 떠나셨다. 상해는 벚꽃이 필 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아버지 옆에 의자 하나 더 놓고 벚꽃을 바라봤다. 벚나무는 성목이 되고 아버지는 늙어갔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를 해바라기하며 사셨다.   


 삽짝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선다. 벚나무 아래 멈춘다. 상해는 현관을 열고 나간다. 짙은 자주색 개량한복을 입은 상미누나가 자형과 함께 승용차에서 내린다. 머릿결이 희끗한 누나는 아직도 해맑고 곱다. 자형 역시 중후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상해와 아내는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누나는 상해의 손을 잡고 벚꽃을 바라봤다. 


 “벚나무도 많이 늙었구나. 그 언니가 살았다면 나보다 세 살 정도 많다던데”

 벚나무 아래 놓인 아버지의 의자도 낡았다. 상해는 아버지의 의자가 삭아 내리면 새 의자를 만들어 그 자리에 뒀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그 의자에 앉아 벚나무를 바라봤다. 부자간에 깊은 정이라도 심어주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철이 들면서 어렴풋이 알긴 했다. 아버지는 봇짐장사였다. 온갖 잡동사니를 메고 전국 오지 방방곳곳을 돌다가 벚꽃이 필 때쯤 집에 오셨다. 


 “벚나무가 수명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 올해는 꽃이 적어.”  

 상해는 벚꽃 한 송이를 따서 누나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언니를 만났을까?” 

 “글쎄, 아버지와 엄마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사셨잖아.”

 “너는 한일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의 외교 참사 봤어? 대통령이 일본에게 허리를 굽히더군. 앞으로 친일잔재 청산도 힘들 전망이야. 강제징용도, 정신대 문제도 어떻게 되는 건지, 간도 쓸개도 빼 주겠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더라. 아버지는 일본의 강제징용에 희생당한 어른이니 그 혼백인들 편하겠어? 보상조차 받을 길이 없었으니 오죽 했겠어.” 

 “자존심도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이 어리석은 거지.”

 “여보, 형님과 아주버님이 피곤하실 텐데. 안으로 모셔요. 형님, 들어가시죠.”

 아내는 누나의 손을 잡았다. 누나는 아내의 손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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